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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물질관이 변해야 합니다 (행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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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질관이 변해야 합니다
▣ 본문∕ 사도행전 5:1~11

견물생심도 죄가 된다

여러분은 길을 가다가 돈을 주워 본 적이 있습니까? 저처럼 평생 가야 백 원짜리 하나 못 주워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유난히 길에서 뭘 잘 줍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럴 때 어떻게 하시나요? 웬 떡이냐 싶어 좌우를 살핀 후 얼른 집어갑니까? 아니면 내 물건 아니다 싶어 그냥 두고 갑니까?

얼마 전 뉴스에 이런 기사가 났습니다. 어떤 사람이 물건을 사면서 100만 원짜리 수표인 줄 알고 냈는데 실은 1억 원짜리 수표였다는 것입니다. 수표를 받은 가게 주인도 그런가보다 무심코 받았는데 나중에 수표에 0이 왠지 너무 많이 붙은 것 같아 세어보니 0이 한 개도 아니고 2개나 더 붙어있더랍니다. 그 주인이 어떻게 했을까요? 꿀꺽했답니다. 수표를 들고 달아났다가 구속되었다는군요. 이 기사를 들으니 참 어리석은 사람이다, 안 들킬 줄 알았나 싶으면서도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생각되었습니다. 백만 원도 아니고 천만 원도 아닌 1억이니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돈에 욕심이 생기면 사람이 모든 상식과 판단력을 잃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길에서 돈을 주웠을 때 내가 먼저 봤는데 아무도 모르게 주머니에 넣으면 무슨 죄가 되겠나 싶지만 우리나라 법에 엄연히 '점유 이탈물 횡령죄'로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 죄가 됩니까? 비록 내가 주웠고 지금 내 손에 있지만 그 돈은 내 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엄연히 주인이 따로 있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는 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한 돈

이렇게 돈을 보는 우리의 태도가 참 중요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돈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면, 그래서 여느 세상 사람들처럼 돈에 대한 욕심과 집착에 얽매인다면 그것은 단순히 돈 문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 자체가 바르지 못하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를 믿고도 우리의 물질관, 돈에 대한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진정 거듭난 사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는 돈에 관한 말을 많이 남겼습니다. 몇 가지만 살펴볼까요? "사람만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지갑도 거듭나야 한다." "당신의 지갑이 회개하지 않으면 당신은 진정으로 회개한 것이 아니다." "진짜 은혜는 지갑이 열려야 한다." 무슨 뜻일까요? 여기서 지갑이란 우리가 가진 돈과 재물을 뜻합니다. 어떤 사람의 돈 씀씀이를 보면 그 사람의 가치관과 성품과 신앙관까지 알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물질관, 돈에 관한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참된 신앙이라고 할 수 없기에 오늘 삶의 변화 시리즈 설교 중 물질관의 변화를 생각해 보려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비뚤어진 그리스도인의 물질관을 보여줍니다. 또한 그 비뚤어진 물질관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도 똑똑히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을 바로 이해하려면 몇 장 앞으로 넘겨 사도행전 2장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2장에 보면 오순절 성령강림사건 이후 예루살렘 초대교회가 생겨나는데 42절부터 보면 이 초대교회의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자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면서 떡을 떼고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다고 하는데 특이한 것은 44절부터 보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자신의 사유재산을 팔아 사도에게 바쳐서 모든 성도가 필요에 따라 나누어 썼다는 것인데 어떤 사람은 이 구절을 보면서 무슨 사이비 집단 같다는 분도 있고, 또 어떤 분들은 "이게 무슨 공산주의냐? 어떻게 사유재산을 모두 바치고 필요에 따라 나누어 쓰냐?"는 분도 있습니다. 예, 맞습니다. 공산주의입니다. 실제로 공산주의의 창시자인 칼 막스가 이 성경구절을 보고 공산주의를 착안했다더군요. 그런데 비록 원리는 비슷한지 몰라도 초대교회와 공산주의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모든 사유재산을 법으로 강제로 바치게 합니다만 초대교회는 누가 시킨 사람도 없고 누가 억지로 하게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성도가 자발적으로 스스로 바친 것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성령강림사건 이후 성령 충만해지자 초대교회 성도들 사이에 영적인 좋은 분위기가 형성되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물질에 대한 욕심, 집착을 다 버리고 재산을 스스로 바친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니 물질관부터 바뀌고, 성령이 충만하니 지갑이 변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물질관도 성령 충만해야 바뀝니다. 쉽게 말하면 돈 버는 데나 돈 쓰는 데도 모두 성령 충만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야 바르게 벌고 바르게 쓸 수 있지 사람의 이성이나 자제력 가지고는 절대 안 됩니다. 세상 그 누구도 인간적으로 돈 앞에 장사 없고, 돈을 보고 욕심 안 생기는 사람 없기 때문입니다.

비뚤어진 의도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온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는 어땠습니까? 본문 바로 앞 4:36~37에 보면 바나바도 자기 밭을 팔아 사도들에게 스스로 바칩니다. 바나바는 나중에 바울과 함께 안디옥교회에서 안수를 받고 선교사로 파송된 사람인데 본명은 요셉이고 바나바는 별명으로 그 뜻은 '위로의 아들'입니다. 이런 별명이 붙은 것은 바나바가 교회에서 남을 잘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우리 성도들 가운데도 이런 은사를 받은 분이 있습니다. "저 권사님, 저 집사님은 유난히도 남을 잘 위로하고 격려해. 아무리 실망하고 힘든 사람도 저 분만 만나면 힘을 얻거든." 하는 분들 계시잖아요? 바나바가 바로 그런 은사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바나바가 자기 밭을 팔아 사도들에게 바친 것입니다. 성도들 사이에 소문이 금세 쫙 퍼졌겠지요. "어쩌면 저렇게 훌륭한 분이 있담? 바나바 집사님(편의 상 이렇게 붙임)이 평상시에도 남들 잘 위로하고 격려하는데 이번에는 조상한테 물려받은 비싼 부동산을 팔아 교회에 바쳤다지 뭐야?" 식의 소문이 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이 소문을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도 들었던 모양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 부부도 초대교회에서 어느 정도 뿌리를 박고 신앙생활 하던 분들인 것 같습니다. 혹시 오늘날로 치면 권사님이나 집사님쯤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한 번 가정해봅시다. 예루살렘교회에 아나니아 안수집사님과 삽비라 권사님이 있었단 말이지요. "왜 하필 권사 안수집사야?" 하고 우리 권사님들 안수집사님들 언짢아하지는 마십시오.

그런데 이 아나니아 집사님과 삽비라 권사님이 바나바를 칭찬하는 소문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안 그래도 교회에 성령이 충만해서 성도들이 너도 나도 재산을 바치는 일이 많은데 이번에는 평상시에도 칭찬 받던 바나바까지 그렇게 했으니 꽤 부담이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아깝기는 하지만 남들 다 하는데 우리가 그래도 안수집사 권사씩이나 되어서 안 할 수도 없고" 하는 생각이 들었을까요? 아니면 자신들도 바나바처럼 좋은 소문나기를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이유야 뭐든지 간에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가 땅을 팔아 교회에 바치기로 결정한 것은 성령 충만이 아닌 눈치 보기, 체면 차리기였습니다. 성령 충만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라 문제가 됩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눈치 안 봐도 되고 체면 안 차려도 됩니다. 남이 안 시켜도 즐거운 마음으로 스스로 하게 됩니다. 하지만 성령 충만이 아닌 체면이나 눈치 때문에, 혹은 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면 그것은 악한 생각입니다.

그래서 3절에 보면 베드로가 아나니아에게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다"고 지적한 것입니다.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심각한 얘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더라도 성령 충만하여 자발적으로 기쁜 마음으로 하지 않고 인간적인 동기로 눈치 보며 체면 차리며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한다면 그것은 성령의 일이 아니라 사단의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행동이 왜 잘못 된 것인가? 첫째,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한 행동이 아니라 인간적인 의도, 아니 사단의 의도에 의해 한 행동이기 때문에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부부처럼 잘 못된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돈에도 성령 충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벌 때도 쓸 때로 인간적인 욕심과 눈치, 체면, 자기를 과시하려는 마음을 가지면 반드시 죄를 짓습니다. 돈을 벌 때도 쓸 때도 성령 충만해서 성령의 의도대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르면 됩니다.

돈을 속임의 수단으로 사용하다

그러면 둘째,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의 행동은 왜 잘못된 것인가? 그것은 돈을 가지고 사람을 속이고 나아가 하나님을 속이고 성령을 기만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돈이 선한 것일까요, 악한 것일까요? 답은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다"입니다. 돈이나 물질은 기본적으로 악한 것도 선한 것도 아닌 중립적인 존재이며 수단에 불과합니다. 문제는 그 중립적인 돈을 쓰는 우리의 마음과 자세인데, 우리의 마음에 따라 돈은 선한 것이 될 수도 있고 악한 것도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선한 목적에 돈을 쓰면 그 돈은 너무도 귀하고 선한 돈이 됩니다, 반대로 사람이 악한 의도를 가지고 악한 목적에 돈을 쓰면 그 돈은 정말 더럽고 추악한 것이 되고 맙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돈을 악한 목적에, 죄 짓는 일에 사용합니까? 오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도 돈을 어떻게 사용했는가? 돈을 가지고 사람을 속입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을 속입니다. 나아가 이들은 사람만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이고 성령님을 속인 것입니다. 체면 때문인지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서인지 어쨌든 땅을 팔고 그 돈을 교회에 바치기로 했는데 막상 돈을 손에 쥐고 보니, 너무 아까운 생각이 든 모양입니다. 우리도 이럴 때가 있지요? 헌금을 하려고 마음먹었는데 막상 하려니 아까워 생각이 바뀔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분명히 알아두십시오. 일단 하나님께 드리기로 결심한 재물은 결심한 순간 이미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손에서 떠나야 비로소 하나님 것이 되는 게 아니라 내가 결심하고 약속한 그 순간부터 이미 하나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까운 마음에 그 약속한 물질을 드리지 않으면 그것은 사람을 속이는 것만 아니요 하나님을 속이는 죄가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는 돈이라는 수단을 가지고 아름답고 선하게 쓰지 못하고 욕심 때문에 사도를 속이고 교회를 속이고 결국 하나님과 성령님까지 속이는 성령 훼방죄, 악한 수단으로 돈을 사용했으므로 그 죄가 큰 것입니다.

자유의 한계

세 번째,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의 잘못은 자유를 함부로 남용했다는 것입니다. 기억하세요. 우리 손에 있는 돈을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쓸 수 있지만 반드시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합니다. 4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돈과 재물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기에 기본적으로 우리 마음대로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자유를 죄 짓는 데 쓰느냐 복 받는 데 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돈을 주셨습니다. '내가 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맨 처음에 이것부터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 단계 더 나아가 '주신' 것이 아니라 '맡기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는 '청지기 정신'입니다. 청지기란 큰집에서 가사를 책임지며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고 종들을 다스린 사람입니다. 따라서 청지기가 관리하는 돈은 주인의 재산이지 자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돈을 주신 것은 내 마음대로 쓰라는 뜻이 아니라 잘 관리하라고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청지기는 돈을 쓰더라도 내 마음대로 쓰면 안 됩니다. 반드시 '주인의 의도대로' 써야 합니다. 지금은 내 마음대로 쓰지만 혹시라도 주인의 생각과 다르게 쓰면 나중에 반드시 책망을 받게 됩니다.

성경에도 청지기에게 맡긴 재산을 주인이 나중에 반드시 회계(정산)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게 맡기신 돈을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잘 썼는지 나중에 반드시 평가하신다는 말입니다.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는 바로 이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유를 잘못 사용합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돈을 죄 짓는 일에 사용해서 결국 큰 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돈을 자유롭게 쓰되 책임을 가지고 쓰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내 손에 있는 돈이요 내 재산이지만 반드시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말입니다. 절대 잊지 마세요.

부부 일심동체?

마지막으로,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가 되었기에 잘 못 된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일심동체, 부부가 몸과 마음이 하나 되면 좋은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일심동체라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라 부부가 일심동체가 되어 어떤 일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부부가 일심동체 되어 부부 사기단이나 부부 도박단이 되면 큰일이지요. 부부가 다 함께 망하고 같이 벌 받게 됩니다. 특별히 물질관, 즉 돈 벌고 쓰는 데도 일심동체가 중요합니다.

여러분, 절대 부부 중 하나가 내 마음대로 돈 쓰면 안 됩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의논하지 않고 마음대로 재산을 쓰면 그 집은 망합니다. 간혹 남편이 아내와 의논하지 않고 남에게 큰돈을 빌려줍니다. 아니면 마음대로 보증을 서줍니다. 그래서 잘못되는 집 얼마나 많습니까? 절대 함부로 돈 빌려주거나 보증서지 마세요. 혹시 정 해야겠다면 꼭 부부가 의논해서 하세요. 그러면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함께 극복할 수 있습니다. 왜냐? 돈은 없어도 다시 벌면 되지만 부부간의 신뢰감이 깨지면 다시는 회복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다른 일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돈 문제는 반드시 부부가 의논하고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오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보니까 돈 문제에 있어 부부가 의논해서 일심동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심동체 되어 거짓말을 하고 하나님의 돈을 떼어 먹습니다. 그래서 9절에도 베드로가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고 책망한 것입니다. 부부가 일심동체 되어 좋은 일 하고 귀한 일 한 게 아니라 함께 죄를 지었으니 함께 벌 받고 함께 죽게 된 것입니다.

물질관도, 모든 가정의 대소사도 부부가 한 마음이 되어야 하는데 오늘 예는 불행하게도 일심동체로 귀한 일 좋은 일 한 것이 아니라 죄 짓고 한 날 한 장소에서 죽은 최악의 경우입니다. 부부가 일심동체 되어 좋은 데 돈 쓰시고, 귀한 일을 하십시오. 그러면 혼자 하는 일보다 복을 몇 배로 받게 됩니다. 연예인 중에 깨지고 갈라서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닌데 요즈음 최수종 하희라 부부나 차인표 신애라 부부는 부부가 함께 참 좋은 일 많이 하더군요. 돈도 많이 벌지만 버는 만큼 자선기금도 많이 내고 선행을 무척 많이 합니다. 이렇게 부부가 뜻을 같이 해서 함께 돈을 선하게 쓰면 복도 몇 배로 크게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가정은 어떻습니까? 우리 부부는 어떤 부부입니까? 무엇보다도 크든 작든 모든 일에 부부가 의논하고 뜻을 모으는 일심동체가 되는 부부입니까? 특히 돈 문제에 있어서 마음을 잘 모읍니까? 그런데 그 돈을 아름답고 귀한 일에 쓰고 하나님께 복 받는 일에 마음이 모아지고 있습니까? 반드시 점검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잘 벌고 잘 써야

그러면 오늘 결론이 뭔가? 한 마디로 돈 잘 벌고 잘 쓰라는 것입니다. 돈 잘 버는 법은 저도 잘 몰라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알면 저도 부자 됐게요? 하지만 성경이 이것 하나는 분명히 말씀합니다. 내게 주신 돈을, 재산을 의미 있게 잘 쓰라고 말입니다. 오늘 오신 부모님들, 어르신들 혹시 요즈음 유산문제 때문에 싸우는 집 많은 것 아십니까? 형제간에, 심지어 어머니와 자식들 간에 유산 소송이 엄청나게 많답니다. 제가 유산문제 전혀 없이 돈을 정말 잘 쓰는 법 하나 가르쳐 드릴까요? 자녀들 물려주지 마십시오. 이런 말 들으면 자녀들이 굉장히 싫어하겠지만 아무리 싫어해도 저는 단호하게 말씀드립니다. 자녀들 공부시키고 시집장가 보내면 충분합니다. 절대 재산 물려주지 마십시오. 저도 재산이랄 것도 없지만 절대 안 물려 줄 것입니다. 자식들도 자기가 땀 흘리고 노력할 생각을 해야지 부모 재산 바라고 사는 것이 절대 도움이 안 되기 때문에 물려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얼마 전 포스코 이구택 회장께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 기업에도 재벌의 부자상속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되나? 상속세를 30% 이상 과세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저는 더 좋은 방법을 알려드리지요. 자녀들에게 재산 안 물려주면 재벌의 부자상속 완전히 없어집니다. 재벌 아니라도 좋으니 내 재산이 많고 적음을 떠나 물려주지 마십시오. 상속세가 무서워서 안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아예 세상 떠날 때 전 재산 다 쓰고 가십시오.

지난해 미국에서 기부금을 제일 많이 낸 사람은 토크쇼 사회자인 오프라 윈프리라는 여성입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재산이 1조 4천억으로 흑인여성 중에는 최고 갑부인데 돈이 많아서 부자가 아니라 마음이 부자인 사람입니다. 지난 1년간 우리 돈으로 약 580억 원을 기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부자만 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 미국인들의 98%가 어떤 형태로든지 기부를 하고 있다니 가히 미국은 기부문화가 생활화 된 사회라 할 만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제일 잘 하는 것은 평생토록 자녀들 위해 올인(all-in)하고, 자녀 위해 모든 것 희생하다가 세상 떠날 때도 자녀들에게 몽땅 물려주는 일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제일 못 하는 일이 기부하고 사회 위해 잘 쓰는 일입니다.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쓰세요. 나 자신만 위해, 자녀들만 위해 쓰지 마시고 사회 위해 쓰고 나누는 데 쓰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쓰느냐? 서양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떠날 때 교회에 바쳐서 선교나 사회봉사에 쓰게 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재산을 사회단체나 학교에 기부합니다. 평생 호두과자 팔아서 교회를 10개 넘게 지은 호두과자 할머니가 있고, 평생 김밥 장사해서 모은 돈을 자신은 문턱에도 못 가본 대학에 장학금으로 내놓는 분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분은 칠순기념여행 하라고 자녀들이 모아 준 귀한 돈을 장학금으로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이 신앙인입니다.

뭘 알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진짜 부자는 나눌 줄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돈을 잘 쓰는 것이 하나님께 복 받는 최고의 방법임을 터득한 분들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돈을 많이 가진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돈을 잘 쓰는 데서 온다는 사실을 알고, 돈 쓰는 기쁨이 무엇인지 아는 분입니다.

여러분, 돈 열심히 버십시오. 정당한 방법으로 잘 벌어 부자 되십시오. 그리고 혼자만 부자로 끝나지 마시고 모든 사람을 위한 부자 되어 아름답게 나누고 사용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재산이 성령 충만한 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신앙이 진정 거듭난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장차 주님 앞에 섰을 때 "너는 세상에서만 부자가 아니라 진정 내 앞에 부자로구나."라는 칭찬 받게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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