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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자녀들이 들어야 할 말씀 (엡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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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버이주일입니다.
어버이주일에는 부모님의 사랑과 은혜를 가슴에 새기며 감사하고 부모님에 대한 효도를 다짐하면서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교회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다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본래 초대교회는 어린이와 어른들이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한 공동체로 예배드리면 더욱 친밀감을 느끼고 더욱 연대감을 느끼는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어린이주일에는 우리 어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부모로서 아버지 어머니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자녀들이 우리 부모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바랍니다.

몇 년전인가 크게 히트를 쳤던 소설 중에 “가시고기”라는 소설이 있었습니다. '가시고기' 라는 고기는 자신을 던져 새끼를 먹이고 자신은 마지막 바위틈에 머리를 박고 죽는다고 합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아버지는 가시고기같이 끝까지 자식을 위해서 모든 사랑을 주고 결국 죽는 내용의 소설입니다.그러나 아버지뿐만 아니라 부모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소설입니다. 소설의 아버지는 아내와 이혼하고 백혈병에 걸린 어린아들을 키우면서 시인으로서 살게 됩니다. 고통스러운 아버지와는 달리 백혈병에 걸려 입원중인 아들은 천진난만한 꿈을 갖고 살아갑니다. 빨리 병이 낫고 싶고, 아빠가 부자였으면 좋겠고, 여자친구에게 꽃핀을 선물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소원이 많기도 합니다. 이런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서 모든 돈과 노력을 다 바치는 과정에 결국 그 아버지가 병을 얻게 됩니다. 결국 아버지는 아들을 아내가 있는 프랑스에 보내고 쓸쓸하게 죽고 만다는 내용입니다.

많은 세상의 부모들이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가시고기같이 희생하는 것을 기쁘게 감당합니다. 그래서 “내리사랑”이 있지 ‘윗사랑’은 없다고 합니다. 제가 가정의 달을 5월을 맞이하여 어린이 주일 설교와 어버이주일 설교를 준비하면서 확실하게 나타나는 것을 한가지 보았습니다. 많은 책과 자료 중에 부모들이 어떻게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가 관련된 자료와 책들은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자녀들이 어떻게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는가 효도에 대한 자료와 책은 별로 없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바로 “내리사랑”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은 효도에 더 관심을 갖습니다.
그래서 십계명 중에서 제 5게명을 통해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면서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효도를 십계명에 언급하면서 그것을 사람들이 사람에게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하고 큰 명령으로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오늘 에베소서 본문에서도 부모가 자녀에게 행해야 할 명령보다도 먼저 자녀들이 부모에게 행해야 할 말씀을 먼저 주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시간 우리 자녀들이 왜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는가 어떻게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는가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1.왜 부모를 섬겨야 합니까?

첫째, 그리스도인으로서 효도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6:1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주안에서’ 라고 합니다.
여기 “주안에서”라는 말이 소개됩니다.
“주안에서”라는 말은 “주님의 백성이라면”“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바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순종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3:20에 보면 “자녀들아 모든 일에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기쁘게 하는것이라”고 합니다. 부모를 순종하는 일은 우리 주님을 크게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먼저 인정할 것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것은 바로 부모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10달동안 잉태의 고통과 해산의 고통과 더불어 결국 이 세상에 나를 낳아주셨습니다. 아이를 낳은 어머니들은 잘 알 것입니다. 그 고통이 어떤 고통입니까? 어떤 집사님은 그 살을 찢는 고통은 경험한 사람만이 아실 것입니다. 물론 요즘은 마취하고 수술하여서 낳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취하고 배를 찢고 하는 것도 많은 고통이 수반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를 해산하고 나서부터는 어떻게 키웁니까? 그 아이에게 시간맞추어서  젖과 우유를 주어야 하고 기저귀를 갈아주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하기도 합니다. 또 감기나 병이라도 걸리기나 하면 온 집안이 비상입니다. 또 잘못하여 다치거나 하면 그 고통은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저희 집 같은 경우도 세아이를 키우면서 크지만 않지만 작은 사고들이 여러번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부모들의 가슴은 찢어질 정도로 아픕니다.

이렇게 먹이고 양육하다가 때가 되면 유치원 학교에 보내야 합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보내면서 한아이가 정상적인 성인으로 자라게 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뒷바라지와 희생이 있는지 모릅니다. 학교 졸업하면 또 장가 시집 보내어야 하고 결혼시키면 또 낳은 아기 뒷바라지 해야 합니다.
부모는 누구입니까?
나의 생명의 모체입니다. 나의 삶의 근원입니다.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후원하여 주신 그분이 바로 나의 부모입니다.

그러나 부모 중에는 부모답지 못한 부모도 있을 수 있습니다. 가끔 보면 술만 먹으면 가정에 들어와서 소란을 피우고 가정을 공포분위기로 만드는 아버지들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그런 부모들 때문에 상처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 부모가 경제적인 연약함으로 인해 나를 충분히 후원하여 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 부모가 인격적인 결함이 많아서 많은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입니다.
무식하여도 부모입니다. 가난하여도 부모입니다. 좀 얼굴이 못나도 부모입니다. 인격이 좀 문제가 있어도 부모입니다. 그 부모를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 부모를 하나님이 나에게 허용하셧습니다. 그러므로 그 부모에게 주님 안에서 효도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도 이땅에 오셔서 33년의 삶을 살 때 30년간동안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때 주님은 오히려 부모들보다 더 지혜로왔습니다. 부모들보다 더 말씀이 있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신의 부모에게 순종하였습니다.누가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 부모와 함께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그때 절기의 모든 예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이 예루살렘에 다시 돌아가보니 거기 성전에서 선생들과 함께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면서 계셨습니다. 그때 부모가 놀라서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으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고 합니다. 그러자 주님이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합니다. 무엇을 보여주는 것입니까? 이미 예수님께서 메시야로서의 사명,존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어떻게 합니까?

눅2:51 “예수게서 한 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는 것입니다.이렇게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의 요셉과 마리아에게 자기를 낮추어 순종하여 받드셨습니다.가장 높으신 분이 낮고 천한 인간의 몸으로 이땅에 오셔서 순종한 그 사실을 우리는 보아야 합니다.이와 같이 우리도 주안에서 효도할 때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둘째 효도하는 일이 하나님의 질서에 순응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효도를 말씀하면서 ‘이것이 옳으니라’고 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이 인간이 인간을 향하여 가장 옳은 일 중에 하나가 바로 효도하는 일입니다. 여기 옳다라는 것은 의롭고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옳고 선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대하는 부모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대하는 최초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부모와 관계가 좋으면 모든 사람들과 관계가 좋을 수 있습니다. 인생은 관계에서 성공해야 합니다. 그 시작이 바로 부모와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만약에 부모와 미움과 다툼 속에 비정상적인 관계가 되면 다른 사람들과 특히 권위자와의 관계가 망가지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상처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 권위자들을 대하면 옳지 않은 모습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효도라는 것은 어떤 영적인 차원에서만 따질 구별된 문제가 아니고 그 자체가 일반세계에서도  다 인정하고 긍정해야 할 옳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효도의 문제는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다같이 옳고 선한 자연법의 질서입니다. 이것은 이미 태초에 하나님이 세우진 창조질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부모를 만드시고 자녀를 생산하게 하시고 그리고 자녀들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질서를 세우신 것입니다. 만일 자녀들이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역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창조질서를 역행하는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유전자 조작을 하여 아기를 낳는 것 남자가 성전환을 하여서 여자가 되는 것이 창조질서를 거역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 못지 않게 창조질서를 거역하는 행위가 바로  부모를 거역하고 불효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 하나님께서는 질서가 나타나기를 원하십니다.
특별히 가정에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질서들은 무력에 의해서 어떤 법으로 인해서 강제적으로 세워지는 질서가 아닙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공경하고 순종함으로서 이루어지는 질서입니다.바로 효는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이루어 가는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2. 어떻게 효도를 실천해야 합니까?

오늘 에베소서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들에게 구체적인 효도를 실천하는 방법을 우리들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여기 에베소서 6장1-3절 말씀에서는 2가지를 강조합니다. 하나는 순종이고 다음은 공경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효도입니까?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효도하는 것입니까?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2가지는 서로 병행해서 함께 효를 실천할 때 나타나야 합니다.

첫째 효도란 부모님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하라”는 본래의 뜻은 “들을 준비를 하라”,“즉시 귀를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즉 순종은 부모의 말을 잘 듣는 것입니다. 그것을 경청이라고 합니다. 부모님께 순종하라는 것은 부모의 말을 귀기울여 듣고 기쁘게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순종의 시작은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는데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 현대인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순종하기가 어렵습니다 .권위자들에게 순종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순종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한 서구 유럽의 사람들이 제일 순종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 사고방식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반대로 가장 순종을 잘 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과거에는 북한과 같은 공산주의 체재의 사람들이고 지금은 부족국가인 아프리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권위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이 순종을 잘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미혹의 영 마귀는 우리를 불순종하게 인도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마귀는 우리를 자꾸 불순종하도록 미혹합니다.아담과 하와를 아버지 하나님에게 불순종하도록 미혹했습니다. 에수님을 불순종하도록 미혹했습니다. 지금도 우리들을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도록 미혹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 자녀들 중에 불순종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마귀를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여러분을 향해서 이렇게 속삭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대로 살아가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야”“ 너가 생각한 대로 너는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해”라고 할 것입니다. 사탄은 하와를 미혹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권위데 불순종하게 한 것처럼 여러분의 생각을 조종하고 미혹하여 불순종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불순종하는 자녀 불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용하지 않습니다.

부모에게 가장 순종을 잘 한 성경의 사람 중에 한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삭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사라와 관계 속에서 100세에 얻은 아들입니다. 지금으로 말을 하면 늦둥이인 셈입니다. 요즘 가정들마다 늦동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늦동이들은 많은 사람을 받습니다. 이삭도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이 너무 너무 사랑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을 들었을때 어쩌면 아브라함은 하늘이 노랗고 말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합니다. 그런데 더욱 주요한 것은 아브라함이 이 명령을 순종할 때 그 아들 이삭이 아버지의 뜻을 순종합니다. 아버지가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하면서 제사에 쓸 나무와 불과 칼을 들고 먼 길을 가야 할때 이삭은 그 아버지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모리아산에 도착해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잡아 칼을 내밀러 죽여 제사의 번제물로 드리려고 했을때에도 이삭은 순종하여 아버지의 뜻에 따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

이삭을 통해서 우리 자녀들이 꼭 순종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바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좀 내가 바쁘고 힘이 들어도 예배드려야 합니다. 주일날 더 자고 싶고 놀고 싶고 공부하여야 하지만 예배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먼저 예배드리는 일에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들어야 할 부모의 말씀이 무엇이 있습니가?
좀 자란 경우에 자녀와 부모와 관계 속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결혼문제입니다 .믿는 부모들의 경우에 자녀들이 ‘믿는 배우자를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만일 불신자와 사귀면서 결혼하려고 할때 부모들이 반대할 수 있습니다. 그때 자녀의 입장에서 끝까지 자기 생각을 고집하여 결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녀들은 이런 경우에는 부모를 따라주어야 합니다.  가장 큰 불효가 부모가 성경적인 뜻을 강조하고 말하여도 그것을 고집을 세워서 듣지 않을때입니다.

성경에서는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을 엄하게 다루고 있습니다.구약 신명기 21장18-21절을 보겠습니다.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 아비의 말이나 그 어미의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부모가 징책하여도 듣지 아니하거든 그 부모가 그를 잡아가지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거든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 (신21:18-21)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불순종하는 자를 쳐죽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이 땅에 오게한 근원을 말살하는 행위임으로 그것을 끊어 버리는 것입니다.이것은 곧 사람을 창조하시고 가정을 창조하신 행위를 부정하는 것입니다.결국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훼방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그럼으로 부모에게 향한 불순종은 하나님께 대한 불손종이요 부모에게 훼방하는 것은 하나님께 훼방하는 것임으로 반드시 죽이도록 하는 것입니다.경청을 통한 실천을 통하여 효도를 실천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효도란 바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2절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합니다.
공경이라는 말 속에는 존경의 요소와 두려움의 요소를 함께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이것은 마치 하나님을 경외할 때 의미가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듯이 땅에 있는 육신의 아버지도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부모를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모를 천대하거나 멸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외모가 별볼일없고 가진 돈이 없더라도 부모를 존경하라는 것입니다.외적인 소유 그 자체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세상이지만 하나님은 인생 그 자체에서 오는 연륜의 깊이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영광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그럼으로 성경은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요”(잠16:31)이라는 것입니다.그래서 마땅히 자녀들은 “센 머리 앞에 머리를 숙여 ”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부모를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버릇없이 함부로 굴지 말라는 것입니다.예의 범절도 모르고 어른을 아이들같이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즘 점점 어른의 권위가 무시되는 시대입니다. 점점 수직적인 시대에서 수평적인 시대로 가면서 어른과 아이의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모든 것이 점점 젊어지면서 어른들이 위축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세대가 그렇다고 함께 따라가서는 안됩니다. 예의를 존중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전에는 함께 식사를 하면 어른들이 식사를 하지 않으면 먹지도 못했습니다. 어른 앞에서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햇습니다. 이제 이런 부분에서는 자유로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적으로 어떤 어른에 대한 예외가 사라져서는 안됩니다.
특별히 우리 자녀들이 어른들에게 부모들에게 공경의 적용으로 가장 고쳐야 할 것이 바로 언어입니다. 엄마 아빠에게 함부로 반말을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어른들에게 경어를 쓰는 것이 바릅니다. 왜냐하면 언어는 우리의 마음이요 우리의 인격이기 때문입니다 .

또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있는 것은 부모가 없다면 어렵습니다. 오늘 내가 이렇게 공부하고 살아가는 것은 바로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자녀들은 한번 따라하시기 바랍니다. “부모님 고맙습니다”. 그래서 밥을 먹을때에도 “감사”의 마음으로 먹으십니다. 옷을 입을 때에도 “감사”의 마음으로 입으십시오. 잠을 잘 때에도 “감사"의 마음으로 잠을 자시기 바랍니다.

보이는 부모님을 공경하여 섬기는 것을 잘 해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습니다.그래서 루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부모는 하나님의 대표다.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존경과 경외로 섬기듯이 하나님의 대표인 부모도 존경과 경외로 섬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3. 부모를 잘섬길때 오는 결과가 무엇입니까?

3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것입니다.
효도 뒤에 주어질 하나님의 복은 “잘되는 것”입니다. 여기 땅에서 잘된다는 것은 땅의 성공을 의미합니다.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복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우리는 구약의 룻이라는 여인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시아버지도 죽고 남편도 죽고 시숙도 죽어 패망한 가정에서 그녀는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릅니다.자신을 떠나라고 하는 시어머니의 말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멀리 이국 땅에서 부터 그 시어머니 따라 이스라엘로 옵니다.그러나 이스라엘로 돌아온 뒤에 가난한 집안의 며느리로 룻이 해야할 일은 이삭을 줍는 일이엇습니다.그녀는 궂은 일 소에서도 원망하지 않고 그 시어머니를 정성껏 봉양합니다.이러한 룻에게 하나님은 좋은 길을 열어주십니다.룻이 이삭 줍던 밭의 주인 보아스와 결국 재혼하게 되고 룻은 바로 예수님의 조상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특히 가정에서 우리가 부모들에게 잘 순종하고 공경하게 되면 그 가정의 후대에 가서도 반드시 하나님이 가문을 세우시고 가정을 흥왕하게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우리의 가정에서 다시 효로 인하여 우리의 가정이 다시 회복되고 새로워져서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하나님의 복을 경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박춘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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