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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네 부모를 기쁘게 하라 (잠 23: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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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마음을 나타내는 <늦은 후회>란 글이 있습니다.
평생을 일그러진 얼굴로 숨어 살다시피 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었는데
심한 화상을 입어 자식들을 돌볼 수가 없어
고아원에 맡겨 놓고 시골의 외딴집에서 홀로 살았습니다.

한편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 자식들은
    아버지를 원망하며 자랐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라며 나타난 사람은
    화상을 입어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고,
    손가락은 붙거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저 사람이 나를 낳아준 아버지란 말이야?`
    자식들은 충격을 받았고,
    차라리 고아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더 좋았다며
    아버지를 외면해 버렸습니다.
시간이 흘러 자식들은 성장하여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었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사람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혼자 외딴집에서 지냈습니다.
몇 년 뒤, 자식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동안 왕래가 없었고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고 살았던 자식들인지라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별다른 슬픔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을 낳아준
    아버지의 죽음까지 외면할 수 없어서 시골의 외딴집으로 갔습니다.

외딴집에서는 아버지의 차가운 주검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을 노인 한 분이 문상을 와서
    아버지께서는 평소에 버릇처럼 화장은 싫다며
    뒷산에 묻히기를 원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자식들은 아버지를 산에 묻으면
    명절이나 때마다 찾아와야 하는 등 번거롭고 귀찮아서
        화장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를 화장하고 돌아온 자식들은
    다시 아버지의 짐을 정리해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덮었던 이불이랑 옷가지들을 비롯해
    아버지의 흔적이 배어 있는 물건들을 몽땅 끌어내 불을 질렀습니다.
마지막으로 책들을 끌어내 불 속에 집어넣다가
    빛바랜 아버지의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불길이 일기장에 막 붙는 순간
    왠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얼른 꺼내 불을 껐습니다.
    그리곤 연기 나는 일기장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일기장을 읽다가 그만 통곡하고 말았습니다.
    일기장 속에는 아버지께서 보기 흉한 얼굴을 가지게 된
    사연이 쓰여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얼굴을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자신들이었습니다.

일기장은 죽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쓰는 편지로 끝이 났습니다.
    `여보! 내가 당신을 여보라고 부를 자격이 있는
        놈인지조차 모르겠습니다.
    그 날 당신을 업고 나오지 못한 날 용서하구려.
    울부짖는 어린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
    당신만을 업고 나올 수가 없었다오.
    이제 당신 곁으로 가려고 하니 너무 날 나무라지 말아주오.
    덕분에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다오.
    비록 아버지로서 해준 것이 없지만 말이오...`
보고 싶은 내 아들 딸에게.
    평생 너희들에게 아버지 역할도 제대로 못하고
    이렇게 짐만 되는 삶을 살다가 가는구나.
    염치 불구하고 한 가지 부탁을 하려한다.
    내가 죽거들랑 절대로 화장은 하지 말아다오. 난 불이 싫단다.
평생 밤마다 불에 타는 악몽에 시달리며 30년 넘게 살았단다.
    그러니 제발...!` 뒤늦게 자식들은 후회하며 통곡하였지만
    아버진 이미 화장되어 연기로 사라진 뒤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측도는 경건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약1:27절에 “참된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 잠언23장에서는
참된 경건은 22-26절에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기 이전에
부모를 먼저 기쁘게 하고
27절 이하에 -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부모를 공경하는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부모를 공경하는데 있어 부모 자식 간에 가장 기본적인 자세가 무엇이겠습니까?

1. 부모 자식 간에 가장 기본적인 자세가 무엇입니까?(22절)

십계명 중 인륜의 첫 계명은 출20:12절에
[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
제 5계명에 보면
  단지 네 부모라고 되어 있지 어떠한 제한적인 수식어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인격적으로 존경할 만한 네 부모`라든지
      `너를 사랑하며 희생하여 키운 네 부모` 라는 등의
        어떤 설명도 단서도 제한적 표현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때로는 자식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고
  가정을 돌보지도 않고 혹은 자식을 학대하며 키운 부모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그가 부모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를 공경하라고 명하십니다.
우리 주변의 소위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어린 시절의 부모의 학대와 차별에 대한 기억으로
    부모를 원망하며 심지어 저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하며 어떤 제한적 조건을 달지 않습니다.
당신의 부모를 공경하는 데 있어서 아무런 이유나 조건을 달지 마십시오.
오늘 본문말씀도 22절에
[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 합니다.
원문에는 너 낳은 아비란  - 네게 생명을 준 아비란 말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똑 같은 사람인 것 같은데
            부모 자식이 다른 것 있지요.
부모는 자식이 존재 이유 만으로도 기뻐합니다만
    자식은 늙은 부모가 존재하는 이유 때문에 짐스러워합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나를 존재하게 해 준 부모에게 청종하라고 합니다.
청종이 뭡니까? 귀를 기울여 듣고 따르는 것입니다.
특히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말은 꼭 귀담아 들으시기 바랍니다.
자식이 더 많이 배웠다고 해서 부모의 말을 경히 여겼다가는
    꼭 낭패를 당한 뒤에 그 말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많이 들어보셨죠? 니 그래 공부해가 뭐 될려고 하노?
그대는 왜 그 말이 잔소리도 들릴까요? - 철이 없어서 그렇지요
신27:16절 [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 
그러나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은 - 잔소리가 아니라
    자녀된 우리에게 축복의 말씀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하나님의 축복이 붙어 있는 약속 있는 계명입니다.
이를 행함으로써 영과 육의 풍성한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영국의 여류 문학가 <매컬리>는 자녀들에게 다음과 같은 충고를 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아,
어머니의 인자한 눈, 부드러운 손, 친절한 음성이 존재하는 동안
이것들을 존귀하게 여겨라, 사랑하는 어머니는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를 특별히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일생동안 아무리 많은 동무들에게 사랑을 얻는다고 해도
      지금 어머니에게 받는 사랑만은 못 할 것이다.”
부모의 사랑은 자연적으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자식은 부모와 같은 사랑으로 자기 부모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러한 세대를 향해
나를 낳아 준 부모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특히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그럼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는 기준이 무엇일까요?

2.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는 기준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23절)

23절 [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
이 말씀의 해석은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라는 말은 진리를 소중히 여기라는 말이며
  진리를 근거로 해서 지혜와 훈계와 명철을 얻으라는 말입니다.
부모 공경과 진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것은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세상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고생을 알아주는 것도 중요하고,
효도관광 시켜 드리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진리를 소중히 여기고 진리 가운데 사는 것이 부모에게 큰 즐거움입니다.
제가 어머님 한테 찾아갈 때
    물론 용돈도 음식도 가지고 갑니다만
    되려 음식은 맛이 있니 없니 하는데
    기도해 주면 갑자기 목사님 감사합니다 감격을 해요.
효도에도 물질적인 것이 주는 기쁨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기뻐합니까? 진리가운데 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자세히 보세요. 여기에 귀중한 진리가 있습니다.
왜? 아비를 청종하고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고 하면서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삼상8:1-3절에 사무엘 아들들이 이것을 말해 줍니다.
왜 그렇게 훌륭한 사무엘의 아들들이
아버지의 길을 따르지 않고 뇌물을 좋아하는 자들이 되어
      부모와 나라의 근심거리가 됩니까?
자신들이 먼저 진리에 눈이 뜨여져
        거듭난 신앙인이 되어야 만이 부모에게 효도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구원의 확신을 가진 자식들인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고 가치관이 바뀌어지고 성령의 사람인지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무엘의 아들들 같이
    부모의 영역에 벗어나면 본성들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가 되기 위해 부모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3.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가 되기 위해 부모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24절)

24절 [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
23절과 연관된 말씀이지요.
지혜로운 자식이 부모 공경한다는 말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부모가 되어 자식의 신앙양육에 힘을 쓰면
    신앙의 사람이 되면 부모를 공경하는 자식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영국의 시인 <콜리지>에게 한 방문객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평소 콜리지를 존경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화의 주제가 자녀에게로 옮겨졌습니다.
그 때 방문객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자녀들은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일찍부터 자기 스스로 결심을 하는 법을 배우거든요.
어린 아이들이 자기들이 지니고 있는 잠재력을 완전하게 키워 나가는
        유일한 길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믿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콜리지는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우리 꽃을 보러 갈까요?`
이렇게 말하고 콜리지는 방문객을 꽃이 만발하게 피어있는
    정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방문객은 그의 정원을 한번 둘러보고는 놀라서 말했습니다.
`아니! 왜 여기는 잡초 밖에 없나요?`
콜리지가 말했습니다.
`여기도 전에는 꽃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금년에는 일부러 내버려 두었습니다.
    자기들이 자라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어떻게 자라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렇게 잡초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자녀들에게 정원사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꾸고
        신앙의 유산을 물려줄 수 있는 부모가 될 때
        그 자녀들이 부모에게 효도할 줄 믿습니다.

그럼 우리가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4. 우리가 부모를 공경한다는 것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25절)

15절 [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
부모를 공경하기 위해
1) 먼저 부모의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오래전에 어느 생명보험회사에서 이색적인 광고를 했습니다.

바로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먼저 아버지에 관한 말입니다.
스물아홉 - 열네 시간을 기다려서야 자식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당신은 당신도 모르게 기도를 올렸습니다.
서른 일곱 - 자식이 초등학교에 들어가 우등상을 탔습니다.
        당신은 액자를 만들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 두었습니다.         
아직도 당신의 방에는 누렇게 바랜 액자가 걸려 있습니다.
마흔 셋 - 일요일 아침 모처럼 자식과 뒷산 약수터로 올라갔습니다.
      이웃 사람들은 자식이 아버지를 닮았다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당신은 괜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마흔 여덟 - 자식이 대학 시험을 보러갔습니다.
      당신은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했지만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쉰 셋 - 자식이 첫 월급을 타서 내의를 사 왔습니다.
      당신은 쓸데없이 돈을 쓴다고 나무랐지만
      밤이 늦도록 그 내의를 입어보고 또 입어 봤습니다.
예순하나 - 딸이 시집을 가는 날이었습니다.
      딸은 도둑 같은 사위 얼굴을 쳐다보며 함박웃음을 피웠습니다.         
당신은 나이 들고서 처음으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오직 하나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며 살아온 한평생.
    하지만 이제는 희끗희끗한 머리로 남으신 당신....
        우리는 당신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어머니의 광고는 이렇습니다.
스물하나 - 당신은 고개를 두 개 넘어 얼굴도 본적이 없는
        김씨 댁의 큰 아들에게 시집을 왔습니다.
스물여섯 - 시집온 지 오년 만에 자식을 낳았습니다.
        당신은 그제야 시댁 어른들한테 며느리 대접을 받았습니다.
서른 둘 - 자식이 밤늦게 급체를 앓았습니다.
      당신은 자식을 업고 읍내 병원까지 이십 리를 달렸습니다.
마흔 -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당신은 자식이 학교에서 돌아올 무렵이면
    자신의 외투를 입고 동구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자식에게 당신의 체온으로 덥혀진 외투를 입혀 주었습니다.
쉰둘 - 자식이 결혼할 여자라고 집으로 데려 왔습니다.
    당신은 화장한 얼굴이 싫었지만 자식이 좋다니까 당신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예순 - 환갑이라고 자식이 모처럼 돈을 보냈습니다.
    당신은 그 돈으로 자식의 보약을 지었습니다.
예순다섯 - 자식 내외가 바쁘다며 명절에 고향에 못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동네 사람들에게 아들이 바빠서 아침 일찍 올라갔다며
      당신 평생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습니다.
오직 하나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며 살아온 한평생,
    하지만 이제는 깊게 주름진 얼굴로 남으신 당신..
    우리는 당신을 어머니라 부릅니다.
우리는 이 광고를 통하여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이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광고의 내용이 어느 특별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부모들입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충분히 부모님을 존경 할 만합니다.

2) 우리는 부모가 자랑스러워야 합니다.
미국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
그는 정규적인 학교 공부 제대로 못해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링컨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상원에 나가 연설을 하는데
면전에서 어느 상원의원 한 사람이
“당신이 대통령이 됐다는 건 우리 미국의 부끄러움입니다” 하더니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 들며
“당신 아버지가 만들어준 구두요. 구두쟁이
아버지의 아들이 대통령이 되다니...” 혀를 끌끌 차며 핀잔을 주더랍니다.
그러자 링컨 대통령은 빙그레 웃으면서
“저는 나의 아버지가 구두장이라는 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구두가 터지거든 내게 가져오십시오.
  아버지 등 너머로 보고 배운 게 있어 수선할 줄 알거든요.
  그간에 바쁘게 사느라고 아버지를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오늘 우리 아버지를 생각나게 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의사당의 모든 의원들이 기립해서 박수의 갈채를 보냈다고 합니다.
부모를 존경할 줄 아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
제가 자식을 키우면서 가장 가슴에 남는 말은
자식이 스물 네 댓살 때 - 딱 한 번 아들하고 하루를 지냈는데
그 날 밤에 메일이 왔어요 - 아버지, 나도 아버지 닮아 가는 것 같습니다.
그 말이 왜 그렇게 가슴에 찡 해 올까요?
특히 우리 자녀들 - 부모에게 존대말 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말로써 부모를 경멸하지 않습니다.

3) 부모의 마음을 알아 주어야 합니다.
여기 노인들이 우리 앞에 들려주는 마음 아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 노인들을 향하여 연구를 한 결과입니다.
부모가 자식 앞에 하고 싶지 않은 말,
하기에 부담스러운 말 중에 대표적인 것이 이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몸이 아프다’는 말을 하기가 그렇게 어렵다고 합니다.
“얘들아, 내가 지금 몸이 아프다 약을 좀 지어 달라.
      병원에 가서 치료를 좀 받자”라고 하는 이런 말을 하기가
      너무 부담스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체가 아파도 한참동안 참는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외롭다’는 말을 하기가 그렇게 힘든 답니다.
  노인들이 정신적으로 외로움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식들 앞에 “얘들아, 내가 외롭다.
  어디 바람 좀 쐬러 가자. 여행을 한번 가자”
      차마 이 말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배고프다’ 는 말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 배고프다는 말은 실제로 끼니를 거르는 노인들도 더러 계시지만       
여기에는 용돈이 궁한 것도 포함시켜서 통계를 내었습니다.
  “얘들아, 내가 지금 용돈이 궁하다. 용돈을 좀 달라”
  이 말을 하기가 어렵답니다.
부모의 아픈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

4. 나아가 부모를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라고 합니다.

마음만으로 효도가 아니라 행동으로 효도해야 합니다.
조선시대 야사를 하나 소개합니다.
임금님이 개성고을을 한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몇 월 몇 일, 임금님이 개성고을을 순방하신다는 방을 붙였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한 촌에 사는 어느 노모가 아들에게 요구를 합니다.
“얘야, 임금님이 우리 고을에 오신다는데 용안을 한번 뵙고 죽는 게 내 소원이다.”
“어머니, 그건 안 될 말입니다.
      어디 천민이 감히 상감마마 앞에 갈 수가 있으며,
      임금님 행차에는 우리 같은 사람은 근방에도 못갑니다.”
그래도 이 어머니는 아침저녁으로 아들을 보채기 때문에
임금님이 오시는 날  이 아들이 어머니를 업고는 나서는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도저히 포졸들 때문에 그 행차 근방에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애절한 소원을 담은 이 아들이
    임금님의 행차에 그 용안을 한번 보여 드리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이리 뛰며 저리 뛰면서 포졸들과 몸싸움을 하는데
    그 광경을 임금님이 보시게 된 것입니다.
황공을 하신 임금님은 도승지를 불렀습니다.
“오늘 개성고을 아무 개 지점에서 이런 일이 있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그 사람을 데리고 오너라.” 그래서 불렀습니다.
“네가 오늘 어찌하여 그런 일을 했느냐?”
“폐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 같은 천민이 소란을 피워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하고는 사연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 사연을 들은 임금님은 큰 효자상을 베풀었습니다.
그 소식이 온 고을에 전해지고 그야말로 상놈인데도
  임금님의 상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양반대우를 받게 되고 훌륭한 효자로서 세워졌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했습니다.
몇 년 후에 임금님이 또 행차한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런데 그만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수많은 자식들이 부모님을 업고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광경을 본 임금님이 도승지를 보고
그래서 임금님의 상을 내리기 위해서
    그날 나왔던 사람들을 조사를 해보니까 큰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수많은 민원이 들어왔습니다.
“저 아무개 저 사람은 평소에 어머니를 구박하는 불효막심한 놈인데
    상 받으려고 일부러 그날 업고 나간 것입니다.”
하는 이런 고발이 들어오는데 상 줄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사실대로 보고를 했습니다.
“폐하, 이번에는 상을 줄만한 효자가 없는 줄로 아뢰오.”
그런데 임금님은 청천벽력같이 호령을 내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도 남김없이 상을 내리도록 하라.”
신하들이 안절부절 합니다.
“폐하, 다시 한번 통촉하시옵소서. 이번 같은 경우는 다르옵니다.”
“어허, 어명대로 할지어다.” “폐하, 무슨 연유인지 연유라도 설명해 주옵소서.”
임금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효도란 흉내만 내어도 아름다운 것이야. 그러니까 상을 내리도록 하라.
효도는 흉내만 내어도 아름다운 것이라 합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흉내라도 내는 자식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지 아니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5.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지 아니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26절)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26절 [ 네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
여기에 두 가지가 나옵니다.
1)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달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부모의 가르침에 관심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2)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라고 합니다.
  여기에 내 길은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말합니다.
  자녀들아, 내가 사는 내 모습을 네 눈으로 보라는 말입니다.
  즉 부모가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닮을 것을 권고하는 말씀입니다.

최근 ‘세계영재학회가 미국 대통령 장학금을 받거나 명문 대학에 진학한
대만 학생과 중국계 미국인 학생의 부모 103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덴모 차이> 대만 까오슝 대학 교수는
지난 14일 서울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열린 세계영재학회 심포지엄에서
부모가 스스로 자녀의 ‘역할 모델’이 됐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부모 스스로가 열심히 독서하고 창의적인 활동을 했다.
아이들이 ‘모방’할 수 있는 직·간접적 모델을 많이 제시했다고 합니다.
내가 먼저 신앙의 역할 모델이 되고
내개 먼저 부모 공경의 역할모델이 되면
    신앙의 인물, 부모 공경하는 자식이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자녀에게 신앙을 권면하고
      나의 신앙의 삶을 본받으라고 할 수 없다면
우리는 자녀들에게 효도를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먼저 신앙의 본을 보여주며
    너도 이 길을 걸어야 한다고 깨우쳐 주는 부모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국민일보 현대인의 잠언에 실린 글입니다.
아버지가 여섯 살짜리 아이를 옆자리에 태우고 가다가
      그만 신호위반으로 교통경찰에게 걸리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차를 세우고 운전면허증과
      그 밑에 만 원짜리 한 장을 살짝 감추어 건네줬습니다.
아이는 눈이 동그래져서 이 광경을 보고 있었습니다.
“괜찮아. 얘야. 다들 그렇게 한단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하루는 아이의 삼촌이 찾아와서
어떻게 하면 세금을 적게 낼 수 있는지를 아버지와 함께 의논하고 돌아갔습니다.
옆에서 의아해 하는 아이에게
아버지는 “괜찮아. 세금 제대로 다 내다간 남는 게 없어. 다들 그렇게 해”
아이가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회사에 취직을 했으나 큰 횡령사건을 저지르고
    그만 감옥에 수감되고 말았습니다.
면회를 온 부모들이 말합니다.
“아이고, 이놈아 넌 도대체 누굴 닮은 거냐!
      왜 너는 가르치지도 않은 짓을 했느냔 말이다”
“괜찮아요 아버지. 다들 그렇게 해요. 전 재수가 없어서 걸린 것뿐이에요”

< 결론 >

고훈의 어머니
어머니! 키 작은 이유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머리로 모든 짐이고 다니셨기에,
    몸 야윈 이유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먹을 만한 것은 자식에게 다 주고  입맛 없다시며 허리띠 졸라 매셨기에,
    병드신 이유를 이제야 알았습니다.
우리 아플 때 주님! 이 아픔 내게 주고 내 건강 아이에게 주십시오 기도하셨기에
  정신이 없으신 이유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식구들 몫 다 챙기시느라 자신 몫 잃고 살으셨기에 
서둘러 이 세상 떠나 하늘나라로 돌아가신 이유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평생 짐 지고 사셨기에 행여 우리에게 짐이 되실까봐
    이 사랑의 빚을 깨닫지도 못하게 사랑만 주고 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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