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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은총의 어머니 한나 (삼상 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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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화만사성 “가정이 평화로워야 만사가 잘 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심각한 경쟁사회에서 살다보니 가정을 소홀히 하게 된다. 이런 현실 속에서, 5월은 가정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는 달이다. 특히 5월 둘째 주는 어버이 주간이므로, 어버이의 중요성과, 어떻게 자녀를 키워야 하는지 생각해 보자.

  한나가 살던 시대는, 참 어려운 시기였다. 믿음의 영웅들은 죽고, 예언자의 외침도 사라져, 종교는 극도로 부패했다. (삿21:25) “…그때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시대였다.

  또 (삼상3: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던 어두운 시기에, 한 은총을 입은 가정을 예비하셨다. 바로 한나의 (ה󰘅󰖏 은총을 입은)가정이다.

  1절을 보면, 한나의 남편 엘가나는 좋은 가문의 출신이다. 조상들의 족보가 거창하게 나온다. 이는 좋은 집안 출신임을 보여준다. 또한 전경이 좋은 산지 라마다임소빔 출신이었지만, 한나는 불임여성이었다. 그래서 남편 엘가나의 다른 부인 ‘부닌나’를 두었는데, 그는 자식이 있어 ‘한나’를 괴롭혔다.

  브닌나는 한나를 심한 말로 격동시켰고, 한나는 눈물로 지내게 된다. 한나는 믿음 안에서 자신의 모든 괴로움을, 하나님께 눈물로 쏟아놓았다. 하나님은 한나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셨다.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나라를 살릴 수 있는 아들 사무엘을 주셨다.

1. 어머니의 중요성

우리가 좋은 어머니가 되면, 자녀들도 좋은 자녀가 될 수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사람과 결혼하게 되는 경우, 어머니가 유대인이고 아버지가 이방인이면, 자식들은 유태인으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어머니가 이방여인이고 아버지가 유대인이면, 그 자식은 유대인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이는 어머니의 영향력이, 저녀들에게 얼마나 결정적인지 보여주는 관습이다. 물론 아버지도 소중하지만 어머니가 자녀들의 가치관과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던 당시, 그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두 어머니가 있었다. 한 사람은 유명한 참회록을 남긴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였고, 다른 사람은 네로 황제의 어머니 ‘아그리피나’였다. 아그리피나는 아들 ‘네로’를 조속히 왕위에 오르도록,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결국 남편 ‘클라우디우스’ 황제를 암살시켰다. 원하던 대로 네로를 즉위시켰다. 그렇지만 자신이 선택한 네로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남을 죽이는 것을 배운 자식은, 결국 어머니까지 죽이고 만다. 어머니에게 배웠던 대로, 그대로 행하는 존속살인자가 되었다.

  모니카는 그의 아들 어거스틴이 16세부터 방탕과 방종의 생활에 빠져 방황하고 있었을 때, 20년 가까이 눈물로 자식을 위해서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령님께서 강하게 어거스틴에게 역사했다. 아이들이 동요를 부르는데, “펴서 읽어라. 펴서 읽어라”는 소리가 성령의 음성으로 들려왔다.

  그래서 무의식중에 성경을 폈다. 롬13:13-14이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말씀에 붙잡혀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옛 생활 옷들을 벗어버렸다.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 앞에, 다시 돌아왔고, 어거스틴은 어머니에 대해 이렇게 글을 남기고 있다. “반드시 위대한 인물의 배후에는, 위대한 어머니가 있다. 위대한 어머니의 배후에는 반드시 위대한 신앙이 있다.” 이런 이야기는 얼마든지 들을 수 있다.

  아브라함 링컨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어머니는 노동자였다. 어머니는 링컨에게 성경을 읽어주면서 신앙을 심어주었다. 링컨이 아홉 살 때, 어머니 낸시는 죽으면서 유언을 남겼다. “아들아 매일 성경을 묵상하라, 위기가 닥칠 때에는 더욱 열심히 성경을 읽어라.”

  그래서 링컨은 어려울 때마다, 더욱 성경을 읽고 기도함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링컨의 전기를 쓴 사람은 “하나님은 링컨에게, 위대한 사람이 될 만한 조건을 한 가지도 주지 않으셨다. 다만 링컨에게 훌륭한 신앙의 어머니를 주셨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위대한 사람 뒤에는 반드시 어머니가 있다. 진정 어머니보다 더 훌륭한 교육자, 심리학자, 종교인이 어디 있겠는가! 한석봉의 어머니, 이율곡의 어머니, 맹자의 어머니, 에디슨의 어머니, 아인쉬타인의 어머니, 모두 다 한 결 같이 정성과 희생으로 자녀를 길렀다.

  ‘상대성 이론’으로 세계 최고 물리학자로 존경받게 된 아인쉬타인은, 이런 말을 했다. “오늘의 내가 있음은 어머니의 사랑과 정성 덕분이다. 나는 어머니의 눈물을 시험관에 받아, 분석해보았다. 어머니의 눈물도 강물이나 빗물처럼 물(H₂O)에 불과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눈물 속에는 과학으로는 찾아낼 수 없는 위대한 힘이 숨어있다. 그 힘은 원자탄보다 더 강력하고 위대하다.”

2. 어떤 모습을 가졌기에, 참 아름답고 좋은 어머니가 될 수 있었는가?

(1) 한나는 믿음의 어머니였다.

한나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무기는 기도다. 기도는 한나를 위대하게 만들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이다.

  한나는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었던, 마음의 고통과 설움을 하나님 앞에 다 쏟아냈다(10). 한나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안으로 흐느끼는 통곡의 기도를 올려드렸다. 그때 하나님께서 한나의 눈물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고 응답하셨다.

  (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동하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한지라.”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개인적으로 기도하지 않았다. 대부분 합심해서 기도문을 외웠다. 그들의 신앙은 제사장에게 의존적이었다.

  실제로 개인기도는 신약 시대에 주어진, 큰 축복 중의 하나다. 하나님께 개인적으로 기도드릴 수 있음이 얼마나 큰 특권이며 축복인지 깨달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기도할 때, 나의 하나님을 만난다. 그러나 한나는 어려움을 당했을 때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께 나와 개인적으로 기도했다.

  한나의 간절한 기도에, 주위 사람들은 축복하고 격려하지 못하고, 술을 끊으라고 책망하였다(14). 그러나 장애물을 뛰어넘었다.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어려움 앞에서 쉽게 원망하고, 불평한다. 그러나 운명을 바꾼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문제를 내려놓고 기도한다.

  만약 한나가 엘리 제사장의 말에 불끈 화를 내며 싸웠다면, 그녀의 기도는 불합격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나는 자신을 오해하고 있는 엘리 앞에서,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조금도 흥분하지 않고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래서 오해를 풀었다.

한나의 이런 믿음을 보고, 엘리는 한나의 기도가 무슨 기도인지도 모르고, 한나를 축복하였다(17).

  한나는 엘리의 말이 하나님의 응답으로 알고, 모든 슬픔과 의심을 버리고, 밝은 얼굴로 돌아갔다. 그리고 바로 임신하게 되었다(18). 19-20절을 보면, 바로 기도의 응답을 받아, 자식을 갖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사무엘이다. 사무엘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들으신 바 됨’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아들을 주셨다. 사무엘이 기도의 사람이 되었다. 어머니 한나의 영향 때문이다. 기도의 어머니에게서, 기도의 아들이 자라남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후에 그는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리라.”(삼상12:23)고 했다.

  사무엘은 어려움에 처해 있는 조국을 위해서, 그리고 사랑하는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했다. 사무엘은 기도를 중단하는 것을 죄로 알았는데, 이 기도의 정신과 삶을 어머니 한나에게 배웠다.

  왜 하나님의 자녀들이 시시하게 살아가나? 엎드려 기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녀들에게 가르쳐 줘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믿음이다. 믿음은 재능이나 교육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믿음은 세상을 이기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기도하는 부모가 되기 바란다.

(2) 예배가 있는 어머니였다(11).

“이 여종을 불쌍히 여기시고, 저를 긍휼히 여기셔서 아들을 주시면, 제가 그 아들을 다시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예배의 정신은 하나님께 드림이다. 가장 귀한, 생명보다 귀한 아들을 주님께 드렸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음은, 하나님께 받았기 때문에, 돌려 드릴 수 있다. 이 세상에 살면서 가장 가지기 쉬운 착각 가운데 하나는, “내 것”이라는 소유의식이다. 내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 다 하나님께서 주셨다.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날 때, 하나도 가져갈 수 없고, 모두 다 놓고 가게 된다.

  하나님께서 내게 생명을 주시고, 자녀도 주시고, 건강도, 재물도, 가정도 주셨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의 은총이다. 따라서 우리는 보관하고 있다가 돌려드려야 하는 청지기이기에,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하자.

  청지기는 자기 것이 없다. 주님의 것을 맡아 관리할 뿐이다. 특히 갈등이 많은 부부가 하나 되는 비결은, 같이 예배를 드려야 한다. 같이 예배를 드리면, 그 속에서 사랑의 힘이 생기고, 지혜를 얻어, 가정의 문제가 해결된다. 자녀도 같이 예배드릴 때, 하나님께서 강한 손으로 붙들어 주신다.

(3) 인생의 목적을 심어주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아들을 바치겠다고 서원 했다. 이는 어머니 한나의 영적인 꿈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내 자녀를 위대하게, 깨끗하게, 신실하게 길러보겠다는 영적인 소원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모든 일을 다 잘해도, 자녀가 잘못된다면 성공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정치에 성공하고 사업에 성공하고, 세상의 꿈을 성취했다고 해도, 우리의 아들딸이 잘못되어, 우리의 가슴을 찢는다면, 성공과 삶의 풍요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입니까?

  사람들은 자녀를 잘 양육하는 것보다 더 보람된 일이 없다면서,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인다. 필요한 모든 것을 다 뒷받침해준다. 죽도록 돈을 벌어서 자식을 대줬더니, 나중에는 그 고마운 부모를 몰라보고, 자기가 잘나서 된 줄 알고, 부모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이 생겼다.

  유학까지 보내 놨더니, 칼 들고 부모를 찔러 죽이는, 그런 패륜아를 보게 되는 시대이다. 인생의 목적을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못하면, 인생 마지막에 ‘모든 것이 헛된 것이다’라고 후회하게 된다.

  자녀들을 무려 19명이나 두어,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없었던 어머니가 있었다. 그런데 이 어머니는 “나는 이 19명의 자녀를, 이 시대를 흔드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겠다.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알고, 실천하는 자녀로 기르겠다는 비전을 심었다.”

  이 어머니를 통해서 자란 19명의 자녀들은 모두 다,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다. 영국을 일깨웠던 존 웨슬리, 수많은 영감 있는 찬송들을 작사하였던 찰스 웨슬리를 포함해, 모두 다 아름답고 신실했던 자녀들이 되었다. 그 어머니는 수잔나였다.

  따라서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 우리 삶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의 자녀가 자라나며, 하나님 안에서 살고, 그 믿음의 영향을 이 땅에 미치게 하는, 위대한 영적 지도자가 되기를 꿈꾸는, 영적인 야망을 가진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되기를 바란다.

3. 한나의 결단

24-28절은, 한나가 자기 사랑하는 아들을 데리고 성전에 올라가, 성전에 놔두고 돌아오는 장면이다. 자녀를 지방이나 외국에 처음으로 데려다주고 돌아올 때, 왜 걱정이 안 되었겠습니까?

  자녀들이 엄마를 그리워하지는 않을는지, 어떤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을지, 식사는 제대로 할지…, 또 한나가 사무엘을 맡기고 온 엘리 제사장은, 훌륭한 사람이 못 되었다. 그리고 홉니와 비느하스는 엉망이기에, “저 아이들과 어울리면, 내 아들이 나쁜 영향을 받지는 않을는지…” 얼마나 불안했을까?

  그런데 한나의 고백을 들어 보면, 하나님께 맡기고 있다. 어머니 한나 못지않게,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어머니들, 아버지들에게도 많은 걱정이 있다. 하나님 앞에 자녀들을 맡기지 않고는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다. 오늘의 우리 학교들은, 무신론적인 교육을 시키고 있다.

  학교에서 잘못된 학생들의 영향을 받는다. “내 자녀가 잘못된 아이들의 영향을 받지는 않을는지, 마약에 연관되지는 않을지, 성적인 유혹과 어려움에 휩쓸리지는 않을지…” 염려가 되지만, 부모의 걱정에는 한계가 있다. 실제로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겠는가? 이 시점에서 우리 자녀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결단이 있나요? 우리 자녀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께 맡기고, 드릴 줄 아는 부모가 되어야만 한다. 하나님 앞에 드림은 손해가 아니다. 축복이다.

  한나가 바쳤을 때, 이스라엘의 지도자 사무엘이 될 수 있었다. 사무엘이 떠나간 뒤에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또 다른 아이들을 주셨다. 세 아들과 두 딸을 보상으로 주셨다(삼상2:21).

  기도하는 어머니, 영적인 야심에 불타는 어머니, 하나님 앞에 사랑하는 자녀들과 자기를 온전히 바쳤던 어머니, 이런 어머니가 그리워지고, 이런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우리는 기도하는 어버이인가? 아니면 졸고만 있는 어버이인가?

  영적으로 잠들어 졸고 있다가, 어느 날 깨어나 보니까, 우리 자녀들이 잘못되기 시작한다. 영적인 야망을 가지고 자녀를 키우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자녀를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길러 보라. 주 앞에 이 아이를 맡기나이다 라고 결단하자.

  결론이다. 오늘은 헌아식이 있는 날이다. 주님께 이 아이들을 맡기면서, 기도하는 부모님이 되자. 또한 어버이의 사랑을 잊지 말자. 아르메니아 대지진 때의 이야기다.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져 내려 26살의 ‘스잔나 페트로시안’과 4된 딸 ‘가야니’가 건물 벽 속에 갇혔다.

  모녀에게는 죽음의 공포뿐이었다. 아이는 갈증과 굶주림에 지쳐 울부짖었다. 그때 스잔나는 유리조각으로 손가락을 찌르고 물어뜯어, 그 피가 자기 딸에게 먹였다. 어머니는 어린 딸이 보챌 때마다, 차례로 손가락을 베어 아기의 입에 물렸다.

  이들 모녀는 매몰된 지 14일 만에, 극적으로 구출됐는데, 어머니 스잔나의 손가락 열개는 모두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우리의 어머니는 바로 이런 분이다. 그분은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가족을 위해 1년 평균 10,000개의 그릇을 닦는다.

  어머니의 사랑은 물이나 산소 같아서, 소중하지만 고마움을 망각할 때가 많다. 그 사랑을 깨달을 때면, 부모님은 이미 우리 곁을 떠나고 없다. 자녀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 책은, 서점에 넘쳐난다. 그러나 부모를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말하는 책은 없다. 우리 시대의 모습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도, 어머니를 생각했다. 오늘 나의 모습은, 부모님의 양육의 결과다. 부모님께 순종하고,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부모님을 귀하게 여기고, 공경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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