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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창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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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정의 달로 지키도록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마다 가정에 대한 말씀과 세미나를 준비하였습니다. 오늘은 우리 성도들의 가정에 자녀들로 하여금 천하 만민이 복을 받는 축복의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백세에 난 아들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 가서 제물로 드리라고 하실 때에 아브라함은 즉각적으로 순종하였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자기 자식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것을 확인하시고 크게 축복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함께 창22:12절을 봉독하시겠습니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알았노라”

사실 백세에 얻은 아들이니 얼마나 예쁘겠습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도 보이는 예쁜 아들이삭이 더 예쁘고 마음이 가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 있지 않습니까? 때로는 하나님도 우리를 시험해 보실 때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신 이삭보다도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실 때에 주저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크게 축복하셨는데 그 축복의 내용을 보면 전부 그 후손을 위한 축복이었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로 네 씨로 크게 성하게 하며,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겠다고 축복하셨는데 오늘 우리 모든 성도들도 이 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아침 이 본문을 보면서 중요한 세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아브라함은 자녀를 통해서 위대한 후예들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이삭은 아직 어립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늙어 눈이 침침해서 늘 희미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어린 아들 이삭을 바라보면서 그를 통하여 그의 위대한 후손이 나올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속에서는 그렇게 외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희망에 부풀어 있었을 것입니다. “아! 하나님이 내 아들을 통해서 하늘의 별과 같이 위대한 민족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어! 하나님이 내 아들을 통해서 온 세계 민족이 복을 받을 수 있는 큰 역사를 이루신다고 약속하셨어!” 어린 이삭을 바라 볼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을 힘 있게 의지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자녀를 주셨습니다. 우리 자녀들과 이삭이 다른 점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뜻이 계셔서 자녀들을 주셨습니다. 그 자녀들을 택하시고 우리에게 심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기업이요,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의 상급입니다. 백세의 아브라함에게 준 이삭이나, 지금 우리 가정에 주신 자녀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똑같이 선택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보면서 먼 훗날의 영광스런 후예들을 내다보는 눈이 있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 역시 가정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이와 같은 눈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비록 철없는 모습이 있지만 이 어린 자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별과 같이 번성케 하실 것이요, 이 땅위에 많은 악의 세력을 정복할 수 있는 능력 있는 후손들을 나오게 하실 것이며, 장차 이 자녀들이 수많은 복을 누리는 후손들이 될 것이라고 하는 믿음을 가지고 자녀들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반드시 그 믿음대로 될 줄로 믿습니다.

사실 우리 자녀들은 시대적으로 암울한 때에 태어났습니다. 어떤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우리 자녀들은 태어나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무려 삼십오만 번 이상이나 되는 텔레비전 상품선전을 듣게 된다고 합니다. 더욱더 기가 막히는 것은 우리 자녀들이 16세가 될 즈음이면 일만 오천 번 정도의 살인사건 소식을 듣게 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정말 무시무시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의 정서를 삭막하게 만들어 갑니다. 그런 것을 보고 들을 때마다 희망보다는 답답함을 느낍니다. 

정말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생활이 어렵고 보리밥을 먹고 고무신을 신고 살았어도 뒷동산에 올라가 진달래, 개나리를 꺾어 화병에 꽃아 교실로 가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선생님께 칭찬 듣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들판에서 나물을 캐고 시냇가에서 미꾸라지를 잡으며 놀던 친환경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때에는 우리의 마음에 넉넉함이 있었고, 순수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자녀들이 살아가는 이 시대는 보고 듣는 것이 어둡고 암울합니다. 그러니 옛날에 비하여 얼마나 영성이 있어야 하겠습니까? 얼마나 말씀의 교육이 필요하고, 우리 부모들의 기도가 얼마나 필요하겠습니까?

이 시대에 우리의 자녀들이 축복의 후손이 되기를 바라는 아브라함과 같은 혜안(慧眼)을 소유하려고 한다면 우리 부모들이 먼저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잘 먹이고 잘 입히고 또 공부도 잘하게 해야 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부모의 축복기도를 받으면서 잘 자라는 것입니다.

부디 우리는 우리 자녀들이 위대한 후예가 될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늘의 별과 같이 번창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하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키우고, 은혜와 말씀으로 기도하면서 키운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부디 우리 자녀들을 통해서 우리 집뿐만 아니라 온 세계가 복을 받을 수 있는 그런 후손들이 나오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아브라함의 헌신은 자녀들의 축복의 보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축복하시겠다는 근거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아브라함의 모리아 산에서의 헌신 때문이었습니다. 이 위대한 후손의 축복은 바로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제물로 드린 후에 주신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창22:15-17절을 읽도록 하시겠습니다. “15)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언제 이 같은 위대한 후손의 축복이 선포되었습니까?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즉 모리아 산에서의 아브라함의 헌신! 아무리 귀한 아들이라도 하나님보다 더 귀할 수는 없기에 하나님의 명령을 먼저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감동하사 그 후손에게 큰 복을 하락하신 줄로 믿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위해서 자기 자신 전부를 송두리째 바치고 순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사랑하는 독자까지, 심지어 자기 생명까지도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스스럼없이 바칠 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그러한 그의 믿음이 자녀에게 복을 끼칠 수 있는 동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자녀를 키우고 있습니다만 우리가 어떻게 자녀의 장래를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자식을 사랑한다고 해도 그 자식의 장래를 어떻게 부모가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자녀의 장래를 보장해 주기 위해서 교육보험에 들어 놓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자녀의 교육문제를 보장할 수 있습니까? 생명보험 들었다고 그 자녀의 생명을 보장할 수 있습니까? 자녀들에게 유산을 상속해 준다고 그 자녀들의 행복을 보장 할 수 있습니까? 결코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 아브라함이 그 해답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을! 모리아 산의 헌신을 올려 드릴 때에,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믿음과 확신으로 하나님을 섬길 때에, 그런 사람의 후손을 하나님께서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시고 축복된 후손으로 보장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시112:1-3절을 보면 “1)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3)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우리 부모들이 여호와를 이렇게 경외하심으로 여러분들의 후대가 이렇게 강성하여 가는 역사가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 아브라함은 참된 스승이요, 진실한 참 교육자였습니다.

아브라함의 교육방법은 간단했습니다. 한마디로 생활교육이었습니다. 그것은 행동으로 보여준 교육이었습니다. 이삭은 어릴 때부터 신앙심 깊은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고 자라났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모리아 산으로 제사를 드리러 가는데 어린 자기가 생각을 하여도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로 드릴 어린양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질문을 합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여기에 있는데 번제로 드릴 어린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랬더니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이 “여호와께서 준비하시리라.” 믿음의 말로 대답해주시는 아버지를 보니 믿음이 갔습니다. 또 자기의 아버지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서 사정없이 결박하고 제단 위에 올려놓더니 칼을 들어 내리 찌르려고 했던 그 사실을 이삭이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그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자기의 아버지를 급하게 만류하시면서 이삭 대신에 하나님께 제물로 드릴 어린 양을 준비해 놓으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었겠습니까? 이런 하나하나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행동을 볼 때에 아들이삭의 마음속에는 그 아버지의 하나님!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순종하려고 했던 아버지의 신앙을 보고 그 아들이삭의 신앙이 잘 못 될 수 있었을까요?

모리아 산으로 갈 때에 이삭의 나이가 17세쯤 되었을 때인데 아버지가 자기를 제물로 드리라고 했다고 사정없이 결박을 짓고 제단 위에 올려놓을 때에도 거역하려면 얼마든지 거역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그렇게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평소에 하늘 아버지인 하나님의 뜻에 절대복종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살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에 이삭이 그의 아버지를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귀한 영적교훈을 받지 않고 자란 소년이라고 한다면 그는 모리아 산에서 절대로 순순히 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자녀들이 축복의 위대한 후손이 되는지 아니 되는지의 결정은 부담이 되시겠지만 전적으로 우리 부모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자녀들 앞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 행동하나하나, 신앙생활 하나하나를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지를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생활을 통해서 무엇이 제일 중요한가를 어릴 때부터 자녀들이 보고 느끼도록 가정생활의 본을 보입시다. 그러면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처럼 우리의 후대들이 강성하게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모쪼록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 부디 경건하고 의로운 여러분들의 후대들이 이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윤정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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