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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자녀에게 가르칠 것 (잠 22:6, 요 1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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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심리학자들이 한 실험을 시도했습니다. 똑같은 방을 둘 준비해서 한 방에는 더러운 쓰레기와 담배꽁초 등으로 지저분하게 어질러 놓았고 다른 한 방은 아주 깨끗하게 정리정돈한 후 방바닥은 윤이 나게 반들반들하게 닦아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두 방에다 자동카메라를 설치해 놓은 후 먼저 지저분한 방에 들어가도록 했습니다. 밖에서 관찰했습니다. 결과는 지저분한 방에 들어간 사람은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렸습니다. 기왕 버려져 있으니 버렸고 나중에는 자기 주머니 속에 있던 자기의 휴지까지도 꺼내서 방바닥에 버렸습니다. 그 다음에는 깨끗한 방에 들어가게 했는데 거기서는 재떨이를 찾아서 담배꽁초를 버렸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휴지까지 집어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오는 것이 관찰되었습니다. 사람의 태도가 주변 환경에 따라 이토록 차이난다는 것입니다.

어린이 주일입니다. 우리들은 자녀들을 잘 길러야 되는데 자녀들도 마찬가지로 주변 환경에 따라서 인생이 바뀝니다. 환경 때문에 이렇게 가기도 하고 또 정 다른 방향으로 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 주변 환경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부모입니다. 자녀들은 아버지가 어떻게 하느냐 어머니가 어떻게 살며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서 그들의 인생과 삶이 결정됩니다. 그래서 자녀들은 부모의 거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시 자녀들이 잘못되고 좀 모자라면 먼저 그것이 바로 내 모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영향을 끼쳤든 간에 자녀들은 부모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부모에게 큰 짐이 주어졌는데 어떻게 하면 우리 사랑하는 자녀들을 제대로 기를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자녀들이 얼마나 귀합니까? 어릴 때는 어린대로 귀하고 장성했으면 장성한대로 얼마나 소중한 존재들입니까? 결혼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마치고 먼저 간 뒤에도 저들은 남아서 한동안 인생을 살아가야 할 텐데 어떻게 하면 잘 기를 수 있겠습니까?

얼마 전에 우리에게 좋은 자료가 하나 왔습니다. 우리나라 500년 명문가를 조사한 자료인데 그 중에서 열 집안을 조사해서 그 열 집안에서 각각 이야기하는 것들을 골라서 뽑은 열 가지입니다.

하나는, 평생 책 읽는 아이로 길렀다는 것입니다. 아주 소중한 말입니다. 우리 자녀들로 하여금 늘 책을 읽도록 하는 어머니와 아버지, 이런 사람들이 좋은 자녀를 길러내고 자녀를 통해서 계속해서 명문가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아들딸로 부터 시작해서 여러분의 집안이 명문가가 된다면 얼마나 좋고 얼마나 감사한 일이겠습니까? 첫 번째가 평생 책 읽는 아이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자긍심 있는 아이로 키우라고 말합니다. 자기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아는 자존감을 가지는 것은 한두 마디 말로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부모에게 달려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때로는 손해 볼 줄 아는 아이로 키우라고 합니다. 이것은 부모들이 먼저 해야 합니다. 손해볼 수 있다는 것을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보여주어야 합니다. 손해보고 난 뒤에 힘들어 하지 말고 그것을 웃고 넘어가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고 또 그것을 키워주어야 합니다. 네 번째, 스스로 재능을 발견하도록 기회를 제공하라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기회는 부모들이 제공하지만 재능을 발견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자녀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발견토록 하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공부에 뜻이 있는 아이끼리 네트워크를 만들어 주라고 합니다. 유유상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자꾸 그런 친구를 찾게 되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살게 되는데 결국 훌륭한 사람들 틈에 있는 아이들 중에서 훌륭한 사람들이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공부를 하는 아이들, 그리고 선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끼리 자주 만나게 되면 액셀레이터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어 점점 더 그렇게 됩니다. 악의 순환이 있는 것처럼 선의 순환도 있습니다. 공부에 뜻이 있는 아이끼리 네트워크를 만들어 주어라는 것이 다섯 번째입니다. 여섯 번째, 세심하게 점검하여 질책하고 조언하라는 것입니다. 한두 마디 듣고 난 뒤나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함부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내 아들 딸들을 자세하게 보고 점검하여 질책할 것은 질책하고 조언할 것은 조언하라는 것입니다.

일곱 번째, 아버지가 자녀교육의 매니저로 직접 나서라고 합니다. 많은 경우 우리나라의 아버지들은 자녀교육을 어머니 손에 일임합니다. 자기는 마치 부모가 아닌 것처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어머니로서 해야 할 역할은 아내에게 맡기고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들은 남편이 나서야 하며 전반적인 것에 대해서는 아버지가 자녀교육의 매니저로 나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장이라는 이름 그대로 가장의 몫을 감당해 달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여덟 번째는, 최상의 교육기회를 제공하라고 말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은 그저 돈을 들여서 해외유학을 보내는 것 등을 생각하는데 그런 것이 아닙니다. 좀 미안한 말이지만 우리 부모들은 너무 쉽게 자녀들을 기르려고 합니다. 제일 쉬운 것이 돈으로 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우리 아이에게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고뇌를 해야 합니다. 연구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래서 돈과는 상관없이 정말로 필요한 것을 찾아 그 아이에게 최상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홉 번째는, 아이의 멘토가 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멘토라면 가장 좋은 선생님, 가장 친밀한 선생님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어릴 때는 어린 아이에 대한 멘토가 되어야합니다. 자상하게 같이 이야기 해주고 아이에게 쉽게 이것저것 물을 수 있도록 해주며, 장성하면 장성한대로 아이들이 부모를 멘토로 여겨서 늘 같이 의논하도록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열 번째, 원칙을 정하고 끝까지 실천하라고 합니다. 저의 집에는 아들도 있고 딸도 있는데 두 가지를 원칙으로 세웠습니다. 하나는 주일성수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일은 예배당에 가서 예배를 드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 딸이 멀리 시집을 가게 되면 도리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가능하면 와서 같이 예배를 드리도록 부탁을 해 놓았는데 될지 모르겠습니다. 아들한테도 그렇게 말해 놓았습니다. 두 번째는 돈을 벌면 십의 둘을 부모에게 드리는 것으로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는 십일조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데 그것을 결혼할 때까지 부모가 대납해 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부모 몫입니다. 금년부터는 우리 집에 용돈이 좀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둘이 한꺼번에 십의 일을 갖다 바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면 사위는 사위대로 본가의 부모에게 십일조를 드리도록 하고, 며느리도 직장에 나가게 되면 그 십의 일을 부모에게 갖다 바치기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물론이고 부모에게도 드리도록 하는 것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열 번째는 원칙을 정하고 끝까지 실천하라고 하는데 참 좋은 말입니다. 이래서 아마 그 열 집안이 명문가로서 잘 이어져 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때로는 다소 크게 도움이 되겠습니다만 정답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부모가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많이 주고 잘해 주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더욱 더 답이 아닙니다. 여러분, 부모가 아무리 고심을 해도 정말로 좋은 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많은 것을 주는 것이 좋은 것인지 적게 주는 것이 좋은 것인지 우리 부모들은 알지 못합니다. 저는 많은 경우를 보게 되는데 어떤 집은 차라리 적게 주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될 때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들도 사회에 보도되는 것들을 많이 봐서 알 것입니다. 잘해주는 것, 말은 좋습니다만 내가 잘해주는 것이 정말 잘해주는 것인지 잘못해주는 것인지 어떻게 압니까? 모릅니다. 세월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습니까? 옛날에는 이렇게 해주는 것이 잘해주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뒤바뀐 것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어느 것이 좋은 것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를 사랑하고 아끼려면 먼저 해야 할 것은 부모가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방법은 자꾸 바뀝니다. 우리 한국도 10%의 엘리트가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미국사회는 심지어 1%의 엘리트가 이끌어 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90%, 많게는 99%는 끌려가는 인생입니다. 세상 방식대로 한다면 우리는 끌려가는 아들, 자기 주관 없이 그냥 더불어서 살아가는 내 딸을 만드는 결과밖에 되지 않습니다. 세상 식으로 하면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아들딸들을 끌려가는 99% 속에 넣고 싶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세상 방법이 아니라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받아주시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 방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장 원론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마땅히 행할 길, 마땅히 해야 할 모습이 어떤 모습인가요? 이것을 하늘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말씀하십니다. 답은 바로 이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사실 이 둘은 같은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자녀로 만들게 되면 우리 자녀들의 길을 망칩니다. 얼른 생각하게 되면 자기를 사랑하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만 전혀 아닙니다. 이기적인 자식으로 만들어 놓게 되면 우선 가깝게는 형제들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둘이나 셋 밖에 없는데 그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부모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만들면 부모도 사랑하지 않고 나중에 가면 자기 아내도 자기 남편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기적인 인생이 그렇습니다. 마지막에 가면 결국 자기 자신도 사랑하지 못하게 됩니다. 자기와 자아 간의 분리, 괴리가 생겨나게 되어 깨어지고 분열된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르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먼저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힘써서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는 괜찮다고 하면 안 됩니다. 제대로 부모에게 해야 할 일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가까이 있는 부모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이런 사람이 자기 형제와 자기 아내와 남편을 사랑하고 나아가서 저 멀리 있는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병든 사람도 못 배운 사람도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다 잘 삽니다. 주변을 한번 보십시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잘 살고 부모님 사랑하는 사람들이 잘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르쳐도 자녀가 듣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잘 가르치고 어떻게 하든 우리 자녀들이 좋은 것을 배우도록 하고 싶은데 잘 안됩니다. 여기에 부모들이 알아야 할 것은 자녀들이 잘 배우지 않는 것은 자녀들에게 달린 문제가 아니라 부모의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부모가 잘못하면 아이들이 배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잘 기억해야 합니다. 자녀들은 귀로는 배우지 않습니다. 우리 자녀들은 눈으로 배웁니다.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일수록 기억 속에 오래오래 남습니다. 말로는 배우지 않습니다.

어느 교회학교에 있었던 일입니다. 아이들이 교회에 오면 좀 경건해야 하는데 늘 소란스럽고 질서가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교회 전체까지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아이에게 사정을 하기도 하고 야단을 치기도 하면서 힘써 가르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주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예배당에 온 아이들이 전부다 앉아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뒤이어 오는 아이도 또 앉아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날 교회학교 교장인 목사부터 교회학교 선생님 전부가 학생들이 오기 한참 전에 아이들이 예배드리는 맨 앞에 앉아서 조용히 기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와서 보니 목사님과 선생님들이 앞에 앉아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아이들이 하나하나 앉아서 기도를 했고 그런 날이 쭉 계속되다보니 아이들은 결국 조용해 졌고 아주 경건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눈으로 보고 배웁니다. 거울입니다.

제가 최근에 날씨가 좋아서 율동공원에 몇 번 갔었는데 거기서 경험한 것 몇 가지를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하나는 지금 잔디가 싹이 올라오기 때문에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줄을 쳐 놓았는데 그 안에서 한 남자가 개를 데리고 장난을 치고 있었습니다. 별로 마음이 안 좋아서 제가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그런데 유치원 아이들이 선생님을 따라서 걸어오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배울까 많이 염려되었습니다.

며칠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들어가지 못하게 줄을 쳐놓은 잔디밭 위에 한 남자가 아들인 듯한 작은 아이와 공을 가지고 놀고 있었습니다. 아주 재미있게 노는데 그날따라 어린 아이들이 많이 놀러 왔습니다. 마음이 별로 좋지 않아 지나가고 있는데 어린아이 하나가 와서 “할아버지, 잔디밭에는 들어가면 안 되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그럼, 저렇게 줄을 쳐 놓았을 때에는 들어가면 안 된단다.” 라고 이야기 했는데 그 어린 아이에게 제가 오히려 민망스럽고 미안했습니다. 자기도 들어가고 싶지만 못 들어가고 있는데 거기에서 한 아빠가 아들과 놀아주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물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들어가지 못하게 한 잔디밭에 들어가서 아이와 놀아주는 아빠를 생각했습니다. 아빠가 아이와 같이 놀아주는 것은 필요합니다. 특별히 아빠가 아이와 같이 놀아주는 것은 어머니가 같이 놀아주는 것과는 다릅니다. 더 낫다 못하다가 아니라 다른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들어가지 말라고 줄을 쳐 놓은 그 안에 들어가서 아이와 놀아주는 것이 과연 잘하는 일일까요? 아닙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가면 아빠가 자기와 놀아주었던 추억보다는 금지된 것, 법으로 안 된다고 해놓은 것을 범해도 된다는 쪽으로 비중이 더 갈 가능성이 커기 때문입니다. 법을 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이런 모습에 대조되는 모습도 한 쪽에는 있었습니다. 다른 한쪽 귀퉁이 그늘 진 곳에서 자리를 깔아놓고 한 아버지가 책을 보고 있는데 그 옆을 보니 아이가 책을 펴놓고 있었습니다. 책을 보는지 그냥 노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참 모양이 좋았습니다. 아이도 오랜만에 아빠를 만나서 넓은 잔디밭에 들어가서 놀고 싶을 텐데 아빠가 책을 보고 있으니 그 옆에서 책을 펴놓고 있었을 것입니다. 참 보기 좋은 모습이었습니다. 또 하나 더 있습니다. 공원 한 쪽에서 한 엄마가 남자 아이의 오줌을 누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엄마는 쥬스 병 하나를 들고 있었는데 그것은 오줌병 이었습니다. 제법 큰 병이었는데 오줌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저 정도의 양이면 대여섯 번은 오줌을 누이었을 것이므로 그 어머니는 하루 종일 따끈따끈한 오줌병을 들고 다닌 것입니다. 그 정도 되는 어린 아이가 고추를 내어놓고 밖에 오줌을 누어도 누가 잘못했다고 야단을 칠 사람은 없을 텐데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저렇게 해야 아이가 보고 배울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종합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금지된 곳에 들어가서 아이를 위해 같이 놀아주는 아빠, 금지된 곳에 들어가는 것을 절제하며 들어가지 않으면서 책을 보는 아빠, 쥬스병을 들고 다니며 아이의 오줌을 받는 엄마, 과연 누가 어린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요? 책을 보고 있는 아빠와 오줌 병을 들고 다니는 엄마는 금지된 곳에서 놀고 있는 아빠가 도저히 해 줄 수 없는 것을 해주고 도무지 가르칠 수 없는 소중한 것을 가르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세상이 떠날 때가 가까웠을 때에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고 당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말씀을 유언조로 하셨습니다. 이것을 말씀하신 것이 요한복음 13장 34절입니다. 이 바로 앞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저녁을 함께 잡수시다가 일어나셨습니다. 그리고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허리에 메신 후 대야에 물을 떠와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 정성껏 씻어 주셨을 것입니다. 정성껏 씻어주시고 난 뒤 수건으로 발을 일일이 닦아 주셨습니다. 요즘처럼 깨끗한 발이 아닙니다. 옛날에는 정말 발들이 지저분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스승이면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난 뒤에 하신 말씀이 요한복음 13장 34절 말씀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은 정말 소중합니다. 때로는 못마땅해도 얼마나 소중한 자녀들입니까? 우리 생명을 바쳐서라도 사랑하고픈 자녀들에게 어떻게 하면 잘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먼저 사랑하는 것을 가르치십시다. 우리 주님의 말씀입니다. 세상의 법이 아닙니다. 마땅히 행할 것을 가르쳐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사랑하셔야 합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부모님을 사랑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그것을 배우게 됩니다. 자동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모를 사랑하고 이웃과 힘들고 약한 사람을 사랑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신 후 요한복음 13장 17절에서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복인데 우리 주님께서는 덤으로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할 때에 먼저 여러분들이 복을 받고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또 그들의 자녀들이 여러분 때문에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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