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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머잖아 되돌려 받습니다. (잠 23: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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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영웅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맥아더 장군, 그가 지은 ‘아들을 위한 기도’라고 하는 기도문이 있습니다.

“내게 이런 아들을 주십시오.”라고 말이 시작되는 기도문이 있는데 맨 마지막 말이 인상적입니다.
“그리하여 나, 그의 아버지는, ‘내가 세상을 헛되이 살지 아니하였다’ 라고 속삭이게 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마지막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아주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마지막 구절에 감명 깊게 받았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아들이 바로 서면 아버지는 헛되게 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해 보세요. 인생의 최고의 보람과 의미가 바로 그 자식 아닙니까? 이것만이 어쩌면 내 것이 남는 유일한 일입니다.
맥아더 ! 그가 세계를 위하여 위대한 일을 많이 했지만은 그도 자식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을 보고 ‘나는 세상을 헛되이 살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얼마나 찐합니까? 그것이 바로 어버이의 마음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한국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한국 사람으로서 한국적 효도의 개념이 있습니다. 이것 또한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다분히 유교적 사상을 배경으로 해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갖게 되는 ‘효도’만은 매우 성경적이고 또한 한국적입니다. 그러기에 한국 사람으로서의 우리 문화 속에서 생각하는 효도가 무엇인줄 알아야 합니다. 

한국적이면서도 성경적인 효도는 무엇일까요?

1. 장수하도록 모시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어찌 자식에게만 책임이 있겠습니까 만은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건 자식 탓이요, 그래서 자식은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잘못 모셨고, 내가 속을 썩여 드렸고 내가 보살펴 드리지 못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장례식에 가보면 제일 많이 우는 자식이 제일 효자인줄 아는데 실상은 제일 불효자입니다. 나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가슴을 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상복이라고 하는 것은 죄인의 옷입니다.
그러니까 부모님을 오래 살도록 모셔야 효자지 어쨌든 일찍 돌아가셨다면 자녀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한국 사람의 효의 기본 개념입니다.

2. 편안하게 모시는 것입니다.

그저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또 거처하는 곳이 평안해야하고 특별히 마음을 평안하게 모셔야 됩니다. 자식이 어릴 때는 자식이 부모 눈치를 보는데 자식이 나이 들면 부모들이 오히려 자식의 눈치를 봅니다.
그래서 어르신들이 자식들 앞에서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이리 저리 눈치를 봅니다. 우리 교회 어느 권사님이 자식 집에 갔더니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도 눈치 보이고 밤에 마루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것도 눈치 보인다고 불편해서 혼났다고 하십니다. 그러고 보니 저희 부모님도 자식들의 눈치를 보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얼마나 송구한지요. 그게 불효입니다. 자식들이 뭐라고 할까봐, 싫어할까봐 눈치를 보게 하면 그것은 부모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쓰신 글을 부모님이 자식들에게“하고 싶지 않은 말”이 세 마디가 있답니다.
 
1) 아프다고 말하고 싶지 않답니다.
제발 안 아팠으면 좋겠는데 자꾸 아프거든요. 아프다고 하면 자녀들이 귀찮을까봐, 자녀들이 걱정할까봐 아프다는 말하는 거 그렇게 싫다는 거예요. 어떻게든지 안하고 싶어 말을 안하다 보니 병이 심각해집니다. 아프면 초기에 아프다 하면 쉽게 고칠 병인데 미안해서 아프다 소리 안하고 참다보니 병이 커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님의 마음입니다.

2)외롭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들이 가장 힘든 것은 외로움입니다. 그런데 절대로 말 안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외로워요. 자식이 아무리 많아도 소용없습니다. 오히려 자식 많은 부모일수록 외롭습니다. 자식들을 일이 힘들고 바쁘다 보니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습니다. 자식들 바쁘고 힘든데 외롭다 말하면 자식들이 먼 길을 오가고 하다보면 자식 괴롭힐까봐, 보고 싶어도 말을 못하고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말을 못하는 거예요. 그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생신 때나 명절 때 찾아뵈면 ‘뭐하러 왔냐’고 하지만 실상 새벽부터 눈 빠지게 기다리는 것이 부모입니다. 그래도 외롭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3)배고프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답니다.
연세가 드시면 자꾸 먹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좀 속이 궁해서 뭘 잡숫고 싶어도 혹시라도 귀찮게 여기지나 않을까 해서 배고프다는 말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합니다. 며느리 눈치 보기 싫고 또 좀 먹으면 살찐다고 뭐라 할까봐 배고파도 쪼르르 소리 들으면서 주무신답니다. 이게 불효가 아니고 뭡니까?

이렇게 세 가지가 부모가 자식에게 말하기 힘든 말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부모님입니다. 그러니 말하지 않아도 보살펴 드려야 합니다. 말하지 않으신다고 방치하면 그게 불효입니다.


3. 가문을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부모들이 아주 소중히 여기는 것은 대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요즘 세계적으로 문제되는 것이 非婚이요, 둘째가 不姙입니다. 그러다보니 인구가 점점 줄어듭니다. 그러니 가문의 대가 끊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것은 어르신들이 보기에는 망조입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좌우간 시집 장가 안 갔으면 불효입니다.

그것은 부모님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또 시집 장가갔으면 낳아야 합니다. 신체적으로나 특수한 사정 때문에 못 낳는 거는 할 수가 없을지라도 자식을 안 낳는 것은 불효입니다.
그런 줄이나 알고 사세요. 부모님들에게는 대가 끊기는 것은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일입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세대는 자기들만 생각합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이런 부모님의 마음이 어찌 보면 단순하고 고리타분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하세요. 그런 부모들이 계셨기에 여러분이 태어난 것입니다. 효도 중 효도는 시집가고 장가가서 손주 손녀 낳아드리는 이게 효도라는 것, 이게 한국적 효도만이 아닙니다.
성경은 생육하고 번성하라 했는데 그것이 오늘날은 무시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식 낳기를 거부하거나 하나밖에 안낳고 단산하는 것은 불효입니다. 

한국적인 효는 이렇게 3가지로 집약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 말씀을 보세요. 어떤 것이 효도냐?
효도 중에 최고의 효도는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효도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24~25절을 보세요.
24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25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면 그게 효도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명심하세요.
부모는 구제의 대상이 아닙니다. 부모를 측은히 여기든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효가 아닙니다. 연세 드시고 병드시면 우리는 그를 불쌍히 여기고 측은히 여기려 합니다. 그러나 죄악입니다. 사랑에 대한 배신입니다.
부모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최고의 권위자입니다. 그러기에 부모는 공경하는 대상입니다. 존경이 없는 사랑은 결코 효도일 수가 없습니다.
그  연약함, 그 병듦이 누구 때문입니까? 자식인 나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부모가 병들거나 힘이 없으면 가차없이 내버립니다. 참으로 무서운 죄악입니다. 

일본 동경에서 모였던 국제 심포지움에서 이런 통계가 나왔습니다.
거동이 어렵게 된 부모를 어떻게 하면 좋으냐?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을 상대로 조사를 해 보았답니다.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양로원에 보내야 한다.”는 의견에 일본이 24%, 영국이 25%, 미국이 19%, 중국이 9%, 한국은 0.4% 였답니다. 
이 숫치를 보면 한국은 아직 소망이 있습니다. 효에 관한 한 모범 국가입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은 0.4%인데 과연 우리도 그럴까요? 아마도 40%는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래 살겠다고 보약을 먹고 운동을 하고 난리입니다만은 그러나 여러분 잊지 마세요.
성경은 오래 사는 비결 오직 딱 하나 가르쳐 줬어요. 그것은 효도입니다. 

부모 박대하면서 오래 살길 바라지 마세요. 그건 비성경적이입니다.
사업에 성공하겠다고 몸부림을 치고 계십니까? 부모님 마음 슬프게 하면서 사업 잘되리라고 기대하지 마세요.

저는 22년 목회하면서 여러 성도들을 보아왔습니다. 장수하고, 하는 일이 잘되는 집, 그 집에는 나이 많은 어른이 계십니다. 어르신이 건장하게 장수하며 사는 집은 대부분 효자 집안입니다. 또 대부분 효자는 성공하고, 대부분 효자는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위치에 있습니다.
여러분 불효하면서 잘 되고, 불효하면서 건강하고, 불효하면서 오래 살고.....  꿈 깨세요. 기대하지 마세요.

출20:12 절을 보세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엡6:2~3 절을 보세요.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효가 장수와 형통에 최고의 비결이요 하나님이 보증하시는 약속 있는 계명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부모를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요?

1.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正路(정로)를 걸어야 합니다.

19절의 말씀을 보세요.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정로로 인도할지니라”
여기서 “너는 듣고”할 때 무엇을 듣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으란 말입니다. 그러면 거기서 지혜를 얻게 됩니다. 그 지혜를 통해 마음을 바른길로 인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를 진정으로 기쁘게 해드리는 방법입니다.

혹시 믿지 않는 부모가 계신가요? 그 부모님이 여러분의 믿음 생활을 핍박하시나요? 염려하지 마세요. 언젠가는 그 부모 입술에서 “우리 집이 너 때문에 복을 받았다”고 할 것입니다. 제가 그 증인입니다. 저희 부모님 모두가 제게 들려주는 말씀이 이 말입니다. 할렐루야!
몰라서 핍박하십니다. 언젠가는 예수를 믿게 되면 반드시 인정을 받게 됩니다. 혹시 예수를 믿지 않고 그대로 돌아가신다 해도 가보시면 우리 아들이 예수를 믿는 것이 올바른 길이구나 알게 되고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정로는 오직 성경 말씀 밖에 없음을 알아야합니다. 세상길은 생명 길 같으나 필경은 사망 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고 사는 길이 정로입니다. 
그러나 그 정로는 길이 좁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정로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반대로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좁은 길이지만 정로로 가면 반드시 승리하고 성공하게 됩니다. 요셉이 애굽의 보디발 장군의 집 노예 생활했을 때 그가 정로를 가지 않았다면 아마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을 것입니다. 그가 정로로 가게 된 이유가 뭡니까?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이것이 요셉의 대답입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장군에게 죄를 지리이까?”라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한 것은 그의 신앙의 정로를 보여줍니다. 그는 사람은 속일 수 있으나 하나님은 속일 수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정로로 가면 사람들은 미련하다고 합니다. 바보라고 하고 어리석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정로로 가는 사람을 인정하시고 그를 세워 가십니다. 그러기에 정로로 가는 사람이 부모에게도 효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2. 방탕한 길을 가지 말아야 합니다.

20절~21절을 보세요.
20술을 즐겨하는 자와 고기를 탐하는 자로 더불어 사귀지 말라 21 술 취하고 탐식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 자기를 즐겨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여기 “술을 즐기는 자,” “고기를 탐하는 자”와 사귀지 말라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은 “육체중심”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육체의 쾌락을 제일 우선순위로 여기고 그것이 행복인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반드시 가난해 질 것입니다. 왜요? 그런 사람의 공통점은 게으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지가 되고 맙니다.
술에 쪄든 사람은 생활에 앞뒤를 생각지 않습니다. 가족부양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고 자기 육체욕구만 채우면 그만입니다. 그러니 가족식구들이 힘이 듭니다. 그런 사람의 부모는 근심이 떠나가질 않습니다. 그러기에 진정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은 방탕한 것을 버려야 합니다.

술 마시는 자, 담배 피우는 자의 폐단이 얼마나 많은 줄 아십니까?
우리나라에 하루 평균 사망자가 673명인데 그중에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179명이랍니다. 4명중 한명은 암으로 죽는 사람입니다.
작년 한해 동안 사망자가 24만 5천여명인데 그중에 암으로 사망한 자가 6만5천명이랍니다. 매년 한 작은 도시가 하나씩 사라집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 암중에 술과 담배로 인해 암이 발병했을 것이라는 숫자가 절반이 넘는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폐암의 80%가 담배 때문이고 위암과 간암의 상당수가 술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 교회에도 담배를 하시는 분이 있다면 담배가 얼마나 나쁜 것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담배 피우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견디기 힘든 병으로 죽는답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담배를 안 피우는 동료 보다 평균 12년 더 빨리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담배연기는 “생명을 태우는 연기”라고 합니다.
 
이래도 담배 피우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고 부모에게 불효막측한 짓을 하는 사람입니다. 제일 어리석은 사람은 부모님께 술, 담배 사다 드리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빨리 죽으시라고 드리는 선물입니다. 

술도 심각합니다. 술 속에 모든 알코올을 간이 분해를 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간이 힘에 겨워 일을 합니다. 그런데도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요. 수시로 먹습니다. 그러니 간이 소리없이 죽어갑니다. 간은 아파도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지 못하는 장기입니다. 죽을 때가지 일을 하다가 간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면 간경화, 간암으로 발전하여 생명을 잃게 됩니다.

특별히 저는 음주 운전하는 사람은 살인죄를 저지르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이것을 막으려면 음주 운전하는 사람은 구치소에 한달 이상 집어넣고 10년 이상 면허를 정지시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음주 운전은 살인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한화 그룹 김모 회장이 자기 아들 때린 술집 종업원 때렸다고 구속했습니다. 나는 그보다 더 악한 것이 음주 운전이라 봅니다. 그 사람은 자기 아들 때린 사람들 잡아다 때렸지만 음주 운전하는 사람은 죄 없는 사람, 애매한 사람 죽이는 살인을 저지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중에 아직도 술 담배에서 해방되지 못하신 분이 있다면 그것은 마귀의 계략에 붙들려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부모 사랑을 배신하는 불효자요. 가족을 소리없이 죽이는 살인 행위임을 아시기를 축원합니다. 

3. 부모를 업신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22절을 보세요.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자식이 제일 간과하기 쉬운 것은 이것입니다. 부모가 늙으면 힘이 없어집니다. 그리고 옛날에는 배울 기회가 없었기에 아는 것이 없고 무식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다 보니 업신여기고 무시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도 불효입니다.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라 했습니다. 청종이 뭡니까? 잘 듣는 것입니다. 어떻게 청종할 수 있을까요? 여기에 이해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영어로 “이해”라는 단어는 understand입니다.
이 말은 under+stand 의 합성어입니다. “아래 선다”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상대방의 말을 아래에서 듣는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의 말과 교훈이 내 머리로 이해가 안되고 답답할지라도 내가 아래에 내려서서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대화가 됩니다. 그럴 때 청종이 이루어집니다. 무시하고 대답도 안하고 하는 것은 부모를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효도 중에 최고의 효도는 부모와 대화를 나누어 드리는 것입니다. 부모를 모시는 분들도 잘 들으세요. 집에 모시고 산다고 모시는 것이 아닙니다. 대화가 이루어져야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대화가 없으면 그것은 감옥입니다.
제가 어느 성도님께 물어 봤습니다. 아드님이 뭐하는 회사에 다닙니까? 그랬더니 모른데요. 아니 왜 부모가 자식이 하는 일을 모를까요? 말을 안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왜요? 근신 걱정 할까봐요? 아닙니다. 무식해서 말해도 모른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이게 불효요, 죄악입니다. 모르시면 이해시켜 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대화가 되어야 합니다. 몰라도 돼요, 알것 없어요. 하고 쏘아붙이면 그게 부모를 업신여기는 죄악입니다.
모시고 살지 못하시는 분들도 그렇습니다. 전화로 매주 장기적으로 대화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도 여러 곳에서 효자가 복을 받는 것을 보여줍니다. 대표적인 사람 몇 사람을 꼽아봅니다.
1) 이삭입니다 그는 창세기 22장에는 모리아 산에서 아버지가 드리는 제물이 될뻔 한 아들입니다. 만약 그때 아들 이삭이 아버지에게 저항을 했었다면 그 번제 사건은 실패했을 것입니다. 이삭은 아버지의 뜻에 자기의 목숨을 맡기는 순종의 삶에 원조입니다. 그뿐 아니라 나이 40이 되도록 장가도 안갔습니다. 그리고는 부모가 정해준 짝과 결혼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형통의 복을 받고 농사를 지을 때 마다 100배의 결실을 거둡니다. 

2) 요셉입니다. 요셉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순종하여 기쁘게 해 드리고 노후에도 부모님의 여생을 행복하게 해 드렸습니다. 그런가하면 자기를 노예로 팔아버린 형들을 용서합니다. 심지어 그들을 먹여 살립니다. 그러니 아비 야곱에게는 효자중의 효자입니다.

3) 다윗도 효자입니다. 다윗도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효도하는 막내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사울을 피해 망명자의 삶을 살면서도 부모를 잘 모시고 다닙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성군이 될 수 있었습니다.

4) 룻이란 여인을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효부중에 효부입니다.

5) 그러나 다윗의 아들 압살롬을 보세요. 
불효자식은 절대 축복하시지 않습니다. 성경에 압살롬은 훌륭한 다윗왕의 아들이었지만 아버지의 왕위를 빼앗으려고 군사를 일으켜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첩들을 대낮에 범하는 몰염치를 저질렀습니다.
압살롬은 왕인 부모를 모욕하고 대적한 이중삼중의 죄악을 범했습니다. 그런 압살롬은 결과 그의 자랑인 긴 머리카락이 상수리나무에 걸려 매달리고 적들의 손에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불효자식은 한때 승승장구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진정한 축복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녀 교육을 바로 하고 싶습니까? 그러면 효도하세요. 그러면 자식들이 그 모습을 보고 저절로 바르게 자랄 것입니다.
부모는 나몰라라 하면서 자식을 위해서는 뭐든지 다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나중에 자식도 그렇게 제 자식만 위할 것입니다.
그런고로 부모님을 즐겁게 하시고 기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머잖아 그 효를 자식에게 되돌려 받게 될 것입니다.
 
효는 의무이지만 그러나 효는 심은 대로 돌려받는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그러기에 효는 이 나라의 단순한 도덕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경적 진리요 하나님의 뜻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이 크나큰 원리와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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