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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자녀를 축복하라 (막 10: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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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한 주간 동안 집중적으로 보도되는 한 사건을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 접할 수 있었습니다. 한 재벌 회장의 아들을 향한 빗나간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아버지는 최악의 방법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지혜로운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아들이 종종 사람들을 만날 때 화를 냅니다. 화를 내게 되면 위, 아래가 없이 소리를 지르고 자기를 절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이아들의 버릇을 어떻게 고쳐줄까 생각하다가 아들을 불렀습니다. 아들이 화를 낼 때마다 울타리에 못을 하나씩 박으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 화를 냈기 때문에 첫날은 17개의 못을 박았습니다. 그 다음날은 12개의 못을 박았습니다. 어느날 아들이 와서 말을 했습니다. “아버지 오늘은 못을 하나도 박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참 기특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아들아! 이제부터는 화를 참을 때 마다 못을 하나씩 뽑아라!” 그때부터 아들은 화를 참을 때마다 못을 하나씩 뽑기 시작했습니다. 몇 일 후에 아들이 아버지에게 와서 못을 다 뽑았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을 함께 울타리로 갔습니다. “대못은 뽑았지만 여기에 구멍은 그대로 남아있지 않느냐? 마찬가지로 네가 잘못을 깨닫고 사람들에게 사과했지만 네 마음속에 상처는 이렇게 구멍이 남아있는 거란다.” 이렇게 아버지는 몸소 교훈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아들은 화를 내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잘 절제하는 인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어느 것이 더 지혜롭겠습니까? 어떤 책에 보니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한국의 부모들은 아이가 밖에 나가서 누구와 싸우든지 맞고 들어오면 화를 낸다고 합니다. “왜 맞고 들어오는 거야. 좀 때려주지” 그리고는 울고 오는 아이와 함께 아이를 때린 아이 집에 가서 그 아이를 구박합니다. 그러면 그 집 부모가 나와서 아이들 싸움이 결국 부모싸움이 되게 됩니다. 부모싸움이 집안싸움이 되고 집안싸움이 동리싸움이 되고 맙니다. 그런데 일본에 가있던 한 특파원 기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일본 부모들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싸워서 맞고 들어오면 때린 아이 집에 가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고 합니다. 혹시 귀댁의 아이에게 잘못한 것이 없는지 미안해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때린 어머니는 미안해서 우리 아이가 잘못했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렇게 부모끼리 사과 하고 아이들끼리도 화해를 하고 잘 지낸다고 합니다. 어떤 것이 현명한 부모의 선택이겠습니까?

우리는 오늘 본문속에서 가장 지혜로운 부모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 부모는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왜 예수님께 왔을까요? 예수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왔다고 13절에 말합니다. 만져주심은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19장에 보면 “예수님의 안수하심과 기도하심을 바라고” 라고 설명이 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 아이들을 대리고 와서 안수 받고 기도 받으려고 왔다는 것입니다. 가장 지혜로운 부모는 아이들을 교회로 인도해서 아이들을 축복받게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특이한 기사를 읽을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 보면 어떤 아버지가 벙어리 된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마침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그 아이에게서 귀신을 쫒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귀신들린 아들을 위해서 귀신을 쫒아내시고 그를 정상으로 회복시키십니다. 아버지의 용기가 가상합니다. 귀신들린 아들이 예수님께 와서 결국 뜻을 이룹니다.

마가복음 7장에 보면 한 가나안 여인이 흉악한 귀신들린 딸을 치료하고자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알지 못하게 조용히 그 동네를 지나가기를 원했지만 그 여인은 용하게도 그것을 알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심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자녀에 떡을 취하여 개에게 줌이 마땅치 않다.” 그런데 이 이방여인의 믿음이 참 좋습니다.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먹지 않습니까?” 부스러기라도 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그 여인의 딸에게서 흉악한 귀신이 나가고 정상이 되었습니다. 앞에서는 아버지가 자식을 이끌고 예수님께 왔고, 뒤에서는 딸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 앞에 온 것입니다.

마가복음 5장에 보면 회당장 야이로가 자신의 12살 된 딸이 죽게 되자 예수님께 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그 회당장의 집에 가고, 그 딸에게 ‘달리다쿰’ 외치시고 딸을 고치십니다. 이 부모들의 공통점은 자식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기자는 자녀에게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다른 복음서 보다는 더 많은 일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들이 지혜로운 부모의 전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데리고 오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자녀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성적이 더 좋고 공부를 더 잘하고 못하고가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 받고 교육받을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이 본문의 부모들은 자녀들을 대리고 예수님께 와서 축복받고 안수받기를 원했습니다.

우리가 농사를 짓습니다. 봄이 되면 파종을 합니다. 벼농사를 짓기도 하고, 콩, 옥수수 농사도 짓습니다. 그런데 이 농사들은 잘못 지으면 실수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더 좋은 농사를 준비해서 더 좋은 수확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자식 농사는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한번 망치면 돌이키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자식 농사는 일찍 서두르라고 권면합니다.

한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데리고 랍비에게로 갔습니다. 어머니는 아이가 랍비에게 지도받기를 원했습니다. 랍비가 아이의 나이를 물었습니다. 아이는 다섯 살이었습니다. 랍비가 하는 말이 “아이구! 이미 5년이 늦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 아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줄 수 있다면 그의 미래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자녀로 성장하는 것을 즐거워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자녀들을 어떻게 훌륭하게 자라게 할 수 있을까요? 몇 가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사랑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가정에서 사랑을 느껴야 합니다. 저의 집안이 7남매입니다. 위로 누나가 2명 있고 형이 4명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 보면 형들도 잘못해서 부모님에게 혼이 납니다. 누님들도 어머니가 시장가서 무엇을 하라고 했는데 제대로 안하면 다녀오셔서 혼을 내십니다. 그럼 누님 둘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엄마가 계모보다 더한 것 같아! 우리를 이렇게 미워해!” 그럴 수 있습니다. 꾸지람을 듣고 매도 맞으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몇일 지나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때는 섭섭했지만 엄마가 우리를 혼낸 것은 우리가 잘 되라고 그런거야! 이렇게 생각되면 다행입니다. 그러나 우리 부모는 나를 미워한다. 나를 원수처럼 대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가 나를 사랑한다. 그 사랑의 느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학교 갔다가도 집 문을 열고 들어오면 가정에서 훈훈한 사랑의 느낌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아이가 11시쯤 학원 갔다가 집에 들어오는데 집안이 썰렁합니다. 아버지는 거실에 있고 엄마는 안방에 있고 서로 말도 안하고 무엇인가 이상합니다. 동생이 “쉿!” 하면서 “이야기하지 말고, 집안공기가 저기압이니까 그냥 들어가” 라고 말합니다. 집안이 늘 이렇다면 아이들은 정상적으로 건강하게 자라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율법적이고 엄하면 하나님의 이미지가 그렇습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이미지를 가지게 됩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이 사랑의 분위기를 느끼려면 중요한 것이 부부간의 관계가 제일 중요합니다. 부부가 화목하고, 부부가 사랑하고, 부부가 대화가 있고, 부부가 기쁨이 있을 때 가정이 분위기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부부가 늘 반목하고, 대립하고, 갈등하면 불행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주는 것이 최고입니다.

어떤 유명한 교도소에서 한 낮에 죄수가 탈옥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방송이 되고 화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죄수가 밤 12시가 되어서 자기 발로 교도소로 되돌아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들어온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가 탈옥을 해서 이곳저곳을 숨어 지내다가 밤이 되어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집 방문을 여는 순간 부인이 눈을 부릅뜨고 하는 말이 8시간 전에 탈옥했는데 어디 있다가 지금 왔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죄수 생각이 이 바가지 긁는 부인과 사는 것보다는 교도소가 편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감옥에 왔다고 합니다. 이런 가정은 참 불행한 것입니다. 부부의 관계가 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최고의 교육환경입니다.

두 번 째로 우리가 자녀를 훌륭하게 양육하려면 자녀를 축복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왔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좀 오해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피곤한데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피곤하게 만들지 말고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알고 성경에 분히 여겼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자의 것이니라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왜 분히 여겼을까요? 예수님이 어린아이를 너무 귀중하게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는 어린이를 귀중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어린아이를 아주 귀중하게 여기셨습니다. 그 하나하나를 아주 귀중하게 여기셨습니다. 그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안수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우리 자녀들이 예수님의 축복을 받게 하는 것이 가장 귀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부모가 자녀를 축복하는 것이 많이 나옵니다. 이삭이 야곱과 에서를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요셉과 그 두 아들을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그 축복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부모들에게는 자녀들을 축복할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자녀들이 이미 다 큰 부모들은 손자 손녀를 축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 손자, 손녀를 만날 때 안아주시고, 쓰다듬어 주시고, 축복해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아이들은 축복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 건강하게 아름답게 사랑스럽게 자랄 수 있습니다. 자녀들을 축복해주십시오. 축복한다는 것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도 의미하고, 미래에 하나님의 복을 비는 것도 의미하지만 동시에 격려하고 칭찬하는 것도 의미합니다. 아이들이 좀 부족할 때 격려해주십시오. 잘했을 때는 칭찬해 주십시오. 격려와 칭찬은 자녀들의 삶에 아름다운 성공을 선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이가 공부를 좀 못하면 다른 잘하는 것을 격려해 줄 수 있습니다. 어떤 부모가 아이의 성적이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도 성적표를 가지고 왔는데 성적이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다음에도 성적이 이렇게 나오면 부자의 정을 끊겠다고 했습니다. 몇 달 후에 다시 시험을 보고 성적표를 가지고 오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는 순간 이 아이가 아버지에게 “아니 아저씨 누구세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공부를 못해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집에만 들어오면 신나고 좋아야 합니다. 학교에서 0점 맞아도 집에만 들어오면 너무나 좋습니다. “성적이 좀 떨어질 때도 있지 왜 이렇게 걱정하냐? 다음에 잘하면 되지. 나도 빵점 맞아 받다. 그런 걸로 걱정하냐? 걱정 하지마!” 이렇게 격려 할 수 있는 가정이 소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제일 나쁜 것이 다른 집 아이와 비교하는 것입니다. “옆집아이는 성적이 어떻고, 어느 대학을 갔다고 하던데 너는 뭐하는 거냐?” 이렇게 말하면 아이들은 점점 더 주눅 들게 됩니다. 격려와 칭찬이 아이의 기를 세워주고 그의 마음속에 소망의 불꽃을 불러일으킵니다. 자녀를 축복하십시오.

세번째로 우리가 자녀들을 훌륭하게 양육하려면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잠언 22장 19절에는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그가 그것을 떠나지 아니할 것이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119편 105절에 보면 “주의 말씀은 내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가르친다는 것은 하나님을 심어준다는 의미입니다. 그의 심령 속에 하나님을 심어준다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교회로 데리고 와서 말씀 듣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일주일동안 아이들이 어디가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나마 아이들이 교회 와야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예배시간 한 시간, 분반공부 시간 20분 마저 빼앗아 간다면 불행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이들의 심령 밭에 떨어지는데 우리가 방해자가 되면 안 됩니다.

교회학교 교육전도사님들이 늘 걱정하는 것이 있습니다. 한달 중에 2번 정도 노는 토요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노는 토요일이 되면 긴장을 합니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주일날 교회를 오지 않습니다. 어제가 어린이날이고 오늘은 주일 연휴입니다. 걱정이 됩니다. 다 놀러가고 교회는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시대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돈이 없어서 문제 입니까? 메이커 있는 좋은 옷을 입히지 못해서 문제입니까? 학원을 보내지 못해서 문제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부재가 문제입니다. 아이들에게 신앙을 심어주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에게 예배의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들이 좋은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저녁 예배와 오후예배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른 신앙교육이고 말씀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어렸을 때 어머니가 병이 걸려 먼저 죽었습니다. 죽기 전에 어머니는 어린 링컨을 앉혀놓고 성경을 그에게 주면서 성경을 열심히 읽고, 말씀대로 생활을 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이었습니다. 링컨이 성경을 열심히 읽고, 그 말씀대로 살 때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사무엘상에 보면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이 나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였습니다. 그들은 제사장의 아들이었지만 말씀으로 양육 받지 못했습니다. 예배의 경건성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제물을 마음대로 탈취하는 못된 아들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전쟁에서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기고 전쟁에 패배하고, 생명을 잃는 부끄러운 자녀들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투자입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신앙을 심어주고 하나님을 심어주면 그들의 미래는 소망이 있습니다.

1940년대 어떤 유대인 랍비가 아들과 함께 유대인을 수용하는 집단수용소에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하루하루 굶주림과 추위, 고통스러운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곳에서도 아들을 교육하기 원했습니다. 식용으로 배달되는 그 버터를 모아서 그곳에 심지를 꽂아서 초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초에 불을 붙이고 말합니다. “이것을 보아라. 사람이 밥을 먹지 않아도 3주간을 견딜 수 있단다. 사람이 물을 먹지 않아도 3일을 견딜 수 있단다. 그런데 사람이 희망이 없으면 하루도 살수 없단다. 여기 촛불을 보아라. 이것이 바로 희망의 빛이다. 하나님은 바로 우리 마음의 희망의 빛이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분이란다. 너는 너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모셔야 한다. 그런데 너의 마음속에 희망의 빛은 꺼지지 않는 거야.” 어린 자녀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심어주면 그의 마음속에 희망의 빛이 불타오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으시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예배드리는 이 시간에 여러분의 자녀는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의 손자, 손녀들은 있어야 하는 곳에 있는지 한번 되짚어 봐야하지 않습니까? 자녀들을 축복하십시오. 예수님께 데리고 오십시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는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는 어머니였습니다. 한번은 교부에게 가서 그 아들의 상황을 이야기 했더니 그 교부가 말합니다.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의 자식은 결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안심하십시오. 결국 그 예언대로 어거스틴은 회심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린이 한 영혼이 얼마나 귀한지 잘 모릅니다. 그들이 바로 교회의 희망이고 국가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를 너무너무 사랑하셨습니다. 혹 교회가 “헌금도 내지 못하는 어린이가 왜 필요해!”라고 말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어린이들이 너무 귀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한다면 어린이들이 예배드리는 공간은 최고의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어른 예배실에는 최고의 에어컨이 있는데 어린이의 예배실에는 에어컨이 없어서 땀을 흘린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교회의 미래이고 국가의 내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다 자라서 우리 집에는 아이가 없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동네에 가면 어린 아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어린아이 하나를 잘 설득해서 교회로 데리고 오시기 바랍니다. 그 아이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으면 그 아이의 인생이 변화되게 되고 그 가정이 변화되고 그 가문이 바꾸어 질수 있습니다. 어린아이 한 영혼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초청 잔치를 앞두고 어른도 전도하지만 어린아이도 전도하세요. 그것이 하나님 앞에 가장 큰 상급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먼저 주님께 인도하십시오. 우리 이웃의 아이들을 주님께 인도하십시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자녀를 축복하고, 가정을 사랑의 공동체로 만들어 가고, 그곳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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