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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부모 공경 (출 20:12, 눅 15: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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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공경 (출20:12, 눅15:25~32)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 말씀은 십계명 중 다섯 번째 계명이지만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부른다. 부모를 공경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사람을 향해 준 계명 중 6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모두 “~하지 말라”는 부정적 금지의 계명이다. 그리고 약속도 없다. ‘무엇을 하지 말찌니라’로 끝나는 계명이다. 하지만 5계명인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하라”는 긍정적, 적극적 권면의 계명이다. 거기에 약속까지 보장되었다. 엡6:2은 이렇게 풀어서 말하고 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부모 공경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사람을 향한 계명으로 분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1~4계명은 하나님을 위한 계명, 5~10계명은 사람을 위한 계명이라는 분류에서 1~5계명은 하나님을 위한 계명, 6~10계명은 사람을 위한 계명으로 본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자녀의 효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부모 공경은 곧 하나님 공경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왜 부모 공경이 하나님 공경이 될까? 그것은 부모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자녀들을 축복하고 양육하고 돌보고 인도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부모 공경은 하나님 공경이기에 네가 이 땅에서 잘되는 길이다. 그 길을 외면하지 말자.

부모 공경을 외면한 아들의 모습이 오늘 본문 누가복음 15장에 기록되어 있다.

1. 집을 나간 둘째 아들

그는 아버지가 건장하고 장자가 아닌 차자이면서도 자기 몫을 요구하였다. 교만하고 당돌한 이 아들은 아버지의 집을 떠나 살려는 못된 아들이었다. 먼 나라로 떠나가서 사는 이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허랑 방탕하며 살았다. 눅15:13을 보면 아버지가 주신 재산을 허비하여 살았다. 패역이란 누구를 말하는가? 바로 이 작은 아들의 사는 모습이다.

2. 집 안에 머물며 산 큰 아들

작은 아들에 비하면 큰 아들은 부모 공경을 잘하는 아들처럼 보인다. 그러나 큰 아들 역시 부모 공경에 있어서 작은 아들과 똑같은 탕자이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슬픔과 아버지의 기쁨을 알지 못하는 아들이기 때문이다. 자기 동생이 살아 돌아왔을 때 큰 아들의 태도는 심각하였다.

눅15:28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동생이 살아 돌아온 기쁨을 기뻐하지 못하고 분노하고 있는 아들의 냉냉한 가슴, 그것은 아버지의 눈물을 알지 못하는 아들의 모습이다. 아버지는 큰 아들을 권면한다.

눅15: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는 것이 마땅하다.”

불평, 원망, 정죄, 우월감으로 가득 찬 아들에게 아버지는 기쁨의 잔치에 동참하라는 말을 하고 있다. 결국 큰 아들은 아버지와 한 집, 한 공간에 살고 있지만 마음의 교류와 나눔은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명을 받들어 순종은 하지만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리는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예수님의 비유 속에 나오는 두 아들은 모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모두 돌아와야 할 죄인들의 모습이다.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어야 할 사람의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이 땅에서 부모와 잘못된 공경으로 사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3.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제3의 아들이다. 사람으로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는 철저히 아버지를 공경하였다. 오늘 우리는 부모 공경을 잘 하지 못할 때 사람으로 오셔서 죽기까지 아버지께 순종하신 예수를 바라보자.

요5:19의 말씀에는 아들로서 아버지가 보여주시는 삶을 보고 사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에게서 부모 공경을 배우고 하나님을 섬기는 영적 효도를 배울 수 있다. 부모 공경이 어려우면 그때마다 아들 예수를 바라보자.

그러면 부모 공경이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첫째, 공경이란 먹을 것을 드리는 것이다.

부모가 젊을 때는 자식이 그 부모의 둥지에서 산다. 그러나 부모가 늙으면 자식이 그 부모를 돌봐야 하는데, 제일 먼저 먹을 것을 드리는 일이다. 힘이 없고 아프고 대소변을 할 때 먹을 것을 주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과 같다.

말1:6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찐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찐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였다.

하나님을 아비처럼 공경해야 하듯 우리는 부모로 섬겨 드려야 한다. 룻은 밭으로 가서 시어머니를 위해 떡을 싸다 드리므로 보아스와 결혼하고 축복을 앞당겼다. 공경을 통해 회복이 일어났다.
 

둘째, 공경이란 이야기를 나눠 드리는 것이다.

부모는 고독하다. 외롭고 쓸쓸하다. 모든 삶의 중심에 서 있는 부모는 자식들을 다 성장시키고 나면 삶의 주변인으로 서게 된다. 건강도 예전 같지 않고 찾아오는 사람,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조차도 없어지게 된다. 노인의 삶이란 모든 보이는 것 세상적인 것을 잃어버리는 삶이다. 그래서 우울하다. 슬프다. 눈물이 나고 작은 일에도 오해가 생긴다.

부모 공경이란 바로 이것이다. 혼자 외로워하실 부모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일상의 별일 없는 이야기라도 들려주고 물어보고 나누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매일 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중요한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의 마음 속 이야기를 하나님께 들려드리는 교제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기도 생활은 매일 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 공경이다.

이처럼 부모 공경도 부모 앞에 나아가 자녀가 말을 걸고 말씀을 듣는 이야기의 나눔이 중요한 일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가정은 잘된다. 김치 한 포기를 하더라도, 잠깐 어디 여행을 다녀온다 하더라도 이야기를 해 드리는 것, 그것이 부모에게 효하는 것이다.
 

셋째, 공경이란 부모의 말씀에 따르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부모의 말을 업신 여기는 자는 어리석은 자요 지각이 없는 자이다.

잠19:26 “아비를 구박하고 어미를 쫓아내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며 능욕을 부르는 자식이니라.”

잠30: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하였다.

부모는 자기 자신이 비록 잘못된 삶을 살지라도 자식은 바른 삶을 살아주기를 염원하고 있다. 부모를 대할 때 늙고 힘이 없다고 업신여기지 말고 공경하라. 공경한다는 것은 부모의 말에 순종하여 따른다는 것이다. 때로는 이해가 되지 않고 내 맘에 맞지 않아도 따라야 한다. 대개 자식들이 연애를 하면 부모의 권면을 듣지 않는다. 아니 들리지 않는다. 어떤 문학가는 인간 타락의 진면목을 연애에 빠진 사람들이 하나님과 부모의 어떠한 음성도 듣지 않는데서 찾을 수 있다고 하였다. 사업을 하든지, 진학을 하든지 부모의 말을 따라야 한다. 물론 이런 순종은 주안에서 순종하는 것이다. (엡6:1) 예수를 믿지 않아도 된다는 부모의 말씀을 받아드릴 것인가, 거절할 것인가? 주 안에서 순종을 해야 한다.
 

넷째, 공경이란 부모를 기쁘게,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이다.

자식이 부모를 도와 드려서 부모가 기쁜 것이 아니다. 자식이 자기의 역학을 하며 살 때 부모는 기쁘고 최고의 효도를 받은 것이다. 자식이 부모를 의지하지 않고 살기만 해도 부모를 편안히 해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소극적인 삶에서 더 나아가 부모를 기쁘게 할 수 있는 이벤트를 만들어야 한다.

잠23: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하였다.

기회가 되면 명절과 생신을 축하하고 여행을 보내 드리고 용돈을 공급해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는 그 아들을 기뻐하면서 사는 보람을 느끼게 된다.

지난 번 TV에서는 아버지를 지게에 업고 금강산에 올라간 사람을 방영하였다. 우리는 감동을 받기보다 극성이라고 치부했는데 너무도 놀라운 공경의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 분은 인천성산교회에 다니는 이군익 집사이다. 부모님을 얼마나 잘 모시고 공경하는지 현재 살고 있는 집에다가도 고향 생각을 하시라고 팔각정을 만들어 놓았다. 이 집사님은 서산 8봉 충신으로 농협에 다니시는데 아버지를 업고 산을 오른 일이 화제가 되어 중국 공자의 고향인 곡부라는 곳에서 초청을 받았다. 그런데 거기서도 아버님을 지게에 짊어지고 태산을 올랐다고 한다. 앞으로 ‘중국 교과서에 이 감동의 공경 이야기를 실어야 하지 않는가!’ 라며 검토 중이라고 한다.

공경이란 바로 이것이다. 부모를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을 서슴없이 하는 일이다. 부모 공경의 길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배운다. 좋은 교인은 좋은 자녀가 되는 것이다. 공경을 모르는 사람은 좋은 교인이 될 수 없다.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신앙은 효와 통하는 것이다.

우리 교회의 로고는 孝자의 형상에서 따왔다. 전체적인 로고의 형상은 배 모양인데 교회가 이 세상의 파도를 헤쳐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모를 지게에 지로가는 아들이라는 것을 효자로 표현한 것이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하나님의 자녀들, 즉 영적 孝자의 표시이다.

주님은 무엇을 원하실까? 효자가 되길 원하신다. 효자는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까? 지극한 마음과 뜻과 정성으로 섬긴다. 부모의 공경과 하늘 아버지의 섬김이 같은 일이다. 부모 공경을 통해 여러분의 가정이 이 땅에서 잘되고 생명의 날이 장수하는 성도가 되길 축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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