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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또 하나의 기적을 위하여 (행 9:3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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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대인들의 문제점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 중에 중요한 것 하나가 더 많이 취하겠다는 소유욕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눅12:15) 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여러분은 성실하게 일하셔서 부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복음을 위하여 쓰임받는 부자가 되십시오. 하지만, 돈 버는 것이 목적은 아닙니다. 돈은 쓰기 위하여 법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6:38)
세상의 경제법칙은 쓰면 없어진다, 그러므로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결핍의 법칙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제법칙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법칙은 주면 더 넘친다는 것입니다. 마치 샘물처럼, 쓰면 쓸수록 더 새로운 물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나눔의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목숨을 주셨습니다. 피와 물을 다 나눠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20:35)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의 생각을 좀 바꿉시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받을 수 있겠는가, 취할 수 있겠는가 보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줄 수 있겠는가를 생각하면서 삽시다. 어떻게 하면, 가족에게 더 많은 사랑을 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제자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베푸는 스승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직원들을 좀 더 많이 도와줄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건강을, 재능을 나눌 길이 없을까? 이런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다면, 우리 마음이 먼저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삶이 풍요로워지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줄 수 있다고 생각할 때 행복해집니다.

2.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욥바라는 항구도시에 살고 있었던 다비다 라는 여성에 대한 것입니다. 그의 헬라어 이름은 도르가입니다. 다비다는 여제자입니다. 여제자란 단어는 성경에 이곳 단 한 차례 등장합니다. 다비다를 여제자라고 불렀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신앙생활을 잘 했는지 보여줍니다. 다비다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았다”고 합니다. 특별히 당시 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인 홀로 된 여인들을 잘 돌봐주었습니다. 그들에게 겉옷과 속옷을 지어주었습니다.

  욥바는 우리나라의 부산이나 인천 같은 국제무역항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드나들고, 먹고 입고 마실 것이 풍부한 도시, 아주 화려한 도시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화려한 문화 뒤에는 그 화려한 만큼 그늘진 곳이 있습니다. 햇빛이 강할수록 그림자가 강하듯이, 이곳 욥바에는 부자들이 많고 돈이 들끓는 곳이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한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양극화는 오늘날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2,000년 전에도 욥바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회의 무관심과 냉대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가난한 사람들은 주로 홀로 된 부인들, 부모 없는 고아들, 그리고 외국인 나그네들이었습니다.

  다비다라는 여성도는 욥바에 있는 홀로 된 부인들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들의 필요를 공급해주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도움을 입었던 수많은 여성들이 그의 죽음을 가슴아파하며 슬퍼하였습니다. 대사도인 베드로도 다비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그만큼 그의 삶은 아름다웠고, 교회 지도자들에게도 인정받는 신앙인이었습니다. 다비다는 평범한 여성도였지만, 욥바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게 영향력입니다.

  1899년 12월 3일, 남아프리카에서 보어 전쟁이 한창 일 때였습니다. 하워드 라는 영국인의 집에 한 영국인 기자가 급하게 문을 두드리며 숨겨달라고 애원하였습니다. 보어의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한 영국인 기자였습니다. 하워드는 일 주일 동안 자신의 집에 숨겨주고 그가 유럽으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이 영국인 기자는 남아프리카에서 자신이 겪은 일을 기사로 썼습니다. 그 기사로 그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국제정치의 중앙무대로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윈스턴 처칠이었습니다.

평범한 사람 하워드의 용기와 친절이 없었다면, 영국은 윈스턴 처칠을 잃었을 것입니다. 윈스턴 처칠은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어 세계 역사를 바꾸어놓았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윈스턴 처칠같은 세계적인 지도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처칠 같은 사람이 되지 못할른지 모르지만, 하워드 같은 사람이 될 수는 있습니다. 사랑과 친절을 베푸는 사람, 그리하여 세상을 바꾸는 사람,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대학교를 들어가자 말자 주일학교 교사로 열심히 봉사하였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 생각해보니, 제가 주일학교에 다녔을 때, 저를 가르치신 사모님과 설교말씀을 전해주신 주일학교 부장 집사님의 영향이었습니다. 두 분 선생님의 아름다운 미소, 아이들을 향한 사랑이 저를 주일학교 선생님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목회자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도 어린시절 저희 교회의 목사님의 인자하신 모습, 그리고 말씀을 아주 쉽게 잘 가르치시는 목사님의 모습이 제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나도 저분 같은 목사님이 되어야지.”
영향력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누룩처럼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있는 곳에는 탈세가 사라지고, 정직하게 세금을 내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뇌물을 주는 문화가 사라지고, 공정한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어두움을 몰아내는 세상의 빛입니다.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입니다. 다비다처럼, 우리가 있음으로 세상이 행복해지도록 선한 영향을 미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모범적인 신앙인인 다비다가 병들었습니다. 그의 도움을 받았던 욥바시내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서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 고쳐주세요. 우리를 위하여 희생한 다비다를 고쳐주세요.” 이들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다비다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욥바에서 존경과 사랑을 받던 다비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욥바 시민들, 특별히 욥바의 기독교인들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다비다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분들은 통곡을 합니다.
“하나님, 왜 이렇게 신실한 주님의 제자를 일찍 불러가십니까? 차라리 나같은 늙은이를 먼저 불러가시지, 왜 당신의 충성된 일꾼을 이렇게 갑자기 불러가십니까?”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에게도 고난이 닥칩니다. 갑자기 질병이 닥치고 사고가 나기도 합니다. 그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님, 왜 제게 이런 고통이 찾아왔습니까? 왜입니까? 제가 뭘 잘못 했다고 이런 가혹한 시련을 주십니까?”
이런 질문을 하면 할수록 더욱 비통에 빠지고, 분노와 복수심 심지어 절망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을 당할 때 고난을 이기는 대처법이 있습니다.
왜? 라고 묻지 마시고, 무엇을? 이라고 물으십시오.
“주님,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주님께서 무슨 은혜를 주시려고 하십니까?”
건강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물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나의 빈 손에, 나의 빈 가슴에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라보입니다.
잃어버린 것이 실패가 아니라, 성공의 기회입니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우리의 삶이 훨씬 풍요로워집니다. 여유가 생깁니다.
잃어버린 것 때문에 가슴 아파하지 말고, 새로운 것, 더 나은 것을 주실 하나님을 기대하십시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편42:11)

4. 다비다가 죽었다는 소식을 욥바 근처 룻다에 와 있는 베드로에게 전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다비다의 시신이 있는 다락에 올라가서 기도하였습니다. “다비다의 아름다운 삶을 통하여 영광받으신 하나님, 다비다가 없음으로 욥바의 성도들이 비통해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이렇게 빨리 불러가시니 어찐 일입니까? 다비다 없는 욥바교회 성도들, 참으로 답답하고 막막합니다.”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던 베드로 사도에게 확신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비다를 살리실 것이라는 확신 말입니다. 그래서, 다비다의 시체를 향하여 외쳤습니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다비다야, 일어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일으키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베드로 사도의 확신에 찬 기도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죽은 다비다가 눈을 떴습니다. 살아났습니다. 할렐루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합니다. 기도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죽은 다비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식이 금방 욥바 시내에 퍼졌습니다. 그래서, 욥바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병든 것도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심지어 죽음도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우리 중에도 오랜 세월 질병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갑자기 큰 질병이 발견되어 몹시 당황해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여러분, 질병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붙들고 계십니다.
다비다의 질병, 그리고 그의 죽음이 도리어 많은 불신자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기적을 낳았습니다. 다비다가 살아난 것도 기적이지만, 예수 안 믿던 사람들이 다비다를 통하여 많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더 큰 기적입니다.

질병으로 고생하시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질병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낫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낫게 하실 줄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낫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기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질병이 비록 낫지 않아도, 고통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며 소망 가운데 즐거워하며 사십시오. 그런 아름다운 삶을 통하여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많은 분들이 소망을 발견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된다면, 그건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한 영혼이 예수 믿고 구원받게 되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이요 영광입니다.
육체만이 아니라 영혼까지, 온 몸이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요,
이 세상만 아니라 다음 세상에서도 영원히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이기에
기적 중의 기적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도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질병을 통하여, 아픔을 통하여 하나님께 크게 영광돌릴 수 있습니다.
질병이 영광이요, 고난이 축복이요 기적을 불러옵니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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