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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원하심을 이루는 가정 (민 6: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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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심을 이루는 가정 (민 6:22-27)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찌니라”(민수기 6:24-26)

  어느 신혼부부가 살아갈 집을 임대하려고 돌아다녔지만 가진 금액이 부족해 그들이 바라고 꿈꾸어 왔던 멋지고 아름다운 집을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신혼  부부는 자전거를 타고 경치가 좋은 마을을 찾아가 하루 종일 둘러보았습니다. “저런 집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너무나 멋지게 생긴 아름다운 집을 꿈을 꾸듯 바라보고 있는데, 그 집안에서 갑자기 부부가 다투는 거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부부가 서로 내뱉는 거칠고 상스러운 말에 놀랐고 어린아이가 울면서 현관으로 걸어 나오는 것을 보고 실망했습니다. 신혼부부는 행복은 아름다운 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가정의 삶을 사느냐에 있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론과 그의 자손들을 제사장으로 세워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하도록 하셨습니다. 제사장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두 가지 일을 해야 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제사를 집례 하는 것이고 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제사가 끝난 뒤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하는 것입니다. 

  ‘래리 크리스탠슨’이라는 사람은 “부모는 바로 그 가정의 제사장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부모들은 가정의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가정의 역사를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가정에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에게 행복하도록 주신 가정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정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제사장의 축복선언에서 볼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원하시는 것은 무엇임을 깨닫게 됩니다.

  축복을 받는 가정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 하신다”고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성서에 보면 축복(blessing)이라는 말이 700회나 나옵니다. 이것은 인간은 하나님의 축복하심으로 사는 존재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축복하심을 받는 곳이 되어야 하고 그 축복하심을 나누고 실현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돌보심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치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시121:3-6).

  우리들의 시대는 하나님이 지켜 주시지 아니하시고 돌보아 주시지 아니하시면 우리의 가정을 바로 세워갈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축복하시는 가정이 됨으로 자녀들에게 축복의 인생을 살도록 해주는 곳이 되고 그 축복으로 돌보는 곳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영어에서 남편이라는 말 husband는 house와 band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므로 그 뜻은 ‘집을 하나를 묶는다.’는 뜻입니다. 아내라는 말 wife는 weaver(천이나 비단을 아름답게 짜는 사람)라는 말에서 만들어 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남편과 아내가 가정을 하나로 잘 묶어 하나님의 축복하심과 돌보심속에서 행복한 삶을 짜나가는 곳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시대의 문제는 우리의 삶의 자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실현하는 곳이 아니라 저주의 삶을 만들어내는 곳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세상이 하나님의 돌보심을 외면하고 살고 있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2002년 봄 6명의 부녀자를 살해한 엄청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의 자리가 축복되게 살수 없는 저주스러운 곳이 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이 살인사건을 저지른 젊은이들의 살인행위는 800만원의 은행신용카드의 연체대금의 빚을 가리고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살인을 저지른 것입니다. 이들은 승용차에 택시표시등을 부착하고 부녀자들을 태워 돈을 빼앗고, 범행을 신고하지 못하도록 목 졸라 죽이고는, 그 시신을 자동차에 싣고 다니다가 붙잡혔습니다. 더욱 무서운 것은 그들은 이 끔직한 범행을 별다른 죄의식 없이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하나님의 축복

을 실현하는 곳이 되지 못하면 저주스러운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을 외면한 인간세상의 역사는 이러한 것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축복하심과 돌보심을 잃어버리면 저주스러운 곳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의 축복하시는 곳이 되도록 하십시다. 하나님이 지키시는 돌보심을 받는 가정이 되도록 하십시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시편기자는 “내가 주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지극히 높으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라”(시9:2)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가정이 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가정이 되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기 위해 희생하는 가정이 되도록 하십시오.
  우리 모두의 가정이 하나님의 축복하심과 돌보심을 가지고 사는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로운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하나님은 그 얼굴을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신다”며 하나님의 자녀들을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얼굴을 우리에게서 감추시거나 그 얼굴을 돌려 외면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잘못될 때에 걱정스러운 얼굴로 보고 계십니다. 실수하여 범죄 할 때에 진노의 표정으로 경고하심과 함께 용서하시겠다며 따뜻한 사랑의 얼굴로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하나님의 얼굴을 우리에게 밝히 비추어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얼굴을 비추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와 얼굴과 마주 대하시고 함께 하시며 은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후 아담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창3:8). 그럼에도 하나님은 아담을 불렀습니다. 아담과 얼굴을 마주 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다 먹은 후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벗은 몸인 것을 알고 수치와 부끄러움가운데 있는 아담부부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시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우리의 시대의 문제는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얼굴의 향하여 얼굴을 대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의 빛을 피하여 얼굴을 돌리고 사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일어버리고 있습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에게 비추어 주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비와 용서와 사랑의 얼굴을 우리에게 비추시고 그 분의 기쁨과 즐거움을 비추어 주십니다. 그 얼굴을 대하는 가정이 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가지고 사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가지고 사는 가정은 은혜의 생활을 창조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서로 용납함으로 화목하게 하고 사랑함으로 행복하고 활기찬 가정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사는 가정이 되도록 합니다.  캐나다의 Newfoundland 동부 연안, 작은 항구 마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쾌청한 날 바닷가의 어부들은 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를 향해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만 오후 늦게 어두워지면서 갑자기 큰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했습니다. 당황한 어부들은 무시무시한 폭풍우와 싸우며 뱃길을 찾으려고 하였지만 별빛 하나 없이 어두워 방향을 잡지 못했습니다.

  집에 남아 있던 어부들의 아내와 어머니들은 밤새도록 해변가를 바라보며 바다에 나간 남편과 자식들을 살려달라고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어두운 바다에서는 아무 소식도 없고 폭풍우만 더욱 세차게 일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언덕 위의 오두막집 중 하나가 화염에 휩싸인 것입니다. 집에 불이 난 것입니다. 여자와 아이들만으로는 세차게 부는 바람 앞에서 그 불길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불행 중 다행으로 어선들은 한 척도 빠짐없이 모두 항구로 돌아왔습니다. 그곳에 타고 있던 어부들도 모두 무사했습니다. 남편과 아들을 반갑게 맞은 여인들의 눈에는 한없는 기쁨과 감사의 눈물이 뜨겁게 흘렀습니다.

  하지만 집을 다 태워버린 어부의 아내만은 절망적인 얼굴로 남편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남편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오, 여보! 우리는 이제 망했어요! 우리 집과 그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몽땅 불에 타버렸어요! 당신이 바다에서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바라며 바닷가에 나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이 어디선가 불씨가 옮겨 불이 붙었나봐요. 미안해요, 그런데, 어쩌면 좋지요?”

  그러나 상황을 알아차린 남편은 절망의 탄식대신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의 탄성을 울렸습니다. “할렐루야! 여보, 우리 집을 불살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등대불도 보이지 않는 폭풍우의 깜깜한 바다 한가운데서 어느 곳을 향하여 갈지를 알지 못하는 우리 어선들 모두에게 항구까지 무사히 인도해 준 것은 바로 우리 집이 활활 타면서 뿜어낸  바로 그 불빛이었구려!” 하나님의 은혜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감사의 삶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풍성한 은혜로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얼굴을 비추시사 우리를 살피시며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럼으로 히브리 저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긍휼히 여기시는 은혜이고 때를 따라 도우시는 은혜”임을 깨닫고 “우리가 긍휼하심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그리고 그 은혜의 역사 속에 살아가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은혜 안에서 서로 용납하며 감사하며 사랑하며 살아가는 은혜를 나누는 행복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평강의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하나님은 그 얼굴을 향하여 드사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며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가정은 이 평강을 가지고 사는 평화로운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26절의 ‘향하여 드사’라는 말은 25절의 ‘비추사’라는 말보다 더욱 적극적이고 행동적인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이 평강의 가정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행동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행동하시는 모습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평강의 인생이 되도록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희생을 자처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부활하셔서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셔서 “평강이 있을 지어다”고 축복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평강을 깨뜨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깨뜨리는 위험한 삶임과 동시에 죄악의 역사인 것입니다. 가정이나 교회 어느 곳에서나 평강을 깨뜨리는 행위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의 역사입니다. 

  평강이란 원어 ‘샬롬’은 평화라는 뜻 외에도 번영, 건강, 행복, 우정, 온전함 등, 선한 모든 것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샬롬!’ 하고 인사할 때에는 이 모든 것이 임하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평강을 전하고 나누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평강 안에서 자라도록 해야 합니다. 부부가 이 평강을 가지고 사는 행복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가정이 평강으로 가득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상담 심리학자인 ‘칼 로저스’는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다섯 가지를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관심입니다. 간섭은 이기심에서 나오는 것이고 관심은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둘째는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인정함을 받는 것은 모든 세상을 긍정적으로 받아드리는 자원이 됩니다. 셋째는 반응하는 것입니다. 잘못했을 때에는 징계와 용서로 반응해야 하고 잘했을 때에는 칭찬으로 반응해야 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격려입니다. 격려함으로 무한한 가능성이 솟아나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자녀들을 위한 봉사입니다. 자녀를 위해 희생하는 수고는 아이들의 양육에 선물인 것입니다. 이 모든 것 외에 더욱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자녀로 하여금 평강 안에서 자라도록 하는 것입니다.

  가정은 물질을 공급하는 곳만이 아닙니다. 성공이라는 인간을 만들어내는 공장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주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이 평강의 가정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평강의 가정을 이루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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