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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겨자씨가 주는 메시지 (마 13: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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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것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것은 무엇일까요?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것은 “바이러스”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세균보다 더 적은 이 바이러스는 미생물의 약 100분의 1 정도이고, 동식물 세포의 핵보다 더 작아서 전자현미경으로 보아도 보일까 말까 할 정도의 크기입니다. 그런데 이 바이러스보다 더 작은 것이 있는데요. 그것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의 최소 단위인 “원자”입니다. 바이러스는 전자현미경으로 보이지만, 원자는 전자현미경으로도 잘 보이지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원자를 원자가속기에 넣으면 분해가 되는데요. 그 조각을 “쿼크”라고 합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 “쿼크”를 세상에서 가장 작은 물질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원자나 원소의 조각인 쿼크가 가장 작다고 해도 앞으로 과학이 발달하면 이보다 더 적은 것이 생겨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것이 무엇이냐?’ 하는 내용의 말씀이 아닙니다. 오늘의 두 본문은 예수님께서 당시 식물의 씨앗 가운데 가장 작은 것으로 여겨지던 겨자씨를 가지고 말씀하신 것들로서, 예수님은 이 말씀을 가지고 아주 중요한 두 가지 메시지를 우리에게 하시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작은 겨자씨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2. 겨자씨 같은 천국

오늘의 첫 번째 말씀은 예수님의 비유로 “천국은 마치 겨자씨 한 알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겨자씨는 정말 작은 데요. 깨보다도 훨씬 더 작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겨자씨가 모든 씨 중에 가장 작은 씨가 아니라 난초의 씨가 더 작다’느니, 또 ‘겨자는 나무가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에게 가장 작은 것으로 는 여겨지던 것, 즉 당시 사람들에게 ‘가장 작은 것’하면 바로 떠올랐던 것이 겨자씨였기 때문에 예를 들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향료 식물인 이 겨자는 당시 팔레스타인에서는 야생으로 자라는 몇 종류가 있었고, 작물로 재배되는 “검은 겨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작기는 정말 작은데, 그 크기에 비해 자라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비옥한 땅에서는 몇 달에 무려 4~5미터 정도가 되고, 가운데 줄기는 수 년 된 나무보다 더 굵어진다고 합니다.
겨자의 노란 꽃이 가을이 되면 꼬투리가 되어 그 속에 씨앗이 일렬로 들어차게 되는데, 이 씨앗을 먹고 사는 ‘붉은가슴방울새’나 ‘핀치’와 같은 새들이 날아 들어와 그 가지에 앉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겨자씨를 가지고 천국을 설명하셨을까요?

① 일단 천국 운동의 시작인 우리 예수님부터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전능자요, 창조주이지만, 세상에 오실 때는 풀 같은 인생의 육체를 입고 나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사람과 똑같이 사셨는데요. 아니 어쩌면 일반 사람들보다 더 어렵고 힘들게 사셨습니다. 즉 겨자씨가 아주 작은 것이듯이 천국운동의 시발점인 우리 주님이 세상에 오신 모습부터가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만 아니라, 주님께서 천국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할 때의 상황도 겨자씨와 같았습니다. 나사렛이라는 가난하고 무식하고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사는 촌 동네 출신, 거기서 천하게 여겨지던 목수 일을 하던 사람이 나서서 시작한 천국 운동! 처음에는 모두가 그를 정신 나간 사람, 미치광이, 귀신이 든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전하는 복음과 그가 하는 일, 그리고 그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대해 사람들은 비웃었고 무시했으며, 심지어 저주하고 핍박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겨자씨처럼 작게 보이던 천국 운동이 나중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순절 날, 예루살렘을 뒤흔들더니 수만 명이 그 열매가 되었고, 로마 제국 전체가 변화되는 기적이 일어났고, 지금은 전 세계 수억의 사람들이 주님을 믿는 상상을 초월한 결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겨자씨와 같은 예수 운동, 천국 복음 운동을 무시했습니다. 사실 말이지, 예수님은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아주 대대적인 방식으로 일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얼마든지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런 방식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천국운동은 큰 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사소하고 작은 것,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 그러나 그 결과는 우리가 현재 듣고 보는 대로 엄청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천국의 속성, 우리 주님의 복음의 역사는 비록 작고 부족해 보여도 상상을 초월한 결과를 보인다는 것을 여러분은 기억하셔야 합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순종하여 헌신하는 전도운동, 그리고 저 멀리 땅 끝 선교 현장에서 수고하시는 선교사님의 사역들이 모두 겨자씨와 같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장차 엄청난 결과로 우리의 눈 앞에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② 나아가 이 말씀은 성도 여러분들의 일상생활,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 등, 삶의 현장에서 하는 일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에게 엄청난 일, 위대한 일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도리어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작고 사소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가정, 직장 등에서, 여러분이 먼저 낮아지고 섬기는 것이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부터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천국 운동, 겨자씨 운동은 주님의 사랑과 그 말씀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즉 천국 운동은 주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 행하는 것을 기쁨으로 아는 사람들이 작은 일에서부터 최선을 다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의 결과는 엄청나게 되는 것이죠.

‘나비 효과’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지구나 우주에서 하는 모든 행동은 일정한 결과를 초래할 뿐 아니라, 모든 행동은 다른 모든 것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입니다. 여기 마산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개 짓을 하면, 그것이 저 멀리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허리케인을 일으키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즉 작은 행동과 일이 엄청난 결과를 가지고 온다는 이론이지요. 여러분의 한 마디, 여러분이 하는 작은 행동이 큰 결과를 가져 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든 세상에서든 거기서 하는 모든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특별히 일상적이고 아주 사소한 것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주님의 뜻을 실천하면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들과, 여러분의 전도, 봉사와 섬김, 가정과 직장에서 수고하고 헌신하는 그 모든 것이 장차 겨자나무처럼 이 땅에 거대한 나무를 이루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작다고 사소하다고 무시하는 사람은 겨자씨의 원칙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정말 여러분들이 이 겨자씨의 원칙을 잘 알아 그것을 경험하기 되시기 바랍니다.

3. 겨자씨 같은 믿음

오늘의 두 번째 본문은 예수님께서 변화 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말씀하신 것입니다. 산 아래 남아있던 제자들은 간질병으로 고생하던 아이를 고치지 못했고, 그것 때문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비난과 그들을 둘러싼 무리들의 조롱을 받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 가까이로 다가오시자, 그 무리 가운데 한 남자가 뛰어나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는 그 아이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는 귀신이 자기 아들을 사로잡아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면서 발작을 하게 하여 그의 몸과 마음을 심히 상하게 해 왔고, 심지어 죽이려고 물이나 불에 그 몸을 던지도록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아들을 고치기 위해 좋다는 의원은 다 찾아가고 좋다는 약은 다 먹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했지만 아들을 고칠 수 없었고, 아들의 상태는 더욱 심해져 갔습니다.

그런 아들을 보는 아비로서 안타까워서 견딜 수 없었고, 그런 가운데 그 자신도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쳐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하여 예수님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는 절박한 심정으로 예수님께 “아이를 살려 달라”고 부르짖습니다만, 사실 이 말은 “아이 때문에 죽어가는 나를 살려 달라”는 말이고, 또 “아들로 인하여 무너진 내 가정을 다시 회복시켜 달라”고 외치는 소리이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보시고 아신 주님, 그리고 아이의 너무나 불쌍한 형편과 그 아버지의 애절한 사연을 들으신 주님은 그 아이를 고쳐주셨습니다. 아이는 완전히 고쳐져서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도 자유케 되었고 평안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문제가 남아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아이를 고치지 못하여 세상으로부터 조롱을 받았던 제자들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왜 자신들은 아이의 병을 고치지 못하고 귀신을 좇아내지 못했는지에 대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7:20). 제자들은 자신들이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인양 많은 군중들 앞에서, 그리고 자신들의 경험에 취해서 아이에게 덤벼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이를 위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를 믿는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 없음을 지적하셨습니다.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겨자씨만 한 믿음은 어떤 것입니까? 이미 오래 전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그들에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그들에게 병을 고치고, 귀신을 좇아내는 등의 능력, 그 귀한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여러분에게도 예수님을 주셨고, 우리 예수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고 기도할 때에, 역사가 일어나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보증으로 성령님을 여러분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즉 이미 성도 여러분 안에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능력이 나타날 수 있는 겨자씨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이 가진 믿음이 미약해 보일지라도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의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을 갖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럴 때에 본문 20절에 있는 대로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법 오래 된 이야기지만, 미국 알라스카 주의 한 젊은이가 교회 처음 간 날 바로 이 본문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것을 그대로 믿기로 하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말했습니다. “곧 우리 동네 앞산이 없어질 거예요.” 그가 사는 작은 소도시의 동남쪽에 작은 산이 하나 있어 그 도시는 추운 알라스카 지방에서도 대부분 햇빛이 들지 않는 음지였습니다. “무슨 소리야?” “제가 기도하고 있거든요.” 모든 사람들이 그 청년을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알라스카 주의 태평양 연안을 따라 고속도로가 나면서 공사가 시작되었는데, 그 소도시를 가로 막고 있던 산을 깎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 청년이 믿고 기도한 대로 그 산이 없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교회 처음 나가 말씀을 듣고 그대로 믿었던 청년의 믿음이 그대로 된 것이죠.

저는 근래에 어느 시골 할머니 여 집사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산골에 사는 이 할머니 집사님은 교회를 가려면 산을 하나 넘어야 했고, 도시로 간 자녀들을 만나려고 해도 그 산을 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중부고속도로인지, 중앙고속도로인지가 나면서 그 산이 없어졌다는 사연을 어느 설교 중에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오늘 본문에서 여러분에게 확실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비록 여러분 자신이 부족해 보이고, 또 여러분 안에 있는 믿음조차 작아보일지라도, 그것은 겨자씨와 같은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위대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는 죄를 떠나 정결하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이와 같은 역사가 일어나지 않을까요? 그것은 ‘죄’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9장은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사59:1-3)”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들이 여러분에게 일어나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막9:29).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겨자씨 믿음’은 순수한 믿음, 정결하고 거룩한 믿음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기억합시다. 그 어떤 의심이나 불평이나 원망이 섞이지 않은 믿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그대로 행하는 온전한 믿음을 가질 때에 여러분에게도 겨자씨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나아가 더 많이, 더 깊이 기도함으로서 겨자씨의 역사를 경험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영국에 ‘쟌 윌턴’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요. 이 사람은 인생을 되는대로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정말 방탕하게 살았었는데, 이 양반이 어느 날 갑자기 술 담배를 끊고 그 생활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우연히 교회 나가서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그는 “내게 아주 작은 겨자씨만 한 믿음만 있다면 불가능이 없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나에게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라고 믿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때부터 윗옷 안주머니에 겨자씨를 항상 넣고 다녔습니다. 후에 그는 유명한 사업가로 성공을 했습니다. 그가 은퇴할 때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작위까지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늦은 나이에 인생을 새출발하여 남보다 더 성공한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성공한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당신은 왜 항상 겨자씨를 포켓에 넣어가지고 다닙니까?” 그러자 윌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좌절할 때마다 이 겨자씨를 꺼내보면서 하나님께서 이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다면 못할 것이 없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과연 나에게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는가?’를 반문하면서 돌이켜 보고 용기와 확신을 가지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었고, 그것이 그를 성공적인 인생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이 사람처럼 겨자씨만하지만, 절대적으로 하나님과 그 말씀을 믿고 신뢰하는 가운데, 겨자씨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항상 기도와 말씀 가운데서 주님과 교제하며 성령 충만한 삶을 살 때, 겨자씨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서 세상을 이기고, 모든 악한 것들을 좇으며, 병을 고치고, 문제를 해결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앞에 있는 수많은 종류의 산을 옮기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겨자씨 법칙은 아직도 유효하고, 그것이 참으로 진실임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예수님 당시보다도 더 무시당하는 복음과 교회와 성도의 위신, 우리 주님의 말씀의 능력을 세상에 보여주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4. 겨자씨를 닮은 성도

세상은 작은 것보다는 큰 것을 좋아합니다. '대형선호사상'이라고 하죠. 그래서 '동양최대'니 '세계최고'니 하는 말을 자주 합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세계최소'라는 말은 거의 들어보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여러분, 길이나 다리 이름들을 한 번 보십시오. 모두 다 무슨 “대로”이고 “대교”입니다. 실제로 다른 길보다 별로 넓지도 않은데 그냥 “대로”라고 부르는 길도 많습니다. 그리고 강이나 바다 위에 세워진 다리들은 전부 다 “대교”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아주 작은 것에 주목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작은 것은 하늘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중요하지요. 아무튼 결론은 여러분 속에 작지만 위대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속에도 겨자씨가 있다는 것이지요.

지금은 자주 볼 수 있습니다만, 언젠가 식당에 가니까 하얗고 아주 작은 물건,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것을 하나 주더라구요. ‘이게 뭔가?’ 했더니, 거기에 물을 부으니까 그것이 손이며 얼굴을 닦을 수 있는 수건이 되었습니다. 작지만, 보잘 것 없지만, 거기에 우리 주님의 생명과 능력이 역사할 때에 놀라운 결과가 일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이 작지만 아름답고 귀한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천국 운동, 우리 주님의 복음 운동이 겨자씨 한 알과 같습니다. 말라빠진 너무나 작은 씨앗 하나! 별로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봄이 되어 땅에 묻으면 싹이 나고 자라서 큰 나무가 되듯이, 우리 주님의 나라도 그렇게 성장해 왔습니다. 얼마나 거대하고 놀라운 모습으로 지금 우리 앞에 있습니까?

그리고 겨자씨 이야기는 여러분의 믿음을 돌아보게 하는 것입니다. 순결하고 진실하며 온전한 믿음이 있다면, 그리고 거기에 믿음이 보태진다면, 그것이 아무리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여도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부르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비록 여러분의 신앙이 보잘것없이 보여도, 여러분의 삶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이, 그리고 여러분이 가진 믿음이 이 겨자씨와 같기를 바랍니다. 작지만 누구도 해낼 수 없는 위대한 역사를 경험하고 일으키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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