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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은 긍정적일 수밖에 없다 (롬 8: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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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성공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남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긍정적인 태도라고 봅니다.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이야기입니다. 항해를 하는 동안 선원들은 매일 날씨와 환경을 탓하며 불평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그들은 부정적인 태도로 콜럼버스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런데 콜럼버스는 동일한 환경 속에서도 언제나 긍정적이었습니다. 그는 하루를 마감하면서 항해일지를 기록했는데 항상 다음과 같은 글을 기록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서쪽으로 전진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긍정적인 사람을 쓰십니다. 부정적인 사람을 쓰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 말씀을 긍정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했습니다.
  주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밤새 고기 잡다가 실패하고 그물을 씻고 있었는데 “주님께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는 어부 입니다. 그가 가진 상식으로는 이미 날이 밝았기 때문에 고기들이 깊은 곳에 없습니다. 바위틈 같은 곳에 다 숨어 있을 때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주님의 말씀을 부정적으로 받지 않고 긍정적으로 받아드렸습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순종해서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하나님의 복도 긍정적인 사람이 받습니다.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가데스바네아에서 12명의 정탐꾼이 돌아와서 정탐결과를 보고합니다. 10명의 사람들은 자신들은 그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보았던 부정적인 시각대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믿고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비록 가나안에 있는 사람들이 장대하더라도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 하시니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족속들은 자기들의 밥이라고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긍정적인 보고대로 가나안에 들어가는 복을 누렸습니다.

  사람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대인관계가 편안합니다. 환경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어려운 환경도 쉽게 극복할 수 있지만 환경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환경에 눌리고 맙니다.
  긍정적인 사람은 부정적인 사람보다 건강합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긍정적인 사람보다 병에 걸릴 확률이 높습니다.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고 억압된 사고로 해석하는 사람은 심장마비에 걸릴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무려 4배가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벨기에 앤트워프 대학의 요한 데놀레트박사의 연구결과입니다. 그는 미국심장학회(AHA) 학술지 ‘서큘레이션’에서 이같이 발표했습니다. 남자 81명과 여자 6명을 대상으로 심리테스트를 실시한 뒤 상태를 지켜봤는데, 부정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은 심장의 좌심실 펌프기능이 현저하게 저하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의 제목을 [그리스도인은 긍정적일 수밖에 없다]라고 잡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절대 긍정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해서도 안 되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무조건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긍정적인 영상을 갖고,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로마서 8장에서는 앞부분에서는 생명의 성령의 법을 다룹니다. 그리고 뒷부분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승리에 대해서 다룹니다. 뒷부분의 그리스도인의 승리에 대한 말씀을 이해하고 믿는다면 부정적이 될 수 없습니다. 무조건 긍정적입니다.
  오늘 설교는 그리스도인이 왜 절대적으로 긍정적인 생활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승리를 확신하고 절대 긍정의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

1. 고난은 영광스러운 미래의 밑거름이기 때문입니다.

  18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을 포함해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모든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고난이 찾아온다면 그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고난을 당하고 있지만 그 고난이 밑거름이 되어 장차 큰 영광으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현재 고난을 받고 있어도 절대 긍정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은 훈련이라는 개념으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당하는 물질의 고난, 대인관계의 고난, 질병의 고난 등 모든 고난은 우리를 훈련시켜서 영광스러운 존재로 만드시기 위한 과정입니다. 29, 30절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훈련 받게 하십니다. 그 목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롬 8:32에 보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모든 상황을 넉넉히 이긴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넉넉히 이긴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거대한 정복자”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대한 정복자가 되게 하십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정복자”가 되든지 아니면 “희생자”가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환경에 삼킴을 당하든지 아니면 환경을 정복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또는 인생의문제들에 압도당하든지 아니면 문제들을 극복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럼 누가 거대한 정복자가 되겠습니까? 강력한 훈련을 받고 그 훈련을 통과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거대한 정복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고난을 통해 훈련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중에도 소망을 갖고 긍정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나의 연약함을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26절을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감사하게도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속에 계시면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성령님이 나의 연약함을 도와주시니 내가 연약한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이 나를 도와주시니 내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평가를 한마디로 내린다면 “인간은 약하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는 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질그릇이라고 불렀습니다. 질그릇이 얼마나 깨어지기 쉽습니까? 사실 인간의 육체는 이 질그릇과 같아서 조금만 과로해도 쓰러지고, 힘든 상황에 처하면 병에 걸립니다. 인간은 육체적으로 약합니다. 영적으로도 약하고 인격적으로도 약합니다. 모든 면에서 약한 존재입니다. 정말로 약한 존재이지만 약함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일 수 있는 이유는 성령님이 나를 도와주신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26절에 보니까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중보기도 해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기도의 능력을 믿으십니까? 막 11:24은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선언합니다. 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하면 병을 이길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기도하면 부족한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는 중보기도도 엄청난 능력이 있는데 감사한 것은 우리 안에 와 게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감사한 것은 성령님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느니라.”

  그러니 우리가 어떤 상황 속에 있어도 성령님이 중보기도해주시고 예수님이 중보기도해주시니 우리리는 부정적일 수 없습니다. 절대긍정입니다.


3.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여기서 ‘그의 뜻대로’ 라는 말은 ‘하나님이 작정하신 대로’, ‘하나님이 목적하신 대로’,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통해서 이루어 가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섭리(攝理)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에는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 같지만 그것도 결국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면역력이 약하기 때문에 예방 주사를 때에 맞게 잘 맞아야 합니다. 예방주사를 맞기 위해서 준비할 때와 주사를 맞는 순간은 어린 아이에게는 고통입니다. 너무 아프고 괴롭습니다. 그 아이는 주사를 맞게 하려고 자기를 병원에 데리고 가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밉기 까지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예방주사 안 맞게 하면 되겠습니까? 아무리 아이에게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맞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픔이 아이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질병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 발생했을 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다면 우리는 고난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엄청난 고난을 겪었습니다. 17세의 어린 나이에 형들에게 팔려서 타국에 종으로 팔려갔으며, 거기서 열심히 살았지만 보디발의 아내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서 옥살이까지 했습니다. 그는 13년 동안 종살이 옥살이를 했습니다. 청춘을 감옥에서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셉은 상처를 받지 않았습니다. 신앙을 포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영성을 유지했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는 신앙의 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읽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 같으면 비관적이 되고 부정적이 되고 낙심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이 총리가 된 후에 자기를 찾아 온 형들을 사랑으로 받아드립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앙갚음을 해도 시원치 못할 것인데 요셉은 형들을 용서하고 받아드리고 형들이 잘 살 수 있는 길까지 마련해 주었습니다.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요셉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는 눈을 가졌던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을 만났을 때 보복을 두려워하는 형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창 45:7, 8)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 50:20)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의 표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 3:16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 8:32에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반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칼 바르트]라는 유명한 신학자가 있습니다. [교회교의학]이라는 12권짜리 대작을 탈고했을 때 독일의 한 기자가 물어보았습니다. “12권의 교의학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칼 바르트는 주저 않고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성경의 요약, 신학의 요약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니까 능력을 주시고, 사랑하니까 보호해주시며, 사랑하니까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시고, 사랑하니까 모든 문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문제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 힘드십니까? 시험 중에 있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부정적이 되지 마십시오. 절대 긍정의 자세로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십시오.
  힘들어도 긍정적으로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합니다. 언제나 긍정적으로 사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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