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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렇게 삽시다 (행 2:3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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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여왕 5월입니다.지난주는 가족대회로 은혜중 다녀왔습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특별히 5월은 1년의 반을 마감하면서 교회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고 새롭게 줄발하는 달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990년대 이후 한국 교회는 성장을 멈추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뒷짐짓고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우리는 지금까지의 신앙생활 속에서 인내하며 정면 돌파함으로 사막에서 샘을 파는데 훈련된 자들이라 자부합니다.

사실 교회는 자신의 영적인 나의집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의 신앙을 성찰하고, 우리 교회를 건강한 교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그래서 영향력이 있는 교회가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초대 교회는 그런 교회였습니다. 초대 교회처럼 영향력이 있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 마음에 찔림이 있어야

37절 말씀을 보십시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구원받을 때를 생각해보십시오. 그 전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본문에 나오는 '찔림'이 있었습니다. 구원의 중요한 표시는 이 찔림에 있습니다. 교회 부흥을 위해서도 무엇이 필요합니까? 우리들에게 이런 찔림이 있어야 합니다. 그 동안 교회를 너무 사랑하지 못한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며 가책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어찌해야 할꼬?"

우리교회가 부흥되지 못하면 그 첫 책임은 목사에게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숙한 성도라면 그 책임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을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을 타인에게 찾는 사람은 미성숙한 사람이고, 자신에게서 찾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주님을 잘 따르고 있는지, 참으로 주일을 성수할 의지가 있는지 우리의 모습이 진정 영생을 가진 자의 모습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의 모습인지에 대한 찔림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부족한 헌신에 대한 찔림을 갖기를 원합니다. 그래야 우리 교회가 살 수 있고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2. 구원받은 백성이 되어야

38절 말씀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간단하게 말하면 "구원받으라!"는 말입니다. 누가 구원을 받습니까? 39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예수님을 부르고 영접하는 자들이 구원함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영접이 이처럼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그분의 존재와 능력을 인정하고 주님 앞에 내 삶을 맡기겠다는 헌신의 각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어떤 공로보다도 영접하는 일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 어떤 분이 잘나지는 못했지만 대화할 때 항상 상대방을 받아들이면서 대화를 합니다. "아! 예! 그렇군요... 그러시겠습니다!" 그렇게 상대방을 영접하는 분들은 사람 앞에서도 인정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예수님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고, 말씀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 구원의 축복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천국의 시민권 자입니다. 오늘날 미국 시민권 자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보호를 받습니다. 미국이 강력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국 시민권은 미국 시민권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디 가든지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십시오. 때로 죄를 지어도 구원의 확신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부족해도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부족해도 하나님 안에서 자기 자신의 변화될 앞날을 믿으십시오. 그 믿음이 삶에 큰 영향력을 주고, 어떤 풍파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힘을 줍니다.

믿음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얼마 전에 "CEO가 되는 길"이라는 베스트 셀러가 있었습니다. 50명의 CEO(최고 경영자)를 집중 연구한 책인데, 그 핵심적인 내용이 바로 믿음입니다. 누군가 나를 믿어주고, 내가 나에 대한 믿음을 배반하지 않을 때 반드시 성공의 길은 열리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흔들리지 않는 구원의 확신과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믿음 안에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넘칠 때 그 교회는 반드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3. 열심히 복음을 전파해야

40절에서 베드로는 구원의 소식을 전합니다.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 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우리에게 베드로처럼 복음을 전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제일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복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아 천국 시민권자가 된 성도가 바로 천국에 가지 않고 이 땅에 존재하는 제일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도 역시 복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좋은 소식입니다. 어떤 분은 좋은 소식은 잘 전하지 않고 나쁜 소식을 즐겨 전합니다. 복음을 들으면 졸다가 나쁜 소식이 들리면 눈이 번쩍 뜨이는 성도들이 많다면 그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없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매번 강단에서 "한국 교회가 썩었다!"고 하면서 인터넷 게시판에서 돌아다니는 나쁜 소식만 퍼다 성도들에게 먹입니다. 그런 얘기를 가끔 들으면 "우리가 이래서는 안 되지!"하고 각성을 하게 되지만 너무 자주 들으면 그 영혼이 배가 고파서 결국 성도들은 하나씩 떠나게 됩니다. 나쁜 소식도 가끔 전할 필요가 있지만 우리가 주로 전해야 할 소식은 바로 좋은 소식 행복한 소식을 즐겨 전해야 합니다.

나쁜 소식은 열심히 전파하면서 복음은 전혀 전하지 못하지 못하는 자폐증 성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축복 받으면 무엇합니까? 감사가 없고, 복음 전파가 없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도 없는 일입니다. 겸양은 중요하지만 부끄러움은 버려야 합니다. 부끄러움이 별로 나쁜 것 같지 않지만 마귀가 그것을 이용해서 자폐증 성도로 만든다면 큰 문제입니다. "네가 무슨 기도야! 네가 무슨 전도야! 네 모습을 봐라!" 그 부끄러움이 우리의 열정을 약화시킵니다. 여러분! 복음 전파할 수 있는 담대함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4. 가르침을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41절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복음을 전파했을 때 그 날에 삼천 명이 한꺼번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엄청난 사람들이 다 진짜 제자였다면 몇 년 되지 않아서 예루살렘은 완전히 변화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41절에 나오는 '제자'는 원어로 그냥 '사람'을 뜻합니다. 단순한 무리였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예루살렘 교회는 힘이 약화되고 오히려 이방 지역의 교회들이 더 성장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구원 이후의 삶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교인 숫자가 늘어났다고 교회가 성장한 것이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다수가 진리지만 성경은 다수를 부정적으로 볼 때가 훨씬 많습니다. 숫자 놀음의 환상에 빠지면 안됩니다. 엉터리 교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숫자 아닙니까? 다수 좋아하다가 망한 기록이 바로 성경의 기록입니다. 편하게 믿으려는 사람 등 온갖 군상들이 숫자의 그늘 밑에 숨어 있지 않습니까?

다수를 조심해야 합니다. 때로는 용기 있는 소수가 되고, 소신이 있는 소수가 되기를 바랍니다. 쉽게 살려면 남들이 하는 대로 그냥 따라 살면 됩니다. 그러나 바르게 살려면 소수의 서러움도 감내하려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고, 자신의 꿈과 비전을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 세상을 변화시키는 용기 있는 소수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휩쓸려 다니는 사람들보다 한 사람의 깨어 있는 제자를 더 원하십니다.

진짜 축복이 무엇입니까? 무리에 속하지 않고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제자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가르침을 받으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42절 말씀을 보면 초대 교회 성도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을 줄 아는 성도였습니다. 뜨거운 가슴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냉철한 머리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을 많이 알려고 힘써야 합니다. 공부도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신학교에서 한 학생이 항상 시험 점수가 엉망입니다. "공부 좀 하라!"고 했더니 "복음 전파하고 철야 기도하느라고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거만한 학생을 쓰지 않으실 것입니다. 어떤 학생이 시험문제를 받아보고 아는 것이 없으니까 "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노라!(고전 2:2)"고 썼습니다. 교수님은 "잘 알았노라!"고 하며 빵점을 주었습니다. 학생에게는 공부하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한 사명입니다. 가르침을 잘 받을 줄 아는 사람이 인격도 되어 있고, 태도도 되어 있고, 바른 신앙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가르침을 받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성경 지식이 많아야 된다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열린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며 사는 삶이 가르침을 받을 줄 아는 삶입니다. 여러분! 신앙을 패션으로 삼지 말고 교회생활을 하나의 이벤트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신앙이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 성도들을 통해서 교회는 누룩처럼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확대해나갈 것입니다.
말씀에 찔림을 받으며 삽시다.
구원의확신을 가집시다.
예수전도하며 삽시다.
열심히배우며 사시기를 주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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