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어버이주일] 어머니의 기도와 사랑 (삼상 1:17-20, 26-28)

  • 잡초 잡초
  • 645
  • 0

첨부 1



    오늘 이 시간 새롭게 증축한 제단에서 설교를 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감격스러움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도 이와 같이 아름다운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말씀을 듣고 있다는 것을 매우 감사하게 여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롭고 축복의 자리에 서게 된 것은 무엇보다 우리를 낳아 주신 어머니의 은혜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머니! 그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따뜻한 이름입니까? 우리를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어머니, 이 세상에서 그 어떠한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어머니라는 이름을 아무리 불러 보아도 가슴을 울리며 메이게 하는 감동의 이름입니다.

    한국의 어머니는 자식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음의 이야기에서 한국의 진정한 어머니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2006년 2월 6일 미국 최대 스포츠 이벤트인 수퍼보울에서 한국계 하인wm 워드가 최우수선수(MVP)가 됐다는 소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아들 워드가 최우수 선수가 되기까지 한국인 어머니 김영희씨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미국사회에서 인종차별과 가난이라는 역경을 극복하고 오로지 아들만을 위해 사신 진정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땅의 어머니치고 자식을 위해 희생과 헌신하지 않는 어머니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어머니 김씨의 아들 사랑만은 남다른 데가 있어 더욱 가슴을 뭉클케 합니다.

  주한미군 흑인 병사와 결혼한 그녀는 미국에 가자마자 이혼을 당했습니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데다 영어도 못해 아들마저 남편에게 빼앗겼습니다. 이후 그녀는 아들을 되찾기 위해 잠자는 시간을 빼놓고 하루 16시간 동안 억척같이 일만했습니다. 접시를 닦고, 호텔청소를 하고, 잡화점 계산대에서 열심히 땀을 흘렸습니다. 아들을 되찾은 후에도 아들에게 어머니의 참 사랑과 부지런함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아침에 아들이 잠이 깨기 전에 밥상을 먼저 차려주고 출근한 뒤, 아들이 학교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저녁에 잠시 들어와 저녁상을 차려주고 다시 일을 나갔다고 합니다. 오직 아들의 성공을 위해서였습니다. 어릴 때는 키가 작은 동양인의 어머니를 부끄러워하며 반항적이던 아들도 철이 들면서 마음을 열고 어머니의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을 위한 어머니의 그 크신 사랑은 아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인즈 워드는 한 인터뷰에서, "어머니는 나의 모든 것이며, 내가 앞으로 아무리 잘해 드려도 다 갚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 계시는 모든 어머니들도 하인즈 워드의 어머니와 같은 사랑과 희생으로 자녀들을 양육하여 왔습니다. 기도로 자식을 낳으시고 사랑으로 가르치며 양육하셨던 헌신과 희생은 이 세상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유산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한나의 기도와 사랑이 곧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한나는 엘가나의 아내로서 자식이 없었습니다. 한나는 자식을 얻기 위해 성전에 올라가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자식을 얻으려는 어머니의 기도는 매우 침통하고 뼈 속에 사무치는 기도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간절한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기 위해 소리를 내지 않고 나지막하게 기도했습니다. 자식을 갖지 못한 자신의 고통을 무언으로 표현하는 내심의 고백이었습니다.

  한나의 기도를 지켜보고 있었던 제사장 엘리는 그녀가 술에 취한 것으로 생각하여 성전에서 내 쫒으려고 했습니다. 그때에 한나는 비로소 말을 시작하여 자식을 원하는 자신의 고통과 곤경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낳으면 하나님께 바칠 것을 서원했습니다. 한나의 말을 들은 엘리는 그녀에게 자녀의 축복을 약속하였을 때, 확신에 찬 한나는 위로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어 일 년 후에 아들 사무엘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한나가 아들을 얻게 된 과정을 보면서 다음 몇 가지 교훈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어머니 한나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한나는 아들을 갖기 위해 기도했을 뿐만 아니라, 태중에 있는 아기를 위해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한 인간의 삶에서 어머니의 태중에 있는 10개월은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됩니다. 오늘날에 와서 신세대 어머니들은 태교를 매우 중요시하고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한 인간이 태어나기 전 어머니의 태중에 있는 동안 생명이 형성되고 세상에서 활동하기 위한 모든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 육체적으로 몸의 각 부분 유기체의 구조가 형성되기 시작하고, 정신적으로 두뇌의 활동 기제(mechanism)가 갖추어져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따라서 세상으로 태어나기 전 태중에서 생활이 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됩니다. 어머니의 육체를 통해 공급되는 건강한 영양분을 흡수하여 태아의 육체적 조직에 공급하고, 어머니와 주위 환경의 의식세계를 통해 건전한 정신력이 형성되는 시기가 바로 모태에 있는 때입니다.

  16세기 체코의 교육철학자인 존 아모스 코메니우스는 아기가 어머니의 태중에 있는 시기를 학교로 명명하고 “태아학교” 혹은 “모태학교”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태중에 있는 아기를 일반 학교와 같이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태아학교의 교사가 됩니다. 아버지도 어머니와 같이 태아학교의 교사가 됩니다. 현대의 어머니들이 “태교”의 중요성을 말하기 이미 4세기 전에 코메니우스는 태아학교 교육을 체계적으로 정립했습니다. 태아학교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한 아기를 탄생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모의 존경과 예우를 받으며 태어나야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건강한 아기를 위해서는 부모는 태아에게 예우를 갖추는 생활을 시작해야 합니다. 아기의 부모가 되는 부부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전하고 도덕적인 경건한 생활을 실천해야 합니다. 아기가 수태되었을 때부터 건전하고 절제 있는 부부생활이 중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태한 아기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며 찬송하는 경건한 생활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만약, 수태한 산모가 방탕하고 술을 마시고, 성을 잘 내거나, 다른 사람을 미워하며 시기하거나, 남의 것을 탐하기를 즐긴다면, 이러한 모든 부정적인 성격의 씨가 알게 모르게 태아에게 전이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산모가 사물을 보는 안목과 생각이 항상 긍정적이고, 더욱이 남편과 함께 태아를 위해 기도하며 찬송하는 가정 분위기를 만들어 간다면, 그러한 부모의 경건한 생활이 태어나는 새 생명을 위한 축복의 근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을 수태한 엘리사벳도 남편 사가랴와 함께 아기를 위한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수태의 능력이 없어진 나이든 엘리사벳 이었지만, 노부부의 기도로 아기가 수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태중에 있는 아기의 건강과 장래를 위해 기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1장 13절-16절,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야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 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남을 기뻐하리니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너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태아학교의 교사인 부부는 사가랴와 엘리사벳과 마찬가지로 수태한 아기를 위해 육체를 건강하게 관리해야 하며, 포도주와 술을 마시지 않는 절제하는 생활과 항상 기도하며 찬송하는 경건한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한 가정에서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기원하며 양육하기 위한 어머니의 기도는 하나님의 축복을 예고하며 맞이할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태중에 있는 귀한 생명은 한 가문의 기쁨과 영광이 되며 인간 공동체의 새로운 역사를 이끌어 갈 창조력을 가지게 됩니다. 태중에 있는 아기는 사무엘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할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 어머니 한나는 아들을 사랑으로 양육했습니다. 물론 자녀를 사랑으로 양육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마는 사무엘을 위한 어머니의 사랑은 매우 구체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사무엘의 탄생 직후 순례의 절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온 가족이 순례를 하면서 성전에 올라가 아들을 위한 제물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 때 한나는 남편 엘가나에게 아기에게 젖을 먹이기 시작하여 젖을 뗄 때까지 순례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간청했습니다. 그 당시 관행으로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기간은 3년이었습니다. 혹 동방의 다른 나라에서는 7년 동안 아기에게 젖을 먹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젖을 뗄 때는 꼭 이유식을 거행합니다. 남편 엘가나는 한나의 요청을 받아들여 아기 사무엘에게 젖을 먹이도록 했습니다. 순례에 참여하지 않고 아기에게 젖을 먹이려는 한나의 모정은 곧 자식에 대한 놀라운 사랑을 나타내는 일이었습니다. 사무엘이 비로소 젖을 뗀 후 어머니는 그와 함께 순례의 길에 동참하며 하나님께 헌물을 바치면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본문 1장 26- 28절, “한나가 가로되 나의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나의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여 기도한 바를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 아이는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어머니 한나는 어린 사무엘을 성전으로 데리고 오기 전까지 자신의 모유로 양육했습니다. 어머니의 가슴에서 젖을 빨아들이는 아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가슴에 안긴 아기는 육체적 성장을 위해 모유를 먹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도 함께 먹으며 건강한 정신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가슴은 성장을 위한 생명줄이자 사랑의 보금자리입니다. 가슴에 안긴 아기는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건전하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또한 어머니의 가슴에 안긴 아기는 어머니 무릎위에 앉게 됩니다. 어머니의 무릎도 어머니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랑의 보금자리입니다.

  어린 아이는 학교에 가기 전까지 어머니 가슴과 무릎에서 성장합니다. 어머니의 가슴과 무릎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배우게 됩니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심장과 심장을 맞대는 어머니의 가슴과 무릎으로부터 다른 사람을 사랑을 배우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며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오늘 함께 부르신 찬송가 234장은 부흥사 윌리암즈 목사가 부흥집회를 인도하며 작사한 내용을 틸만(C. D. Tillman)목사가 곡을 부친 찬송입니다. 윌리암즈가 어릴 때 어머니께서 무릎위에 앉은 자신에게 성경을 가르쳐 주셨던 것을 회상하며 지은 찬송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해어졌으나, 어머니의 무릎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몰론 이 찬송은 어머니를 생각하는 매우 은혜로운 찬송입니다만, 저 자신에게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은 찬송가입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 중에서도 혹 저와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저는 어머니로부터 성경을 배우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어머님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 체 성장했습니다. 제가 세살 때 어머님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8.15 해방이 되자 북쪽에 진군한 소련군이 마을에 들어와 저의 집에 있던 값진 모든 것을 빼앗아 갔습니다. 바로 그 시기에 북한 전역에 장질부사가 창궐하여 확산되자 어머니께서는 그 병에 전염되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살 때에 어머니를 잃은 저는 어쩌면 불행하게 성장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그렇게 불러보고 싶었던 “어머니” 이라는 이름도 제대로, 그리고 마음껏 불러보지 못한 체 성장했습니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머니의 사랑스런 피부의 촉감도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요즈음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자주 납니다. 어머니의 모습이 어떠했을까하는 어머니의 상을 자주 그려보기도 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도, 더욱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도 모르고 자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 감사한 것은 저는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이란 무엇인지를 알고 자랐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더 뜨거운 애정과 동정심을 품고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가슴속에 있는 뜨거운 심장으로 열심히 베풀며 다른 사람을 이해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제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 태중의 “태아학교”에서 어머니의 그 크신 사랑을 마음껏 받았던 것 같습니다. 몰론 어머니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셨지만, 늦동이 막내아들로서 저를 수태하셨기 때문에, 어머니는 극진하게 저를 더욱 사랑하며 귀하게 여기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로 저는 10개월간 태아학교 모범생으로 자랐습니다.

  둘째로 저는 초등학교 3학년 어린 나이에 저의 가정에서 제일 먼저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에 교회에서 배웠던 예수님을 통하여 사랑을 알게 되고 사랑 실천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실천했던 예수님의 사랑으로 저의 가정을 믿음의 가정으로 인도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를 기도로 낳아주시고 사랑으로 양육하여 오신 어머니는 우리존재의 뿌리이자 근원이 되십니다. 한 생명을 수태하여 출생하게 하신 모든 어머니의 기도와 사랑으로 우리가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건국의 기초를 놓은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을 잉태한 어머니 한나의 기도와 사랑은 오늘에 사는 모든 어머니의 기도와 사랑의 표상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의 결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시간 우리에게 기도와 사랑으로 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어머니의 은혜를 보답하는 일을 직접 보여주시며 가르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위에서 운명하실 때, 당신을 수태하여 낳아주신 어머니 마리아를 확인하시고 제자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9장 26절-27절,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는 제자가 곁에 섯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에게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제자에게 이루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예수님은 한편으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만, 다른 한편으로 자신을 낳아 주신 육신의 어머니께 지극한 효성을 보이신 사람의 아들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처녀의 몸으로 자신을 수태하신 어머니의 수치와 수모를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율법으로 처녀가 수태한다는 것은 돌로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어머니는 묵묵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감사와 찬송으로 예수님을 낳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직전에 이르기 까지 자신의 어머니를 잊지 않고 기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신 십자가에서도 어머니에 대한 공경과 효도를 직접 실천하셨습니다. 우리를 기도로 낳아주시고 사랑으로 길러주신 어머니, 여러분 어떻게 하시렵니까? 부모님을 순종하고 공경하는 것이 축복의 근본이요 장수의 은총임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