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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어머니의 마음 (삼하 2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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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편을 소개합니다.

엄마가 되어서야 엄마를 알았습니다.
엄마는 나를 가졌을 때 많이 아팠다 하셨습니다.
엄마는 나를 낳았을 때 최고를 받았다 하며 행복해 하셨습니다.
어릴적 몸이 아파 누우면 엄마는 대신 아파해주지 못함에 미안해 하셨습니다.
사춘기 밤늦은 귀가에 엄마는 늘 잠을 못 이루셨습니다.
여행을 갈 때면 엄마는 너를 믿는다 하시면서도 조심해야 한다 말씀을 열 번도 더 아시곤 했습니다.
결혼식 내내 엄마는 남몰래 눈물을 훔치셨습니다.
시집살이 하소연에 언제나 엄마는 당신이 죄인이라 하셨습니다.
제가 아이를 낳았을때 가장 환하게 웃어주신 분도 엄마이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힘들어 할 때 엄마는 먼저 우시고 함께 울어주셨습니다.
엄마가 된 오늘 엄마가 되어서야 엄마를 알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엄마를 보면서도 엄마를 몰랐던 것처럼 제 아이도 엄마인 나를 엄마라 부르면서도 엄마를 모를 것입니다. 나마저도 더 큰 엄마가 되어가면서야 엄마를 더 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어머니 당신은 위대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사랑합니다. 오늘을 어버이 주일입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에 본문속에서 또 하나의 어머니의 마음을 소개합니다.

먼저 본문의 배경을 간단하게 소개하겠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니 통치를 하던 이스라엘이 갑자기 기근이 왔습니다. 만 3년이 넘도록 기근이 계속되자 다윗은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이해가 안된다하며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왜 이 나라에 기근이 오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가르쳐 달라고 간절히 매달려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다윗의 기도에 응답하셨으니 사울이 기브온 백성들을 아무 이유없이 학살했기 때문에 그 죄 값을 치르는 것이라고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을 정복할 당시에 가나안에 살고 있던 기브온 백성들과 평화조약을 맺은 적이 있습니다. 기브온 거민을 이스라엘에서 쫓아내지도 않을 것이며 그들을 죽이지도 않겠다고 하는 약속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화친 조약으로 인해 물도 깊고 일도하고 종노릇을 한때 하기도 하였지만 기브온 백성들은 이스라엘과 함께 수백년 동안을 별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관계가 사울이 왕이 되면서 깨어져버린 것입니다. 사울 왕이 아무 죄가 없는 기브온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걸고 맹세되어진 화친조약을 함부러 깨뜨리는 일을 큰 악으로 다루셨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이 기근이 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에 기근의 이유를 알게된 다윗은 남아있는 기브온 백성들 중 대표자 몇 명을 불렀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당신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겠냐 하는 것입니다. 이때 기브온 대표자는 사울의 자손 중에서 아들 일곱 사람을 선택하여 제물로 내 주면 우리가 그들을 나무에 달아 죽임으로 맺힌 원한을 풀겠다 요구하였습니다. 다윗은 저들의 요구조건을 수락하고 사울의 자손 중에서 일곱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러자 기브온 사람들은 이 일곱 아들을 사울의 고향인기브아에 있는 어느 동산의 나무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그리고야 저들 가슴속에 오랫동안 쌓여있던 원한을 풀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본문의 배경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점을 가져봅니다. 그것은 왜 조상의 죄 때문에 후손들이 원통한 일을 당해야 하는 가 하는 문제입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이와같은 비슷한 경우들이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때로는 그 하나님의 깊이를 잘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 부모임들의 삶이 우리네 영성이 결코 우리들만의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셈과 야벳의 영성으로 그 후손 대대로 복을 누릴 수도 있고 함과 어리석음으로 인해 자신뿐 아니라 그 후손 대대로 고통의 옷을 입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사울의 일곱아들이 나무에 달려 죽은 후에 아주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것은 이 사건속에서 비참하게 두 아들을 잃어버린 어떤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의 이름은 리스바입니다. 다른 많은 사람들도 있었을터인데 왜 이 여인이 유독 두 아들을 희생시켜야 했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가장 힘없고 보잘 것 없어 두 아들을 빼앗겼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가 오늘이나 이렇게 힘없다 싶은 사람들이 결정적 순간에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습니까? 이제 두 아들을 지켜주지 못했던 이 여인은 베옷을 입고 아들이 죽어갔던 언덕에 올라가서 천막을 치고 매달려 있는 아들의 시체를 지키기 시작한 것입니다. 낮에는 새들이 시체를 해치지 못하게 막았고 밤에는 짐승들이 습격해 올까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온몸으로 막기도 하였습니다.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봄부터 가을까지 6개월동안 아들의 시신에 떠나지 않고 지킨 것입니다. 이 리스바 여인의 사건은 구약에서 가장 비극적인 어머니의 사랑을 어머니의 마음을 보여주는 애절한 한 토막의 이야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성경을 보면서 알 수는 없지만 그 아들들의 시체는 6개월동안 나무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나중 그 시체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아마도 보기에 흉할정도로 뼈만 남았을 것이고 말라질때로 말랐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아마도 가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피하여 다녔을 것입니다. 그러나 리스바는 그 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가장 귀하게 여겼습니다. 왜입니까 저들의 어머니였기 때문입니다. 이 리스바의 여인의 이야기는 멀리 퍼져 나갔고 이 슬픈 어머니의 이야기는 백성들을 감동시켰습니다. 다윗왕도 크게 감동한 나머지 이 여인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많은 고심을 했습니다. 이때 다윗이 내린 결정은 사울왕 부자와 나무에 달려 죽은 일곱아들의 유골을 거두어서 성대한 장례식을 치르게 한 것입니다. 어머니의 애뜻한 사랑이 결국 아들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했고 사울 가문의 명예를 회복시키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이야기 한 것은 두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이 세상에서 어머니가 아니고서는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중 하나는 어머니의 마음이요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에 가장 가깝고 가장 많이 닮은 사랑입니다.

많이 닮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어떤 사람이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에게 있는 마음을 어버이 마음에 옮겨주셨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약할 때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했고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사랑하셨던 하나님 이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 사랑이었습니다. 어버이 사랑도 그러합니다. 리스바라는 여인의 자식 사랑을 보십시오. 이미 죽은 자식이지만 어머니에게는 죽은 자식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이미 죽은 자식이라도 지켜주고 싶은 것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계산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냥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리하게 한 것입니다. 이런 부모의 마음을 자식들이 다 이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보면 어느날 자식이 실종되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식을 찾아나서는 부모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몇 년씩이고 자식의 얼굴이 그려진 전단지를 나누어줄 때 찾아 헤메이는 부모들 말입니다. 혹시 자식이 잃어버린 부모를 몇 년씩 찾고 다닌다는 소리를 들어 보셨습니까? 없습니다. 오히려 부모를 버렸다는 소리를 들려도 말입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마음은 자식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마음이요 사랑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자식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인 것입니다. 리스바 여인은 아들의 수치과 고통을 같이 나누기를 사양하지 아니한 어머니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무에 달려 죽은 아들의 주검을 보고는 외면했겠지만 어머니만은 자식의 수치와 고통을 겪는 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 리스바여인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루디야드키플링이라는 시인이 쓴 시가 있습니다.

만일 내가 가장 높은 언덕위에서 목이 매달려 죽는다면
어머니 오 나의 어머니
마지막까지 변함없이 나를 사랑할 자 누구인지 내가 압니다.
오 어머니 나의 어머니

적어도 자식문제라면 무엇이라도 소화해 낼 수 있음이 어버이의 사랑인 것입니다. 리스바가 아들의 시체 곁에서 6개월 동안을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에게 강한 의지가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의지에는 자식을 이렇게 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의지에는 자식의 죽음을 헛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조상의 실수 때문에 죽어야 했지만 그 자식의 죽음이 헛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 사랑의 의지도 다윗 왕으로 하여금 성대한 장례를 치르게 했고 실추되었던 가문의 명예를 다시 회복시킨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있는 마음을 어버이 마음에 옮겨주셨다 했는데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하나가 용서의 마음입니다. 부모는 늘 자식을 용서합니다. 그러다 자식은 부모를 용서하지 않습니다. 자식성장의 3단계가 있는데 1단계에는 나는 부모에게 별로 받은 것이 없다하는 것이고 부모가 나에게 잘못한 것만 생각하고 2단계에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며 부모 약함을 인정합니다. 3단계에서는 우리 부모님이 대단하셨다 존경하는 것이며 그들의 삶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책임의 마음입니다. 태초 이래 가정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부모에게 있는 아름다운 마음 때문입니다.

교회가 예수그리스도의 피의 희생을 기초로 하듯 가정공동체 또한 부모의 절대희생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부모는 아무리 힘들어도 자식을 짐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식은 조금만 힘들면 부모를 짐으로 여깁니다. 부모는 열 자식을 먹여 살려도 열 자식을 한부모를 섬기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책임이요 사랑입니다. 여러분에게 있어 그려져 있는 부모의 그림은 어떤 그림입니까 혹시 부모를 아직도 원망하며 용서하지 못하는 분이 있습니까 혹시 부모가 살아 계시다는 것이 짐으로 여기는 분이 있습니까 부모는 나에게 있어 시작이요 생명의 전수자입니다. 그분은 내가 존재하게 하신 분이며 그분들은 내가 있기까지 낳고 기르고 결국 껍데기만 남았습니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셨습니다. 결국은 살아계신 것 조차 죄로 여기는 분이 부모인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쏟으시고 부모의 마음에는 진정한 섬김이 있으신 것 무엇이든 주시려고 하십니다. 자식을 위해 주다 주다 하시다 결국 몸둥이까지 주시는 분이 부모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쏟으셨던 여러분의 부모는 어떤 모습으로 어떤 마음으로 어디에 계십니까 사실 부모는 그리 오래 기다려주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에게 부탁이 있습니다. 어버이의 사랑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당당하실 것 같은 부모님들이지만 금방 한 없이 초라해 지시게 됩니다. 껍데기만 남게 됩니다. 그럼에도 하나 자식걱정 밖에 없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여러분에게 부탁이 있습니다. 자식에게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모에게 잘 하시는 여러분이 되셔야 합니다. 부모 공경은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적어도 부모를 섬기는데 있어서는 자식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자녀에게 부모를 거역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독약을 품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를 잘 섬기는 것은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가정을 소홀히 여깁니다. 기독교는 효 정신을 진정한 가치로 여깁니다. 부모를 잘 섬기는 것 이것이 주님의 기쁨입니다. - 아멘- (유재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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