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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행복한 가정의 문을 여는 열쇠(2) (갈 5: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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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의 문을 여는 열쇠 2
갈라디아서 5장 22-24절

“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

  어떤 사람이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행복한 가정의 문이 열린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에게 이루시는 놀라운 복 중의 하나가 가정을 행복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 31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어떻게 행복하게 됩니까? 주님이 하십니다!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서 주님이 하시는 역사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화평입니다.
여러분, 가정 안에 영적인 역사가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분열을 일으키는 영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 안에 어떤 일이든지 누가 잘했고 못했고.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분열하려고 하는 마귀에게 다 속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가정들이 깨어지고 분열되는지 모릅니다. 우리 안에 오신 예수님께서 반드시 하나되게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하나님과 우리의 화평을 이루게 합니다. 말할 수 없는 죄인인 우리가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화평케 된 것으로 그치지 않고 사람들 사이에도 화평을 이루게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가장 먼저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사람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지난 우리 교회에서 목회자 기도 모임이 있었는데, 한 목사님이 설교 중에 간증을 하셨습니다. 결혼한 지 8년 만에 아들을 낳았답니다. 그러나 아들을 처음 보는 순간, 너무 당황스러울만큼 자신의 마음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답니다. 전혀 사랑스럽지가 않더랍니다. 다시 보기도 싫을 정도였답니다. 그래서 ‘내가 왜 그런가?’ 그렇게 기도해서 8년 만에 얻은 아들인데. 곰곰 생각을 해보니 자기 아버지랑 너무나 닮은 것입니다. 이 목사님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이었습니다. 이 목사님의 아버지는 사업 때문에 한 달에 한번 집에 오셨답니다. 아버지 없는 환경이 자연스럽고 아버지 오시면 어색했답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믿고 아버지를 용서했다고 했지만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자리 잡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통곡할 때 ‘내가 너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믿느냐? 내가 너의 아버지를 위하여도 십자가에서 죽은 것을 아느냐? 너의 아버지를 용사하라!’ 그러나 마음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그 때 아들 얼굴과 아버지 얼굴이 겹치더랍니다. 내가 아직도 진정한 용서를 깨닫지 못하고 있구나! 애통하면서 “내 마음 중심으로 아버지를 용서하겠습니다.” 그 믿음의 고백 후에 십자가 은혜와 능력이  뜨겁게 밀려 오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화해시키시는 분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되는 것을 가장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장 9절)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요한복음 17장 21-24절에서 예수님께서 마지막 기도를 하실 때 하나되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21-22절) “아버지여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소서”

  어느 집안에 형제가 둘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었고 동생은 도시에 살면서 그저 그렇게 사는데, 유산 문제로 대판 싸우고 결국 의절하고 말았습니다. 그 싸움에서 가장 열을 냈던 사람이 동생 부인이었는데, 이 여인이 예수님을 믿고 은혜 받고 나니까 얼마 안되는 유산 문제로 시아주버니와 얼굴 붉힌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이 관계를 회복시키려 회개하고 기도하기를 수없이 하면서, 화해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때를 따라 선물과 편지를 보냈고 겨울에는 동서 내복, 시아주버니 내복, 아이들 내복하고 정성스레 편지까지 써서 보냈습니다. 처음엔 본 척도 안했지만, 여러 해 동일하게 선물을 보냈답니다. 해마다 이렇게 하니까 서서히 손위 동서와 시아주버니 마음이 풀려서 드디어 형제 관계가 회복되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북 진남포 교회가 설립된 유래가 있습니다. 한국 초대 교회 때는 예배당이 평양에만 있었습니다. 어떤 믿음 좋은 여성도가 평양에서 진남포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런데 평양에서 진남포까지는 너무 먼 거리이므로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토요일날 출발하여 월요일날 돌아 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두 아들이 달구지에 짐을 싣고 가다가 막대기가 튕겨서 갓을 쓰고 말타고 지나가던 말에 찔려 말이 놀라서 뛰니까 노인이 땅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게 되자 두 아이도 경찰서로 넘어갔다. 그리고 검찰청을 거쳐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재판장이 "어느 아이가 그랬느냐?" 고 물으니 형은 형대로 "제가 그랬습니다.“ 동생은 동생대로 "제가 그랬습니다." 형과 동생이 서로 책임을 지려고 하니 증인도 없고 하니 재판관은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난처했다. 할 수 없이 어머니를 불러서 ”어머니 의견은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다. "벌을 받을 바에야 작은 아이에게 주는 것이 정당합니다. 그 이유는 제가 이 가정으로 개가를 했습니다. 큰 아이는 전처 소생이요 작은 아이는 내가 낳은 아이입니다.” 검사가 이 말을 들어 보더니 세상에서 이런 사람이 어디 있나? 감동이 되어서 "당신 무엇하는 사람이요?" 물으니 "예수 믿는 사람올시다." “예수 믿으면 다 그렇게 됩니까? 내가 돈을 줄 테니 이 진남포에 예배당을 세우시오." 그래서 진남포에 예배당이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오래참게 됩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의 특징 중 하나가 오래 참고 기다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고 기다립니다. 그런데 이 “참고 기다리는 것”이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대법원은 2005년 3월부터 협의 이혼 방식을 바꿨다. 협의 이혼을 하려는 부부에게 마지막 3주일을 심사숙고하게 하는 협의 이혼 전 숙려(熟慮) 기간 제도를 두었는데 효과를 보고 있답니다. 이전보다 이혼 취하율이 두 배가 넘는답니다.

  서울 가정법원. 40대 남성과 여성이 큰 소리로 흐느끼며 포옹을 했다. 이들은 불과 1주일 전까지 협의 이혼을 결심했던 부부였다. 가부장적이었던 남편(41)은 2000년 주식 투자로 4억 원 짜리 아파트를 날렸다. 그대로 뒀으면 10억 원이 넘었을 재산을 날린 부부는 틈만 나면 싸웠다. 전셋집으로 옮긴 이후에도 남편은 아내(39) 모르게 주식에 손을 댔다. 지난 해 이를 발견한 아내는 이혼을 결심하고 법원을 찾았다.

  하지만 법원은 "3주 뒤에 이혼 의사를 확인하겠다."며 이들을 돌려보냈다. "법원이 제공하는 상담을 받으면 1주일 뒤에 이혼이 가능하다." 고도 했다. 하루빨리 이혼을 하려 했던 부부는 상담을 받았다. 상담 과정에서 아내는 협의 이혼 신청을 취하했다.
  끊임없이 부부 싸움을 하고 이혼하기 위해 법원을 찾았던 이 부부에게 필요했던 시간은 불과 1주일이었다.

기다리는 것 자체만 가지고도 대부분 문제는 자연히 해결된다고도 하는 것입니다.

  건물 입구에서 꽃을 파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얼굴에 주름이 많고 옷차림도 허름했습니다. 그러나 밝은 표정으로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한 번은 건물 주인이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좋은 일이 있으시나 보지요. 표정이 항상 밝아 보여요." 그러자 할머니가 대답했습니다."제 걱정을 트럭에 담으면 아마 100대 분량도 더 될 것입니다." 부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런 밝은 표정을 지을 수 있습니까? 무슨 특별한 비결이 있나요?" 할머니는 부자에게 행복한 삶의 비결을 들려 주었습니다. "내게 특별한 비결이 하나 있어요. 저는 고통이 닥치면 예수님께서도 죽었다가 사흘 동안 묻히셨다가 부활하셨는데 예수께서 무덤에 머물러 계셨던 사흘을 생각하면서 사흘 동안 기다립니다. 사흘 뒤에는 어김없이 새로운 해가 뜬답니다."

  문제는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가? ” 하는 것입니다,

  남편 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한 여 성도가 있었습니다. "목사님, 저 오래 참았어요!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요. 언제까지 기다려야 됩니까?" 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오래 참은 것 같아도 억지로 참는 것은 오래 참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오래 참는 것은 “끝까지 참는 것” 입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줄로 믿고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즉 “확신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 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성경을 보면 예수 믿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참 재미있는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믿는다는 말은 단순히 교회를 다닌다는 말이 아니고, 예수님과 함께 죽는다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3-4절)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세례를 받을 때, 물을 머리에 바르는 것은 당신은 이렇게 물에 잠겨 죽었다는 선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은 것입니다.
그러면 죽은 사람은 어떻게 살겠습니까? 오래 참음입니다. 죽은 사람은 끝까지 참고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 결혼 주례를 하는데, 신랑이 고등학교 2학년이었답니다. 장로님 아들이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인 맏아들이 아버지가 경영하는 조그마한 공장에 다니는 직공과 친해져 아이가 생긴 것입니다.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온 집안에 난리가 났지요. 부인 권사님은 펄펄 뛰지요. 가문의 망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장로님은 아무렇지도 않았답니다. “조금 속도 위반을 했긴 했지만, 그 놈 재주도 좋지.” 하더랍니다. 이 장로님이 나이 서른이 될 때까지 방탕했습니다. 술 먹고 방탕하고 못된 짓하고, 그러다가 성병에 걸렸어요. 많은 시간 치료를 받고 겨우 병을 멈추어서 결혼을 했지만 임신이 안되는 것입니다. ‘나이든 다음에 양자라도 해야지.’ 하고 살았어요.

  그런데 예수를 믿고 성령체험을 하였는데, 몸이 불덩어리같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했어요. 그리고 아이를 낳게 됐어요. 그래서 연년생으로 다섯을 낳았어요. 너무너무 감사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큰 축복이요 사죄의 은총이요 얼마나 큰 복입니까. 그 감사가 너무 크기에 뭐 오늘 이런 일 있다 하더라도 “그저 부전자전인데.” 그만하면 괜찮다 이것입니다. 이 장로님이라고 왜 속상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는 기다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기다려 주었기에 그 아들에게 얼마나 다행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큰 불행의 씨앗이 될 뻔 하였습니다.

  방탕한 아들을 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도 정신을 못 차린 아들이 하루는 술이 취해서 밤 늦게 집에 들어와 자는데, 뜨거운 것이 손등에 떨어져 눈을 떠 보았습니다. 아버지가 기도하고 계셨답니다. “아버지, 이제는 이 아들을 구원해 주옵소서. 차라리 제 생명을 거두어 가셔야 한다면 이 아들은 구하여 주옵소서.” 그 때서야 이 아들은 비로서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죄는 내가 지었는데, 왜 아버지가 대신 죽으려 하시나?’ 자신의 눈에도 눈물이 흘렀습니다. 마음이 바뀐 것입니다. 마음이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뀝니다. 아버지가 믿음과 기도로 기다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들은 시카고 대학을 졸업하고 게렛 신학교를 마치고, 시카고 대학으로 돌아와 학원 선교를 하는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자비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자비" 라는 말은 부드러운 마음을 갖는 것인데, 예수님을 영접하면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시고 부드러운 마음이 되게 하십니다.
에스겔 36장 26절에서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라고 말씀했습니다.

  어느 부인이 시아버지 병 수발을 하는데, 3년 동안 갖은 궂은 일을 마다 않고 정성껏 시아버지 시중을 들었습니다.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 장로님께서 지나는 길에 그 부인을 만나 말했습니다. “이제 시원하시겠습니다. 얼마나 힘드셨어요? 오랫동안 그렇게 어렵고 지저분한 일을 다 하셨는데, 이제 편하게 되었습니다.” 부인이 그 말을 듣고는 엉엉 울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시아버지를 시중 들었길래 남들이 나를 피곤한 사람으로 보았습니까? 돌아가신 아버님도 그렇게 느끼시지 않았을까요?” 누구나 다 마음이 같은 것이 아닙니다.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놀라운 변화입니다.

  아내가 먹고 사는 양식이란 박종원 (해달쪽지 02.12호)씨가 쓴 글입니다.
'쨍그랑!' 부엌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파열음에 놀란 식구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달려갔다. 식구들이 도착했을 때 아내는 마치 넋 나간 사람처럼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고, 부엌 바닥 여기 저기에는 유리 조각과 김치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던 아내가 또 다시 일을 벌인 것이다.

  남달리 조심성이 없었던 아내에게는 이 일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아내는 때때로 물을 틀어놓은 채 외출을 해서 집안을 온통 물바다로 만드는가 하면, 빨래를 삶겠다고 불 위에 올려놓은 채 잠이 들어서 빨래를 새까만 숯덩이로 만들기도 했다.
  어디 그 뿐인가? 언젠가는 문을 열어놓고 장을 보러 갔다가 집안의 귀중한 물건들을 모두 도둑맞은 일까지 있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가족들은 아내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 날도 가족들은 아내를 향하여 짜증 섞인 불평을 쏟아 부었다. 먼저 어머니가 입을 여셨다.
"아니, 너는 한두 번도 아니고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이냐! 몇 번 큰 실수를 해서 낭패를 봤으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조심해야지. 이렇게 매일 일을 벌이면 식구들이 불안해서 어떻게 살라는 거냐, 도대체!"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있는 나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조심성 없이 행동해서 늘 집안을 시끄럽게 만드는 아내가 밉고 야속하기만 했다. 홧김에 나 역시 아내의 상처받은 마음에 고통을 더했다.

"당신은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사는 사람이야! 정신을 어디다 두고 살기에 매일 이렇게 말썽이냐고! 이렇게 말썽을 부릴 거면 차라리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가만히 방 구석에나 틀어박혀 있으라구!"

  다음날 아침,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침울해 보이는 아내를 뒤로 한 채, 불편한 마음을 안고 직장을 향해 차를 몰았다. 차를 몰고 가면서도 의기소침해 있는 아내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라디오에서 마치 고압 전류에 감전된 듯이 나를 전율케 하는 한 마디의 말씀이 내 귓전을 때렸다.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먹고사는 존재입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아야 행복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아내입니다."

  매일 아침 9시 30분에 극동 방송에서 방송되는 말씀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출근 시간이 늦었던 나는 늘 차 안에서 그 방송을 들어왔다. 하지만, 그 날의 말씀처럼 마음에 강하게 부딪혀 오는 일은 흔치 않았다.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라는데… 과연 내 아내는 이날까지 무엇을 먹고 살아 왔던가? 꽃다운 나이에 장남에게 시집와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고생고생하며 살아왔는데, 내가 아내에게 주었던 것은 과연 무엇인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코끝이 찡해왔다. 그리고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 내렸다.

  그 날 밤 나는 난생 처음으로 꽃을 사들고 집에 들어갔다. 그게 웬 꽃이냐고 묻는 식구들의 말에 좀 쑥스러웠지만, 그 날은 아내를 위해서 얼마든지 그 쑥스러움을 참을 수 있었다.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곧바로 안방으로 들어온 나는, 나를 따라 들어오는 아내를 왈칵 끌어안았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아내는 나를 밀어내려 했지만, 나는 더욱 힘을 주어 아내를 안았다. 그리고 아내의 귓전에 이렇게 속삭였다.
"난 정말 당신을 사랑해. 이제까지 당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하지만 이제부터는 내가 당신의 쉼터가 되어줄게."이 말을 하고 있는 동안 나의 셔츠는 아내의 눈물에 촉촉이 적셔지고 있었다. 

여러분, 우리 안에 예수님이 오시면 가장 먼저 가족들에게 우리 마음이 부드러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예수님이 하십니다.

오늘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으신 분들 이 자리에 초청을 받아오셨다면 여러분에게 정말 여러분의 가정의 진정한 행복의 주인이 되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여러분의 가정도 행복한 가정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행복한 가정은 예수님이 주인 되실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큰 복이라는 말입니다. 이 시간 진정으로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셔서 행복한 가정 생활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성도 여러분 안에 이미 오셔서 여러분을 이끄시는 성령님에게 순종하십시오. 주님이 하십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가장 행복한 가정으로 만드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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