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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지혜 (요 14: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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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 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 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 14: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요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아내가 열받을때..

♠ 저녁상을 완벽하게 다 봐놓고 모임을 갔는데도 남자가 저녁을 굶는 경우
이유 - 밥그릇은 뚜껑이 덮여 있고, 반찬은 랩으로 씌워 있어서
♠ 소파를 자꾸 바꿔야 할 때
이유 - 가운데가 푹 꺼져서(늘 같은 자세로 누워 있다보니)
♠ 냉장고를 열어보고  빈 물통이 들어가 있어서....
  (물통의 물을 다 마시고 물이 떨어졌는데도 누군가 그냥 넣어 놓음)
♠ 소파를 청소하다가
  - 냄새나고 뒤집어져 있는 양말이 소파에 박혀 있어서
♠ 아내가 정말 열받을 때
  - 남편이 3박 4일 걸린다던 출장을 2박3일만에 마치고 돌아왔을 때
♠ 아내가 절망할 때
  - 3박4일로 간다던 출장이 취소됐다고 좋아하는 남편을 볼 때

오늘 우리 사회는 더불어 사는 행복을 점점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함께 살아가는 것이 불편하여 결혼을 기피하고 혼자 살려고 하고 있습니다.  나이든 부부들중에도 서로 챙겨주고 보살펴주는 것이 귀찮고 불편하게 여기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젊은 자녀들도 할수만 있으면 부모를 떠나 혼자 자유롭게 살고 싶어합니다.  젊은 부부들은 나이든 부모를 모시고 함께 사는 것을 너무나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도 자녀와 함께 사는 것을 포기하는 추세입니다.

  물론 함께 산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함께 살다보면 서로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견해차이도 드러나고 피차 부딪칠 일도 생깁니다. 서로에게 맞추어야 하고 참고 넘어가야 할 일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값을 치루고라도 함께 살아갈 때 좋은 점이 훨씬 많습니다.

  가정은 혼자서 이룰 수 없습니다. 여러 사람이 만나서 가정을 이룹니다. 함께 모여서 가정을 이루고 살다 보면 서로에게 힘이 됩니다. 외로움을 극복하고 서로 위로하며 서로를 세워주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정이라는 울타리안에서 만나게 하시고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더불어 사는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더불어 살아가며 행복을 만드는 지혜를 충분히 배울 때 사회에 진출해서도 더불어 살아가며 행복하게 생활을 잘 할 수 있습니다. 교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가리켜 영적인 가정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혈연으로 맺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보혈을 중심으로 맺어진 영원한 가족입니다. 따라서 가정에서 종종 다투는 것처럼 교회안에서도 다툴 수도 있습니다.  가족간에 사소한 문제로 갈등을 겪는 것처럼 교회안에서도 별 것 아닌 문제로 갈등하기도 하고 다시 화해하고 잘 지낼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교회생활중에 만나는 갈등이 싫다고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떠나 홀로 생활을 하려고 하면 불행하게도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주시는 진정한 축복은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서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이 모두 더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기를 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지혜를 깨닫게 되어 여러분의 가정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정에서부터 시작되는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지혜가 가득해지고 나아가 사회생활과 교회생활도 더 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6절 말씀을 통해서 세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외에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은 예수님의 요청에 의해 영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둘, 하나님께서 보혜사 성령님을 세상으로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요청하신 분은 예수님이시고 보내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보내심을 받은 성령님은 보혜사입니다.
  셋, 보혜사 성령님께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3년 동안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다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보혜사 성령님은 영으로 오시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고 우리와 함께 영원히 계시는 것입니다.

또한 보혜사 성령님께서는 진리의 영이시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오류와 모순투성이지만 성령 하나님께선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에 오류와 모순이 전혀 없으십니다. 참과 거짓을 분별하는 지혜가 있으십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잘 아시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한 보혜사 성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는 것입니다. 그 결과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입니다.  또 좋은 메시지를 듣게 되면 감동이 되고 기쁨이 솟아납니다.
  우리 속에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지만 분명히 성령님께서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고 기도를 들으시며 예배를 받으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고 위로를 주시며 위기를 넘기게 해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님과 늘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높은 산 에베레스트나 세계의 최고의 높은 산들을 올라갈 때는 등반하는 사람이 자기 혼자의 힘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 대단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힘만으로 오를 수 없습니다.  셀파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끝까지 짐을 져주고 길을 안내해 주며, 잘 오르도록 여러 면에서 도움을 주는 이가 있습니다. 마지막 정상에 올라가서도 사진까지도 찍어줍니다.

셀파들은 평균 4천 미터 해발 5천 미터에 살기 때문에 심장이 벌써 다릅니다. 그리고 신체적으로 튼튼합니다. 그런 곳에 올라갈 수 있는, 그리고 모든 추위를 견딜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들은 길을 매우 잘 압니다. 기후에 대해서도 잘 압니다. 산악인들은 셀파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그 분들의 코치를 받지 않고서 정상에 오르기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성공의 정상에 오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정상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행복의 정상에 올라가는 길, 우리 인간의 주어진 모든 길을 끝까지 잘 감당할 수 있는 길,  우리가 실패하지 않고 낭떠러지에 떨어지지 않으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건짐을 받고 보호하심을 받으며 잘 달려갈 수 있는 길은 성령께서 도와주셔야만 찾게됩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넘어질 때 일으켜주시고 약할 때 힘주시며, 시험들 때도 우리에게 권고해 주십니다. 우리 마음과 몸은 연약합니다. 늘 우리에게 많은 시험이 있습니다. 이 모든 시험과 장애물 하나하나의 고개를 넘어설 수 있도록 끝까지 성령이 도와주셔야 우리는 인생의 정상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성령을 '보혜사'라고 했습니다.  헬라어 원어에는 '파라크레토스'라고 합니다. 이 '파라크레토스'라는 말은 곁에서 도와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곁에서 때로는 '위로자'가 되십니다. 때로는 '상담자'와 '대언자', '중보자'의 역할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나 외에 다른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겠다. 그리고 너희 마음 안에 거하겠다. 너희 심령에서 너와 함께하여 너를 도와주겠다. 너를 위로해주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늘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슬프고 외로우며, 답답하고 어려울 때 위로해 주시며, 사건을 만날 때 사건을, 불행을 만날 때 그 불행한 일을 도와주십니다.

  우리 인간이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영이 떠나갔다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주의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우리는 이 성령님을 환영하고 받아들여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살아가야 됩니다.

  믿음이 좋다는 것은 성령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헤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신앙생활을 오래 하였지만 성령님과 동행하는 지혜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자기의 능력으로 다 해결하려고 합니다. 모든 일을 다 자기 생각으로만 결정하고 행동합니다. 성령님을 인정하지 않고 성령님의 존재를 무시하고 혼자 살아가려고 합니다.  성령님을 거추장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나 홀로 생활을 하면 우리는 쉽게 지칩니다. 실수와 실패 투성이의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복된 인생을 사는 길은 수시로 성령님을 인정하고 성령님께 묻고 도움을 요청하며 성령님과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하루에도 최소한 다섯 번 이상은 성령님이 나의 동행자이심을 인정하고 성령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 어떻게 할까요?' '성령님 힘과 지혜를 주세요.' '성령님 도와주세요.'
성령님과 더불어 잘 지낼줄 아는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진정으로 축복된 삶, 풍성한 삶,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는 성령님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소유하고 살아야 할 뿐 아니라 사람들과도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지혜를 소유해야 합니다. 특별히 가족들과 더불어 살며 행복을 만드는 지혜를 개발해야 합니다.  현대인들이'함께 행복하게 잘 사는 법'에 서툴기 때문에 함께 있으면 있을수록 불편해합니다. 현대인들은 혼자 있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함께 있지 않고 혼자 있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병적으로 지나쳐 사랑하는 자녀들 하고도 함께 사는 것이 불편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당연한 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물론 자식을 결혼시켜 분가하는 일이 모두가 다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형편에 따라 분가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을 겁니다. 그러나 형편과 상황 때문이 아니라 함께 사는 것이 불편하여 분가를 생각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떨어져 사는 것이 더 편하게 여겨지지 않기 위하여, 부모와 자식간에도 분가해야만 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 위해서는 사이가 좋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함께 행복하게 어울려 잘 사는 법'을 훈련하여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함께 행복하게 어울려 잘 사는 법'을 알아 함께 어울려 행복하게 사는 것을 맛을 보게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삶의 질이 높아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모두 '함께 어울려 행복하게 잘 사는 것'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도전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 모두가 다 부부와 부모와 자식들과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행복하게 사는 복을 받으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의 삶이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일등 가는 소원은 행복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사람들이 투자하는 시간과 정력은 상상을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위하여 전쟁 같은 삶을 삽니다.

  보다 행복한 삶을 위하여 사람들은 열심히 공부합니다.  마음껏 산과 들을 뛰어 다니며 놀아야만 할 어린 아이 때부터 가방을 들고 이 학원 저 학원을 뛰어 다녀야만 합니다. 중, 고등학교를 들어가면 그야말로 전쟁입니다.  그와 같은 전쟁은 대학을 가도 끝나지 않고 대학을 졸업해도 끝나지 않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보다 행복한 삶을 위하여 열심히 돈을 법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에 늦게 누우며 또 전쟁 하듯 돈을 법니다. 목숨을 걸고 돈에 매달립니다.  그런데  돈을 버는 일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도, 돈을 버는 일에 크게 성공한 사람도 실상은 별로 행복하게 살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행복하게 사는 길'이 따로 있습니다. 정작 사람들은 그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때문에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법을 깨닫고 몸에 익혀 그 법에 유능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습니다. 투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길을 모릅니다.  그래서 당연히 사람들은 행복에 서툽니다.  더불어 살며 서로를 행복하게 해 주려고 할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며 행복의 원리를 정하시고는 '함께 행복하게 잘 사는 법'을 성경에 기록하셨습니다. 그 법을 성경에서 찾으시고, 배우시고, 몸에 익혀 그대로 한번 살아 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소원대로 좀 행복하게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행복하게 잘 사는 법'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사랑하는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랑하는 법'이 잘 나와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13장에는 사랑의 원리를 집약해서 모아 놓았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무례히 행치 않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래 참지 않습니다. 온유하지 않습니다. 무례합니다. 그리고 매사가 폭력적입니다.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라고 성경은 우리들에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매우 이기적입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모두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악한 것을 기뻐하지 않는 것이라고 성경을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악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겁 없이 죄를 짓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잃습니다.

  여러분 혼자 살면 편안하고 행복하리라는 것은 사단의 속삭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더불어 살며 참 행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무엇보다도 성령님과 더불어 지내는 지혜가 여러분안에 가득하기 바랍니다. 또한 이기적인 마음을 내려 놓고 사람들과도 더불어 사는 훈련을 하시기 바랍니다. 가족들과도 더불어 잘 지내려고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행복하게 살기 위해 사랑을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서로에게 사랑하는 실습을 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적인 원리를 생각하며 서로에게 잘 참으시기 바랍니다. 서로 온유하게 대하며 편한 사람에게도 예의를 갖추어 대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마음과 가정이 더 밝아지고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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