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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람! (사 5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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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장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

오늘 저희 교회를 처음 찾아오신 여러분들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있어서 가장 가깝고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혹시 친구인가요? 친구는 모든 시간을 함께하고, 모든 것을 나누고, 서로 깊이 신뢰하는 관계이지만, 친구의 모든 것을 내가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친구의 침실에까지 들어갈 수는 없지요. 그런 면에서 친구는 가장 친밀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부모가 여러분의 가장 친밀한 관계일까요? 안타깝게도 부모의 자리는 결혼하기 전까지입니다. 결혼함으로서 가장 가까운 사이를 그 자녀의 배우자에게 내어주는 것이 도리입니다.

그런 면에서 배우자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사람은 결혼을 통해서 아내, 혹은 남편과 둘 만이 나눌 수 있는 깊은 관계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자녀를 낳음으로서 부부는 더욱 사랑하고 더욱 더 하나가 됩니다. 남편이든 아내든 상대방의 소유는 모두 자신의 것이 됩니다. 그래서 아내들이 남편의 허락을 받지 않고 그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갈 수 있지 않습니까? 때로는 배우자가 돌봄과 사랑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삶을 함께 하는 동지가 되고, 친구가 되기도 합니다. 또 때로는 배우자가 아버지가 되기도 하고 어머니가 되기도 합니다. 두 사람은 늘 받기도 하지만, 아낌없이 주고 베풀며 이해하는 사이입니다. 때론 말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서로의 마음을 알고, 죽음도 끊을 수 없을 만큼의 뿌리 깊은 사랑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와 같이 배우자는 세상 어느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특별한 관계를 서로 형성하여 살아갑니다.

그런데 성경은 여러분들에게 부부관계와 같은 친밀한 관계가 하나 더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배우자보다 더 깊고 친밀한 사랑의 관계일 수 있는 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2.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

1) 하나님은 남편, 성도는 그 아내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과 그 백성 이스라엘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로 설명하는 구절들이 아주 많고, 신약 성경에도 주님과 성도 혹은 교회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로 설명하는 구절들이 많습니다(엡5:24,25). 오늘 본문도 그 가운데 하나인데요. 먼저 4, 5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두려워 말라. 네가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니라. 네가 네 청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을 것이며 …"

하나님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지내던 이스라엘을 불러내어서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었는데요, 이것은 일종의 결혼식과 같은 의식이었습니다. 그 의식을 통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신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영광스럽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신부로 택함 받은 것은 그들이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거나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노예 백성에 불과했지만,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이요,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고 그들과 이러한 영적인 결합을 하신 것이었습니다(신7:7,8).

사랑하는 여러분, 남편에게 아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입니까? 하나님은 남편과 아내는 한 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아내가 곁에 있을 때면 편하고 안정이 되지만, 제 곁을 떠나 있거나 모처럼 친구를 만나 늦은 시간인데도 곁에 없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젊었을 때는 몰랐는데, 철이 들고 나이가 들수록 아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됩니다. 아내가 마음이 힘들면 저도 힘들고, 아내가 몸이 아프면 저도 어딘가가 아파 옵니다. 그래서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하는가 봅니다.
마찬가지로 아내에게도 남편은 얼마나 소중한 존재입니까? 어떤 남편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지고, 삶의 내용과 질이 달라지고, 그가 입은 옷과 사는 집과 먹는 음식이 달라집니다. 권위적인 남편을 만나면 아내는 항상 기죽어 살게 되고, 폭력적인 남편을 만나면 몸과 마음에 피멍이 가실 날이 없지요. 그러나 사랑해주는 남편을 만난 여자는 언제 어디서나 당당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나는 네 남편이라”고 하십니다. 5절을 보면 하나님은 창조주시요,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지극히 높으신 왕이십니다.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신 구속자요,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측량할 수 없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은 바다와 같이 넓고 깊습니다. 바로 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남편이 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지난 주에도 ‘어느 여 탤런트가 현직 검사와 사귄다더라’ 라는 기사를 비롯하여, ‘어느 배우가 재벌가의 자녀와 결혼할 예정이라더라’, ‘어느 아나운서가 재벌과 교제 중이라더라’ 하는 가십 기사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기사가 나오면 비난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만, 비난하는 그들의 속 깊이에는 부러워하는 마음이 들어있습니다. 이런 것은 사람들은 누구나 모든 것을 갖춘 최고의 배우자를 만나기를 꿈꾼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들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온 우주를 지으신 창조주, 이만한 재벌이 이 땅에 있습니까?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지극히 높으신 왕, 이만한 통치자가 이 땅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신 구속자, 이만큼 우리를 사랑할 분,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내 놓을 분이 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이 위대한 사랑을 받고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그의 거룩한 신부들입니다.

어느 의사가 아프리카 외진 마을에서 의료봉사를 하던 중에,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귀향한 젊은 원주민 청년과 아주 친하게 지냈습니다. 청년은 선진 영농기법과 축산기술을 배워 젊은 나이에 부자가 되었고, 앞으로 큰 기업을 일으켜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꿈을 가진 장래가 촉망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혼기를 놓친 노총각이었습니다. 자연 마을 사람들은 이 청년의 결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마을에서 결혼하려는 청년은 신부될 사람의 집으로 가축을 끌고 가서 “이것을 받고 딸을 주십시오!”라고 청혼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훌륭한 신부감일수록 많은 가축을 가지고 가야 하는데, 지금까지 그 마을에서는 암소 세 마리를 받은 신부가 최고였습니다.
이 의사가 어느 날 밖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에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그 청년이 아홉 마리나 되는 많은 소를 끌고 청혼하러 가고 있었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몰려나와 ‘도대체 어느 집으로 가는가?’ 궁금해 하며 뒤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청년은 마을을 지나 외진 곳의 가난한 노인의 집 앞에 당도하여 청혼을 했습니다. 그 집에는 말라깽이에다가 키가 멋없이 크고 병약한 외모를 가진 볼품없는 처녀가 있었습니다. 너무 의외의 일이라 마을 사람들은 처녀가 마법으로 청년을 홀린 것이 분명하다고 수군거렸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그 의사는 다시 아프리카의 그 마을로 가게 되었습니다. 대단히 성공한 기업가가 된 그 청년이 의사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의 부인을 소개받았는데요, 의사는 지금까지 수많은 여인들을 보아왔지만 그처럼 아름답고 우아한 여인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 이 사람이 그때의 말라깽이 처녀와는 이혼하고 새로이 아내를 맞이했구나!" 라고 속으로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선생님, 저 사람이 그때의 그 병약했던 처녀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니, 정말입니까?" 의사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저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외국에서 공부하던 긴긴 세월 속에서도 저 사람의 맑고 고운 눈동자를 한시도 잊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청혼한 것입니다. 제가 청혼할 때 몇 마리 암소로 할 것인가를 오래 동안 고민했습니다. 왜냐하면 암소가 몇 마리냐 하는 것이 아내에게는 자신의 가치를 결정할 기준이었기 때문입니다. 제 아내가 자신의 가치를 한 두 마리 암소로 낮추어서는 안 될 것이며, 또 세 마리는 자신을 다른 처녀들과 비교하게 만들 것이라 생각되어 아홉 마리로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아내는 자신에게 ‘암소 아홉 마리의 가치가 있는가’ 하고 의심했으나 결국은 자신의 가치를 아홉 마리에 걸맞게 하려고 노력했고, 오늘의 아내 모습이 바로 그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저희 교회를 처음 찾으신 여러분! 하나님은 암소 아홉 마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여러분을 당신의 신부로 삼으셨습니다. 즉 여러분의 가치는 성자 예수님의 가치와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정결한 신부가 된 여러분을 위해 지금도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공급해 주십니다.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여러분의 삶을 풍성하고 기름지게 해 주십니다. 이 세상이나 사람들로부터는 결코 얻을 수 없고 누릴 수 없는 신령하고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해 주십니다. 여러분과 인격적인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여러분을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존재로 대우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 놀라운 사랑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신부가 된 것을 기뻐하시고 감사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신부답게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변치 않는 하나님의 사랑

이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신부답게 항상 감사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 그것을 순종하고 실천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와 잘 먹고 잘 살게 되자 하나님의 은혜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남편되신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이방 신들을 섬기고 힘센 사람이나 힘 있는 나라를 의지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이것을 “영적인 불륜”이라고 합니다. 이런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은 그들이 의지하던 나라들의 공격을 받게 함으로서 그들로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게 하셨습니다(왕하13:7).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큰 죄를 범하여 하나님을 슬프게 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자신을 배신하고, 여러 차례의 경고마저도 무시한 이스라엘을 어떻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자신을 배반한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남편이 조강지처를 아끼고 사랑하듯, 한결같은 사랑으로 그들이 돌아오기를 외치셨고 또 기다리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구약성경의 호세아서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호세아서 2장 19,20절을 보시면,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장가든다'는 말은 ‘새로운 결혼’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간음죄를 지음으로서 과거가 있는 불결한 여인으로 생각하지 않으시고, 순수한 처녀로 인정하여 새로운 결혼을 하듯이 맞이하겠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 7, 8절을 보십시오.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리웠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남편을 버리고 도망하여 부정한 삶을 살고 있는 아내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깨끗이 잊어버리든지, 아니면 평생 증오하고 저주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을 버리고 수많은 우상들을 음란하게 섬긴 이스라엘을 다시 받아들이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거룩한 신부였는데도, 아내된 도리를 다 하지 않았고, 하나님을 배반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자기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의 품으로서 간 여인을 용서하여 새롭게 장가든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우리 역시 구원받은 후에도 호세아를 배반한 고멜과 같이 음란하고 추한 행동을 반복하던 자들입니다. 우리들의 마음과 행동은 너무 부끄러워 하나님 앞에 서기가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우리일지라도 십자가를 의지하고 나아가면 언제나 환영하시고,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주십니다.

진 에드워즈라는 사람이 지은 <신의 열애(Divine Romance)>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책의 구석구석에서 느껴질 수 있도록 지어졌습니다. 인류는 에덴동산 시절부터 신랑 되신 하나님만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사탄의 유혹을 비롯하여 다른 것들의 유혹에 넘어가고, 다시 돌아오는 듯 하다가도 다시 유혹에 넘어가서 타락된 모습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은 한 번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배반하고 돌아서고 떠나버려도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 ‘돌아오라’고, ‘사랑한다’고 외치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구약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결정판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죽게 만드신 일입니다. 성자께서 범죄한 하나님의 신부를 위해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짊어지고 죽었습니다. 그리고 부활함으로서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신부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자들을 다시금 자신의 신부로 맞아주시고 있습니다.

이 책은 이렇게 묻습니다. “왜 그분이 너희를 사랑하시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그분이 너희를 사랑하시는 것은 ... 그분이 너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가장 중심이 되는 구절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 저를, 여러분을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하나님의 사랑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실수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쉬지 않고 그 사랑을 계속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이사야처럼 다시 감격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이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하나님만 섬기며 힘차게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여러분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를 부부사이로 비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천하고 미약했던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양육하사 하나님의 신부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남편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스런 신부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모든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아낌없이 부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신들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우상숭배와 불순종과 죄악이 얼마나 심했던지 그들을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하기가 어려웠고, 하나님의 신부라고 부를 수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판은 성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다시 회복시켜 하나님의 신부로 세우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일이었습니다.
오늘, 목사인 제가 가장 소원하는 것은 여러분이 참으로 이렇게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 여러분 가운데, 지금 믿음이 식어지고 은혜가 메마른 성도가 있습니까? 자신이 지금 침체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성도가 있습니까? 기도가 잘 되지 않고 성경 말씀이 재미없는 분이 있습니까? 설교 시간에 딴 생각만 나고 졸리는 분들이 있다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것이기에, 그런 분들이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회복하여, 감격과 감사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신부라는 이 놀라운 복을 마음껏 받아 누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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