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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라를 견고하게 하는 길 (대하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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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스라엘이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로 나뉜 후 각각 어떤 길을 걸었는지 그 초기 역사를 살펴본 바 있습니다. 한 하나님을 섬기며 한 나라를 이루고 살던 같은 민족이었지만 남과 북으로 갈린 후로는 두 왕국의 역사가 사뭇 다르게 전개되었음을 보았습니다. 그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 남왕국 유다의 세 번째 왕 아사의 시대였습니다. 아사는 하나님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우상을 제거하고 백성에게 명하여 오직 하나님만을 찾게 하며 그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자신의 마음을 일평생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하려 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흡족해하시고 그에게 온 나라가 평안을 누리는 복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남왕국 유다가 태평성대를 누리는 동안 북왕국 이스라엘은 일곱 명의 왕이 등장할 정도로 정정이 불안했습니다. 모반과 살육이 있었고, 두 차례나 왕의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하는 참극이 일어났으며, 군대를 동원한 왕권탈취극이 벌어졌고 동족간의 분열과 전쟁을 겪는 등 격동하며 불안과 피로 얼룩진 역사였습니다. 남왕국 유다와의 이러한 차이가 이루어진 근본이유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자기 멋대로 행한 첫 왕 여로보암과 그의 행실로부터 돌아서지 않고 대대로 그 악행을 답습해간 왕들 때문이었습니다. 이 북왕국 이스라엘의 행악이 절정에 도달한 것은 아합의 시대였습니다.

왕상17:30-33에 보면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아합과 그의 재위기간의 대부분에 걸쳐 남왕국 유다의 왕으로 있었던 여호사밧의 이야기는 다시 한 번 우리에게 한 나라가 쇠망하거나 견고해지는 길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합이 이스라엘에서 왕이 된지 제사년에 남왕국 유다에서는 아사가 죽고 그의 아들 여호사밧이 왕이 되었습니다(왕상22:41). 그리고 여호사밧 왕 제십칠년까지 아합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위에 있었습니다(왕상22:51). 그러니까 십칠 년 동안을 아합과 여호사밧은 각각 북왕국과 남왕국의 왕으로 함께 지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시대를 산 두 왕의 삶과 두 왕국의 형편은 매우 대조적인 길을 걸었음을 우리는 봅니다.

  왕위에 오른 여호사밧은 아합 가문과 혼인하여 인척 관계를 맺었고(대하18:1) 함께 아람 왕을 대적해 전쟁까지 했습니다(대하18:2 이하). 그것은 비록 아합이 신앙적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매우 악한 자이었으나 동족인 유다와 이스라엘이 서로 싸움을 하지 않기 위한 정략적 조치였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그 일 때문에 여호사밧은 전쟁에서 돌아왔을 때 예후라고 하는 선견자로부터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대하19:2)라는 경고를 받기도 했지만 일단 여호사밧은 나라를 평안하게 지키는 데 성공했던 것입니다. 여호사밧이 아합과 함께 아람 왕을 상대로 전쟁을 한 기록은 두 왕국의 명암이 갈리는 역사를 우리에게 똑똑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사밧은 아합 가문과 혼인하여 인척관계를 맺은 지 이년 후 사마리아의 아합에게 내려갔습니다(대하18:1-2). 그때 아합은 여호사밧에게 함께 아람 왕을 치러 길르앗 라못으로 가자고 제의했습니다. 여호사밧은 대답하기를 “나는 당신과 다름이 없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다름이 없으니 당신과 함께 싸우리이다”(대하18:3)라고 했지만 신앙적인 자세를 잃지 않고 아합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청하건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오늘 물어 보소서”(대하18:4).

그러자 아합은 선지자 사백 명을 모으고 그들에게 묻기를 “우리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했습니다(대하18:5). 그들은 물론 참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대답하기를 “올라가소서. 하나님이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사밧은 아합에게 되물었습니다: “이 외에 우리가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있지 아니하니이까?”(대하18:6). 참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을 들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아합이 여호사밧에게 대답했습니다: “아직도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 한 사람이 있으니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물을 수 있으나 그는 내게 대하여 좋은 일로는 예언하지 아니하고 항상 나쁜 일로만 예언하기로 내가 그를 미워하나이다”(대하18:7).

그러자 여호사밧은 아합에게 말하기를 “왕은 그런 말씀을 마소서” 했습니다. 아합은 할 수 없이 쓴 소리 잘 하는 하나님의 참 선지자 미가야를 불러 오게 했습니다(대하18:8). 아합의 내시 하나가 미가야를 부르러 간 사이에 다른 거짓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 앞에서 예언을 한답시며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서 승리를 거두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라고 말하기를 계속했습니다(대하18:9-11).

그 가운데 시드기야라고 하는 자는 쇠로 뿔들을 만들어 가지고와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하리라’ 하셨다”(대하18:10) 하며 생 쇼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미가야를 부르러 간 아합의 사자는 미가야에게 이렇게 미리 주문했습니다: “선지자들의 말이 하나 같이 왕에게 좋게 말하니 청하건대 당신의 말도 그들 중 한 사람처럼 좋게 말하소서”(대하18:12).

이에 미가야는 답하기를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대하18:13) 하고는 아합에게로 왔습니다. 아합은 미가야에게 물었습니다: “미가야야, 우리가 길르앗 라못으로 싸우러 가랴? 말랴?” 그러자 미가야는 대답했습니다: “올라가서 승리를 거두소서. 그들이 왕의 손에 넘긴 바 되리이다”(대하18:14). 미가야가 의례 반대할 줄로 예상했다가 뜻밖의 대답을 들은 아합은 놀라며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진실한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이나 네게 맹세하게 하여야 하겠느냐?”(대하18:15). 미가야는 다시 대답하기를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 같이 산에 흩어졌는데 여호와의 말씀이 ‘이 무리가 주인이 없으니 각각 평안히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셨나이다”(대하18:16) 했습니다. 아합은 비로소 미가야의 첫 대답이 진심이 아니고 빈정대는 것이었음을 눈치챘습니다. 게다가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 같이 주인이 없다는 말에 매우 불쾌했을 것입니다. 주인도 없어 흩어진 양 같은 이스라엘이 전쟁은 무슨 전쟁을 할 것이며,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으리라는 말에 화도 났을 것입니다.

아합은 여호사밧에게 말했습니다: “저 사람이 내게 대하여 좋은 일로 예언하지 아니하고 나쁜 일로만 예언할 것이라고 당신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대하18:17). 이에 미가야는 아합에게 진실을 알리는 결정적인 말을 던졌습니다: “그런즉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의 좌우편에 모시고 섰는데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이스라엘 왕 아합을 꾀어 그에게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까?’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한 영이 나와서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그를 꾀겠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꾀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게 대하여 재앙을 말씀하셨나이다”(대하18:18-22).

즉 아합에게 아람과 싸우면 이길 것이니 싸우라고 한 목소리로 말하는 선지자들은 모두 거짓말 하는 악령의 노리개들일 뿐 아니라 그것은 아합을 망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자 쇠로 뿔들을 만들어 가지고와서는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왕이 이것들로 아람 사람을 찔러 진멸하리라’ 하셨다”(대하18:10) 하며 생 쇼를 하던 시드기야란 자가 미가야에게 다가와 뺨을 때리며 말하기를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가서 네게 말씀하더냐?” 했고(대하18:23), 아합은 미가야를 잡아 옥에 가두고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고난의 떡과 고난의 물을 먹게 하라” 명했습니다(대하18:26). 이에 미가야는 “왕이 참으로 평안히 돌아오시게 된다면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이다”(대하18:27)라는 말로 응수했습니다.

  아합은 미가야의 경고를 무시하고 아람과의 전쟁에 나섰습니다(대하18:28). 그는 여호사밧에게 이스라엘의 왕처럼 복장을 하게 하고 자기는 왕처럼 보이지 않게 변장을 하고 둘이 전쟁터로 들어갔습니다(대하18:29). 아람 왕은 그의 병거 지휘관들에게 이미 명령하기를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나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하고만 싸우라” 했습니다(대하18:30). 그의 지휘관들은 처음에는 여호사밧을 보고 이스라엘의 왕인 줄 알고 일제히 그를 향해 달려들어 싸우려 했습니다(대하18:31).

대하18:31-32의 기록을 보면 “여호사밧이 소리를 질렀고 여호와께서 그를 도우시며 하나님이 그들을 감동시키사 그를 떠나가게 하신지라. 병거의 지휘관들이 그가 이스라엘 왕이 아님을 보고 추격을 그치고 돌아갔더라” 했습니다. 여호사밧은 그 절대절명의 상황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께서는 이에 응답하셔서 그 아람의 지휘관들로 하여금 여호사밧이 그들이 노리던 이스라엘의 왕 아합이 아님을 빨리 알아채게 하시고 여호사밧에 대한 공격을 멈추고 그에게서 떠나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왕의 옷을 벗고 변장하여 아람군의 눈을 속여 보려던 아합은 한 아람 병사가 무심코 쏜 화살에 맞아 부상을 당하고는 급히 병거를 몰아 도주하려했지만 전투가 맹렬해서 병거에 겨우 몸을 지탱하며 저녁때까지 아람 사람을 막아내다가 결국 해 질 무렵에 죽고 말았습니다(대하18:33-34). 물론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은 여호사밧은 평안히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그의 궁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대하19:1).

  아합의 죽음은 그 한 사람의 종말이 아니라 북왕국 이스라엘의 몰락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에 반하여 남왕국 유다는 아사의 시대에 이어 그의 아들 여호사밧의 시대에도 여전히 태평성대를 누리며 더욱 견고해갔음을 우리는 봅니다. 오늘 본문 1-2절은 여호사밧이 왕이 되어 곳곳에 군대를 주둔시키며 아버지 아사 왕이 물려준 영토를 잘 방어했음을 보여줍니다.

또 오늘 본문을 뒤따르는 11-13절을 보면 원근의 이웃나라들이 여호사밧에게 예물과 조공을 바쳤으며 여호사밧은 점점 강대해져서 유다에 견고한 요새와 국고성을 건축하고 많은 성에서 활발히 공사를 벌였으며 예루살렘에 크게 용맹스러운 군사를 두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하18:1은 “여호사밧이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여호사밧이 부귀영화를 누리며 남왕국 유다가 견고하고 강성해질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말씀을 따르기를 힘쓴 그의 믿음과 이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 3-6절을 다시 봅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 이는 그가 그의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하며 그의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라를 그의 손에서 견고하게 하시매 유다 무리가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렸으므로 그가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더라. 그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걸어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도 유다에서 제거하였더라.” 또 7-9절에 보면 여호사밧은 방백들을 유다 여러 성읍에 보내서 백성을 가르치게 하고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을 보내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지고 유다 모든 성읍들로 두루 다니며 백성들을 가르치게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사밧 자신도 예루살렘에 살면서 산지까지 나가 민간에 두루 다니며 그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대하19:4) 그가 성읍마다 세운 재판관들에게 단단히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삼가 행하라.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사람들 앞에서 불의함도 없으시고 치우침도 없으시고 뇌물을 받는 일도 없으시니라”(대하19:7) 하고 “너희는 진실과 성심을 다하여 여호와를 경외하라” 했습니다(대하19:9).

같은 여호사밧의 이야기를 전하는 열왕기상 22장에서는 “여호사밧이 그의 아버지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며 돌이키지 아니하고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다”(왕상22:43) 하며 또 “그가 그의 아버지 아사의 시대에 남아 있던 남색하는 자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왕상22:46) 합니다. 대하19:3에서는 그가 “아세라 목상들을 이 땅에서 없애고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을 찾았다”고 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유다 사방의 모든 나라에 두려움을 주시고 여호사밧과 싸우지 못하게 하셨기에(대하17:10) 유다 왕국은 견고해지며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번은 모압과 암몬과 마온의 큰 무리가 쳐들어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 여호사밧은 하나님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했습니다(대하20:1-3). 그는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이방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시며 능히 그와 맞설 자가 없음을 굳게 믿었습니다(대하20:6). 그는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대하20:15, 17)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백성들 앞에 서서 외치기를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대하20:20) 하고는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했습니다(대하20:21).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셔서 패하고 진멸을 당하게 하셨으며(대하20:22-23),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사람은 여호사밧을 선두로 하여 즐겁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셨고(대하20:27), 이 소식을 들은 이방 모든 나라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고(대하20:29) 그래서 여호사밧의 나라가 태평하게 하셨던 것입니다(대하20:30).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이 한 나라가 쇠망하거나 견고하고 강성한 가운데 태평성대를 누리는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아합과 여호사밧의 이야기 속에서 오늘날 우리민족과 나라가 택해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아합 왕 자신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무리들이 어떤 자들이었는지를 보며 오늘의 우리나라와 민족을 위한 타산지석으로 삼을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아합은 사백 명의 선지자를 거느리고 있었지만 그들은 왕에게 아첨밖에 할 줄 모르는 거짓 선지자들이었습니다. 아합은 쓴 소리 하는 참 선지자는 미워하고 듣기 좋은 말로 아부하는 선지자들에게만 귀 기울이는 어리석은 왕이었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참말 하는 선지자를 찾아가 무조건 왕이 듣기 좋아할 말만을 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회유하거나 그래도 쓴 소리를 하면 폭행도 서슴치 않는 자들뿐이었습니다.

이제 말기로 접어든 현 정권은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볼 수 없었던 언론통제와 국민의 알 권리 차단에 나서서 또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 대통령은 이제는 온 국민이 다 반대해도 뭐든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고 작심한 듯 완전히 막가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꼭 아합 왕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말로가 염려됩니다. 이제는 하루 속히 여호사밧과 같은 인물에게 이 나라의 치정을 맡기는 일밖에 없음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나라를 위한 기도주일을 맞아 이 나라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 나라를 견고하게 만들고 국민을 평안하게 해 줄 인물을 바로 뽑아 세울 수 있는 현명한 우리 국민이 되도록 더욱 더 열심히 기도하는 우리가 됩시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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