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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라를 향한 신자의 자세 (딤전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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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향한 신자의 자세 

“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하되 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1-4)

지금 우리가 알다시피 온통 사회적 이슈는 대통령 탄핵에 맞물려 있습. 방송이나 언론들이 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탄핵이 잘 되었는가? 아니면 잘못되었는가에 쏠려 있습. 우리가 알다시피 방송은 탄핵 반대를 위한 의도를 지닌 내용들을 방송하고 있으며, 주요 언론 매체인 일부 신문들은 탄핵의 정당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습.

다행스러운 것은 거듭되는 ‘헌정초유’라는 요란한 선동적 언급에도 불구하고, 나라 전체가 큰 동요 없이, 국민들이 자기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점입. 과거 79년 박대통령 시해사건시에 발생했던 여러 혼란스러웠던 사회 현상들에 비하면, 이제는 우리의 국민성이 많이 성숙해왔구나 하는 감사를 드리게 됩.
우물이 탁해졌다가도 이내 맑아지는 것처럼, 우리는 다소 어수선한 현 시기를 성숙한 국민성으로 잘 견뎌내게 되면, 빠른 시일 내에 전체적으로 안정된 시절을 맞이할 수 있게 되리라 믿습.

자,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 어수선함에 대한 신자의 자세가, 무관심이나, 언젠간 해결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 정도로만 있지 않아야 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 성경은 이 어수선한 시기가 속히 지나갈 것을 위해, 우리가 성경적이고도, 구체적으로 행동할 것을 권하고 있습.

이렇게 그리스도인인 저와 여러분이 나라의 흐름을 위해 행동해야 하는 이유는, 정부가 기독교에 대해서 호의적 성향을 지녔는가 여부에 관계없이, 정치가 이 땅에서 하나님을 위한 대리자요, 사회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성경이 밝히고 있기 때문입(골 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바울 사도도 롬 13:3-5에서 자신들을 핍박하던 로마의 정부 관리조차도,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기 위해 세우신 하나님의 대리인이라고 언급할 정도로, 정치적 흐름이 하나님에 의해 주도되고 있음을 밝힙.
물론 이 말씀을 모든 기독인이 친정부 편에 서라는 말씀으로 오해해서는 안 되겠지만, 정권을 허락하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인식하여, 가급적이면 세워진 정부가 고요함과 안정을 위해 요구하는 질서를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

이 같은 견지에서 볼 때, 작금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기여할 수 있는 방식은 다름 아닌, 교회적 차원에서의 간청과 기도와 탄원과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되야 할 것입.
교회가 지금 할 일은 선동이나 편 가르기가 아닌 기도입.
한국 기독당 3.22 창당
이와 관련, CBS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CBS저널이 최근 개신교 목회자 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설문조사에서는 기독교 정당 창당과 관련,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게 되고, 결국 교회가 상처를 입게 될 것이기 때문에 부적절하다'(63%)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최근 사회 혼란상을 감안할 때 기독교가 한목소리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기독교 정당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11%에 그쳤을 뿐이다.

교회는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
교회는 세 싸움에 동참해선 안됩. 탄핵파, 탄핵반대파의 입장 어느 한쪽을 편을 들어서도 안됩.
교회는 정치 지도자들이 그들의 세력 다툼을 버리고, 권모술수를 버리고 진심으로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펴서, 이 땅에 고요하고 평안한 삶을 가져 올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는 자세가 되야 합.
모든 비판과 조소와 편견을 접고, 대상 7:14 말씀대로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해야 합.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입.

이어서 오늘 말씀은 구체적으로 왜 왕들과 권세를 잡은 자들 곧 정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가 하는 명백한 성경적 이유를 제시하고 있습.

그들이 정치를 잘해 주기를 구하는 일차적 목표는 그 결과로 얻어지는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입. 그러나 이것은 믿지 않는 사람도 구할 수 있는 제목입. 그럼 신자로서 왜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가? 그 기도의 궁극적 목적은 그 평안함과 고요함이 가능케 하는 복음 전도입. 그것이 드려지는 기도와 간청과 탄원이 “모든 사람을 위한(1절 상반절)” 것일 수 있는 이유입. 그렇게 하여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에 소요가 아닌 안정과 평안이 있을 때에 비로소,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영적인 것에 눈 돌릴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기 때문입.

사도 바울의 복음 전파의 모습도, 여러 번의 소동을 잠재우고 나서야 복음을 전했던 사실을 감안할 때, 사회적 안녕이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매우 중요한 환경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보여줍.(행21:39-40).
경제 불황과 같은 사회적 이슈가 사람들을 사로잡을 때에 사람들은 소비를 줄입. 그만큼 긴장하기 때문입. 전쟁과 테러와 같은 긴박함 가운데서 복음에 귀 기울이기를 기대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

성경은 우리에게 자신이 자연적으로 어느 편인가를 편들게 되는 성향을 넘어서 피차 둘 다의 유익을 위해 관원들을 위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라 요청합.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힘써야 하는 것은 어느 한쪽을 편드는 것도 아니며, 분신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을 행하는 것도 아니며,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니 우리는 관심을 끄자 하는 것도 아닙.
모든 사람들을 위한 기도이어야 합.

성경은 정부에 대한 성도 개인의 사명은 혁명이 아니라, 개인의 삶 내에서 질서를 위해 정부가 정하여 준 시민법을 성실히 준수하는 것이라 가르칩. 경건과 존엄(단정함)을 위한 고요하고 평안한 삶을 위해 자신의 개인적 삶의 영역을 위한 책임을 잘 감당하는 것이 그것입. 그 대표적인 예로 바울은 (롬 13:6-7)국세와 공세를 성실히 바칠 것을 들고 있습. 그리고 정부가 세운 제도와 관리들을 존경하라고 가르칩.

무엇보다도 오늘 우리가 행사할 수 있는 성경적 권리는 투표권이라 할 것입. 누가 우리를 더 잘살게 해 줄 것이냐 아니라, 누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그 권한을 맡겨 주신 것으로 이해하는데 가까운 사람이냐 여부로 우리의 선택의 대상을 정하기 위해 정보를 잘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최선의 방식일 것입.

언론이나 방송에 의해 의도된 정보로 인해 그것조차도 객관적인 것일 수 없기에 저 자신은 나타난 사실, 가령 괌에 추락한 KAL기 잔해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사람의 명단 같은 것을 컴퓨터에 저장해 두고 있습. 훗날 누군가를 선택해야만 한다면 가장 거룩한 판단을 해야만 하기 때문입.

삶의 전 영역에 있어 도래하고 있는 주님 나라의 관점에서 오늘의 현상을 인식하여 의도된 정보에 의해 선동되지 않고, 누군가의 편을 들지 아니하고, 단지 복음 전파를 위한 나라의 고요와 평안을 위해 지금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깊이 숙고하는 삶, 그것이 진정 기독인의 삶일 것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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