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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큰 자로서 살아가는 한 해 (요 3: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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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3:22~30  ‘큰 자로서 살아가는 한 해’

이 세상은 오래전부터 이 땅을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크고 위대한 사람이 되라는 교육을 무의식이나 의식속에 집어넣어 주고 있습.
아이들이면 누구나 너 커서 뭐될래? 하면 크고 위대한 사람이요! 합. 그런데 외국 아이들에게 너 커서 뭐 될래? 하면, 훌륭한 자원 봉사자나 선교사, 변호사 등등 다양한 미래상을 들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 아이들에게 너 커서 뭐 될래? 하면, 하나같이 뭐? 대통령...
유달리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 가장 크고 위대한 사람의 기준이 있습. 뭡? 뭐가 있고 없고 입? 돈이나 명예, 지위나 권력, 부와 명성이 그 기준이라고 가르쳐 왔습. 그래서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쫓습.

죽어라 하고 공부하는 이유가 뭡? 명예나 권력을 가진 크고 위대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죽어라 하고 일을 합. 이유가? 부와 지위를 가진 크고 위대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심지어 믿는 사람중에도 그 부와 지위, 권력을 위해 복권을 사기도 합.

그렇다면 여러분이 생각하시기에 인류 역사이래, 누가 가장 크고 위대한 인물이겠습니까? 말씀드린 위의 기준들에 가장 가까운 사람을 꼽으라면 솔로몬! 인류 역사에 최고로 기록될 만큼의 부자였습. 빌게이츠 -재산의 절반을 기부 27조... 이스라엘 나라가 가장 번성할 당시에 그 나라의 왕이었습. 용모가 수려하고 건강한 사람이었습. 모든 부와 명예와 강건함을 소유했던 사람이었습.

하지만 예수님은? 그분의 기준은 다르셨습. 예수님께선 마11:11을 통해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라고 명백하게 말씀하셨습. 솔로몬을 모르셨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선 세례요한이라고 딱 잘라 말씀하십.

왜 세례요한이 가장 크고 위대한 자인가?를 이시간을 통해 깨달아, 올 한해를 세상 기준으로서의 큰자가 아니라, 하나님 기준으로서 큰 자의 삶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

세례요한... 우리는 이 사람을 가장 큰 자라고 하는 말씀에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습. 왜? 그의 삶은 그다지 출세나 성공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좀 먼, 부와 명예, 지위와 권력과는 별 상관이 없게 알고 있기 때문입.
그는 나이 서른이 되면서 구약의 최종 선지자로서 이스라엘에게 외치기 시작했습. 그의 외침으로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존경과 신뢰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래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긴 했지만, 그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기간은 고작 1, 2년에 지나지 않았습.
곧 예수님께서 등장하신 것입.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두 사람의 사역이나 메시지가 비슷했기 때문에, 자연히 두 사람을 비교하기 시작했고, 각각의 추종자 그룹을 형성하기 시작했습. 그러나 몇 달 지나지 않아 요한을 찾는 군중은 점점 줄어들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주변에 모여들게 되었습.

이런 상황에서 오늘 말씀에 보면, 몇 남지 않은 요한의 제자들이 민감한 반응을 보입. 그들은 자신의 선생이 밀려나는 것에 대해 한마디로 열 받기 시작했고, 예수님에 대해 질투심이 일었습.
그러나 그러한 제자들에게 요한은 27절과 28절에 이렇게 잘라 말합.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에 맞춰 일해야 한다. 난 그리스도가 아니다. 난 단지 그의 앞에 그를 위해 보내심을 받은 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라고 말합.
이어서 세례 요한은 이러한 자신의 마음을 결혼식을 비유로 들어 설명하고 있습(29절). 유대인의 결혼식 관례 가운데 하나는, 신랑의 친구가 먼저 식장에 가 있다가, 가장 먼저 신랑을 영접해서, 그를 신부에게로 인도해주는 관례가 있었습. 그 날의 주인공은 물론 신랑, 신부입. 친구의 역할은 여기까지고, 그는 그러한 신랑, 신부를 보면서 누구보다도 기뻐하는 사람입.
요한은 자신이 이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는 말하고 있습. 그리고 그런 자신에게도 예수님으로 인해 그러한 기쁨이 있다는 고백입.
여러분 이렇게 하기가 쉽습? 성경에 죽 써있으니까 우리는 그냥 보면서, 그런가보다 할지 모르지만, 만약 실제로 여러분의 삶에 내가 잘 닦아놓은 길에 대한 보상을 내가 받는게 아니라, 남이 돼 버리면 어떻게?? 아마 배가 아파서 몇날 며칠을 식음을 전패하고 앓아 누우실 것입.



모세 오경의 마지막 말씀인 신명기 맨 마지막 장인 34절 후반에 보면 참 아름다운 모습이 나옵.
34: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여러분 모세가 어떤 일을 한 사람입?
34:10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11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12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더라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을 소망하면서, 그 모든 역경과 시련을 이겨내고, 바로 그 앞까지 어렵게 어렵게 인도했던 사람입. 만약 모세가 백성들과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정말 남은 여생을 수 많은 백성들에게 대접 받으면서, 존경 받으면서, 평안하게 살다가 영광스럽게 갈 수 있었을 것입. 모세가 이것에 대한 욕심이 없었을까요? 그런데 34:4에 보면,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셨겠습? 여태껏 내가 이것 하나 바라보고  그 고생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바로 코앞에서 못들어가게 하시다니.. 차라리 보여주시지나 마시지, 다 보여주고 못들어가네 하시니, 이런 억울할때가..
자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 영화 ‘십계’ 보셨겠지만, 여호수아가 애굽에서 어떤 사람? 일개 종이었던 여호수아가 자신의 후계자가 되는 상황을 달갑게 받아들일 수 있었겠습? 안수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씩씩거리면서 느보산으로 올라가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모세는 그 모든 상황을 받아들입. 모든 인간적인 욕심, 소망 다 버리고 34장 5절에,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 그리고 죽기전에 여호와의 지혜의 신이 임할 정도로 간절하고도 충만하게,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안수하는 예식을 행합. 여호와의 말씀대로...

요한은 자신은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 그렇게 수 많은 사람들이 따랐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자신은 물러나야 때가 됐고, 물러나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
그래서 30절에 이렇게 고백합.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이것은 요한의 확신입. 예수님은 반드시 더 크신 분으로 대접 받아야 하고 자신은 더욱 작은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 이것이 요한의 소원이었습. 주님이 더 높임 받기 위해서 자신은 한없이 작은 자가 되어도 좋다는 것입.

예수님은 바로 이렇게 자신의 분수를 알고, 자신의 위치를 명확히 알고 행하는 세례요한의 모습을 보시면서, 이 모습이 진실로 여인의 뱃속에서 나온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큰자의 모습이라고 그 당시의 사람들과, 또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까지 도전하고 계신 것입.

여러분은 삶의 크고 작음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계십? 세상의 기준에 맞추려고 하지 맙.
내가 얼마나 돈이 있고, 없고, 내가 내 놓을만한 명예와 권력이 있고, 없고, 건강하고 안하고에 나의 위치,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두려 하지 맙. 하나님의 기준 안에서의 큰 자는 내 분수를 아는 것, 그래서 늘 겸손하게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하는 자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 내가 그렇게 살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날마다 우리를 눈동자 같이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나의 크고 작음이 결정됨을 기억해야 할 것입.

안타까운 것은 교회의 세속화입. 세상의 지위가 곧 교회의 지위가 된다는 생각입. 내가 좀 돈이 있고, 세상에서 좀 알아주는 위치에 있어서 대접받고 산다고, 교회에서도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합.

연보 많이 하면서 말 많이 하는 장로님!

그러므로 우리의 올 한해의 큰자의 기준은, 세례 요한처럼 예수님을 높이면 높일수록 큰 자가 되고, 그렇지 않는 삶을 살면 살수록 작은자가 된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

여러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자신을 드릴 줄 아는 큰 사람입니까? 아니면 자기만을 생각하는 작은 사람입니까?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올 한해 새로운 꿈, 새로운 포부를 주시기를 바랍. 요한과 같이  되시기를 축원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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