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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큰 민족 좁은 땅 (수 17: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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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25대 대통령인 존.F. 케네디가 대통령 선거 때 (44세 최연소 대통령)
    `뉴 프론티어`(New Frontier)를 선거 슬로건으로 내세웠습니다.
원래 프론티어라는 말은 미국 역사에서,
    개척된 지역과 미개척 지역의 경계선을 가리키는 낱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개척자들이 이미 개척된 동부의 13개 주를 넘어
    서부와 남부를 개척해 나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미국의 번영을 낳았고,
    이 말은 세계 제일의 강국, 미국의 정신이 되었습니다.
1960년 민주당의 케네디 대통령은 뉴프론티어 정책을 통하여 
    복지국가 건설과 흑인의 권리 증대를 지향하였고
    외교면에선는 동서 냉전완화에 노력하였으며
    우주개발계획에도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니 케네디의 뉴 프론티어 정책이란
    미국이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으로 국민들이 안주하려고 하는 때에
    미국을 넘어 세계와 우주로 나아가는 개척정신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프론티어 신앙>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통하여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앞까지 수16:과 17:13절까지는
요셉 자손 중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에게 할당된
        기업의 경계에 대해 기록된 말씀입니다.
요셉 자손은 유다 지파와 같이 장자적 신앙의 조상 잘 만나서
    야곱이 축복한대로 축복을 받아 가나안 땅을 분배받을 때에도
    다른 지파에 비해서 비옥하고 더 넓은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그런데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나아와 문제 이의를 제기합니다.
우리는 큰 민족인데 왜 좁은 땅을 주느냐?
    즉 자신들은 두 개의 지파인데 왜 한 분깃만을 주느냐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여호수아가 `산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복을 받은 큰 민족으로
    좁은 땅에 머물지 마시고 개척의 신앙과 정신을 가지고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내일교우들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나아와 하는 말이

1. 요셉 자손이 큰 민족이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14절, 참조/역상5:1절)
1절에 [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다 ]
      고 합니다.

큰 민족이란 말은 수적으로 많다는 뜻뿐만 아니라
            능력의 탁월함도 포함된 말입니다.
따라서 요셉의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두 지파가 될 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지파들 중 자부심이 대단한 지파임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 사후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질 때
    북쪽 이스라엘의 주동을 에브라임 지파가 앞장섭니다.
또 북쪽 이스라엘 10지파를 지칭하는 말로도 에브라임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요셉 자손이 큰 민족이 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본래 장자 르우벤은 창49:3절에
[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 마는 ]
그러나 그 권능의 탁월함이 실제적으로는 요셉 자손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이 사실을 대상5:1절에
[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족보가 이러하니라 ] 하면서
부언하여
[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 아비의 침상을 더럽게 하였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갔으나
      족보에는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할 것이 아니요 ]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장자의 명분의 명분이란 말은 직분이란 의미가 있는데
서열적으로 보면 르우벤이 장자이지만
      실질적으로 장자적인 직분은 요셉이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요사이 말로 하면 야곱 가문의 실세는 요셉 지파였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19:30절 [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 는 말씀 같이
장자적인 신앙에 눈이 뜨여져
  하나님 보시기에 장자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교우들 되시기 바랍니다.
장자적인 신앙 - 어떻게 보면
          괜히 앞장서서 책임져 고생만 하는 것 같습니다만
          그러나 자식 대 내려가면 장자적인 복을 누릴 줄 믿습니다.

이제 요셉의 자손들이 여호수아 앞에 나아와
              기업 분배에 대해 이의를 제기 합니다.

2. 요셉의 자손이 여호수아 앞에 나아와 기업 분배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을 두고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14절)

14절 하반 절에 보면
[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기업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찜이니이까? ]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측면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구약의 장자는 두 몫을 차지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장자적인 복을 주셨는데
  왜 여호수아 당신은 우리에게 기업 분배를 하면서
          두 몫을 주지 아니냐? 는 말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권리 주장입니다.
이것은 신앙적인 믿음의 간청입니다.
마치 대상4:9절 이하의 야베스가 이스라엘 여호와 하나님께
          [ 내게 복에 복을 주사 ] 라는 기도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은혜 받아 장자적인 신앙에 눈이 뜨여져서
    우리도 두 분깃을 구하는 신앙의 장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또 한 가지 교훈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도착했을 때,
        그 땅은 이미 다른 민족이 차지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2지파가 연합을 해서 그 적들을 몰아내고
      점령한 땅들을 나누어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구수를 무시한 전혀 엉뚱한 분배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입니다. 
물론 자로 긋고 칼로 베어서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산술적인 공평은 아니었을 수 있다하더라도
    요셉족속의 주장은 썩 옳은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들의 주장은 이미 하나님의 큰 복을 받았기 때문에
    가장 큰 것은 자기들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잘못 이해한데서 비롯된 생각입니다.

축복은 특권이 아닙니다. 그것은 은사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미 받은 복이 그 다음 번의 특별한 대우를 보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명과 책임이 주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분에게 남다른 지식이 있습니까?
        그것으로 지식이 부족한 사람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넉넉한 재산이 있습니까?
        그것으로 가난한 사람을 도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능력이 있고 남다른 지위가 있습니까?
      특별한 대우를 받으라는 것이 아니고
            이웃을 섬기라고 주신 은사임을 알아야 한다.
요셉자손은 하나님이 복 주셔서 가장 큰 지파가 되었는데
그것이 이제는 불평의 근거가 되고 말았습니다.
만약 일이 자기들의 기대대로 풀어지지 않는다면
    이제까지 복이라고 감사했던 조건이
          오히려 불만과 불신의 함정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때까지 가나안의 모든 땅을 이스라엘이 다 점령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직도 점령하지 못한 체 남아 있는 땅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평에 쌓인 불신앙의 눈으로 보니까
    남아 있는 넓은 땅은 보이지 않고,
    좁은 자기들 땅만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늘날도 똑 같습니다.
믿음 없이 불만족으로만 살면 될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이 온통 어렵기만 하고, 죄다 안 되는 일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할 만한 일은 다른 사람들이 먼저 다 차지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요셉자손은 눈앞에 장벽인 요단강을 건너게 하시고,
        여리고를 무너뜨리신 하나님을 생각해 내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꼭 마음에 새겨야 할 교훈은
    장자적인 신앙과 복이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라와 교회를 위한 복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큰 복을 받아서 큰 민족이 되었는데
  땅이 좁다는 요셉지파의 불만에 대해 여호수아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3. 요셉 지파의 요청에 대해 여호수아는 무엇이라 말합니까?(15절)

15절 [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찐데
    브리스 사람과 르바임 사람의 땅 살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
스스로 개척하라는 것입니다.
장자적 신앙을 가진 믿음의 사람은 그 자리에 안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개척하는 사람입니다.
좁은 땅을 바라보고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곳을 개척해 나가는 것입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 직분자들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 내일교회가
    대구의 장자적인 사명을 감당하게 해 달라고 구하는 것을 볼 때
    우리 교회가 장자적인 복을 받은 큰 민족임을 확신합니다.
그런데 주일학교 교육관도 좁고 포네이션 사역실도 없고
    소그룹 모임할 장소도 없다고 넋두리는 하지만
이 넓은 장동 땅을 개척해 나가겠다고
      갈렙처럼 선언하고 나서는 교인은 귀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만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민33:29절 [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 말씀처럼
우리 대한민국만큼 복 받은 나라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복 받은 만큼 우리 대한민국이 넓지를 못합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세계에 수적으로는 중국 국민이 제일 많이 흩어져 살지만
비율적으로는 한국 사람이 제일 많이 흩어져 산다고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세계 속에 디아스포라로 만드셨을까요?
  바로 복음으로 세계를 개척하라는 선교적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선교하는 민족이 세계를 정복합니다.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우리는 개척의 사명이 있는 백성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땅이 좁다고 낙심하지 마시고,
    다른 사람들이 먼저 차지했다고 포기하지 마시고
오늘 여호수아를 통해 요셉 지파에게 주어진 명령처럼
    개척정신과 신앙을 가지고 세상을 정복하는 교우들 되시기 바랍니다.

65세의 한 노인이 오랫동안 해 오던 식품 사업이 실패하여
    완전히 빈털털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평생에 쌓아 올렸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집 한 채와 낡은 자동차, 은퇴 보험금인 105달러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이 노인은 한 가지 꿈만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요식업을 한 경험덕택으로
    언젠가는 성공할 한 가지 요리 비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록 65세라는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 선 그였지만
    일생을 그냥 빈둥대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자신에게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나는 녹이 슬어 사라지기보다는 다 닳아빠진 후에 없어지리라`
노인은 캔터키 주에 있는 자기 집에,
    작은 방 한 칸을 만들고서는 새로운 일을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 노년에 무슨 새로운 사업이냐?`고 빈정거렸지만         
그는 꿈을 가지고 도전하여 갔습니다.
이번에 그가 벌인 새로운 사업은 닭튀김 장사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처음에 닭튀김에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인은 계속해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점차 닭튀김 가게를 미국 전역으로 넓혀
    얼마 있지 않아 미국 전 지역에 수백 개의 닭튀김 집이 생겼고
    이제는 세계 각처에 그의 닭튀김 체인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 노인이 바로 `캔터키 프라이드 치킨`을 창업한 <커널 센더스>입니다.
지금도 전세계 캔터키 프라이드 치킨 체인점 앞에 지팡이를 든 한 노인상은     
꿈을 잃은 많은 사람에게 꿈을 심어주는 상징이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실패 속에서도 절망치 않고 새롭게 개척하는 자가
    축복의 자리에 앉을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어느 지파 사람입니까? 에브라임 지파 사람입니다.
그도 자기 형제들에게 더 좋은 땅을 더 많이 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형제들에게 스스로 땅을 개척하여 정복하라고 합니다.
여호수아는 얼마든지 노른자위는
      자기 친인척에게 특혜를 베풀 수 있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나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고 합니다.
자식을 참으로 사랑하는 부모는
    자기에게 모든 것이 있다고 자식에게 다 퍼 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 자식을 망치는 일이고, 정신적으로 죽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그 자식을 살리는 축복의 길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을 주시되 그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스스로 개척하라고 합니다.
여기 `스스로 개척하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스스로 독립하라는 말씀이고,
    또 하나는 스스로 삶의 지경을 넓히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 `개척하다`에 쓰인 히브리어는 `바라`입니다.
이 말은 `나무 따위를 베어 넘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창1:1절에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창조하다`는 말이 `바라`입니다.
            하나님은 최초의 개척자이십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동물과 짐승을 만드실 때, 
    각각 그 종류대로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개는 개대로, 말은 말대로,
      호랑이는 호랑이대로 만드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는 뭐같이 만드셨는가 하면
사람같이 만들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처럼 만드셨어요.
그리고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고 이 땅을 정복하라` 고 하셨습니다.
개척자이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에게 개척 정신을 주십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셨던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개척자였습니다.
갈대아 우르 땅의 아브람은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여 믿음의 개척을 해 나갔을 때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애굽 땅에 노예로 팔려간 요셉은 절망적인 환경을 바라보지 않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삶을 개척해 나갑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요셉을 애굽의 국무총리로 세우시고,
            민족을 구원하는 구원자가 됩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땅에 포로로 끌려간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이방 땅에서 믿음으로 개척해 나갑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다니엘을 바벨론과 페르시아 제국의 총리로 세우십니다.

비록 좁은 땅 때문에 불평하고 낙심하며 주저앉지 마시고
    더 넓은 세계를 개척해 나가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바로 개척의 정신을 가진 사람입니다.

위와 같이 개척하라는 여호수아의 답변에
              요셉의 자손들은 무어라고 변명합니까?

4. 여호수아의 답변에 대해 요셉 자손의 변명은 무엇입니까?(16절)

16절 [ 요셉의 자손이 가로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에게는
      벧 스안과 그 향리에 거하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하든지
      다 철병거가 있나이다 ]
오늘 본문에 보니까 `스스로 개척하라`는 여호수아의 말에
              요셉자손은 뭐라고 합니까?
              계속해서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정복할 적들은 철병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요셉 자손의 말은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당시 가나안 족속들은 철기문명이었고 산악전쟁에 능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직 청동기 문명이었고 산악전쟁에 미숙했습니다.
그러니 이들이 전쟁에서 싸우면 요셉자손은 틀림없이 패배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른과 아이가 싸우는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요셉자손이 말한 것은 당연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붙들어야 합니다.
다윗은 자기보다 훨씬 큰 골리앗 앞으로 달려 나가면서 한 고백이 무엇입니까?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나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간다.`
이 말의 의미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얼마나 의미심장한지 알 수 없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 말씀이 무엇입니까?
    만 명의 군대의 하나님이라는 말이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우리는 원수의 강함보다는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성품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분의 선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북한 김정일의 핵무기 실험 때문에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구소련은 핵폭탄을 5천개 이상 가졌어도
    경제가 실패하자 망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패배의식으로 불안해하지 말아야 한다. 패배의식은 불신앙입니다.

어떤 선교사가
  길도 없는 정글을 헤치고 아프리카의 오지에 도착해
    자신을 파견한 선교회에 잘 도착했다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러자 선교회에서는 오지에 도달하는 길을 개척했다면
      보다 많은 선교사들을 보내겠다고 답장을 해 왔습니다.
  선교사는 다시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 답장의 내용은
  만들어진 길이 있다고 해야만 올 사람은 필요 없고
      길이 없다고 해도 올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 선교사 리빙스턴(Livingston)의 이야기입니다.
  남이 만들어 놓은 길이 있어야 가려는 사람보다는
  스스로 길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어야 쓸모가 있다는 말이지요.
  우리가 오늘 가고 있는 길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는 길인지
  남이 만들어 놓은 길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렇게 요셉 자손들이 삼림을 개척하는 데 대해 불가지론을 들어 내어놓을 때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해 무엇이라고 격려를 합니까?
5. 요셉 자손의 불가능의 이유를 들은 여호수아는 무엇이라고 격려합니까?(17-18절) 
17-18절에
[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
[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개척하라
  그 끝가지 내 것이 되리라
  가나안 사람이 비록 철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 할렐루야~!
이 말씀을 잘못 들으면 요셉 지파가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오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 지파가 위대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위대하시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개척정신과 헌신이 어디서 나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뢰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제가 제일 못하는 것이 식물 키우는 일이라
    언제부터인가 식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분재를 보면 아직도 자신이 없어요.
원예가들에게는 분재재배의 기술이 따로 있습니다.
분재재배에 필요한 기술은 식물의 원뿌리를 잘 잘라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원뿌리가 잘린 나무는 그 생명을 잔뿌리에 의존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참나무나 소나무 혹은 과일나무들의 원뿌리가 잘리면
    고작해야 12-18인치 밖에 자라지 못합니다.
제가 분재 이야기 하는 것은
대다수의 기독교인들도 `믿음`이라는 원뿌리를 잘라 버렸거나 소홀히 함으로써
      영적인 난장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관상용으로는 그럴듯한지 모르지만
원뿌리가 잘린 분재는 정상적인 성장과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원뿌리를 하나님의 말씀에 두고
    말씀 붙들고 믿습니다 ! 아멘 ! 할 수 있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것도 큰 소리로 ~!

성공학의 대부 맥스웰 몰츠(Max-well Maltz) 박사는
성공하기 위해서 ‘평소보다 큰 소리로 말하는 습관을 가지라’고 충고합니다.
실험결과,
사람이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릴 때 크게 고함을 지르면 힘이 나서,         
평소보다 15% 정도 더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릴 수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평소에 큰 소리로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하는 버릇을 들이면,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 큰 목소리로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경제학 교수인 폴 크루그먼(Krugman ; 1953~)은
『불황경제학』에서 불황에서 벗어나 성공하기 위해서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첫째, 모험정신, 개척정신을 가지라.
둘째,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하라.
셋째,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서 노력하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해 요셉 자손
        아니 큰 민족인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개척하라
미래지향적인 믿음을 갖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더 넓은 세계를 정복하는 내일교우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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