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당신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행 1:1-11)

  • 잡초 잡초
  • 358
  • 0

첨부 1



지난 2주 전 저는 몽골에서 몇 분의 선교사님들과 좋은 식사의 교제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특별히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인생의 마지막을 선교 현장에서 좀더 헌신하고 싶어하는 분들이었습니다. 그 중에 강영순 선교사님은 소아마비로 자신의 핸디캡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녀의 몸으로 17년 전에 몽골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며 보통 사람도 하기 힘든 그 땅의 청소년들에게 비전을 심어주기 위해 국가 탁구팀 코치를 맡아 희망을 주고 있었고, 그 힘든 교회 개척을 4군데나 벌려 놓고 동분서주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또 한 분은 경찰로 일하다 정년 퇴직을 하시고 자신의 퇴직금을 다 털어 몽골 땅에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에 좋은 교역자를 세우고 자신은 미련 없이 현장을 떠나는 윤배 선교사님이신데 그 삶이 얼마나 멋이 있는지, 심지어 부인은 몽골에서 병을 얻어 귀국했는데도 그것 때문에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몽골의 불쌍한 영혼들을 돌보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모습 앞에 눈시울이 뜨거워질 정도였습니다. 또 한 분은 고재형 박사이신데 그분은 한국에서 수재들만 들어간다고 하는 학교에 모 박사 출신입니다. 그리고 과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실력을 갖춘 분인데 아직 나이가 창창한데도, 이 부부가 한국의 좋은 교수자리 다 접어두고 몽골 MIU대학에서 보수한푼 받지 않고 와서 헌신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러한 분들이 함께 앉은 식사 자리가 얼마나 진지했겠습니까? 흔히 사람들이 모이면 얼마나 잘 사느냐, 얼마나 벌었느냐, 얼마나 즐기느냐를 이야기를 하는 세상과는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한 분, 한 분 그분들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 사람들을 저렇게 이상하게 만들었을까? 도대체 무엇이 저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엉뚱한 생각을 갖도록 했을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던 하나님 나라 비전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사람들을 미치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 이 사람들의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후회 없는 삶을 살길 원합니까? 의미 있고 보람된 삶을 원합니까? 처음보다 끝이 화려한 사람을 원합니까? 영원히 넘는 인생을 한번 살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가 우리 인생관의 우선 순위로 자리잡아야 합니다. 내 모든 관심사 중 가장 중요한 부분에 하나님 나라가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이었고, 예수님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은혜를 입고 살아가면서 자신이 움켜쥐었던 인생의 가장 귀한 것을 다 내려놓고, 자신의 삶을 다 내주어도 조금도 후회 도 없고, 아깝지도 않게 하는 '하나님 나라'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는 흔히 천국을 이야기합니다. 죽어서 들어가는 나라로 말합니다. 그것은 반쪽 진리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가 들어가는 천국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더 넓고 더 크고 더 높은 의미를 갖은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십자가에서 부활하시고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통치하는 영역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지배를 받는 곳입니다. 이 나라는 영원히 이어질 나라입니다. 영원히 예수님이 통치하실 나라입니다.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당신의 제자들을 불러 놓고 주님은 결코 포기 할 수 없는 당신의 마음을 제자들에게 보이십니다.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여기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결코 포기 할 수 없는 최고의 관심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관심은 그게 아닙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노인 부부가 나와서 퀴즈를 푸는 프로그램에 한 노인 부부가 출연을 했습니다. 단어 맞추기 퀴즈를 하는데, "천생연분"이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천생연분"이라는 단어를 설명해 주어야 하겠는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당신과 나 사이를 뭐라고 하지요?" 할아버지는 당연히 '천생연분'이라는 말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그렇게 설명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당신과 나 사이를 뭐라고 하지요?"라고 묻자 주저함도 없이 "웬수!"라고 대답합니다. 다급해진 할아버지가 "그것말고, 네 자로, 네 자로 뭐라고 하잖아!" 그랬더니 할머니가 "평생웬수"라고 대답하더랍니다. 평생을 같이 산 부부도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다릅니다. 한 사람은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하고, 한 사람은 '평생웬수'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고사성어에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자리에 잠을 자는데도 서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입니다.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서로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는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서로 다른 생각, 서로 다른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지금 3년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나라는 수 백 년 동안 로마 제국의 식민지가 되어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착취와 고통을 받으면서 신음하고 있지 않습니까? 얼마나 다급한 현실입니까? 얼마나 답답한 현실입니까? 힘만 있다면 당장 로마의 쇠사슬에서 해방시켜 주고싶은 생각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처참한 환경이었습니다. 그래서 6절에 "예수님, 이스라엘 나라가 해방될 날이 언제입니까? 좀 가르쳐 주세요."라고 여쭤보았던 것입니다. 이런 현실을 놓고 주님은 한마디도 안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 이야기만 하는 것입니다.

아마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보고 다소 불만을 가졌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현실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은 제자들만의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여러분 가운데도 지금 사업이 되느냐 안 되느냐하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는데, 또 몸에 질병이 심각한 수준까지 와있는데 이런 저런 문제들을 기지고 절박한 심정으로 나와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를 구하는데 어떻게 보면 현실성 없어 보이는 '하나님 나라'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닿겠습니까? 아마 그러한 불만이 제자들에게도 있었습니다. 보세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눈앞에 계십니다. 세상의 죽음을 이겼다면 최고의 관계가 아닙니까? 게다가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후,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예수님에게 위임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이 세상에 예수님보다 능한 자도, 강한 자도, 높은 자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분이 제자들과 대화를 나눌 때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만 자꾸 할 것이 아니라 현실 문제를 말씀해 주시면 얼마나 좋겠나 하는 생각을 제자들이 했던 것처럼 보입니다.

현실 문제라고 해서 다 속된 것이 아닙니다. 현실 문제라고 해서 신앙과 관계가 없지 않습니다. 너무나 중요합니다. 예배하는 우리라고 해서 현실문제와 동떨어진 구름 잡는 소리만 하고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이것을 모르셨을까요? 병든 사람의 사정을 예수님이 모르겠습니까?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모르겠습니까? 압박 당하면서 신음하는 백성들의 사정을 주님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관심은 현실에 있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사실입니다. 우리가 제자들처럼 현실 문제에 너무 집착하고 하나님 나라를 잊어버리면 우리의 인생은 비참해집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인생관 안에 하나님 나라가 발붙일 자리가 없다고 한다면 아무리 성경을 끼고 교회를 열심히 다녀도 그 사람의 인생의 끝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설 땅이 없는 인생관을 움켜쥐고 세상을 산다면, 그와 같은 인생관을 가지고 세상을 살고 있다면 그는 분명히 비참해 질 것입니다. 허무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관심 없는 인생관을 가지고 우리가 예수를 믿고 산다면 그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항하는 삶이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삶입니다. 어떤 면에는 일평생 후회하는 잘못된 인생의 마무리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돌이켜 보십시오. 예수님에게 더 가깝습니까? 아니면 제자들에게 더 가깝습니까? 하나님 나라가 무엇입니까? 여러분 스스로 한번 대답을 해 보십시오. "하나님 나라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을 때 정확히 대답할 수 있으면 여러분의 관심은 그만큼 하나님 나라에 가 있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빨리 정의가 내려지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관심이 그만큼 흐트러져 있다는 것을 의미할 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면, 하나님의 관심인 하나님 나라에 내 인생을 걸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이들이 더 이상 패배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연약한 자리에 머물기를 원치 않습니다. 아직도 민족해방의 열망으로 해방의 전략과 계획에 바빠 있었던 제자들에게 주님은 당신의 하나님나라 확장의 전략과 계획을 들려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8절의 말씀입니다. 여기 8절에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성령께서 우리 심령에 불을 붙여 주기만 해도, 우리는 열정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가슴에 불이 붙기만 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열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싹 마른 심령이라 할지라도 성령의 단비가 임하면 열심을 내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 찾기가 쉽지 않지만, 예전에는 펌프라는 것이 동네 한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 펌프에 와서 열심히 펌프질을 해서 물을 받아갔습니다. 그런데 펌프질을 하려면 꼭 필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한 바가지의 물입니다. 이것을 '마중물'이라고 합니다. 이 마중물을 펌프에 집어넣고 열심히 펌프질을 하면, 얼마 있지 않아 펌프에서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옵니다. 성령님께서는 바로 이와 같은 역사를 하십니다. 아무 열심을 내지 않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회개하고 은혜를 구하면 성령님께서 부어지면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그 새로운 삶이 바로 증인의 삶입니다. 이를 위해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위해 어디를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까? "예루살렘"입니다. 4절입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이 예루살렘은 바로 교회입니다. 오늘 예배가운데 임하신 성령을 사모하고 그분이 주시는 능력을 받아야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담대하게 복음의 증인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사용된 증인이란 말의 의미는 순교적 증인이란 뜻입니다. 복음을 위해 자기의 생명마져도 아낌없이 드릴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증인입니다. WEC 선교단체의 창설자인 시티 스터드는 모든 시대를 사는 크리스챤 지성들에게 굉장한 도전이 되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의 부모는 당시 재벌이었고 공부도 잘 했어요. 학교에서도 톱을 달리는 학생이었고 크리캣이라는 운동선수였어요. 그 운동으로서 영국 전체의 골드메달을 따기도 했습니다. 보장된 출세의 길이 그 앞에 열려져 있었습니다. 갑자기 캠퍼스집 회에 참석했다가 복음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는 아프리카의 선교사로 가기로 선포했습니다. 학교 당국자들이 아깝다고 생각했습니다. 보장된 출세 길. 돈과 그리고 명예와 권력과 그 앞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선교의 길에 나서자 누군가가 와서 그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보게 이것은 자네에게 지나 친 희생이 아닌가' 이 말에 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나를 위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참으로 사실이라면 그것이 참으로 사실이라면 내가 그를 위해서 바치는 희생은 그 어떤 것도 지나친 희생일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을 내 놓는 증인의 삶이 아닙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주님은 우리 교회에 이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인생을 드릴 하나님의 사람을 찾습니다. 우리는 이제 다음 주면, 38주년의 생일을 맞게 됩니다. 왜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셨습니까? 교회의 본질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데도 중요한 목적이 있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거룩한 강자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펴는 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은 가지요, 하나님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서 다시 빚어진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의 걸작품들입니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존재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데 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면서 명령하셨습니다. 마28:18-20절에 보면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제자란 거룩한 강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적당히 교회 다니는 사람을 만들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사람을 만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은 거룩한 강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이런 자격을 갖추어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16:24절의 말씀처럼 "먼저 자기를 부인해야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합니다. 이것이 제자의 조건입니다. 이것이 38년 전에 이 영적 불모지와도 같은 이곳에 하나님이 교회를 세운 목적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제일 강자는 바로 자기 부인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할 수만 있다면 이 사람은 강한 사람입니다. 자기의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거룩한 목적을 향해서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만큼 강한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썩는 밀알로 던지면서 예수님의 뒤를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만큼 강한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이 그런 사람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사람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거기에 나오는 제자들은 이것 달라, 저것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가진 것을 주님을 위해서 내놓는 사람이 되었고, 나중에는 자기 생명도 바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강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세상을 향해 나갔기 때문에 세상이 그들을 이기지 못한 것 아닙니까? 결국 예루살렘이 정복당하고, 로마 제국이 그들 앞에 정복당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세상이나 인생은 덧없습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이 사실을 잘 알고 계시겠습니까? 우리가 살아봐도 덧없는 인생이라고 하루 몇 번씩 고백을 하는데, 예수님이 인생을 보면서 덧없다는 생각을 한 두 번 하셨겠습니까? 덧없는 인생의 종말은 허무입니다. 허무 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이 허무한 인생을 놓고 우리가 한 생을 희생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사야 선지자를 보고 명령하셨습니다. "나가서 외쳐라." 그러자 이사야가 하나님께 뭐라고 외쳐야 되는지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40:6-8절에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이 말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인생이 꽃이나 풀이 아니라고 착각하며 삽니다. 그래서 깨우치고자 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소리를 내어 외쳐라. 인생은 풀이라고. 인생의 아름다움이 대단해도 그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아 하루아침에 시드느니라. 하루아침에 말라 버리느니라. 인생은 그렇다고 외쳐라." 한 마디로 덧없는 인생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에 무슨 소망이 있어 예수님이 세상 이야기를 자꾸 하시겠습니까?

여러분! 제가 목회를 하면서 때로 중 환자실을 드나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병원은 같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이쪽 끝에는 신생아실, 저쪽 끝에는 중환자실이 있습니다. 참 묘하지 않습니까? 한쪽에선 시도 때도 없이 "응아응아" 하며 애가 태어납니다. 반면에 중 환자실에서는 회복되는 사람도 가끔 있지만 거의 절망적인 사람이 들어가기 때문에 시체가 자주 나옵니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태어나고 죽고 하는 것입니다. 건강할 때에야 가능한 수명인 7,80년이 그 복도 안에서 다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얼마나 덧없습니까?

여러분, 한번 뒤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꿈을 꾸는 것처럼 행복했던 어린 시절. 지금 어떻게 기억되고 있습니까? 그 기억이 여러분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듭니까? 그 황홀했던 허니문, 과연 돌아보니 어떻습니까? 무엇이 남아 있습니까? 그렇게 아름답고 힘이 넘치던 20대, 30대의 젊음, 지금 어디 있습니까? 내 마음을 다 하고 시간을 바치고 나의 젊음을 송두리째 쏟아서 뭔가 손에 넣고 싶어했던 어떤 목적, 아마 달성하신 분들이 꽤 될 것입니다. 그것을 손에 쥐고 보니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밤낮으로 브라운관에 등장해서 우리가 보지 않을래야 보지 않을 수 없는 그 막강한 권세와 명예를 가졌던 그 인물들. 하지만 5년, 10년, 20년 지난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대부분의 인생은 풀과 같은 인생에 속고 꽃과 같은 아름다움에 속아 한 생을 살다가 벼랑 끝에 서버리고 맙니다. 허무만 남습니다. 이런 세상인데 예수님이 무슨 기대를 가지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이 아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느 나라를 위해 마음 쓰며 헌신해야 되겠습니까? 하늘을 겨냥하고 사십니까? 그러면 이 땅도 덤으로 얻을 것입니다. 날마다 땅을 생각하고 땅을 겨냥하고 계십니까? 결국에는 다 잃어버릴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비전의 땅을 찾아 나선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은 주님이 주신 꿈을 심령에 채우고 주님이 주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하늘을 겨냥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그들을 만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위에서 구경꾼이 아니라, 체험자로써 정말 예수를 전하고, 하나님 나라를 전하며 하늘을 겨냥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인생의 최대 관심사로 삼고 살아가십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에 일꾼들로 선택하신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기도하십시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