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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 부부, 질서와 사랑 (엡 5: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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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질서와 사랑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엡5:22-24)

현재 가정을 이루고 있는 자들뿐만 아니라 미혼인 자들에게도 이러한 설교가 의미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알지 못한 상태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허둥대지만 미리 알게 되면 그 일에 미리 대비할 수 있게 되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혼하기 전에 미리 남편과 아내의 관계, 시부모님들과의 관계, 그리고 동기간과의 관계 등 결혼생활과 관련된 여러 관계들에 대해 성경적인 답을 미리 갖고 있어야 합니다. 결혼을 한 상태에서 뒤늦게 그 문제에 대해 성경적으로 배우고자 한다면, 그 때는 이미 자신의 이익문제와 결부되어있기 때문에 성경적인 견해를 자신의 생각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이해관계가 없을 때 결혼생활과 함께 이루어지는 관계의 이치가 어떤지를 이론적으로 착실히 공부해가면 실제의 상황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이러한 관계들을 더 온전히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I. 본문해설

오늘 본문은 아내들에게 남편을 대할 때의 원리와 그 근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 앞 1,2,3장에서는 하나님이 어떻게 해서 이 교회를 우주적 회복을 위한 종자 씨로 삼으셨는지, 4장에서는 범위를 좁혀 하나님이 어떻게 교회를 만드시고 교회가 참된 교회될 수 있는지, 5장으로 넘어와서는 교회에 대한 이러한 교훈을 토대로 가정(家庭)이 어떻게 참된 가정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가정이 참된 가정이 되고자 할 때, 첫 번째로 촉구되는 것이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함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함이 가정의 참된 질서를 세워가는 근본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교훈은 남편에 대한 복종이 참된 질서가 있는 가정을 세우시는 하나님의 방법임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또 복종을 통해 남편과 아내 사이에 헌신적인 결합들을 강화시켜 가심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기 위한 종자 씨가 되도록 교회와 더불어 가정이 사용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II. 설득되기 어려운 명령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아내들이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명령을 받을 때 이 명령을 완전히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정말 아내인 내가 남편에게 순종한다고 해서 이 가정이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에 대해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불신자라면 더더욱 받아들이기가 힘듭니다. 그가 추구하는 인생의 가치 뿐 아니라 사고방식이나 생활의 태도 이런 것들이 하나님을 거스르고 있기 때문에 그런 남편에게 복종하게 될 때 그 가정이 진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온전한 가정이 될 수 있겠는가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에 다닌다고 할지라도 그가 진실로 회심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이 아닌데 그에게 복종할 때 그 가정이 정말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도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가정에 들어오면 폭언과 폭력, 강압과 그리고 제멋대로의 방종함으로 이 가정에서 남편의 이치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 명령은 더더욱 설득되기 어려운 명령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A. 복종해야 할 남편

이 명령을 완전히 납득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아내들이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런 식으로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가르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은 교회 안에 소속되어있는 진실한 자매들이고, 남편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은 교회의 공동체 속에서 진실한 신자가 되기를 열망하는 경건한 남편이라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진실한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가려고 할 때 그런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가정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토대 위에 세우게 하기 위한 방법일 수 있겠지만, 이 남편이 불경건하고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이 없고 육욕을 따라 방종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내가 여기에 무조건적으로 순종한다는 것은 가정을 신앙 위에 세우는 방법이 아닙니다. 또한 그 순종은 결코 인격적인 순종이 될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런 복종을 통해서 가정이 불행해지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남편이 되는 사람들은 먼저 아내에게 복종을 명령하기 전에, 그리고 그런 지지를 성경으로부터 받고 있다고 자부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아내가 복종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 인생의 길과 가치를 따라 살고 있는지를 스스로 반성해야 합니다. 옷을 입을 때 맨 위에 단추를 잘못 끼우게 되면 그 다음에는 올바르게 단추를 끼워도 결국은 옷매무새가 흉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과 인생을 설계해 갈 때 기본적인 전제들이 올바로 자리를 잡지 않게 된 상태에서 다른 어떤 좋은 것들을 시도한다고 해도 그것은 항상 부자연스럽고 완전하지 못한 모습을 띱니다. 거기에는 온전한 아름다움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편들이 신실한 신앙을 갖는 것입니다. 불신자라면 어떤 도움을 입어서든지 참회하고 거듭나야 하고, 거듭난 사람이라면 형식적인 신자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 진리에 대한 미각을 가지고 신실한 신자로 자라가는 사람이어야 하며, 또 그렇게 진심으로 회심한 사람이라면 뒤로 물러가 미끄러지지 아니하고 충만한 가운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를 기뻐하며 분투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족 모두를 하나님을 믿는 성경 신앙의 기반 위에 세워놓는 것이 남편으로서의 꿈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들이 올바른 가치관과 인생의 길을 가지고 살 때에 아내는 복종하여 할 훌륭한 남편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남편이 먼저 가정을 다스릴 남편으로서의 위치,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실한 신앙의 인격,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끊임없는 자기 깨어짐 속에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는 일관된 성화의 노력, 이런 인생의 길들이 정해져있을 때 아내가 남편에게 잘 복종하면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 가운데 이미 이러한 남편을 둔 성도님들이 계시면 그 남편을 배나 더 존경하고 이것을 하나님 앞에 더 깊이 감사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B. 가정과 가장(家長)

또 하나 생각해볼 것은 가정과 가장(家長)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세우시고 그 가정에 우두머리를 세우셨는데 그가 바로 남편입니다. 그것은 존재의 질서에 있어서 누구는 우월하고 누구는 우월하지 않다는 우열관계적 의미가 아니라, 가정이 천지창조의 목적을 이루고 하나님 나라에 기여하기 위해 세워진 질서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두머리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교회에 진리와 성령을 보내셔서 성도들이 그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사랑에 있어서 자라가게 함으로, 성도의 전 삶이 애지(愛知)의 삶이 되게 하십니다. 또한 신애(信愛)의 삶, 믿음과 사랑의 삶이 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을 보다 더 온전한 신자로 성숙시키시고 그런 가운데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점점 더 완전성을 갖추게 되어 아름다움을 발산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이 세상에는 선교적인 소명을 성취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성도들을 택하셔서 교회로 모두 부르신 후에 아무 질서도 없이 오합지졸처럼 모아놓으시고 직접 그들을 통치하고 다스리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교회를 만드시고 그 교회에 수없이 많은 질서들을 세우셨습니다.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 질서의 아름다운 모형은 바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 세계의 모상(模像)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적인 아름다운 질서의 축소판이 바로 교회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그러한 질서들을 구현하기 위해 세우신 질서를 따라서 사람들을 각각 배치하십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목회자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의 궁극적인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를 힘입어 가시적인 지역교회의 한 대표로 세워진 사람이 바로 목회자입니다. 그는 세워졌기 때문에 성도들과 똑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성직자이며,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하여서 당신의 대리자로 세우신 사람입니다. 그를 통해서 증거 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가 아니라고 하는 것을 신앙의 양심이 명백하게 입증하지 않는 한, 성도들은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여야 하며 그의 말을 주님의 음성이라고 듣고 순종하며 그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존재론적 위계질서라기보다는 기능적인 위계질서입니다. 그러니까 목회자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우리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당신의 목적대로 교회를 이끄시기 위해 기능상의 질서로 세워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기능적인 질서가 가정에도 존재하는데 그것이 바로 남편의 위치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가지신 원래의 구김이 없는 뜻인데 이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지 않고 그의 뜻에 복종하지 않는 인간들의 이기심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억지의견들을 만들어내게 마련입니다. 이조시대에나 볼 수 있었던 남존여비사상이라든가 혹은 여성이 남성에게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며 살아야 하는 굴욕적인 삶을 미덕으로 만든 이 모든 것들은 다 악한 인간들의 윤리적인 조작입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들이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 배우고 따라가야 할 대상은 아닙니다.

한 사람이 참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그의 모든 철학적인 착상(着想)들이 성경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고 방식에 있어서도 철저하게 기독교적인 세계관과 성경적인 인간관에 입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 진리를 배울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들이 기독교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해석되어져서 기독교적 사상과 신앙으로 꽉 찼을 때 그가 진정으로 예수 믿는 사람일 수 있고 그에 의해서 이 세상에서 참된 기독교 사상들이 구현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온 지성을 하나님께 드려서 이 세상에서 인간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무엇이고, 교회 안에서 참된 신자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인간이 된다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를 이성적으로 철저하게 탐구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만으로는 모든 것을 배울 수 없기 때문에 더욱더 믿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믿음을 주셨으면 그 믿음이 어찌해서 내가 믿어야 할 수밖에 없는 진리인지를 이성으로 부지런히 탐구해가면서 더 상위에 있는 진리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삶 전체가 이렇지 않으면, 그는 참된 인간 또는 참된 신자가 될 수 없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창조하시려고 했던 아름다운 가정을 그 질서 속에서 이루어갈 수 없습니다.

그 질서는 바로 기능적인 질서인데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도 바로 이런 상반된 기능들을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남성에게는 호기심과 진취적 기상, 그리고 개척적인 정신, 과업지향적이고 성취지향적인 성품을 주셨습니다. 반면 여성에게는 그런 것보다는 이미 이루어진 것들을 잘 가꾸고 지키며 그런 일들을 위해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받고 사랑하는, 이런 관계중심적 성품을 주셨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남성은 끊임없이 원을 그리며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하는 원심력의 역할을 하고, 여성은 그것들을 내부적으로 단단하게 결속되게 만들어주는 구심력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둘은 서로에게 의지하게 되고 그렇게 균형과 일치를 이루면서 우주의 원리를 따라가게끔 남성과 여성이 창조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남편이 있는데 이 남편이 복종할 수 없는 사람일 경우에도 문제지만 그 사람이 가장이 된 것도 문제입니다. 남편이 하나님을 모릅니다. 또 안다고 하더라도 잘 알지 못합니다. 매우 무지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다스리시고 이끄시려고 하는 영적인 보호와 인도에 대해서 매우 둔감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가정의 질서 자체가 무너지게 됩니다. 한 남자가 남편으로서, 가정에 있는 가장으로서의 대표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는 이 가정에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들이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들은 신앙, 더 상세하고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진정한 회심과 자기 깨어짐, 그 안에서 끊임없이 진리의 물을 마시고 성숙한 신앙으로 자라야 하는 남편의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게 됩니다.

한 가정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좋은 집과 넉넉한 세간, 그리고 넉넉한 생활비, 이런 것들이 아닙니다. 심지어는 가정의 화목조차도 가정의 일의적(一義的) 가치가 아닙니다. 가정의 일의적인 가치는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장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깊이 신뢰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인생의 최고의 가치라 믿고 그런 가치가 자신의 가정 속에서 실현되기를 원하는 목자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 가장이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가정의 일의적인 가치입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한 가정에서 남편은 그 가정의 목회자요, 그리고 아내는 바로 그 목회를 돕는 전도사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하나님의 이 명령은 유효합니다.

III. 남편에게 복종하라

그렇다면 아내는 남편에게 어떻게 복종해야 할까요?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데 첫째는 신앙 안에서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가정의 질서 안에서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A. 신앙 안에서

남편이 아내와는 비교도 될 수 없는 높은 신앙, 그 신앙 안에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한다고 하면 아내가 거의 무조건적으로 남편에게 복종을 해도 문제가 안 됩니다. 그런데 남편이 불신자일 경우에는 그가 요구하는 것들이 현저히 하나님의 명령과 어긋납니다. 신자라고 할지라도 신앙이 매우 어려서 육욕에 가득 찬 그리스도인일 경우라면 신앙을 제쳐놓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택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때 아내가 복종하게 되면 남편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돕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단서가 붙는 게 무엇인가 하면 남편에게 복종하되, 신앙 안에서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 밖에서 복종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남편과의 평화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때는 남편과 아내가 서로 사랑하는 것 같지만 이것은 자기를 꺾는 사랑이 아니라 여전히 자기사랑에 충실한 가운데 이해가 맞을 때에만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까리따스로 인한 사랑의 일치가 아니면 언젠가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충돌을 일으키게 되고 그렇게 되면 걷잡을 수 없이 두 사람의 관계에는 균열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역시 적용상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내가 남편에게 신앙 안에서 복종해야 하는데 신앙과는 상관없는 문제이고 신앙을 저해하는 문제가 아닌데도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남편이 무엇인가 자신의 요구상황을 이야기하고 아내가 이렇게 하게끔 요구를 하는데 아내들이 그 모든 것들을 신앙을 박해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과 대결구도 속으로 들어가게 되고 이렇게 되면 부부사이에 정신적인 연합 자체가 생겨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예수를 안 믿는 남편이나 신앙이 어린 남편에 의해서 아내들이 박해를 받는다고 해서 그것이 모두 100% 주를 위한 고난은 아닙니다. 신앙을 떠나서라도 행동과 태도방식이 잘못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B. 가정의 질서

두 번째는 가정의 질서 안에서 복종하여야 합니다. 만물의 질서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목적들을 이루어갈 때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주의 아름다움의 근본적인 핵심은 다음 세 가지라 생각합니다. 바로 조화와 균형 그리고 절제입니다. 첫 번째로 조화는 다른 것들과의 어우러짐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상적인 관계입니다. 즉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물들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개체적 사물의 아름다운 관계성이 조화입니다. 그래서 어느 하나가 완전하기 때문에 아름답지만 그것이 다른 것과 같지 않기 때문에 다른 그것을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자신도 아름다워지는 것, 그것이 조화입니다. 두 번째로 균형은 힘입니다. 균형 그 자체는, 잡아당기는 힘의 균형, 혹은 무게의 균형, 공간적인 대치에 있어서의 균형입니다. 마지막으로 절제입니다. 절제는 우주에 있는 모든 만물들이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에 충분히 만족해하는 특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이 온 우주는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발산하게 됩니다. 그런 우주의 모습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 속에서의 아름다움이 창조하신 세계 안에 아름다움의 모상으로서 교회 안에 그리고 가정 안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아내와 다릅니다. 그리고 아내는 남편이 아닙니다. 동시에 자녀들은 부모가 아니고 부모는 자녀와 다릅니다. 형은 동생이 아니고 언니는 누나가 아닙니다. 각각 다른 개체로서 가정이라고 하는 곳에 존재하지만 그들은 각각 하나님께서 지정해주신 위치적인 질서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지정해주신 작용적인 질서를 가집니다. 그 두 질서 안에서 움직일 때 아름답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질서의 아름다움을 가정 속에 세워놓으셨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가족구성원들이 자신의 참된 위치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주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위치와 존재가 어딘지를 깨닫고자 하는 겸비함을 지녀야 합니다. 또 변화된 후에는 위로부터 공급되는 끊임없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그리고 그 힘으로 자신의 존재에 어울리도록 작용해야 합니다. 그때에 아름다운 질서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 많은 이 세상에서 이러한 작용과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족구성원 각각에게 끊임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정에 이 질서가 없다는 점입니다. 아내는 남편보다 돈을 많이 번다고 위세를 부리고 남편알기를 아주 우습게 압니다. 그러면 남편은 돈 좀 번다고 위세를 아내를 수시로 때립니다. 자녀들은 그것을 보면서 자랍니다. 그래서 아버지 때문에 상처를 받는 어머니를 보고, 그 어머니로부터 아버지를 미워하는 교육을 받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또 아내로부터 받는 폭압적인 광경들을 보면서 상처를 받고 그리고 또 어머니를 비난하는 아버지를 보며 상처를 받습니다. 그 앞에서 서로 다투고 전쟁을 하는 광경까지 보게 됩니다. 그러한 광경을 보고 상처를 받으며 자라난 아이들이 자라서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여기서 이 죄가 얼마나 무서운가 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남성성이 아버지에게로, 하나님 안에 있는 여성성이 어머니를 통해 구현됩니다. 물론 어머니 안에도 잔존하는 남성성이 그리고 아버지 안에도 부분적으로 존재하는 여성성이 있지만 주로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 안에 있는 양성을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서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양성적인 본성을 다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당신 스스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돌보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것들을 나누어서 각각 두게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부부를 따로 존재하게 하시지 않고 결합시킴으로써 이러한 것들이 보완관계를 이루며 그 남편과 아내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돌보시는 그 모상이 되는 작용들을 이루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그러한 두 모습을 보고 올바른 남녀의 모습을 배우며, 하나님의 부성과 모성을 함께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원래 성경적으로 볼 때 권위라는 것은 우산의 역할을 합니다. 많은 타락과 부패의 낙진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 권위가 선할 경우, 그리고 선하게 행사할 경우에 이 권위는 훌륭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부모에게 그리고 가장에게 굉장히 많은 권위를 주셨습니다. 성경적인 토대위에 서있는 가정의 모습으로 돌아갈 때 중요한 것이 바로 선한 권위입니다. 가정에서 아내는 하나님을 찾아가려고 하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자녀들은 그 아버지를 어느 정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워하고 그런 속에서 가정이 모든 부패와 오염으로부터 보호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됩니다.

IV. 아내의 순종과 부부의 정신적 결합

마지막으로 생각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아내의 이런 복종이 부부의 정신적인 결합을 유지하게 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한 몸을 이룰찌어다.” 히브리어로 보자면 “그 여자 속으로 연합하여 한 살이 될지니라.” 이런 뜻이 됩니다. 이것은 혼합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의 관계를 통해서 결합을 이룬다고 하지만 물리적의 결합의 표현이 아니고, 하나의 정신적 결합의 표현인데 이것은 부부가 서로 결합됨으로써 남편과 아내가 정신적으로 하나가 되어 혼연일치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육체적으로는 구별이 되고 개별적인 본성들은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정신적으로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A. 사랑과 누림의 관계

아내가 남편에 대해서 정신적이고 주도적인 결합을 느끼게 되는 중요한 조건이 무엇인가 하면 ‘누림’입니다. 남편이 자기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할 때 이 아내는 남편이 자신의 남편이라는 것을 확신하면서 정신적인 결합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아내의 영혼을 떨리게 할 수 있는 것은 남편이 자신을 최종적인 사랑의 목표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누리는 것, 곧 그것 이상의 궁극적 목적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이 그 남자에 의해서 누려지고 있다고 생각될 그 때에 정신적인 연합이 유지가 되고 남편이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기뻐한다고 생각할 때에 정신적 결합을 느낍니다. 그런데 남편이 느끼는 아내와의 정신적 결합은 아내가 느끼는 남편과의 정신적 결합과는 조금 다릅니다. 이것은 서로 다른 남녀의 성향 때문입니다.

B. 사랑과 의존의 관계

반면, 남편은 아내가 자신을 의지할 때 정신적 결합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성에게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기 위해 자신을 밖으로 드러내고 과시하고자 하는 성취지향성을 주셨습니다. 남성들은 여성들을 지배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표면이고 그 이면을 더 들어가 보면 지배한다기보다는 자기를 의존하는 여자를 찾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자존감을 느끼면서 남성으로서의 자기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정신적인 연합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남성입니다. 그게 바로 남편이라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고유한 입지를 개척해나가고자 하는 남편을 꺾는 일은 정신적 결합을 깨뜨리는 것이 됩니다. 아내가 자신에게 순종하지 않을 때, 자신의 힘으로 아내를 통솔할 수도 없고, 아내를 통해 가정 안에서 자신의 위치가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 이 결합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남편에게 복종하는 아내는 남편을 세워주는 지혜로운 아내입니다. 그 속에서 남편은 더 많은 정신적 소속감을 느끼게 될 것이며, 우리 가정은 온전한 가정으로 회복되어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이 가정에 세우신 질서 가운데, 경건한 남편이 있고 또 그 남편의 중심에 주님이 계셔서, 그래서 남편이 하나님 앞에서 수시로 깨뜨려지고 꺾어져서 주님의 사랑으로 합치되고 주님의 목적을 자신의 목적으로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계명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 그것이 바로 애덕(愛德)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 안에서 남편은 자신의 위치를 찾고, 그 남편의 의해 아내는 사랑을 받고, 그 아내의 사랑 안에서 남편은 존귀히 여김을 받는 가운데 질서가 이루어집니다. 이 질서는 누구를 억압하고 폭압하는 질서가 아니라 서로를 깊이 신뢰하고 사랑하는 가운데 형성되는 질서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랑의 질서를 이루기까지 지불해야 하는 수고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가족구성원들은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있지만 모두 망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서로가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손쉽게 변화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그것을 인내하면서, 서로의 변화를 기다려줄 수 있는 오래 참음과 자비가 필요합니다. 즉 많은 인내와 자기 죽음,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우리 안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V. 결론과 적용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많은 은혜는 소명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은혜를 주시고 진리를 통해 여러분들을 살리시고 여러분들의 영혼에 부흥을 주시고 심령을 감화시켜 하나님을 사랑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십니다. 그런 자원들을 활용해서 꺾을 수 없는 자신을 꺾고, 더디게 변화되는 남편을 기다려주고, 가족들에 대해 인내하며 자기를 깨뜨려서 그 가족들을 세우게 하십니다. 가장인 남편이 중심에 서있고 사랑 안에서 모든 가족들이 함께 사랑의 질서를 이루며 살아가는 그러한 가정으로 변화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가정 안에서 망가진 가족구성원들이 더 온전한 사람으로 변화되어갑니다. 그리고 그렇게 변화된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목양을 받으면서 더 온전하고 신령한 사람으로 자라갑니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 나아가서 무엇이 참된 것이고 그릇된 것인지를 옳게 분별하여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보여주고, 지식과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과 삶으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고 아내와 남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가정의 이치를 깊이 이해하고 비둘기처럼 순결할 뿐만 아니라 뱀같이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서 어두운 시대에 여러분들의 가정을 세우고 또 여러분들을 통해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될 여러분의 자손들이 그런 가정을 세워서 하나님의 뜻에 기여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다시 한 번 잊을 수 없는 은혜의 부으심을 기대하면서…….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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