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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한 가정의 문을 여는 열쇠(4) : 절제하는 가정 (갈 5: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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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의 문을 여는 열쇠 4
갈라디아서 5장 22-24절

“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      니라 ”

예수 믿으면 정말 가정이 행복해집니까? 예,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오늘 성경에서 본 것처럼 사랑, 기쁨, 평화, 오래참음, 자비, 선함, 온유, 충성, 절제의 아홉 가지 열매가 맺힙니다. 이런 분위기가 있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아니겠습니까? 자녀들도, 사업도 잘 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가정이 받는 복입니다. 

“예수를 믿는데도 행복하지 않은 가정도 있던데요?” 어떤 분은 이렇게 묻고 싶을 것입니다. 이유는 예수님을 진짜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자기 노력으로 잘 살아보려는 이들이 그런 사람입니다. 사람의 노력은 결국 실패합니다. 겉으로 잘 사는 것처럼 꾸밀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모두에게 스트레스가 됩니다. 우리는 노력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외국에 있는 아들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축하 편지를 쓰는데, 아내가 옆에서 읽어보니 ‘결혼은 참으로 달콤하고 행복한 것이다. 아들아 너는 참으로 소중한 결단을 했다. 이 아버지가 행복하듯이 너도 반듯이 행복할 것이다.' 라고 써 내려 가는 것입니다. 아내가 흐뭇해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버지가 재빨리 P. S. 첨언했습니다. '방금 네 엄마가 나갔다. 이 바보 멍청아 결혼은 무덤이야. 너는 이제부터 죽었다.' 부인은 그것도 모르고 편지를 얼른 우체통에 집어넣더랍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더 이상 노력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으로 오신 예수님을 의지합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변화를 이루시고 가정을 행복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인 것입니다.

오늘은 마지막 열매인 절제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지막 열매라 가장 하찮은 것이 아닌가 생각될만 하지만, 아닙니다. 절제는 가장 중요한 열매입니다. 그래서 오늘 그 하나만을 말씀을 드리려는 것입니다.

절제는 예수님을 믿으면 어떻게 사람이 변화되는지, 성령의 열매가 어떻게 맺어지는 지를 설명해 주는 열매입니다. 

절제란 쉽게 표현하면 더 이상 자기 마음대로 살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대로 사는 것이 왜 문제입니까? 누구나 마음대로 살고 싶어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마음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 막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자녀들을 길러 보면 우리에게 마음대로 하려는 강한 욕구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어린 아이도 그렇습니다. 그러면 부모 마음이 어떻습니까? 걱정이 됩니다. “제발 내 말 좀 들어라! 그것이 네가 잘되는 길이야!” 하며 자꾸 잔소리를 하게 됩니다. 이것이 절제인 것입니다.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타락이 마음대로 하려는 욕심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 먹으면 정녕 죽는다고 하셨는데도 사탄이 유혹하니 마음대로 하고 싶은 충동에 넘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에덴 동산의 복을 잃어버리고 우리에게는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마음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밭도 사람도 마음대로 내버려두면 반드시 망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정신 차려야 합니다. 타락한 이후,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삶이 마음대로 살았기에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마음대로 살면 파멸입니다.

  저는 돼지가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터져 죽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너무 많이 먹어서 병든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는 개미가 너무 일을 많이 해서 과로로 쓰러졌다는 말을 들은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들 중에 과로로 쓰러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는 그 어떤 동물들도 살기 힘들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들 중에는 살기 힘들다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 모든 문제의 핵심이 마음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야고보서 1장 15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그래서 야고보서 1장 19-20절에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좋은 것 조차 절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나쁜 것만 절제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설교 준비를 하다보면 새로운 말씀을 준비하는 것보다 잘라내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다 보면 이것도 전하고 싶고 저것도 덧부치고 싶은데 그렇게 하면 설교는 망치게 됩니다. 잘라낸 것이 많은 설교가 영감이 있는 설교입니다. 설교 준비는 하나 하나 다 잘라내는 작업입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그 설교를 통해서 성도들을 만나시고 말씀하시고 그래서 은혜가 됩니다.
  대표 기도도 그렇습니다. 하고 싶은 모든 기도를 다 하면 대표 기도는 망칩니다. 대표 기도와 개인 기도의 차이는 잘라내는데 있습니다. 대표 기도하는 사람이 자기 마음에 일어나는 감동을 다 기도하면 기도 중에 다 좁니다. 그러나 잘라낸 것이 많은 기도는 온 회중들의 마음을 함께 묶어내는 영감있는 기도입니다.

  어느 장로님이 딸만 낳았다가 뒤늦게 아들을 보게 되었는데, 이 녀석이 얼마나 귀여운지 도무지 눈을 떨 수가 없더랍니다. 자다가도 '이 녀석 잘 자나?' 하고 가서 잠자는 모습을 한참 들여다 보고 와서는 다시 잠을 자고, 일하다가도 불쑥 집에 전화를 걸어서 ‘애 잘 노느냐?’고 물어보았답니다. 가족들이 잘 모르겠다고 대답을 하면 ‘아니 애가 나가 노는데 안전하게 노는지 궁금하지도 않느냐?’고 호통을 쳤답니다. 그리고 나서 조금 있다 또 전화를 걸면 ‘바로 전에 전화를 걸었는데 왜 또 걸었냐?’ 고 가족들이 말을 하면‘ 그렇게 말하는 가족들이 참 이상하다.’ 는 생각을  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거실에 앉아 있는데 아이가 보이지 않자 잘 놀고 있는가 걱정이 되어서 황급하게 나가 보았더니 마당에서 잘 놀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와서 거실에 앉았는데, 마음 속에 분명한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너 누구 바라보고 사니? 그 아이 누구 것이니? 내게 맡겨라.’ 이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하면서 다리에 힘이 쭉 빠지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주님의 것이니 주님께 맡기겠습니다." 그렇게 회개를 했는데 그 이후부터 마음 속에 평안이 찾아 오더랍니다. 그 후부터는 잠깐 눈에 보이지 않아도 '잘 놀고 있겠지...' 그런 마음이 생겼답니다. 그러면서 그 동안 보이지 않던 딸들 얼굴이 눈에 들어오더랍니다. 그 전에는 보이지도 않았답니다. 그런데 그 딸들이 보일 뿐 아니라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사랑도 절제가 필요합니다. 야곱의 편애가 이스라엘 가문을 불행하게 만든 씨앗이었다면, 편애 포기는 이스라엘 가문을 행복하게 만드는 시작이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책 하나 달랑 던져주지 않고, 직접 우리 마음에 성령님으로 오신 것은 우리의 주님이 되시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 말은 예수님을 영접하였으면 더 이상 자신의 감정, 욕심, 목적대로 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제부터는 예수님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절제입니다.
그 때 주님은 역사하십니다. 가정을 행복하게 만드십니다.

  24절에 보면 예수 믿는 것이 무엇인지 정의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여기서 육체라고 하는 것은 부패한 인간성을 말하는데, 그것을 구체적으로 "정욕"과 "탐심"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자신은 십자가에 못박힌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대로 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구절이 “못박혔다” 는 구절입니다. “못박아야 한다” 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 옛 사람은 이미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못박혔음을 알게 됩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교회 다닌다고 다 예수를 믿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과 자신이 십자가에서 이미 죽었음을 믿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생명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로마서 6장 6절)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
(로마서 6장 8절)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우리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이 십자가 복음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믿으면 예수님과 함께 사는 체험이 비로서 일어나게 됩니다. 내가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내가 인정하고 믿지 못하면 교회만 왔다 갔다할 뿐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나를 변화시키고 우리 가정을 바꾸시는 것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가정이 변화되지 않았다고 하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1948년 화란의 암스테르담에서 세계 교회 협의회가 열렸을 때, 개회 예배를 드리는데 강단 앞에 큰 관이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장례식을 치르는 광경이었습니다. 사회자의 인도에 따라 모든 사람이 한 줄로 서서 관 속에 있는 사람에게 조의를 표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씩 앞으로 나와서 관 속을 들여다 보고는 모두가 깜짝 놀랐습니다. 관 속에는 큰 거울이 하나 놓여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관 속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자기를 본 것입니다. 그 장례식을 통하여 각국의 교회 대표들이 이미 예수님과 함께 옛 사람이 죽은 사람인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후 산적해 있던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아무런 잡음 없이 아주 쉽게 처리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제부터 장례식 치르고 산다고 생각해 보세요. 말 한마디를 해도 예수님께 내 몸을 빌려 드렸다고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한 사람만 그렇게 살아도 예수님 가정됩니다.

죽는다고 하니 오히려 실감이 나지 않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종이 되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3절)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종이라는 단어는 가장 비참한 단어 입니다. 특별히 성경이 쓰여지던 그 당시에 가장 비참하게 쓰여지던 단어였습니다. 누구나 종노릇하기 싫어합니다. 종이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제 눈이 뜨여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대로 살아서 망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종이 되고 서로 사랑으로 종노릇하는 것이 사는 길이고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어떤 청년이 슈바이쳐 박사에게 참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고 질문을 할 때 그는 "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지 말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살아라. 그러면 너도 행복하게 된다." 고 했습니다.

  무디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평가 할 때 그가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종을 거느리고 살았느냐?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종 노릇 했느냐 하는 것이다.”

언제나 예수님 방식이 정답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제가 목회 하면서 마음 편하게 목회한 때가 있고 괴롭게 목회한 때가 있었습니다. 괴롭게 목회한 때는 교인들을 고치려 할 때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는 중에 바다를 잠잠케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예수님도 사람의 버릇을 고쳐서 천당에 데려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냥 십자가에 피를 흘려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이제는 네 허물과 좌를 덮어주고 보지 않겠노라 해서 데리고 가셨던 것입니다. 그 때 저는 목회는 교인들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가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였습니다.

  어느 집사님은 행복한 가정을 꿈꾸며 결혼했으나, 마음이 상처투성이가 되었습니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말이 있지만, 남편에 대한 신뢰가 깨어지고 부부 관계는 고통스러운 것이 되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하던 중 마음에 주님의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너는 왜 남편만 보느냐? 너와 네 남편 사이에 있는 나를 보지 못하느냐?’ 그 순간 이 집사님에게는 빛이 비취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 이제부터는 남편을 보되, 예수님을 바라보는 거야!" 그 후 남편을 보든지 자녀를 보든지 늘 예수님을 바라보려 했더니 생각도 달라지고 말도 달라졌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잔소리를 하고 싸우기까지 해도 변하지 않던 남편이 스스로 바로 서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남편과 주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고, 남편의 자존감이 세워지고, 대화가 가능해지고, 남편에 대하여 감사함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가정 행복은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미국의 전 대통령 카터 부부는 금실이 좋기로 소문이 나있습니다. 이들이 하버드 랜드크리프 대학에서 강연을 끝내고 질문을 받을 때, 한 학생이 "당신들은 어떻게 그렇게 잉꼬 부부가 되었느냐?" 고 묻자 카터가 대답했습니다. "우리의 결혼에서는 3할이 사랑이었고, 7할은 용서였습니다." 그러자 아내 로잘린이 일어나서 카터의 대답을 이렇게 수정했습니다. "아닙니다. 우리의 결혼에서 1할이 사랑이었고, 9할이 용서였습니다." 장내는 웃음과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용서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였던 것입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지 않은 분이 계십니까? 이제는 예수님을 영접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지난 3주간 예수님을 영접하면 어떤 사람이 되는가? 어떤 가정이 되는 지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말씀을 많이 들어도 여러분 자신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결코 여러분의 삶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여러분의 삶에서 맺어집니다.

  지난 주간, 아버님 어머님 생신이어서 온 가족들이 다 모였습니다. 예배드리는데 갈라디아서 6장 7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부모님이 여러 번의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주의 종의 길을 끝까지 걸어주신 것이 우리들의 복된 삶의 씨앗이었구나! 깨달았습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예수 믿고 평생을 산 것만 가지고도 엄청난 유산을 물려주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다시 태어나면ꡐ무엇이 소원일까?ꡑ생각하다가 ‘예수 잘 믿는 부모님에게서 태어날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이 드는데 너무나 울었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 때문에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가슴에 새겨진 인간에게 대한 잘못된 상들을 지우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가? 결국은 신앙으로 승리했지만, 승리하기까지 얼마나 뼈아픈 과정이었던가? 그러면서 그럴 리는 없지만,ꡐ만일 다시 태어난다면, 제가 정말 우리 부모처럼 되는 것 이외에는 소망이 없는 그런 부모를 만나서, 주님 사랑의 그늘에서 산다면 얼마나 행복할까?ꡑ하는 생각을 했다고 했습니다.

  미국의 라이언 화이트(Ryan White)라고 하는 소년이 열세 살 때 혈우병을 앓아서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그만 수혈이 잘못되어서 AIDS 후천성 면역 결핍증이라는 병에 걸렸습니다. 이 사고로 죽음을 기다려야 했는데, 이 아이는 그 사실을 알고도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밝은 웃음을 보였고, 모두에게 친절하게 했습니다. 오히려 염려하는 부모를 위로하였습니다. 이 사실이 방송에 보도된 후에는 많은 유명 인사들이 방문했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레이건도 팝 가수 마이클잭슨도 방문했습니다. 결국 5년을 더 살다가 18세에 이 소년은 죽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나눈 대화가 기독교 잡지에 실렸습니다.
  아버지는 죽어가는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미안하다. 나는 아무 것도 너에게 해줄 것이 없구나. 이 아빠가 더 이상 해 줄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아들은 대답했습니다. "아니예요. 전 많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아빠가 제게 준 선물보다 더 큰 선물을 준 사람은 없었어요. 아빠는 내게 천국 열쇠를 주었잖아요. 예수님을 소개해 주었고, 영생을 얻도록 해주었습니다. 저는 이제 하나님께로 가게 될텐데, 이보다 위대한 선물은 다시 없어요. 전 아빠에게 감사하고 있어요."

여러분, 가장 귀한 선물이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아직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여러분, 이 일을 뒤로 미루지 마십시오. “예수님, 제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합니다. 나를 구원하시고 내 집을 구원해 주십시오.” 오늘 여러분이 기도하시면 주님은 반드시 그렇게 응답하십니다.
교우 여러분, 교회를 다니긴 했지만 아직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지 못하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오늘 예수님이 여러분의 주님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나는 예수님과 함께 정욕과 탐심이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내 생명이십니다.” 여러분이 우리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변화의 복을 받아서 행복한 삶이, 행복한 가정이 되는 역사가 여러분에게 있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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