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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주일] 달라진 사도들의 영성 (행 4: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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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사도들의 영성(행4:23-31) 

마태,마가,누가,요한복음인 사복음서와 오늘 우리가 함께 펼쳐들고 있는 사도행전은 똑같은 성경이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은 무엇인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마치 땅에서 달리는 자동차와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다른 거처럼 다릅니다. 땅위에서 달리는 자동차가 아무리 빨라도 하늘을 나는 비행기의 맛을 알 수는 없습니다.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의 내용은 마치 하늘을 나는 비행기와 대기군을 뚫고 우주를 날으는 우주로켓만큼이나 다릅니다. 똑같이 하늘을 날지만 비행기는 무엇인가 높이 날기는 하지만 그 이상은 안됩니다. 비행기는 무엇인가 대단한 것 같지만 시간적으로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 이상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주 로켓은 똑같이 땅에서 출발하지만 높은 하늘 아니 대기권을 뚫고 올라갑니다. 이때부터는 시간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환경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제자들을 보십시오. 사복음서의 제자들과 사도행전의 제자들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마치 땅에서 달리는 자동차가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된 것처럼 달라졌습니다. 아니 하늘을 날던 비행기가 대기권을 뚫고 날아가는 로켓이 되어버린 것처럼이나 달라졌습니다.
 

무엇이 저들로 하여금 이처럼 달라지게 한 것입니까?

조그마한 계집종 앞에서 부들부들떨면서 꽁무니를 빼고 달아날 궁리나 하던 베드로는 더 이상 그런 겁에 질린 불쌍하고 초라한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자기들에게 모여앉아 누가 크냐 다투기나 하던 제자들이 완전히 달라져 버렸습니다. 이제 사람이 달라지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나 잡아먹고 살던 바다비린내가 풍기던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 역사의 흐름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일찌기 바벨론이 느부갓네살이 페르시아의 사이러스가 그리고 마케도냐의 알렉산더가 로마의 시저가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일들이 이들을 통해 시작된 것이니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 시작된 것입니다. 저들은 이제 더 이상 땅이 아니라 하늘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저들은 더 이상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저들은 육적인 만족과 육적인 즐거움 육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 영적인 만족 영적인 즐거움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서 안달하던 사람들은 방문을 걷어차고 한 길로 달려와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이 터져라 외쳐대며 자신들의 생명을 순교의 제물로 기꺼이 던져버렸습니다. 이제 저들에게는 두려움이 아닌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무엇이 저들로 하여금 이렇게 달라지게 한 것입니까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이토록 능력있는 사람들이 되게 했습니까? 무엇이 사복음서에서 사도행전으로 넘어오며 믿음의 색갈을 복음의 물결을 달라지게 한것입니까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성령의 오심입니다. 오직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신 그 성령이 약속대로 제자들에게 오신 것입니다. 성령의 오심은 어느날 갑자가 있어진 사건이 아닙니다. 성령의 임하심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비로소 주님이 원하셨던 성령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달라진 사도들의 기도의 영성을 보게 됩니다.

저들의 기도는 그냥하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한 자리에서 마음을 모두어 부르짖어야 하는 처절한 기도였습니다. 저들은 절대위기앞에서 도망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처절한 기도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참 성령의 사람들은 모든 환경속에서 그것이 순경이든 역경이든 먼저 기도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마가요한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신 후에 초대교회는 엄청난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전도의 열풍 부흥의 열풍이 불면서 하루 3천 5천이상이 회개하여 돌아오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단순히 구원의 사람들만 늘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약속가운데 임하신 은혜의 성령은 마가요한의 다락방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하늘로부터 임한 성령은 다락방을 충만케 하시더니 성령받은 사람들을 통해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 세상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을 흔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자기의 부하격인 사두개인들을 데리고 몰려와서 흘러넘치는 복음의 물결 가장 중심부에 있는 두 사도 베드로와 요한을 체포해 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사실 복음의 역사는 항상 그러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타협을 요구합니다. 행4:17,18절에 이것은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저희를 위협하여 이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사람에게도 말하지도 말게 하자 하고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하니 베드로와 요한은 대답합니다. 19절에요 하나님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 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없다하니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언제나 하나님 말씀이 중요합니다.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소리를 듣습니다. 앉아서 계산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그리스도에게 내 던져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예수님의 소원이며 예수님의 삶이었으며 목적이며 영적전쟁입니다. 전도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이때 사도들은 기도의 자리로 온 것입니다. 풀려나서 가족에게로 간 것이 아니라 기도의 자리에 온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은혜로 삶을 사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기도의 내용과 결국입니다.

저들의 기도의 내용은 상당히 감격적입니다.

저들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시여 이런 시험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결해달라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원수들을 일격에 없애달라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저들은 무어라 기도했습니까 4:29절입니다.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입니다. 전도 때문에 죽게되었는데 다시 전도를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저들의 핍박을 면하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길 수 있도록 능력을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참 그리스도인이요 기도요 영성이요 이것이 문제를 만나고 시험을 만났을 때의 성령의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온상을 구하기보다는 다니엘처럼 느브갓네살앞에서 바울처럼 아그립바앞에서 모든 환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믿음을 구해야 합니다. 찰스핀은 이야기합니다. 죄인이 회개하지 않는 죄보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사람들이 성령충만을 잃어버린채 살아가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토리는 우리가 성령충만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를 욕보이는 것이라 했습니다. 성령충만은 옵션이나 색깔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제자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또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저들은 사단의 협박앞에 피하지 않았습니다. 저들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저들이 간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보낸 것입니다. 저들은 세상을 향한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성령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구원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성령은 사모하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성령의 임하심 그리고 성령충만 우리로 하여금 참 성도의 모습으로 무장시키실뿐 아니라 영원한 증거자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기도의 가장 큰 축복은 응답이 아니라 성령충만입니다. - 아멘-
(유재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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