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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주일] 성령과 권능 (행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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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유명한 샤프츠 버리경이 한번은 시내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하는데 한 어린아이가 이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아저씨 저 좀 안아서 건너 주세요.” 위험한 길이라 건너기가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샤프츠 버리경이 이 아이를 안고 횡단보도 건너편까지 옮겨 주었습니다. 그때 그는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이런 어린아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닥칠 때 우리는 하나님에게 “하나님 저 좀 도와주세요.” 라고 부탁하는 것이 신앙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는 “주여 저를 도와주세요.”라는 우리의 요청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성령은 우리 가까이 계십니다.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와 동행하고 계십니다.

남미에서 유명한 목회를 했던 후안까를로스 오르티즈 목사님은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 “성령은 장식품이나 선전용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령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살 때가 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가르킵니다. 성령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 인생길에 동행해 주십니다.

지금은 목사님이 되셨지만 어떤 분의 간증 속에 자신이 군대에 굉장히 늦게 갔다고 합니다. 30세에 군대에 가니 보통 고생이 아닙니다. 내무반에 처음 들어가면 신고식이 있었습니다. 기압도 받고 노래도 부르고 고참들이 시키는 것을 다해야 됩니다. 그런데 자기에게 떨어진 일이 유행가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유행가를 부르지도 못하고 재주도 없었습니다. 어쩔 줄 몰라 하는데 그 속에 있는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걱정하느냐? 네가 잘 부르는 찬송 433장을 불러라!” ‘나의 갈길 다가도록’이라는 찬양입니다. 힘차게 그 찬송을 불렀다고 합니다. 내무반에 고참이 야유를 합니다. 위협과 조롱이 막 날아옵니다. 그런데 뒤에 있던 한 고참이 “야! 조용히 해! 찬송가 좀 들어보자!”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조용해지고 4절까지 다 들었다고 합니다. 그 후에 고참이 와서 성경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참에게 성경을 가르쳐 드렸습니다. 고참이 이후에 예수 믿게 되고 교회에 나가고, 지금은 큰 교회 중직자가 되어 열심히 섬기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성령님은 거창한 환경에 계신 것이 아닙니다. 내무반에, 신고식에,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에게 피할 곳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그렇게 어려운 본문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십니다. 그리고 승천하시기까지 40일을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십니다. 예수님은 승천할 때가 되었을 때 제자들에게 한 가지 당부를 하셨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이른바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 받기 전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한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능력이 많으시니 너희에게 불로 세례를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불의 세례를 받고 나서 예루살렘을 떠나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성령을 받지 않고는 나가서 복음을 전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 앞에 닥치는 환란과 핍박과 역경을 그들은 감당 할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말합니다. 권능은 영어로 말하면 ‘Power’입니다. 헬라어로는 ‘두나미스’ 강력한 능력을 너희가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천지를 창조하시는 능력, 천둥과 번개를 발하는 힘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력한 능력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가 나가 내 복음의 증인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제자들은 성령을 받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120문도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받기를 기도할 때 오순절날 홀연히 하늘로부터 바람 같은 강한 소리가 나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그들에게 임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최초의 성령강림 사건입니다. 오늘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이 말씀하신 약속의 성령의 능력을 입고 나가서 복음을 증거 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성령이 임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될까요? 역사적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을 보면 공통된 현상을 보입니다.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됩니다. 용서 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게 됩니다. 인간적으로는 용서가 되지 않지만 성령이 임하면 용서의 힘이 생깁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사랑의 원자탄으로 불리는 손양원 목사님을 보십시오. 자기 두 아들을 총으로 죽인 공산당 청년을 자기 아들로 삼습니다. 요즘 한화의 김승현 회장은 자기 아들 몇 대 때렸다고 보복 폭행을 해서 집안이 망신을 당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자기 아들을 죽인 사람을 용서하고 자기 자녀로 삼고 대학까지 보내고 결혼까지 시켰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능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예전에 불평을 하며 하던 일을 감사하며 할 수 있습니다. 불평의 삶이 아닙니다. 찬양과 감사의 삶입니다. 지금은 목사님이 되셨지만 이런 간증을 하셨습니다. 자신이 신학교를 다닐 때 너무 집안이 어려워 방학 때 공사장에 가서 일을 했다고 합니다. 벽돌을 옮기고 모래를 나르며 학비를 벌었다고 합니다. 공사장에 일하는데 자기 옆에 같이 일하는 청년이 늘 불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에 나오면 욕하고, 불평하고, 부모원망이고, 한탄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기는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주위사람들이 너는 이렇게 일하는 것이 왜 그렇게 기쁘냐고 물었습니다. “내안에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에 나는 기쁘게 일할 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성령의 은혜를 받지 않으면 우리는 감사와 찬양 기쁨의 삶을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또한 우리는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환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며 기뻐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문학가로 오랫동안 투옥생활을 하고 고문도 많이 당한 리차드 범브란트라는 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아무도 없는 감옥 안에서 춥고 배고프고 누더기를 걸친 체 나는 매일 밤 기뻐서 춤을 추고 있다. 때로는 기쁨이 넘처 흘러 그것을 표현하지 않으면 폭발할 것 같다.” 그 춥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춤을 추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주시는 성령의 기쁨이 끌어 올랐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복음전하고 싶어지고 복음전하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능력이 꼭 필요합니다. 아무리 교회가 크고 교인이 많아도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별 가치가 없습니다.

여러분 지남철 아시죠. 지남철에는 자력이 있어서 못이나 다른 쇠를 끌어당깁니다. 아무리 쇠가 크더라도 자력이 없으면 작은 못 하나도 당기지 못합니다. 내가 작은 쇠도 자력이 있으면 지남철이 되어서 강한 것도 끌어당길 수 있습니다. 바로 성령의 능력은 자력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이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서 한 영혼을 구원하시는 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을 주신 근본적인 목적은 나아가서 환경을 극복하고 복음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네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니” 라고 했습니다. 증인이 무엇입니까? 목격자입니다. 원어로 말하면 ‘마르투스’ 순교자라는 의미입니다. 복음을 위해서 순교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내가 본 것에 대해서 당당히 증언할 수 있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오늘 이 어렵고 강퍅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받지 않고 어떻게 복음을 증거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복음 증거자가 되도록 여러분 충만한 능력을 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의 능력이 임할 때 사람들이 변화되었습니다.
평양 시내에 유명한 깡패였던 김익두씨도 성령이 임하니까 거듭나고 새사람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어 유명한 부흥사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치료했습니다. 존 웨슬리는 목사의 아들이고 목회자이지만은 성령을 받지 못했을 때 방황하고 좌절하는 목회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말씀을 보다가 성령이 임하니 거듭남을 경험하고 불타는 열정을 가지고 영국의 전 시골을 다니며 복음을 증거하여 오늘날 감리교회의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성령님이 임하시지 않으면 능력 있는 삶은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사역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성령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보면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 이하에 예수님이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있겠다는 것은 성령이 너희와 함께 있다는 뜻입니다. 성령은 우리와 동행하시는 영이십니다. 그래서 성령은 여기서 보혜사 이십니다. 보혜사는 ‘파라클레토스’라는 말인데 위로자, 변호자, 도와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웬만한 어려움은 이겨 낼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이 내안에서 위로를 주시고 격려를 주시고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요한복음 14장 18절에 보면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오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 임재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성령님의 사역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 해 주십니다.

로마서 8장 16절에 보면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할 때 성령님이 우리 안에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성령으로 아니하면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고백할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성령이 여러분 가운데 임재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시켜주고 증거 해 줍니다. 여러분 지나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당신의 부모님 입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라고 물어 보십시오. 미친 소리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자에게 하나님이 우리의 영적 부모이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 해 주십니다. 여러분 자녀가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자녀가 되면 부모가 누린 특권을 다 누릴 수 있습니다. 부모와 함께 식사할 수 있고, 부모에게 필요한 것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더더욱 부모가 세상을 떠나시면 많은 재산도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뜻은 하나님의 상속자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 땅을 죽을 때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얻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 종과 자녀는 다릅니다. 종은 일하면 주인이 밥은 먹여줍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요구는 못합니다. 종이 좀 덥다고 “주인님 아이스크림 사주세요!” 라고 말을 못합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에게 언제든지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제 방에 오신분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워낙 높고, 오실일도 별로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 아이는 수시로 옵니다. “아버지 헌금주세요!” “이놈아 헌금도 안가지고 교회 왔냐?” 아들이기 때문에 올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가 언제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요한 웨슬리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성령을 받고 난 후에 비로소 종의 믿음이 아들의 믿음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종의 믿음이 아닙니다. 아들의 믿음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시고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성령의 사역은 죄를 이기게 하십니다.

죄의 유혹이 대단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이기는 방법은 성령을 의지 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로마서 8장 13절에 보면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반드시 살리라.”라고 말합니다. 몸의 행실은 죄의 행실을 의미합니다. 죄악의 유혹을 성령으로 죽이면 너희가 살 것이라는 말입니다.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는 이 땅에서 승리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에 보면 성령은 불로 상징됩니다.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임했다. 때로는 물로 상징됩니다. 성령이 생수같이 넘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불은 무엇입니까?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성령은 물과 같이 우리의 모든 죄악 된 유혹을 다 씻어 버릴 수 있습니다. 성령을 의지 하지 않으면 이 땅의 유혹에서 해방될 수가 없습니다.

지난 수요일 사사기 15장 14절 말씀을 읽어 드렸습니다. “여호와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하며 그 팔위의 줄이 불타는 산과 같아서 그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여호와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했습니다. 삼손이 블레셋 사람에게 꽁꽁 묶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니 그가 그것을 마른 풀처럼 쉽게 끊어 버렸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죄는 우리를 얽어맵니다. 죄의 노예가 되게 만듭니다. 어떤 분은 알코올에 중독되고, 어떤 분은 마약에 중독자가 되어서 마약에 꼼짝 못하게 됩니다. 우리를 얽어매고 있던 죄의 습관에서 우리가 어떻게 자유하게 될 수 있습니까? 성령의 능력이 임할 때, 성령의 불이 임할 때, 우리가 못된 습관을 던져 버리고 자유 할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의지 하지 않으면 우리가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옛날 어느 전쟁에서 적군과 싸우다가 패전을 했습니다. 몇 명이 도망을 와야 되는데 산이 포위되어서 산 밑을 내려 올 수가 없었습니다. 적군들이 이들을 잡을 수가 없으니 산에 불을 질렀습니다. 밑에서 불이 타고 올라오는 것입니다. 이제 꼼짝없이 불에 타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에 아군중에 한명이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있는 곳에서 맞불을 놓았습니다. 그러니 자기들 있는 자리에 불이 다 타버리니까 불이 옮겨 붙지 않는 것입니다. 탄 자리에 있으니까 안전하게 보호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동일한 것입니다. 내안에 성령의 불이 임할 때 밖에서 오는 죄악의 불, 욕망의 불을 이길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네 번째로 성령의 사역은 꿈과 비전을 줍니다.

요엘서 2장 28절에 보면 이미 오래전에 만민에게 성령이 임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 속에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라고 했습니다. 혹시 연세가 많으신 권사님들도 어떤 꿈을 꾸고 계십니까? 마치 10대의 청소년처럼 마음에 꿈을 가지고 흥분되어 살아가고 계십니까?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꿈을 부어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80,90되신 노인들도 꿈을 꾸게 됩니다. 오늘보다 더 좋은 미래에 대한 꿈이 있습니다. 자녀에 대한 꿈, 교회에 대한 꿈, 미래에 대한 꿈, 민족에 대한 꿈이 있기 때문에 하루하루 살 가치가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 너희 젊은이들이 이상을 볼 것이며 라고 합니다. 이상이라는 것은 환상과 비전입니다. 성령은 비전을 보여주는 영입니다. 그래서 살맛도 없고 낙심되고 하루하루가 권태로운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면 살맛이 나고 꿈을 가지고 비전을 가지게 됩니다.

한 민족이 성령을 받으면 그 민족이 변화되어 지는 것입니다. 한 가정이 변화되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 믿는 집을 보면 안 믿는 집과는 다릅니다. 그들은 성령이 주는 꿈과 비전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보며 기도하고 노력하는 성실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나라에도 국회의원, 장관이고 잘된 사람을 보면 크리스챤 수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성령이 오셔서 꿈을 부어주시고 희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희망이 없으면 죽는 일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꿈과 비전을 줍니다. 성령으로 인해 여러분 안에 희망이 넘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섯 번째로 성령은 우리에게 은사와 열매를 허락하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방언의 은사, 예언의 은사, 구제의 은사, 병고 치는 은사, 믿음의 은사, 기적을 행하는 은사 등 은사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성령의 선물로 은사가 주어지는데 무려 46가지의 은사가 성경에는 소개됩니다. 외적인 능력입니다. 그래서 똑같은 일을 해도 은사가 있는 사람이 훨씬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똑같이 기도해도 병고침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기도하면 더 빨리 낳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특별한 능력입니다. 그런가 하면 내적으로는 열매를 맺게 합니다. 열매는 성품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 이하에 보면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렇게 9가지가 소개됩니다. 성령이 임하면 내 성품이 변화됩니다. 그래서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사랑하게 됩니다. 기뻐할 수 없는 사람이 기쁨을 가지게 됩니다. 늘 염려와 근심가운데 불안한 사람이 마음에 화평이 생깁니다. 전에는 누가 조금만 뭐라고 하면 화가나고 분노를 품게 되는데 이제는 참게 됩니다. 우리의 성품이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의 은혜를 받을 때 은사도 맺히지만 열매도 맺어가야 합니다. 그럴 때 진정한 변화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좋은 성령은 다 이미 받았습니다. 대부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 안에 성령이 계신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분이 너무 많습니다. 성령님을 모시고 있지만 성령의 도움을 구하지 않습니다. 성령을 찾지 않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때 이미 우리에게 성령의 세례가 임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그 특징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속에 예수님을 내 구주로 고백하고 내 죄가 씻음 받은 것을 믿을 때 이미 여러분 안에 성령님께서 임재하고 계신다는 증거라고 생각해도 틀림이 없습니다. 이제는 성령의 충만을 받으셔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 보면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성령 충만할 때 우리는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나를 온전히 지배하십니다. 나는 그 분 앞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어떤 환경도 극복해 나갈 수 있습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으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120문도가 모여서 기도할 때 그곳에 성령의 역사가 임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31절에 “그들이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고 합니다. 모여서 기도할 때 성령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여러분 새벽기도를 사모하시고, 심야기도회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구역 예배를 사모하십시오. 모여서 기도할 때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이번 주 구역공가에는 다른 기도제목 말고 성령충만 받기를 기도하자고 구역공가를 만들었습니다.

성령을 받으려면 말씀을 들으셔야 합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임했다고 합니다. 말씀들을때 성령이 임합니다. 여러분 예배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들은 그런 간증을 많이 합니다. “목사님 교회 올 때는 마음속에 걱정근심이 많았는데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니 마음의 평화가 오네요.” 평화의 열매가 맺는 것입니다. 성령이 나에게 역사하는 증거입니다. 어떤 분들은 삶에 좌절하고, 낙심하고, 어떻게 하나 걱정하면서 왔는데 하나님 말씀을 들어보니 용기가 생기고 소망이 생깁니다. 이것이 성령의 증거입니다. 말씀들을 때 성령이 역사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회개할 때 성령이 임합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우리가 회개합시다. 우리 마음속에 생각나는 죄악들을 늘 주님 앞에 고백합시다. “주님 이런 잘못도 저질렀네요. 제가 연약해서 이런 잘못을 저질렀네요. 제가 실수했네요. 용서해주세요.” 그렇게 할 때 성령님은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고 여러분에게 충만한 은혜로 임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여러분 성령님은 사모하는 자에게 임하십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7장과 누가복음 11장에 보면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 있습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너희중에 아비 된 자가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고 하면 전갈을 줄자가 어디 있느냐 세상에 악한 아버지라도 자식에게 필요한 것을 줄지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여러분 성령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시편 63편 1절에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여 내 육체가 종일 앙모하나이다.”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너무 너무 사모하는 것입니다. 시편 41편 1절에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함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목마름을 가지고 나오십시오. 갈급함을 가지고 나오십시오. 그리고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에게 한 가지 은사가 있어도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는 말입니다.

무디 목사님은 성령 충만해서 주일학교를 일으켜서 몇 천명의 주일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는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분은 구두 수선공인데 구두를 수선할 때마다 성령받기를 사모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했더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놀라운 성령의 충만함을 부어 주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가장 은혜를 사모했던 사람이 고넬료 입니다. 그는 이방인이고 백부장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명령하실 때 그는 자기 부하 두 명과 경건한 종을 택해서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모시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가친척, 친구들을 다 모아서 베드로를 기다립니다. 베드로가 당도하여 나가서 그는 큰 절을 하면서 베드로를 하나님처럼 모셔드립니다. 그리고 온 가족이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데 그곳에 성령이 임합니다. 이 고넬료의 간절히 사모하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목회자들이 여러분의 가정을 심방할 때 고넬료와 같은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다립니까? “오늘 우리집에 목사님이 심방 오시는데 오늘 은혜 받아야지 말씀을 통해 성령을 받아야지” 얼마나 정성을 다해 기다리고 계십니까? 오늘 예배를 나오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하며 예배를 준비하십니까? 그런 사모함이 우리에게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인증하시고 그분을 환영하시고,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그리고 간구하십시오. 성령님은 여러분을 분명히 도우실 것입니다. 날마다의 삶속에 성령의 도움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삶이 메마르십니까? 목마르십니까? 힘들고 지치셨습니까? 성령의 도움을 구하시고 기도의 무릎을 꿇으실 때 날마다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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