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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흥: 최고의 소식을 전하라 (왕하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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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 최고의 소식을 전하라 (열왕기하 5:1~3, 8~14) 

여기 회복과 부흥의 모델이 된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나아만 장군이다. 그는 아람 왕의 군대 장관이었고 열방을 호령하는 자였다.(왕하5:1) 나아만은 또 왕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였다. 왜냐하면 나아만은 자국의 나라 아람을 구원해 낸 공로자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아만은 큰 용사란 칭호가 있었다. 그런데 전쟁의 큰 용사가 무명의 사람보다 못하게 되었다. 지금 그는 문둥병자였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말하여 가장 회복이 갈급한 사람이 나아만이었고 가장 부흥이 필요한 사람이 나아만이었다. 썩어 문들어지는 병, 사람들이 소외시키고 부정하다 여기어 외면하는 병을 안고 있는 이상, 벼슬과 권세도 한 줌의 재와 같았다. 나아만에게는 정말 고침 받는 회복이 일어나야만 하였다.

왕하5:14을 보면 나아만은 요단 강에 몸을 씻고 건강을 회복하였다. 그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고 하였으니 썩고 문들어진 자국마저도 완전히 치유된 것이다. 요단 강은 부흥의 현장이 되었다. 하나님을 모르고 벼슬과 계급, 힘과 재능, 인기를 붙잡고 살아가던 한 영혼이 삶의 딜레마에서 일어서는 자리가 되었다.

회복은 좋은 것이다. 내가 문둥병에서 놓임을 받은 나아만이라 생각해보자. 내 자식이 인생을 다 포기해야 하는 절망의 병에서 놓임을 받은 나아만이라 생각해보라. 마약에 중독되어 심신이 무너진 내 가족이 새 삶을 산다고 생각해보라. 회복과 부흥은 일어나야 되는 것이다. 우리 교회의 김혜민 양은 암이 온몸에 다 퍼져서 의사도 수술을 못하고 말았는데 다섯 번의 항암 치료를 하면서 눈에 보이는 암 덩어리가 없어졌다고 한다. 나머지 완치의 기적을 기다리는데 정말 회복되는 것만 같아도 감격 중의 감격이다.

나와 여러분은 문둥병과도 같은 문제를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나의 영적 실존은 문둥병보다 결코 자랑할 것 없는 사망의 병을 앓고 있었던 사람들이다. 우리는 모두 엡2:1의 말씀처럼 죄와 허물 때문에 죽었던 자들이다. 나균처럼 소리없이 들어온 죄, 감각없이 들어온 죄, 퍼져나가는 전염성을 가지고 들어온 죄, 더럽게 만들어 버리는 죄, 나균처럼 무용한 인생으로 절망으로 빠지게 만드는 죄, 내 영혼이 그 죄로 인해 눌림, 소외, 염려, 불안, 절망, 근심에 있었던 것이다. 나도 회복이 필요한 영혼이다. 나도 부흥이 필요한 영혼이다. 그 회복과 부흥의 열쇠는 하나님이 붙잡고 계신다. 하나님이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인자와 긍휼을 베푸시면 된다. 하나님이 성령의 바람을 불어오게 하시면 회복과 부흥이 시작된다. 문제는 하나님이 하실 수 있음을 누군가가 전해야 한다. 하나님이 고칠 수 있음을 알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데 어찌 고침 받을 소망이라도 품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①나를 보지 말고 ②때와 여건을 따지지 말고 ③강권해서라도 하나님의 능력을 전하는 자가 되라.
 
오늘 본문에서 그 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라.

첫째, 계집종이 전한다. (왕하5:2~3)

왕하5:2에 기록된 이 계집종은 이스라엘과의 전쟁 때 사로 잡은 전쟁 포로였다. 그의 하는 일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 드는 식모였다. 이 계집종에 대한 표현을 좀더 읽어보면 작은 계집아이라고 하였고(2절) 다시 이스라엘 땅에서 온 계집아이라고 하였다.(4절) 그런데 이 계집아이가 나아만 장군을 볼 때 나아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고침 받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에게는 장군이나 용사 또는 존귀한 자라는 호칭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계집종은 주모에게 이른다.

왕하5:3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계집종은 고치는 소식을 전했다. 좀더 정확이 말하면 문둥병을 고쳐 줄 선지자를 소개하였다. 그는 볼품없고 보잘 것 없는 식모이며 전쟁 포로다. 그러나 고치는 소식을 전하는 계집종의 말은 가장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순간이었다. 나 자신이 초라하다고 느껴진다면 마음을 새롭게 하라. 내가 전하는 소식의 가치가 초라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전해주는 복음을 들을 사람이 큰 사람이고 위대한 사람이라 생각하여 주저하지 말자. 사람을 살리는 소식이 더 소중한 것이다.

나아만은 그때부터 마음과 발걸음이 사마리아로 향하게 된다. 왜냐하면 삶의 고난과 고통은 새 소식을 기다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고통이 그의 귀를 열어 준 것이다. 

둘째, 선지자의 심부름꾼이 전한다. (왕하5:10)

이스라엘 왕을 찾아온 나아만은 사마리아 중에서 어떤 치료책이 나올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은 나아만이 전쟁의 빌미를 찾으러 온 줄 알고 탄식한다. 그때 엘리사는 왕이 당황하여 자기 옷을 찢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아만을 자신에게로 보내주도록 요청한다. 그래서 나아만은 말들과 병거를 거느리고 엘리사의 집문 앞에 서게 되었는데 기대를 안고 시골 집으로 찾아왔다. 그때 왕하5:10을 보면 “엘리사가 사자를 저에게 보내어 가로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고 한다. 문둥병에서 나음을 입을 치료의 방법, 그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는 선지자의 사환, 심부름꾼이었다.

전하는 일이 중요하다. 듣는 자가 듣든지, 아니 듣든지, 노하여 물러가든지 자기 생각을 내세워 논쟁을 하려 하든지 전하는 일이 사람을 살려낸다. 복음을 전하다보면 듣는 자가 분노를 삭이지 못할 때가 있다. 내 생각, 바로 나라는 허위의식 때문에 구원받는 살 길을 비웃을 때가 있다. 왕하5:11을 보라. 분노한 나아만은 나라는 자기 표현을 강하게 쓰고 있다.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회복과 부흥은 내 생각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고침받는 구원과 기적은 내 생각, 내 고집을 주장하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내 생각 때문에 분노하는 일이 나타나더라도 전하는 이는 사실 그대로를 전해야 한다. 개의치 말고 사실만을 전하라.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아무리 요단 강보다도 더 좋은 강, 큰강, 넓은 강이 많더라도 비교하지 말고 요단 강에서의 씻음, 그것만을 전하면 된다. 더러운 죄, 무엇으로 씻을 수 있는가? 사람의 생각으로는 공덕을 쌓고 선행을 하고 많은 배상을 해야 한다고 내 생각을 앞세울지라도 보혈의 강, 보혈의 능력에 씻으면 된다고 전하면 된다. 어떤 추한 죄도 희어진다고 말하면 된다.

셋째, 나아만의 종들이 전한다. (왕하5:13)

자기 생각, 내 생각 증후군에 빠진 나아만이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이스라엘을 떠나려 한다. 그때 종들이 주인을 달래며 목욕하여 씻어냄의 소식을 전한다.

왕하5:13 “그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종들의 전하는 메시지는 씻는 일이 쉬운 일이요, 목욕하는 일이 쉬운 일이요, 치료의 회복에 있어서 최고의 좋은 길임을 알려 주었다. 다른 어려운 일을 하라는 것도 아니요 그저 요단 강에 들어가 목욕하면 되기에 믿고 몸을 던지면 되는 일이었다. 나아만은 종들이 전해 준 메시지에 떠나던 길을 멈추고 강으로 내려간다. 분노를 버리고 교만을 버리고 겸손하게 되어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잠글 때 깨끗하게 치료되어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되었다.

나아만은 종들의 전하는 말 속에서 믿음을 얻었다. 인간적 허세를 내려놓았다. 믿음이 생기니 입고 있는 모든 옷을 다 벗어 던지고 요단 강으로 일곱 번 목욕하는 나아만이 되었다. 오늘 우리들은 믿음이 필요하다. 회복과 부흥의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을 상천하지에 제일 가는 분으로 고백하려면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믿음이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전해 주는 이가 있어야 한다.

믿음은 공식이 있다. 롬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기 위해서는 누구나 들어야 한다. 듣기만 하면 믿어진다. 그러나 들으려면 누구인가 전파해야 한다. 전파하는 자 없이 어찌 들을 수 있겠는가? 롬10:15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이들의 헌신을 통해 회복과 부흥이 일어나는 것이다. 전하는 메시지가 들려질 때 생겨지는 믿음이 사람을 고치고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기적으로 이끄는 것이다.

세 부류의 전하는 자가 협동하여 한 사람을 다시 살려내는 역사를 일으켰다. 계집종은 새 소식을 전하므로, 선지자의 심부름꾼은 확신있는 소식을 전하므로, 나아만의 종들은 설득과 감동을 주는 말을 전하므로 아람의 장군을 살려냈다. 나는 계집종에 불과하지만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전하는 것이 회복이다. 전하는 것이 부흥이다. 지역을 넘어, 국경을 넘어 북한 땅에도 어떤 방법으로든지 전하자. 전하기 위해 눈을 뜨고 전하기 위해 능력 받고 전하기 위해 관계를 맺는 사람이 되자. 그것이 언제인가는 이렇게, 저렇게 연결되어 한 가족, 한 지역을 살리는 부흥의 열매가 될 것이다.

금번 북한 방문을 통해서 본 평양은 매스컴에서 본 그대로였다. 그들은 돌아오는 날에 빵공장 국수 기계를 원했다. 우리는 우리의 상대가 누구냐를 보지 말자. 계집종처럼, 사환 종처럼 최고의 소식을 전하는 자들처럼 그들과의 교류와 관계를 통해 최고의 소석을 전하자. 내가 전하고 또 다른 사람이 전하고 또 전하면 언제인가 보혈의 강에 뛰어들 것이고 그 사람들이 살고 북한도 회복이 되고 그 땅이 고침 받고 부흥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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