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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찬식] 성찬을 받는 우리의 신앙고백 (마 26: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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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영성작가인 헨리 나우엔은 그의 명저인 "나의 사랑하는 자요"라는 책에서 그의 유대인 친구에게 우정의 편지를 쓰면서 성찬식이야 말로 그리스도인이 누구인가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상징이라고 말합니다.
본문26절에 보면 예수께서 십자가로 가시기 전날 밤 최후의 만찬의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나누어 주시는 장면에서 복음서의 기자는 네 개의 의미심장한 동사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1)가지사(take/took) 2)축복하시고(blessed) 3)떼어(broke) 4)주셨다(gave)는 것입니다.

헨리 나우엔은 이 네 개의 동사를 근거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1)선택받은 자 2)축복받은 자 3)상처받은 자 4)나누어주는 자라고 말합니다.

성찬식은 ‘우리가 누구인가?’하는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자리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확인하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강림절기를 지내며 주님의 성찬에 참여하려고 합니다. 특별 절기에 의례적으로 하는 성찬식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오늘의 성찬 예배를 통해 성령의 충만한 임재가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충만히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찬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신비한 은혜의 방편입니다.
‘이것을 받아 먹으라’고 하시며 떼어 주신 떡과 포도주는 단순한 떡과 포도주가 아니라 주님 자신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시간 받게 될 떡은 주님의 몸으로서 우리의 참된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받게 될 포도주는 주님의 피로서 우리의 참된 음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먹고 영의 양식이 되어 말씀이 우리를 살찌우는 것 보다 더 놀라운 은혜를 성찬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놀라운 은혜의 신비는 바로 말씀 그 자체이신 주님을 직접 먹고 마시므로 내 안에 채워 영원한 양식을 삼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성찬의 신비한 은혜입니다.
우리들은 성찬을 통해 내 안에 주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성찬을 통해 주님을 내안에 채워 주님과 더불어 함께 사는 것입니다. 이로써 주님을 닮아 주님의 모습을 드러내는 성도의 삶을 살아 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성찬에 참여하면서 우리들은 네 가지 신앙의 고백을 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 나를 택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한다는 고백입니다.

많은 떡들 가운데 오늘 성찬에 사용되는 떡은 선택받은 떡들입니다. 우리는 모두 특별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사도바울은 엡1:4-5에서 우리가 택함 받은 자들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예수께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의 문이 열리며 하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나의 사랑하는 자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마태3:17)

이 말씀은 동일하게 우리를 선택하신 하나님이 또한 우리들에게 들려주시기를 원하시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 복된 말씀이 여러분의 귓전에 들려지십니까?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선택하시고 매우 흡족해 하시며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오 주님! 나를 많은 사람들 가운데 사랑해주시고 선택하여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둘째, 나를 복주시고 복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떡과 잔을 가지신 후 바로 그 다음에 하신일은 축복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주께서 저와 여러분을 자신의 자녀로 선택하신 후 제일 먼저 하신 일도 축복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창1:28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나서 제일 먼저 하시는 일이 축복하신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아동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축복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아이기 태어나면 제일 먼저 축복합니다. 아이의 생일 행사의 최고 절정은 축복의 메시지를 주는 것입니다. "바 미츠바"라는 성인식의 절정도 랍비와 부모, 이웃들이 함께 모여 어른이 되는 아이를 축복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아이가 학교에 입학할 때 축복합니다. 여행을 떠날 때에도 전장에 나갈 때에도 축복합니다. 부모가 자신의 인생이 다했다고 느낄 때 그는 마지막으로 자녀들을 불러 유언과 같은 마지막 축복을 남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축복 속에 태어났으며 축복을 누리고 살다가 축복을 남기고 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적인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것도 감사한데 택하신 우리들에게 복을 주시니 더욱 감사할 뿐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택하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은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진 축복입니다. 우리들은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근원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복을 받은 우리들도 다시 그 복을 흘러가게 하는 복의 근원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오 주님! 나를 사랑하사 복주시며 복 있는 자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셋째, 나를 주님의 손에서 깨뜨려 주시고 주님의 뜻대로 사용되게 하옵소서. 라는 고백

성찬의 떡은 선택되어졌고 축복받은 떡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축복하신 떡을 다시 취하신 예수님은 이제 그 떡을 깨트리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는 성경에는 "예수께서 떡을 떼며--"하셨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broke " :깨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손에서 깨뜨려져 나누어질 때 모든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떡으로 온전히 쓰임을 받게 된 것입니다. 깨어지지 않고는 그 진가가 드러날 수 없기에 반드시 깨어져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깨뜨리실 때 비로서 빛을 내고 향기를 내는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 사사시대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세가지를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나팔, 항아리, 횃불입니다. 그리고 기드온이 미디안의 적들과 싸울 때 그는 자기 군사들로 하여금 항아리 안에 횃불들을 숨기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시간에 항아리를 깨고 횃불들을 들게 했습니다. 항아리가 깨어짐으로 횃불이 드러나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리아의 옥합을 기억하시지요? 마리아가 옥합을 깨트리자 순전한 나드 향이 흘러나와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온 집안을 그 향기로 가득 채울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의 항아리가 깨어져야만 했고 마리아의 옥합이 깨트려져야만 했었던 것입니다.

헨리 나우엔은 이와 같이 깨어지는 존재로서 우리를 가르쳐 상처받은 자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깨트리실 때 우리에게는 상처가 생깁니다. 그러나 그 상처는 필요한 상처인 것입니다. 아무도 깨트림의 경험을 즐거워 할 수는 없습니다. 깨트림은 아픔이요 고난이요 상처인 것입니다. 그러나 깨트림은 필요한 것입니다. 깨트려져야 빛이 흘러나오고 향기가 전달됩니다.

인생의 상처(깨어짐)없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이웃의 상처를 만져주는 인생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깨어짐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상처를 받으셨습니다. 그의 상처는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이 깨어지는 그 십자가의 상처가 우리에게 나음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었습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모든 사람들의 고통을 치료하시는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손에서 깨뜨려져야 합니다. 여전히 내가 살고 있으니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내 못난 자아가 부서지고 깨뜨려질 때 비로서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 빛을 발하며 향기를 드러내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이런 고백을 해야 합니다.
‘오주님! 나를 깨뜨려 빛을 드러내며 향기를 발하는 주님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마지막으로 나누는 자가 되리라 결심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최후의 만찬 그리고 성찬의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그가 취하시고 축복하시고 깨트리신 떡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나누어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다시 말하면 그가 떡과 잔을 나누어주실 때 그는 단순히 떡과 잔을 나누어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몸, 곧 자신의 존재 그 자체를 나누어주신 것입니다.

성찬을 통해 우리는 이제 주님의 몸 곧 주님의 생명을 먹은 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친히 요한6:53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주님의 몸이 주님의 피가 우리 속에 들어와 우리의 생명이 되어 주셨던 것입니다.

성찬의 궁극적인 목적은 나눔으로 실현되는 것입니다. 나누시기 위하여 그분도 취하시고 축복하시고 깨트리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눔이야말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존재 양식이 되어야 합니다. 나누어 준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인기 절정의 여배우로서의 안락한 삶에 안주하지 않고 월드 비전의 홍보대사로 지난 10년 이상 소말리아, 인도, 르완다, 방글라데시의 빈민촌을 누비며 나눔과 봉사를 실천한 김혜자 권사님은 그녀의 자서전적인 베스트 셀러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에서 이렇게 절규합니다. "나는 슬픔의 유일한 치료제는 나눔이며, 이 사랑의 나눔이야말로 그 어떤 전쟁과 죽음보다 더 강하다는 걸 나는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기의 모든 것을 나누어주심으로 우리가 살고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나눔은 생명입니다. 떡이 나누어지고 포도주가 나누어질 때 거기 생명이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들도 나누어져서 생명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성찬은 우리에게 나눔으로 얻게 될 생명을 깨닫게 해주는 신비한 은혜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고백을 해야 합니다.
오주님! 나의 모든 것을 나눔으로 생명이 임하는 일에 사용하여 주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고백을 가지고 이 시간 거룩한 주님의 성찬 앞으로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주님의 성찬으로 초대합니다. 주님의 성찬에 참여하십시오. 그리고 성찬이 주시는 신비한 은혜를 받으십시오. 그리고 이것을 여러분의 신앙 고백으로 만드시기를 축복합니다.
찬송합시다. 보혈을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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