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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지자 있는 줄을 알게 하라 (왕하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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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람 나라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이스라엘의 왕에게 찾아가서 자기의 문둥병을 고쳐달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크게 당황한 나머지 그의 옷을 찢으며 고민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사는 나아만을 자기에게로 보내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나아만의 병을 고쳐 주고 아람 사람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에 선지자가 있는 줄 알게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선지자가 있는 줄 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나라 사람들은 선지자를 핍박 하고 잡아 죽였습니다(마 23:34). 어느 때나 선지자를 외면하고 거부하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고 백성이 패역해 질수록 그들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게 하라고 하였습니다(겔 2:5).

1. 선지자를 기피하는 세대

범죄한 인간의 심리 상태는 하나님이 계시는 줄 알면서도 그에게로 나아가는 것을 기피합니다. 오늘날 성도들 가운데도 어떤 문제를 안고 고민하면서 막상 하나님께 나오기를 기피하거나 거절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선지자를 멀리하면 할수록 불행은 더욱 가중되는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고 하였습니다(사 1:5).

1) 쉽고 편한 길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나아만은 자기 집에 있는 소녀로부터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고 하는 말을 듣고 이스라엘 땅에 왔으나 선지자가 있는 곳으로 가지 않고 임금이 있는 왕궁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자기나라 왕이 써주는 친서를 내밀었습니다. 말로는 하나님의 선지자에게 간다고 하고 실제로는 세상의 권력을 의지하려 했던 것입니다. 자기 나라 왕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가서 그로 하여금 말 한마디만 하게 하면 저절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으로 착각하였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실제로는 사람을 찾아가고 권력이나 재물이나 세상적인 방법으로 편리하게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렘 17:5).

2) 거부하는 심리 때문입니다.

옛날 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자기가 필요로 할 때 선지자를 찾았으나 자기 마음에 거슬리는 사람은 기피하였습니다. 그가 유대나라 여호사밧 왕과 함께 아람 전쟁에 나아가면서 그 전쟁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려고 400명의 선지자를 불러 모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는 부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미가야가 자기에게 좋은 말로 예언하지 않고 항상 흉한말로 예언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왕상 22:8). 사도 바울은 말세가 되면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게 된다고 하였습니다(딤후 4:3).

3) 지각이 둔하고 미련하기 때문입니다(롬 1:21~23).

선지자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요구를 받고도 이를 외면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내친김에 하나님의 낯을 피하려고 다시스로 가 버렸습니다(욘 1:3).
성도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좋은 일이나 궂은 일이나 어떤 경우이든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전개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어떤 이유로도 하나님과 멀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막상 중요한 사안에 이르렀을 때 꼭 하나님을 피해서 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흔히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멀리 할 수도 없다는 뜻으로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라는 말을 쓰곤 합니다. 어쩌면 교회 안의 성도들 중에 하나님과의 관계, 또는 목회자와의 관계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나 않는지 혼란할 때가 있습니다.

2. 선지자를 찾아 가는 사람

선지자가 있는 줄 알고 거기로부터 자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을 때 지체 없이 그에게로 나아가게 됩니다.

1) 하나님과 대면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전달받게 하십니다. 이사야 55:6에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는 자에게 응답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선지자 앞에 나아가는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과 처지를 있는 그대로 내어놓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여야 합니다(왕하 4:1). 다른 데로서는 구원받을 길이 없음을 알고 오직 거기에만 의존하며 결사적으로 부르짖어야 됩니다(행 4:12). 소경 거지 바디메오는 예수님께서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었을 때 즉시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하고 분명한 목표를 제시하였습니다(막 10:51).

2) 자기의 마음을 비워야 됩니다.

나아만이 아람 왕의 친서를 가지고 사마리아로 이스라엘 왕을 찾아 간 것은 그가 자기 나라에서 지위가 높은 권력자인 것을 과시려는 태도였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위하여 선지자 앞에 섰을 때는 자기의 자세가 낮아져야 됩니다. 자기는 가장 불행한 문둥병자임을 솔직하게 시인하면서 하나님의 불쌍히 여기심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나오면서도 자기가 죄인인 것을 감추려고 합니다. 자기의 자존심을 내세우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겠다는 착각을 하곤 합니다.

3) 전적으로 수용하여야 됩니다.

나아만이 엘리사를 찾아 갔을 때 엘리사는 내다보지도 않고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나아만은 노를 발하며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나아만의 종이 만약 선지자가 이보다 더 큰일을 시켜도 했어야 마땅하지 않겠느냐고 설득을 하였습니다(11-13절).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무엇을 요구 하시든지 그대로 수용하려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베드로를 초청한 고넬료처럼 어떤 경우이든지 전적으로 수용하며 순종하겠다는 태도를 가져야만 되는 것입니다(행 10:33).

3. 선지자를 만나게 되면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선지자 사무엘을 만나게 된 후 저도 선지자의 무리들과 함께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었습니다(삼상 10:10-11). 그는 훗날 다윗을 잡기 위해 라마 나욧에까지 갔다가 거기서도 성령에 감동되어 예언을 하였습니다(삼상 19:23-24). 나아만도 결국 엘리사의 말대로 순종하여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은혜 받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1) 신비로운 능력을 체험하였습니다.

선지자를 찾아 가는 것은 하나님과 만나게 되는 첩경입니다. 자기의 마음을 열고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신비로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빌립의 친구 나다나엘은 나사렛 예수가 메시야 라는 말을 듣고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수 있느냐”고 하며 일축했다가 “와 보라!”고 하는 빌립의 권유에 따라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는 순간 자기 입으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고 소리쳤습니다.
이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에게 “이 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 하시고, 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고 하였습니다(요 1:46-51).

2) 심령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엘리사의 분부대로 요단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고 나온 나아만은 그 몸에 있던 문둥병이 깨끗이 사라지고 마치 어린 아이 살결처럼 새롭게 변화되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결과입니다. 나아만은 즉시 엘리사를 찾아가 자기 입으로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열왕기하 5:15에 보면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바다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많은 고기를 잡은 다음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고 고백하였습니다(눅 5:8). 은혜를 받게 되면 그 마음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3) 새로운 인생이 시작됩니다.

오래도록 문둥병자로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말 못할 고민에 시달리던 나아만이 선지자를 만나고 그 병에서 해방되었을 때 그 기쁨과 감격은 이루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문둥병자가 아닌 새사람으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와 죽음의 권세에서 벗어난 사람은 그때부터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롬 8:1-2). 고린도후서 5:17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 하였습니다. 성전 미문에 있던 앉은뱅이가 예수의 이름으로 걷게 되자 성전 안으로 뛰어 들어가며 하나님을 찬송한 것처럼(행 3:6-8), 예수 안에서 변화 받은 사람도 그리스도 중심의 희망적이고 복된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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