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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상당한 그림을 그리라 (수 1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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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들, 다섯 지파는 기업을 분배받았지마는
아직도 일곱 지파는 기업을 분배받지 못했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분배하는 일이
        자기의 생전에 감당해야할 가장 큰 사명인데
  나이가 많다는 것과 그리고 나머지 일곱 지파가 땅을 취하는데             
그렇게 열심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체를 하게 되자, 여호수아는 중대한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여호수아의 중대한 결단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은혜의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가 일곱 지파에게 기업을 나누기 위해 먼저 행한 일이 무엇입니까?
1. 여호수아가 일곱 지파에게 기업을 나누기 위해 먼저 행한 일이 무엇입니까?(1절)
먼저, 1절에 보니 길갈에 있던 하나님의 회막을 실로로 옮겨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신 회막은 길갈에 있었습니다.
길갈은 수4:19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건너 맨 처음으로 진을 친 곳입니다.
요단강을 건너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길갈에 도착하여
  요단강 가운데서 가져온 열두 개의 돌을 세우고
  요단강을 마른땅으로 건너게 하신 하나님을 영원히 기념하도록 했으며,         
할례를 행함으로 애굽의 수치가 굴러갔음을 선포했습니다.
또한 그곳에서 유월절을 지키면서
    구원받은 백성들이라는 영적 자존심을 굳게 세운
          역사적인 장소가 된 곳입니다.
또한 길갈은 하나님의 회막이 있었던 곳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전초기지로 삼았던 곳입니다.   
길갈에서부터 출정하였다가 전투가 끝나면
          다시 하나님의 회막이 있는 길갈로 돌아와
그들이 세워놓은 열두 개의 돌을 보면서
  가나안을 맨 땅으로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영적인 무장을 다시 다지고 전쟁에 나갔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길갈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 곳이요,
  전투의 작전 본부요, 무기와 물자를 공급하는 보급소요,
  지친 육신이 안식하고 새 힘을 얻는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이제껏 이스라엘은 길갈을 중심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분배하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길갈에 있던 하나님의 회막을 실로로 옮겨왔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먼저 이걸 한 번 생각해 보면 길갈에서 실로로 회막을 옮길 때
    결코 여호수아의 자의로 한 이전은 아닐 것입니다.
틀림없이 제자장의 에봇의 우림과 둠빔으로 하나님의 뜻을 물어
      하나님의 뜻에 의해 법궤를 모신 회막을 실로로 옮겼을 것입니다.
왜 회막을 길갈에서 실로로 옮기게 했을까요?
렘7:12절에 보면 [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 ] 라고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뭔가 새로운 역사를 나타내시기 위하여
    회막을 길갈에서 실로로 옮기게 했던 것입니다.
그 새로운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이제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누리는 일입니다.
땅을 정복하기 위하여 전쟁할 때 하고
이제 정복한 땅을 차지하여 기업으로 누리는 일 하고는 성격이 다르지요.
이런 차원에서 보면 회막을 옮긴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1) 실로는 벧엘과 세겜의 중간 위치에 있어
    가나안 땅의 중심이요 교통의 요충지입니다.
이곳 까지 점령함으로 말미암아 여호수아가 실로에 회막을 세움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시는 역사적 의미를
    이스라엘 백성들로 상기케 하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기업의 분배가
  단순히 자기의 몫을 차지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해 나가는 종교적인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2) 이스라엘 백성의 무너진 영적 기강을 새롭게 세워주기 위함인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실로에 회막을 세우고 하나님의 법궤를 모심으로
    그곳에서 새로운 하나님의 능력이 백성들에게 공급되며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서서 비전을 새롭게 세워주려 했던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분배하여 그 땅에 충만하게 거함으로
가나안을 거룩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과연 어떤 꿈과 비전을 소유해야 하는가?
주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지향해야 할 푯대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을까?
특별히 우리 내일교회가 이루어 나가야 할
    지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과 소원은 무엇인가?
바로 선교의 기지와 축복의 터전입니다.
이 지역을 하나님의 거룩의 영이 흐르는 축복의 동산으로 가꾸어가야 합니다.
나아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가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최고의 이유이며 사명입니다.

다시 정리해서 말씀드린다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로 하여금 회막을 길갈에서 실로로 옮기게 함으로
실로를 중심해서 가나안 땅을 거룩한 땅 축복의 땅으로
    이룩하고자 하는 지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소원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먼저 기업을 차지한 유다 지파 요셉 자손들은
    기업을 분배받아 차지하였기 때문에
        아마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다고 하며 감격 감사했겠지만
아직 기업을 차지하지 못한 일곱 지파는 그다지 열심을 내지 아니합니다.
문제는 일곱 지파의 영적 상태입니다.
2. 가나안 땅에 들어왔지만 일곱 지파의 영적 형편은 어떠합니까?(2-3절)
유다 지파와 요셉 자손의 두 지파가 먼저 땅을 기업으로 분배받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지파에게 기업을 분배하는 일이 여호수아의 마지막 사명인데
    지금 여호수아는 나이가 많습니다.
    조금도 지체할 수 없는 마지막 사명인데
    정작 문제는 당사자인 일곱 지파 사람들이 지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3절에
[ 너희가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게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취하러 가기를 어느 때가지 지체하겠느냐? ]

왜? 이렇게 일곱 지파 사람들이 축 쳐져있습니까?
가나안을 정복하고 그 땅을 분배하는 일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가나안 정복이라고 하는 엄청난 과업을 이루기 위해
    그들은 모두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땅을 분배하면서는 사정이 다릅니다.
왜? 장자적인 신앙의 자손들은 더 많은 그리고 요충지를 차지하고 나니
상대적으로 작은 지파들은 상실감과 박탈감에 빠져
      `될 때로 되라`고 하는 자포자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자신감을 잃어버리면 도전적인 자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런 현상이 오늘 교회 안에도 팽배합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온 교회 성도들이 하나가 되어 성장하게 되면 교인들이 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 복을 누리는 과정 속에서 오늘 일곱 지파와 같이
      기업을 누리는데 지체하는 교인들이 많이 생겨납니다.
왜? 가만히 보니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들만 좋지 뭐,
        나 같은 교인이야 무슨 복을 누리겠다고......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교회 안에
      이스라엘 12지파가 다 기업을 차지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체할 수 없는 소원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누구인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속에 살지만 기업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민111:4절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과는 상관없고
  자기 배만 부리면 되니 자기 배 안 부리면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이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닙니다.
  그냥 이스라엘 백성 속에 빌붙어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는 기업이 없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약속의 기업이 있다는 점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떻습니까?
나는 지금 내일교회 소속된 영적 이스라엘입니까?
아니면 교회 안에 석여 사는 무리입니까?
이스라엘과 섞여 사는 무리와 어떻게 구분합니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비전을 갖고 있지만
      섞여 사는 무리는 자기 배만 부리면 됩니다.
선교의 기지와 축복의 터전이라는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내일교인이라면
    내가 차지할 분깃이 있음을 믿습니다.
오늘 복을 누리기를 지체하는 일곱 지파에게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고 책망과 아울러 격려를 합니다.
일어나 자기의 분깃을 누릴 줄 아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어떻게 내게 허락한 기업을 차지하며 누릴 수 있는가?
3. 여호수아가 일곱 지파 사람들에게 기업을 차지하기 위해 무엇이라     
명합니까?(4-6절)
4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일곱 지파 사람들에게
[ 너희는 매 지파에 삼인씩 선정하라 내가 그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일어나서 그 땅에 두루 다니며 그 기업에 상당하게 그려 가지고
  내게로 돌아올 것이라 ] 
그들이 일어나서 라는 표현은
    지금까지는 누워서 빈둥대던지
    아니면 앉아있다는 상태를 전제하고 있는 말입니다.
3절에 지체하다란 말은 게으름을 피우다란 말입니다.
시간의 늦어짐과 마음과 정신 상태의 느슨해짐을 모두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러니 아주하며 게으름 피우던 자리에서 일어나 행동하라는 말입니다.


덴마크는 1807년 이래 영국과 7년 동안을 전쟁하고 나니, 
국고는 파산하고,  노르웨이는 분리 독립하여, 참담한 상태에 빠졌습니다. 
1814년의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으나,
      국운은 날로 기울어져 멸망 직전에 놓이게 되었다. 
이때 삼애 정신을 들고 나온 덴마크 부흥의 공로자가 된 그룬트비히 목사는,
1월 5일 엘라스 대학 강단에 청년들을 모아 놓고 연설을  하였습니다. 
덴마르크의 긴 역사를 따져가며, 국민이 신앙을 잃었기 때문에, 
이렇게 타락하고, 재난을 당하게 된 것이니,
    신앙을 회복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우리는 일어나야한다. 
어디서 일어나란 말인가? 
의자에서 일어나란 말인가? 침대에서 일어나란 말인가? 
아니다.  우리는 정신적으로 일어나야 하겠다.
우리는 의용군 모집의 필요성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잠자고 있는 영혼을 깨우는 것이 선결 문제다. 
나는 감히 이것을 신앙이라고 외친다.
참된 신앙은 바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정신이 깨어나야 일어날 수 있습니다.
나머지 일곱 지파 사람들
    기업을 차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지체할 수 없는 소원인 줄 알고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땅에 두루 다니며 그 기업에 상당하게 그려 가지고
    내게로 돌아올 것이라 합니다.
미리 보지 않고 이룰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꿈을 이루기 전에 항상 먼저 보게 하십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도 그랬고
    여리고 성 점령할 때도 먼저 정탐을 보냈습니다.
창13: 에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을 상기해 보세요.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lift up)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look).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찐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walk)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내용을 세 단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눈을 들어, 보라, 그리고 그 땅을 밟으라.’
눈을 들어 보고, 밟은 그 땅을 주시겠다.
    미리 보지 않고 차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선교 선교해도 선교지에 가서 한 번 보면 선교사 다 되어 버립니다.
서울대학교 목표하고 있다면
  먼저 그 학교를 탐방하고 마음에 그리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감동이 오면 먼저 벤쳐 마킹 하시기 바랍니다.

미국 배우 <아놀드 슈워즈 네거>가 그랬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오스트리아에서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민 온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런 그는 책상에 세 가지 목표를 세웠습니다.
첫째, 영화배우가 되겠다.
둘째, 케네디가의 여인과 결혼하겠다.
셋째, 2005년에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되겠다.
그는 먼저 마음에 그림을 그리고 시간만 나면 
    헐리우드를 탐방하고 케네디 가의 여인들을 유심히 보고
    켈리포니아 주지사를 늘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영화배우와 케네디가의 여인과 결혼 목표는 이미 이루었고
캘리포니아 주지사 목표는 놀랍게도 보궐선거로 2년 먼저 이루어져
        2003년에 켈리포니아 주지사가 되었습니다.
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지 이뤄진 사건입니다.

제게는 우리 교회 장래 모습이 남달리 눈에 선합니다.
< 하나님이 보여 주신 장동 동산교회 >

먼저 하나님의 조명으로 마음에 그림을 그리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라파엘로 (1483-1520)는 레오날드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더불어             
예술분야에서 르네상스시대의 3대 천재로 불리우는 화가입니다. 그
는 일찍이 어머니를 잃고 11세때 아버지마저 잃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런 역경을 이기고
    훗날 화가로서 뿐만 아니라 건축가로서도 명성을 얻게 됩니다.
그에게는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그에게 한사람이 찾아와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위대한 작품을 그릴수가 있습니까?”
      라고 질문을 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특별한 비결은 없습니다. 다만 그림을 그리기 전에
      하나님께서 내 마음으로 그림을 보게 하십니다.
저는 단지 내 마음에 그린 그림을 캔버스에 옮겨 놓기만 할뿐입니다.`
그의 말이 맞습니다. 내 마음에 어떤 그림이 있느냐에
따라 이 세상에서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 기업에 상당하게 그려 가지고 내게로 돌아오라`라는 말씀은
‘그 기업에 상당하게’라는 것은
    원문 상으로는 그들 ‘기업의 몫에 따라’ 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네 믿음대로 되리라`라는 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되 하나님이 주신 감동을 따라
          믿음으로 그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성취케 하실 줄 믿습니다.

이제 땅을 그리러 가는 아홉 지파 선발자들에게
    여호수아가 당부하는 말이 있습니다.
4. 땅을 그리러 가는 아홉 지파 선발자들에게 여호수아가 당부하는 말이 무엇입니까?(8절)
4절 과 아울러 8절에
[ 여호수아가 땅을 그리러 가는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가서 그 땅으로 두루 다니며 그려가지고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여기 실로에서 여호와 앞에서 너희를 위하여 제비 뽑으리라 ]
여호수아의 명 가운데는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게로 돌아오라는 말이 더 중요합니다.
그려 가지고 벽에 붙여 놓는 것이 아니다 `내게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하나님 앞에 내어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결재가 나야 됩니다.
아무리 잘 그린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총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또한 아무리 철저히 계획(생각)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교인은
    하나님 앞에 나와 은혜를 받아 세상에 나가 그림을 그려서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지 않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교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실패하거나 실망하고 돌아옵니다.
하나님의 결재가 없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잠16:1에 보면
[ 마음에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서 나느니라 ] 
마음에 그린 그림을 먼저 하나님 앞에 내어 놓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결재를 받기를 바랍니다.

일곱 지파의 선발자들이 그 땅을 두루 다니며
        지도를 그린 책을 가지고 돌아 왔을 대
여호수아는 어떻게 그들에게 기업을 분배했습니까?
5. 여호수아는 그려온 책을 가지고 어떻게 기업 분배를 했습니까?(10절)
여호수아는 6절, 8절에서 여호와 앞에서 제비를 뽑겠다고 두 번이나 강조한 후
그들이 여호수아의 명령대로 가서 기업을 받을 땅을 그려오자
10절에 실로의 회막 즉 여호와 앞에서 제비를 뽑아
    가나안땅을 분배해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여러분들이 계획을 마음에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것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와
기도해야 할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잠16:33절 [ 사람이 제비를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
성경에 보면 제비뽑기가 여러 군데 나옵니다.
그러나 성경의 제비뽑기는
    행운권 당첨같이 무작위로 뽑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행1:에 가룟 유다 대신 결원된 사도를 뽑을 때
      역시 제비뽑기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비를 뽑아 맛디아를 선출하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힘써 기도하였고(14절)
      말씀의 인도를 받았다(20절)고 합니다.
이것은 지도는 일곱 지파 사람들이 그려 왔지만
    기업 분배는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결론>

렘33:2절 [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
      [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
하나님은 오늘도 기업을 차지하기에 주저하고 있는 교인들에게
일어나라, 정신 차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가서 보고 그림을 그려 내게로 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결재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합니다.
믿음으로 그린 그림, 하나님의 결재가 나면 나의 분깃이 될 줄 믿습니다. 
(김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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