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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려면 (요 4: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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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세관이나 분실물 센터에 가면 찾아가지 않은 물건들이 많이 쌓여 있다고 합니다. 티셔츠나 모피코트, 귀금속이나 녹용 등이 쌓여있다고 합니다. 잃어버린 것을 찾아가지 않은 이유도 있고, 들여오면 안 되는 것도 밀반입하다가 적발되어 압수된 물품들이 대중을 이룬다고 합니다. 세금을 내고 찾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높은 세금이 불만스러워 그대로 방치해 둔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누구도 결코 찾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잃어버린 자식입니다. 자녀를 잃어버리고 찾기를 포기해 버리는 부모는 결코 없을 것입니다.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1992년 3월 26일 9세에서13세 된 아이들 5명이 학교에 갔다 와서 개구리를 잡으러 뒷산에 갔습니다. 그리고 11년 동안 실종되어서 찾지를 못했습니다. 여러분 대구 개구리 소년들의 실종사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정확히 11년 후 인근 고등학교 신축공사장에서 그 어린이들의 유해가 발견되었습니다. 11년 동안 그 부모들은 그 아이들 찾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농사를 전폐학고, 직장을 그만두고, 어떤 부모는 트럭을 하나 사서 물건을 팔면서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 다녔습니다. 혹시 어느 골목에서 우리 아이가 나올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부모의 마음이 우리를 끝까지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한 영혼을 찾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 예수님은 유대 땅에서 전도 활동을 하시다가 갈릴리로 가셔야 되는데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는 길은 세 가지 길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가장 가기 싫어하는 길이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모두가 싫어하는 사마리아를 거쳐서 갈릴리를 가기를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구원할 한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사마리아 땅에 구원해야 할 영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은 사마리아를 통과하기를 싫어했을까요? 우리가 유대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스라엘은 과거에 남북왕조가 있습니다.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해서 정복을 당하고 포로로 끌려갑니다. 바벨론에서 70년을 보내다가 그대로 다시 귀환을 합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은 사정이 그렇지 않습니다. 앗수르라는 강대국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나서 그곳에 이방인들을 집단 이주시켰습니다. 그래서 이방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이 결혼하게 되고 순수성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의 순수함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을 상종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 사람들은 더러운 이방인의 피가 썩여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사마리아 지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상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반목과 질시의 관계요, 적대적인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예수님은 어떠한 여인을 만나기 원했을까요? 예수님이 만나기로 했던 여인은 귀부인도 아닙니다. 그 당시로 보면 누구에게나 지탄받는 여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여인은 결혼을 5번이나 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도 결혼해서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 두 번 결혼을 하고 세 번까지는 용서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4번, 5번은 용인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혼을 5번이나 했던 것은 그의 인생에 비틀어지고 문제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어찌보면 그 여인은 남자들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버림을 당했을지 모릅니다. 남자들에 의해서 매도당하고 짓밟혀진 인생일지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이 여인을 온전하게 보지 않습니다. 손가락질을 하고 비난을 하고 조롱을 합니다. 남들은 아침, 저녁으로 선선할 때 물을 길으러 우물에 오지만 이 여인은 그 시간에 올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낮 12시 해가 내려쬐는 아무도 다니지 않는 그 시간에 물 길으러 나왔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알고 있었고 그 여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마리아로 가기를 택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한 영혼을 끝까지 추종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잃어버린 한 여인을 찾아서 먼 거리를 달려오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요한복음 4장의 말씀은 성경에서 읽을 수 있는 예수님의 개인전도의 각별한 모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전도합시다.” 라고 말하면 어떤분들은 싫어합니다. “목사님! 저는 성가대만 열심히 하면 되지 왜 전도하라고 하십니까?” “저는 주방봉사만 하면 되지 왜 전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여러분 전도는 누구부터 하신 것입니까? 바로 예수님부터 하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수가성에 한 여인을 만나셔서 그 여인에게 복음을 증거하시고 그를 설득하셔서 그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변화시키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개인전도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전도할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날이 더워서 잠이 오는 분들이 있더라도 이 다섯 단계를 듣고 주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전도 방법 5단계를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예수님의 접촉점을 만드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이슬비 대원들은 전도할 때 예쁜 카드를 하나 가지고 가서 “여기 참 좋은 글이 있는 카드인데 이것을 보내 드릴 것이니 주소를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가 무료로 카드를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이 접촉점입니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 붙들고 전도하는 것 보다는 카드라도 들고 나가면 대화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셨습니다. 실제 목이 마르셨고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시면서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이 접촉점입니다. 여러분 전도하시려면 누군가를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은 그분에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접촉점을 만드셨습니다.

두 번째, 예수님은 선물을 제시하십니다.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했더니 여인이 신경질적입니다. “아니 나는 사마리아 여인이고 당신은 유대인 남자인데 왜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남녀가 유별하고, 사마리아인과 유대인과의 관계였기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선물을 제시하시면서 여인의 마음의 문을 열어줍니다.

오늘 본문 4장 10절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라고 했습니다. 거부하는 여인에게 예수님은 선물을 제시하십니다. “네가 만약 하나님의 선물을 알았더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이 제시하는 선물이 무엇입니까? 영생의 선물, 구원의 선물입니다. 성령의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선물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너희에게 물을 달라고 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너희가 나에게 이렇게 거부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전도할 때 선물을 제시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누구를 만나러 갈 때면 가능하다면 따뜻한 정성을 담은 선물을 가지고 가시면 더 좋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선물도 좋고, 따뜻한 인사 한마디도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옆집에 갈때 잘 담가진 김치가 있으면 한 포기 퍼가지고 가서 김치가 맛있으니 같이 먹읍시다. 라고 이야기 하며 상대방의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누가 자기에게 와서 전도하려고 하면 자기를 성가시게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마음을 닫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마음의 선물, 물질의 선물을 제시할 때 마음이 열립니다. 그리고 호기심과 관심을 가지고 이 사람을 주목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접촉점을 만드시고 거부하는 여인에게 선물을 제시하셨습니다.

세 번째 단계는 예수님은 그 여인의 문제를 파악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4장 16절, 17절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나 네 말이 참되도다.” 예수님은 여인과 대답하면서 여인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합니다. 남편의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말하기 싫어하는 좋아하지 않는 아픈 점이 있습니다. 이 여인의 아픈 점을 이야기해서 그 여인의 기를 죽이거나 조롱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이 여인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주님을 들어냄으로 여인으로 하여금 예수님께 주목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분이 내 과거를 다 알고 있는 것을 보니 보통분이 아니구나! 내가 이 분의 말씀을 잘 경청해야 하겠구나!” 하는 마음을 들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적당한 때가 되었을 때 문제를 이야기함으로 그 여인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더욱 주목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과 만나서 대화 할 때 그의 어두움과 고민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대화를 보면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느 가정이나 문제가 없는 가정이 없습니다. 자녀의 문제이든, 부부간의 갈등이든, 경제적인 문제이든, 질병의 문제이든 다 문제가 있습니다. 그 사람의 문제를 알 때 그를 위해 효과적인 전도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작정한 태신자들의 고민과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그것을 알아야지 구체적으로 그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때로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고난이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문제를 파악하시고 네 번째 단계로 이 여인에게 소망을 주십니다.

오늘 성경 13절, 14절 말씀을 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소망입니다. 여러분 이 여인은 육신의 목마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편을 다섯 번씩이나 바꾸었다는 것은 인생의 만족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목마름이 있다는 것은 영적인 공허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심령속에는 하나님이 채워주시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적 목마름이 있는 우리에게 신령한 생수에 대해서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네가 매일 이 더운 날씨에 물을 길으러 오는데 이 물을 먹으면 다시 목마르지만 내가 주는 물을 먹으면 너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함이 솟아나는 샘물이 될 것이다.” 주님은 소망을 주십니다. 이제 너의 육신의 목마름을 해결할 길이 있다. 너의 영생의 문제를 해결할 길이 있다. 너의 인생의 문제를 치료할 길이 있다. 이것을 제시하십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누구를 전도 할 때에 이분이 질병가운데 있다면 만군의 의사되신 예수님을 그분에게 소개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오세요. 예수님께 나오면 당신의 질병을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그가 경제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은 만군의 주인이십니다. 그 분 앞에 나오면 이 하늘의 부요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인생의 많은 문제를 가진 불들에게는 문제를 해결하시는 주님을 소개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갈릴리 가나에 혼인 잔치 집에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포도주가 없어서 고민될 때에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듦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것이 어떤 인생의 문제든 예수님 앞에 나오면 그 문제 해결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사르밧의 한 과부는 밀가루와 기름이 다 떨어져서 마지막 떡을 해먹고 죽을 위기에 쳐해 있지만 하나님의 종이 와서 그 가정을 축복할 때 기근이 끝날 때 까지 밀가루 통에 밀가루가 끊이지 않고 병에 기름이 끊어지지 않는 축복을 경험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소망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십시오. 교회에 나오십시오. 말씀을 들으십시오. 당신의 인생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소망을 제시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경험을 간증으로 소개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알고 있는 집사님들의 간증을 간접적으로 소개할 수도 있습니다. 소망을 불어 넣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결코 거짓이 아닙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소개해 주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단계는 그를 초청하는 것입니다.

오늘 읽지 않았지만 23절에 보면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참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느니라.” 예배가운데로 예수님은 이 여인을 초청하고 계십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얼마나 좋았는지 “내가 이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만났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 메시아를 만났다.” 그의 말이 바뀌어 집니다. 처음에는 당신이었다가 다음에는 주여, 그다음에는 선지자로 부릅니다. 그리고 그 여인은 동네를 다니면서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소리를 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달려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사마리아 온 동네가 복음화 되었다는 아주 소중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도 여러분이 작정한 태신자에게 이 다섯까지 방법을 가지고 나가실 때 좋은 열매가 맺혀질 것으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다섯 가지를 실행하려고 할 때 꼭 기억할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전도할 때 기도가 꼭 필요합니다.

여러분 전도는 기도의 사역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 성령께서 그 사람의 마음 문을 열어주셔야 합니다. 여러분 먼저 기도하고 나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기도하시면 마음이 강하고 담대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전도할 때에는 먼저 기도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장에 보면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에서 먼저 기도하시고 하루에 전도활동을 시작하셨음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에 보면 너희가 관원들에게 넘겨질 때 “무슨 말을 할까 염려하지 마라. 너희 속에 말씀하시는 이는 성령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함으로 성령을 의지하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기도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전도는 영적인 사건입니다. 악한 영에게 붙들린 인생을 찾아오기 위해서는 기도하고 성령충만을 입고 나아가야 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전도할 때 꼭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긍휼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긍휼의 마음은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누군가를 간절히 사랑하고 그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긍휼이 여기는 마음입니다. 사랑의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여러분 오늘 예수님은 이 한 여인을 향한 긍휼의 마음이 있으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싫어하는 그 길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여인이 물 길으러 나오는 그 시간에 예수님은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작정한 태신자들에게 사랑의 마음, 긍휼의 마음을 가지셔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만나느냐? 전도하러 나가느냐? 그것은 상대방이 너무 잘 압니다. 그것은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에게 그대로 전달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어떤 책에서 보았는데, 과수원을 하는 농부가 농약을 쓰지 않고 아주 맛있고 굵은 사과를 재배하는 방법을 소개했습니다. 다른 방법이 아닙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는 과수원을 거닐면서 나무 하나 하나를 만져주면서 이름을 불러줍니다. 나무마다 이름을 붙여놓았습니다. “영희야 잘 잤냐? 오늘도 너 행복해라. 오늘도 맛있는 과일 맺어야지.” “오늘 철수 참 잘 잤구나! 너무 예쁘다. 오늘도 좋은 열매 맺어야지.” 이름을 부르면서 축복해줍니다. 그러니 사과나무가 병충해도 안 생기고 좋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식물들도 사람의 사랑의 마음에 공감을 느낍니다. 하물며 사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두 개의 고아원이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많은 아이들이 부모를 잃어버리고 고아원에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쪽 고아원 아이들은 건강하게 잘 자랐는데 한쪽 고아원 아이들은 병이 들고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한쪽 동리의 고아원에는 어떤 정신 나간 여자가 왔습니다. 자기 아들을 전쟁중에 잃어버리고 정신이 나가서 아이들만 보면 자기 아이처럼 안아주고 쓰다듬어 주는 것입니다. 고아원의 아이들에게 매일 자기 아이인줄 알고 사랑을 부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한쪽 고아원은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음식을 먹지만 설사를 하고, 병이 들고, 쇠약해 졌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긍휼의 마음, 불쌍한 마음을 가지고 복음을 들고 나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세 번째로, 여러분이 전도할 때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전도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한 영혼을 너무 너무 귀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가 전도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저 영혼을 너무 사랑하는데 내가 저 영혼을 전도해야한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먼저 주님을 사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전도는 80%가 사랑으로 이루어집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형제와 이웃을 사랑할 때 전도가 이루어집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을 때 전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너무 너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마음이 내 마음에 이심전심으로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2차 대전 때 한 교회에 예배당 마당에 예수님 상을 누가 조각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비행기가 폭격을 해서 예수님의 한쪽 팔, 한쪽 다리가 떨어져 나갔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재직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습니다. 예수님의 다리와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가서 너무 보기 흉하니 헌금을 해서 예수님의 팔과 다리를 붙일 것을 건의했습니다. 그러자 한 분이 반대를 했습니다. “동상을 수리하는 것보다 우리가 예수님의 한 쪽 다리가 되고, 한 쪽 팔이 됩시다. 예수님이 손과 발로 하셨던 일들을 우리가 감당합시다. 예수님이 병든 자를 찾아가셨다면 우리가 찾아갑시다. 예수님이 복음 전도하셨다면 우리가 가서 전도합시다. 예수님이 구제하셨다면 우리가 구제합시다. 우리가 가서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됩시다.” 그 의견에 모두가 동참하였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한 영혼을 향해서 나가는 것은 주님의 팔이 되고 주님의 다리가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프란시스 리들리 하버갈’이라는 한 소녀가 외지에 나가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목사의 딸이었지만 외지에서 방탕한 삶을 살고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권유해서 그림을 전시하는 화랑에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화랑에 그림 중에 눈에 뛰는 그림이 있었습니다. 그 그림은 빌라도가 손을 들어 예수님을 향하여 바로 “이 사람을 보라.”고 예수님을 가르키는 그림이 있었습니다. 그 그림 밑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나는 너를 위해 이 일을 행하였건만 너는 무엇을 하였느냐?” 이 글귀를 보는 순간 ‘리들리 하버갈’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자신의 모습을 회개하면서 새로운 하나님의 영감을 받게 되는데 하나님이 귀한 찬송가 시를 그에게 내려 주셨습니다. 그가 그것을 찬송가로 기록한 것이 185장입니다.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내 죄를 속하여 살길을 주었다.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 아버지 보좌와 그 영광 떠나서 밤 같은 세상에 만백성 구하려 내 몸을 희생했건만 너 무엇하느냐? 내 몸을 희생했건만 너 무엇하느냐?” 기도드리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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