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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은 누구인가?(창 1: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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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참나가 아니다.

인간은 질문을 가진 존재이다. 좋은 질문은 인간을 발전시킨다.
<왜 사과는 땅에 떨어질까?>라는 질문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게 했고, 여기서 과학의 혁명이 일어났다. 에디슨의 질문은 1100개 이상의 발명품을 세상에 선보이게 했다.

우리가 꼭 묻고 답을 찾아야만 하는 중요한 질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질문은 무엇인가? → ‘나는 누구인가?’

교회는 어떻게 보면 약간 이상한 곳이다. 편안하게 그냥 잘 살고 있는 사람을 흔들어 깨워서 생각하게 만들고, 고민하게 만드는 곳이 교회이다. but 만일 어떤 사람이 어딜 가기 위해서 배를 타러 나와서, “이 배는 몇톤입니까? 최고 속도는 얼마입니까? 배안에 식당은 있습니까?” 이런 질문만 하고 그 배의 목적지를 묻지 않았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당신은 누구입니까?
OOO → 이름이다.  OO교회 담임목사 → 직업, 직분
키가 178이고, 몸무게는 73Kg이고 → 이러한 외모 역시 나 자신이 아니다. 만일 교통사고를 당해서 팔이나 다리가 절단된다면 그게 나인가? yes 만일 OOO가 나에게 신장이나 간을 이식해 준다면 그건 누구인가?

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은 우리의 겉으로 드러나는 것 이상이다. 그래서 바울은
고후5: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but 우리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가지고 판단하려고 한다.
이것은 옳지 않다. 왜냐면 때로 우리의 겉으로 드러나는 나는 진짜 나가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의 참모습을 가리기 위한 가면인 경우가 있다. → 교회 올 때 많은 사람들이 가면 쓰고 온다. 가면 벗어보라.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하고, 의미를 찾고, 성취감을 누리기 위해서는 “내가 누구인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2. 오류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자신의 외모를 잘 가꾸거나, 만족할 만한 신분을 얻게 되면, 의미있는 삶을 살게 되고, 행복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but 솔로몬을 보라. 솔로몬은 권세도 지위도 부귀도 여자도 모두 소요했던 왕이다.
만일 외모나 사람들로부터의 존경이나 업적 신분 등이 의미있는 삶이라면 솔로몬은 최고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but 솔로몬은 그가 가진 모든 것에 대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는 외적인 것을 추구하는 삶의 무의미함을 계속 설명하고 있다.

당신이 얻을 수 있는 재물이나 신분은 당신의 인격에 아무것도 더해줄 수가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공의 사다리를 계속 기어오르고 있지만 그들은 자기가 잘못된 벽에 기대고 있다는 것을 정상에 오른 후에야 깨닫게 된다.

한 여학생이 있다고 가정하자. 뚱뚱하고, 못생기고, 공부도 못하고, 말도 더듬고... 이 여학생이 행복할 수 있을까? → 세상사람들은 결코 그럴 수 없다고 자신있게 대답한다. 이 세상은 외적인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갖지 못한 삶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but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 지선이 같은 여학생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음주운전자가 낸 6중 추돌의 대형 교통사고로, 당시 23세의 명문 여대생 이지선씨는 전신 55%의 화상을 입었다. 4-5년 만에 한번 나올까 말까해 의사들 마저도 포기해버린,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살아났지만 얼굴의 형제를 알아 볼 수 없게 되고, 양손의 손가락까지 절단해야 했던 이지선, 그러나 그녀는 지금 행복하게,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마귀에게 속고 있다.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의 참된 신분이 거짓의 아비인 마귀에 의해 왜곡되고 있다.
당신은 죄인인가? 의인인가? → 죄인이 아니다.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죄를 짓지만 우리의 신분은 의인이다. but 마귀는 교활하게도 우리의 행위에 의해 우리의 신분이 결정된다고 믿게 만든다. 내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자신을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그 결과 더 많은 죄를 짓게 된다. 내가 삶에서 많은 실패를 했기 때문에 나는 실패자이다, 그래서 더 많이 실패하게 만든다.

3. 긍정적인 나의 신분

내가 누구인가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셨을 때 상속받은 나의 신분을 이해해야 한다.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흙으로(2:19 동물들도 흙으로 만들었다.) but 우리가 동물과 다른 것은 생기를 코에 불어 넣으셨다는 것이다. → 육, 혼(생각하게 하는 마음, 느끼게 하는 감정, 선택하게 하는 의지), 영

(1) 육적생명(비오스)
우리가 아담으로부터 받은 육적인 생명을 신약성경은 비오스라고 표현한다. 비오스는 몸과 혼(지정의)의 연합을 나타낸다. 몸과 혼이 연합되어 있으면 육적으로 살았다고 하고, 몸과 혼이 분리되면 육적으로 죽었다고 말한다.

고후5: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니라.
→ <나>는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 이상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 때 육체없이 살 수 없다. 그래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육체 속에 거하는 자 답게 살아야 한다. 규칙적으로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고, 자신의 몸을 보살펴야 한다. but <참된 나>는 육체 이상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육체는 결국 죽고 썩어져 없어지지만, 그 후에도 나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2) 영적생명(조에)
고후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바울은 육신처럼 나이 먹어 부패하지 않는 영적생명에 대해 말한다. 이 영적생명을 신약성경은 조에라고 표현한다.
영적으로 살았다는 것은 영혼이 하나님과 연합하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담이 창조되었을 때의 상태이다. 아담은 육체적으로도 살았고, 영적으로도 살아서 하나님과 완전히 연합하였다.

but 아담이 범죄한 후 그 연합이 깨어졌다. 이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과의 회복된 연합-영적생명, 조에-이 참된 나이다.

4. 타락의 결과

(1) 영적 죽음
타락으로 말미암아 아담과 하와에게 → 하나님과 연합된 관계가 깨어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창2: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 죽었다.

(2) 마음 -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상실
창3:8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숨을 수 있겠는가? 암담과 하와가 하나님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다. 타락이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에 대한 정확한 판단력을 가질 수 없었다.
엡 4:18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지식은 관계적이다. 누구를 안다는 것은 친근한 개인적인 관계를 의미한다.
창4:1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KJV-And Adam knew Eve)

타락전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알았다. 결혼을 통해 부부가 매우 개인적이고 친근한 관계를 갖는 것처럼 친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범죄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을 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상실했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잃어버렸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의 어두운 마음을 물려받았다. 죄악된 본성의 상태에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는 무엇인가를 알았지만, 하나님과 관계를 갖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말씀(로고스)이 육신이 되신 것이다.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3) 감정 - 부정적인 감정이 지배
두려움과 염려가 생겼다.
창3: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두려워하게 되고, 실패에 대해 두려워하게 되고,

수치와 죄책감이 생겼다.
창2:25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창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참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일까봐 두려워서 가면을 쓴다.

침울해지고 분노하게 되었다.
창4:5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4) 의지 - 수많은 선택
아담과 하와의 범죄는 그들의 의지에도 영향을 미쳤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무엇이든지 다 할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한가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선택했다. 그 결과 우리 앞에는 매일 선과 악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수많은 일들이 놓여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셨다.
5. 창조로부터 물려받은 긍정적인 기업
에덴동산 → 회복된 나

(1) 하나님의 목적(비전)을 부여받았다.
창1:26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이 권위를 주셨다. 타락 이전의 아담의 통치가 하나님의 자녀인 당신에게 회복되었다. 그것이 바로 당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기업이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2) 인간의 모든 필요가 공급되었다. (29-30절)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모든 것이 다 충족된 상태였다. 먹을 것이 풍족했고, 하나님앞에서 영원히 살 수 있었다. 아무 것도 부족한 것이 없었다. 하나님과의 연합이 회복됨으로 이것 역시 회복되었다. 우리는 원하는 대로 하나님 나라의 부를 소유할 수 있다.
빌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3) 소속감을 가졌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소속감을 체험했다.
① 하나님과 일대일의 친숙한 교제를 통한 소속감
창2: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② 아담에게 하와를 허락하심으로 서로 소속감을 경험하며 격려하고 돕도록 하셨다.
→ 우리도 하나님과, 또 다른 성도들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해 소속감을 충족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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