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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로운 성품-본성의 변화(엡 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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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분 인식의 중요성

지난 주에, ‘당신은 누가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외적으로 보이는 내가 진짜 내가 아니고, 내 속에 보이지 않는 나, 영적생명(조에) → 하나님의 자녀

사람이 자신을 어떤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 자신을 불량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말 불량배처럼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자신을 영적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한다면 예수님처럼 승리와 자유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에릭 리델 → 1924년 제8회 파리 올림픽 경기의 100M 경기 금메달 후보였다. 그런데 첫 예선 경기가 주일이었다. 그는 “저는 주일에는 뛰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우승할 수 있는 경기를 포기했다.
but 그는 자신의 주종목이 아닌, 200m에서 동메달을 따고, 400m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땄다.
육상선수였는데 왜 그는 뛰지 않았을까? 그는 운동선수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달리지 않았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안에서 그들의 유업인 영적 성숙과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그들이 잘못된 자기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음 출생할 때 첫사람 아담 안에서 영적으로 죽은 상태로 태어났다. but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남으로 말미암아 새생명-영적생명을 갖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생명을 가졌고, 성자가 되어진 우리의 새로운 신분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고전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성도 → 대부분의 영어성경은 saints(성자)로 번역
사도바울이 우리를 성자라고 부를 때 우리의 공로 때문에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다.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기억하라. 우리는 범죄 할 수 있는 성자이지, 죄인은 아니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우리는 의롭다 인정함을 받았고(칭의), 하나님께서 완전히 받으신 존재이다.

2. 줄다리기를 그치라

but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큰 난관은 의인이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행위가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생활은 죄의 유혹에 자주 쓰러지고, 스스로 실망하고, 하나님과의 원활한 관계를 파괴하는 불순종으로 점철되어 있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롬7:19,24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가 자신의 죄악 되고 부정적인 면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데, 이 부분이 해결되어야만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두 마리의 개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우리 안에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려고 싸우고 있는 두 가지 본성이 있다. 불순종한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옛본성은 검은 개와 같다. 또 그리스도에게서 물려받은 새로운 본성은 흰 개와 같다. 이 두 마리의 개가 원수로서 서로를 잡아먹으려고 한다. 당신이 세상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할 때는 당신은 검은 개를 먹이고 있는 것이다. 마음이나 행동이 영적인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는 흰 개를 먹이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더 많이 먹이고 있는 개가 더 크게 자라서 결국 다른 개를 잡아먹게 된다.

이런 이야기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우리를 자극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사실>은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골 1:13)” 우리가 여전히 두 나라에 거할 수 있는가?
롬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 우리가 영과 육에 동시에 거할 수 있는가?
엡5: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 우리가 어떻게 어둠과 빛 양쪽에 거할 수 있는가?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 어떻게 부분적으로는 새로운 피조물이요, 부분적으로는 옛것이 될 수 있겠는가?

“내 안에 흰 개와 검은 개, 두 마리의 개가 있다. 나는 일부는 빛이고, 일부는 어두움이다. 일부는 성도이고 일부는 죄인이다.”라고 믿는다면 당신은 구원받지 못한 세상 사람처럼 살 수 밖에 없다. 죄를 지을 때마다 회개하고 더 잘하려고 노력하지만 계속 패배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사단의 속임수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칭의와 성화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로 순간적으로 이루어지는 사건이다. but 성화-매일 성도의 생활에서 일어나는-는 성도의 전 생애를 통해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성화는 칭의의 내적인 변화를 분명히 깨닫고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만 효과적으로 이루어진다.

3. 그리스도 이전과 이후의 변화

여러분! 더 이상 자신이 죄인이라는 생각을 갖지 말라. 여러분은 의인이다.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바울도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but 바울이 말하는 것은 예수 믿기 전에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 같은 사람’이었다는 고백이다.
딤전1:13-16  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5...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기 전과 그리스도를 안 뒤를 분명히 알고 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의 이력서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스도에게 나아오기 전의 당신의 본성
엡2:1-3 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그리스도에게 나아온 후의 당신의 본성
벧후 1:3-4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것은 당신의 옛본성에 새로운 거룩한 본성을 추가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거듭난 것은 변태가 아니고 변화이다.
애벌레 → 번데기 → 나비 ⇒ 변태 - 좀더 나은 모습으로..., 
but 애벌레 → 동충하초 ⇒ 변화, 본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생명, 그리스도가 심기운 변화이다.

엡5:8은 우리가 구원받았을 때 일어났던 본성의 변화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어두움 안에 있었다”가 아니고 “어두움” 그 자체였다고 말한다. 그리고 변화된 후에도, “그 어두움에 빛이 조금 들어왔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 “빛 안에 있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 “빛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나의 본성, 본질”은 이미 결정되었다는 것이다.(빛으로) 이제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본성을 더 낫게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고(어두움을 조금 더 몰아내고 조금 더 환하게 하는...), 새로운 본성을 깨닫고 그에 알맞은 삶의 방식을 배우는 것이다.

5. 새로운 본성(성품)이 필요한 이유

하나님은 우리가 선한 행위로서 우리의 옛본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알고 계신다. 그래서 주님은 새 본성을 주셨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될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되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성품을 주셨다. 그러나 우리는 열심히 예수님처럼 살려고 노력하고 예수님을 모방함으로써 예수님과 같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마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당시 종교적 완전주의자들이었다. 행위와 노력으로 예수님처럼 될 수 있다면 아마도 그들이 제일 먼저 되었을 것이다. but 그들의 외적 행위는 그럴싸했지만 내적으로는 회칠한 무덤 같았다. 그들은 죽음의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당신의 신분을 바꾸시고 당신이 그의 성품에 참여한 자가 되게 하신 후에 비로소 당신의 행위를 변화시키려고 하신다.
이러한 새로운 성품을 가진 사람은 옛성품에 따라 행동할 때 죄책감을 느낀다. 이런 행위가 현재의 나 자신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죄책감은 내 안에 새로운 성품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된다.

당신이 구원받았을 때 당신의 옛사람은 죽었다.
롬6:2 ...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골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어떻게 죽었나?
롬6:6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 하려 함이니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골3:3의 너희가 죽었고 → 과거시제로 사용, 우리는 어떻게 하면 내가 죽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문제는 죽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옛 사람은 구원받았을 때 이미 죽었다. 이미 이루어진 일을 또 이루려고 애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미 이루어진 일을 알고 받아들이며 믿기를 원하고 계신다.


옛 사장과 새 사장 → 아직도 옛사장이 나를 지배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옛사람이 당신의 행동이나 감정, 사고방식, 습관 등을 육신의 모양으로 길들였고 통제했기 때문이다.
but 거듭났을 때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살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신의 육체는 남아 있다. 이미 만들어진 옛사람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이 그대로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옛사람에게 맞춰서 이미 만들어진 사고방식, 생활방식대로 살지 말라.
이제는 내가 누구인지, 신분의 정확한 인식을 가지라.
생각을 바꾸고, 참된 나에 맞춰서 내 겉사람을 뜯어 고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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