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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최상의 복 (시 8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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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의 복 (시84:1-12)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4)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 (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6)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7)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셀라) (9)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보옵소서 (10)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12)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1. 사람은 누구나 복 받기를 원합니다. 풍요의 복, 건강의 복, 사업의 복, 자녀의 복, 장수의 복, 안전의 복, 평화의 복, 지혜의 복, 영혼의 복 등등 삶의 모든 요소에 복 받기를 원합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만복(萬福)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1:27-28)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복이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외에는 복이 없습니다. 인류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복을 받아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을 범하므로 그들은 죽음이라는 저주를 받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죄를 범한 인간이 거룩한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다시 한번 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죄 사함 받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기 위해 ‘희생 제물’(sacrifice)을 드리도록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죽음)이므로 죄의 삯을 치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도록 희생 제물을 드리는 곳이 바로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은 죄 사함을 통해 생명의 복을 받아 영원하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거룩한 곳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이 그토록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짓고자 했던 것도 인간의 생사화복뿐만 아니라 나라 민족의 흥망성쇠가 모두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짓고자 하는 거룩하고 귀한 마음을 가지므로, 그리고 성전 건축에 최선을 다 하므로 그 이름이 세상에 가장 존귀하게 되는 복과 그 왕위가 영원하게 되는 복, 그리고 그 가문이 영원한 복을 받았습니다.(삼하7:5-16) 다윗이 성전 건축을 준비하고 그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왕상8:23-53) “만일 저희가 주께 범죄함을 인하여 하늘이 닫히고 비가 없어서 주의 벌을 받을 때에 이곳을 향하여 빌며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그 죄에서 떠나거든 주는 하늘에서 들으사 주의 종들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 마땅히 행할 선한 길을 가르쳐 주옵시며 주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신 주의 땅에 비를 내리시옵소서. 만일 이 땅에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든지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유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무릇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으로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옵시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한 마디로 이스라엘 백성이든 이방인이든 누구를 막론하고 질병이나 재앙, 환난을 당해 지은 죄를 깨닫고 죄를 인정하며 죄 사함을 위해 부르짖어 기도하면 그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복을 내려 주시옵소서라는 기도입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기도드린 후 일천번 예배를 드려 전무후무한 지혜와 부귀영화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혔습니다. 죄를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온전한 희생 제물을 드린 것이 아니라, 눈 멀고, 다리 절며, 병든 것, 심지어 도적질 한 것을 가져오는 등 온전치 못한 것을 드렸습니다. 이는 회개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뜻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도 없고,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리는 것조차 아깝고 귀찮다는 것으로 하나님을 경멸하는 죄악이었습니다. 이를 기록한 성경을 보겠습니다.

(말1:6-8,13)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 하며 코웃음하고 토색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 당시에는 성전을 장사꾼의 소굴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보시니 성전이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돈 바꾸는 환전상들, 비둘기 등의 제물을 파는 자들, 온갖 장사꾼들로 득실거렸습니다.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인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그리고 바리새인들이 예배의 편리함을 돕는다는 구실로 장사꾼들로부터 상납금을 받고 성전 뜰에서 장사하도록 허가를 내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어 장사꾼들의 상을 둘러엎고 쫓아내시며, “ ‘내 성전은 모든 민족의 기도하는 집이다.’라고 성경에 쓰여 있는데 너희는 이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막11:17) 며 탄식하셨습니다.

솔로몬의 기도처럼 이스라엘 백성이든 이방인이든, 세계 모든 만민이 회개하므로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 기도하는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성전을 더럽힌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더럽혀진 성전을 헐어버리시고 사흘 만에 다시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2:19)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이 말씀을 듣고 유대인들이 이 예루살렘 성전을 무려 46년에 걸쳐 지었는데 어떻게 사흘 동안에 짓겠느냐며 의아해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성전’은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2:21)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이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인류의 죄 사함을 위해 희생 제물이 되시고, 그 제물이 드려지는 거룩한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소개할 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고 했습니다.

세상 누구든지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온전한 제물이시라는 뜻입니다. 인류의 죄 사함을 위해 어린양 희생 제물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원한 생명, 영생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을 헐라’는 것은 곧 십자가에 죽으심을 의미하고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는 것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죄 사함을 받아 영생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곧 사망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16:18)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세우신 오늘날의 ‘교회’는 솔로몬 성전처럼 사람의 손에 의해 세워진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희생하시므로 세우신, 하나님께서 지으신 거룩하고 온전한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으로서 ‘교회’는 만민이 죄 사함을 위해 기도하는 집입니다. 교회는 세상 모든 사람이 죄를 회개하고 사함을 얻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복, 영원한 복을 받는 곳입니다. 비록 세상 부귀영화 등 모든 좋은 것들을 누린다 해도 그 인생이 결국 죄 사함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고 멸망한다면 그는 영원히 불행한 것입니다. 천하 세상의 어떤 인간의 이름으로도, 그 어떤 것으로 죄 사함을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가졌다 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복을 받지 못하면 그 인생은 영원히 불행입니다. 세상 그 무엇보다 가장 큰 복, <최상의 복>은 성전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복입니다. 온 인류에게 복을 주시고자 세우신 교회, 성전을 이전보다 더욱 사랑하시므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최상의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2. 오늘 본문 말씀은 ‘성전’을 사모하며 사랑하는 사람이 <최상의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중 ‘주의 장막’(1절), ‘여호와의 궁정’(2절), ‘주의 제단’(3절), ‘주의 집’(4절), ‘시온’(5절) 등은 모두 성전을 가리키는 말들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뜻합니다. ‘주의 장막’이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언약’, 즉 십계명을 안치한 곳인데, 이곳에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임재하시어서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주의 장막’을 ‘성막’(이출25:8)라고도 부르는데, 이 성막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면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세워져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지만, 그들의 예배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나타날 때가지 한 달이든 일 년이든 머물러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막’은 예배에 따라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가나안 땅으로 가기도 하고 멈추기도 해야만 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삶과 신앙의 중심이었습니다. 이처럼 오늘날 교회도, 하나님의 말씀(언약)이 중심이 되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가나안 땅, 즉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 성도들의 삶과 신앙의 중심이 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히브리어 “예디드”)”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한 눈에 반할 만큼 성전이 아름답게 느껴진다.’는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궁전을 얼마나 사모(히브리어, 카싸프)하는 지 몸과 마음이 쇠약할(히브리어, 카라)” 정도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창백하여 아플 정도로 성전을 갈망하여 몸과 마음, 영혼까지 완전히 소모되어 기진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교회와 성도가 한 눈에 반할 만큼 아름답게 느껴지고, 몸과 마음, 영혼까지 완전히 소모되어 기진할 정도로 갈망되시는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3. 이러한 성도에게 하나님께서는 <최상의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먼저,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는”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여기 ‘눈물 골짜기’는 이른 바 통곡의 골짜기입니다. 구약 여호수아 당시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되 우상숭배 죄로 가득한 그 땅 거민이나 그 어떤 생물도 살려두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에 그들을 살려두게 되면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삿2:3) 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도자 여호수아는 죽고 가나안 땅은 아직 정복하지 않은 곳이 많은 채, 각 지파별로 분배받은 땅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배받은 땅에서 편하게 살지 못하고 주변 가나안 족들로부터 노략과 약탈을 당하고 싸우게 되면 번번이 패배하기 일쑤였습니다. 게다가 온갖 재앙이 그치지 않았습니다.(삿2:15) 이러한 불행과 재앙이 계속되어도 깨닫지 못하자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어 그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삿2:2-3) 너희는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며 그들의 단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그리함은 어찜이뇨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하나님의 사자가 이 말씀을 전하자 자신들이 당하고 있는 모든 환난과 재앙과 패배의 원인을 깨닫고 온 백성이 소리를 높여 통곡했습니다.(삿2:4) 그래서 그 곳을 ‘통곡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 ‘보킴’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보킴’을 가리켜 오늘 본문에서 ‘눈물 골짜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성전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이같은 ‘눈물의 골짜기’, ‘보킴’을 ‘많은 샘물이 터져 나오는 곳이 되게 하는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샘물’은 팔레스틴 가나안 땅에서 축복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눈물이 변하여 샘물처럼 터지는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삶에서 역전(逆戰)의 승리로 축복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겠다.” 축복의 비로 그 눈물의 골짜기를 덮어버리겠다는 의미입니다. 삶의 구석구석에, 크고 작은 모든 일에 복으로 덮어, 하는 일마다 아름다운 열매로 풍성하게 채워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 다음 축복은 “주께 힘을 얻고”,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모든 슬픔과 삶의 어두움이 기쁨과 생명의 빛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이기게 하시며, 미련한 자가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며, 병든 자를 건강하게 하시며, 그 시작이 비록 미약할지라도 나중은 심히 창대하게 되는 복을 말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왔지만 앞에 가로 놓인 것은 시퍼렇게 넘실거리는 홍해 바다였습니다. 그리고 뒤에는 바로가 전 병력을 동원하여 추격해오고 있었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원망하며 차라리 여기서 죽지 말고 바로에게 항복하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아우성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렇게 외칩니다.

(출14:13-14)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과연 모세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돌격해오는 바로의 진영에 구름과 흑암이 덮이게 하여 앞뒤를 분간 못하게 하시고, 이스라엘 진영에는 밤에도 훤하게 하시어 바로의 공격을 차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름과 흑암으로 방패를 삼아 바로의 공격을 막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밤새도록 큰 동풍을 불게 하여 홍해 바다를 갈라 마른 땅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힘)으로 바다에 길을 여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 길로 바다를 다 건넜습니다. 뒤 이어 바로의 군대가 추격하자 하나님께서 바다 물이 다시 흐르게 하여 바로의 군대를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수장시켜 버렸습니다. 이때 모세가 이같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출15:1-2)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이처럼 성전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뒤편의 위기를 막아주시는 ‘방패’가 되어주시며, 앞의 모든 문제들을 능히 해결해주시는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 하시고 베풀어 주시는 복”을 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10) 라는 본문의 고백처럼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함께 지내는 단 하루가 세상에 빠져 살아가는 수많은 날들보다 더 귀중하고 복된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부귀영화와 명예 등을 얻는 것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봉사하는 삶이 더욱 귀하고 <최상의 복>된 것임을 믿고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온, 교회에서 복을 주신다.”(시128:5)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과 몸, 영혼이 쇠약할 정도로 성전으로서의 교회를 사모하는 은혜가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성전으로서 평강 교회가 ‘한 눈에 반할 만큼 아름답게’ 느껴지는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더욱 더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성전을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최상의 복>이 성도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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