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환경주일] 생명의 행진 (겔 47:6-10)

  • 잡초 잡초
  • 448
  • 0

첨부 1


생명의 행진 (에스겔47:6-10)
 
오늘부터 교회 강대상보와 목사님들의 스톨 색이 녹색으로 바뀌었습니다.
오늘부터 대림절 첫째주일인 12월 2일까지 여섯 달 동안 계속해서 녹색을 사용하게 됩니다.
교회에서 이렇게 교회력에 맞춰 사용하는 색을 예전색(禮典色)이라고 부릅니다.
교회의 예전색은 색마다 의미가 있습니다.

녹색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녹색은 목양교회 고유색이기도 하니까 목양 성도들은 녹색의 의미를 더 잘 알아야 합니다.
녹색은 성장과 번영의 색입니다.
이제 교회력의 후반기가 시작되었는데 교회력의 후반기는 교회와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위해 힘쓰는 때입니다.

녹색은 또 생명의 색입니다.
이제 생명의 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
계절적으로도 지금은 생명력이 산과 들에 가득 넘치는 때입니다.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강물이 흐르는데 이 강물은 이르는 곳마다 살리는 역사를 일으킵니다.
모든 것을 살립니다.

8절을 보세요.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그 다음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되살아나리라

9절을 보세요.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흐르는 각 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7절을 보세요. 그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다고 하였습니다.
12절을 보세요.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된다고 했습니다.
나무도 귀중한 생명입니다. 이 강물이 나무에도 생명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싱싱한 생명이 가득해서 약동하는 것을 느낍니다.
바다로 흘러드는 이 물은 아주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바다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8절을 다시 보세요.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이 바다가 어느 바다인줄 아십니까?
사해입니다!
10절에 나오는 엔게디, 에네글라임 모두 사해 주변에 있는 곳들입니다.
사해는 이름 그대로 죽음의 바다입니다. 거기에서는 아무 것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생명의 물이 흘러 들어가면 거기에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많은 종류의 고기들이 살게 됩니다.
19절을 보면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큰 바다는 지중해입니다.
19절에는 대해라는 말이 나오는데 성경에 나오는 대해는 모두 지중해를 말합니다.
지중해에 얼마나 많은 종류의 고기가 살겠습니까?
이 물이 흘러들면 사해가 생명의 바다가 되어 그렇게 고기들이 많이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물은, 복음은, 기독교의 진리는 여러분, 죽음과 같은 영혼의 바다를 생명의 바다로 바꾸어 놓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빈약한 생명이 아닙니다. 풍성한 생명의 바다로 바꿔놓습니다.

이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일입니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고린도, 매우 번성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방탕한 도시였습니다.
‘아무도 고린도에 가면 안 된다’는 격언이 생겨날 정도였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신전들이 많았습니다.
아폴로 신전도 있었습니다. 이 아폴로 신전의 유적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아프로디테라는 여신을 섬기는 신전도 있었습니다.
영적으로는 죽음의 바다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 고린도에 작고 못 생긴 전도자 바울이 십자가의 복음을 들고 들어왔습니다.
고린도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생명의 물이 고린도에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만일 고린도전후서가 기록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엇을까요?
사람들이 오늘 고린도라는 이름을 기억할까요?
일부 고고학자들이나 기억할 것입니다.
오늘날 고린도는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하는 사랑의 찬가가 전해진 곳으로 유명한 이름이 되었습니다.

다른 곳을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를 보세요.
우리나라는 유교문화, 미신, 샤머니즘, 이런 것들이 지배하던 곳이었습니다.
영적으로 역시 사해와 같던 곳이었습니다.
거기에 생명의 물인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이 복음은 강한 힘을 가지고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생명의 물을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로 흘려보내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지금 한국은 선교사 숫자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웃나라 중국을 보세요. 유교를 바탕으로 하는 나라입니다.
그 위에 1920년대부터 사회주의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50여 년 전에는 완전히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지금 중국의 경제정책은 많이 변화되었지만 기본적인 정치체제는 변함없이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그런 중국이 지금은 세계에서 성령의 역사가 가장 강한 지역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이상합니다. 중국기독교의 역사가 올해로 200년인데 그 가운데 기독교가 가장 왕성한 때는 여러 가지로 제약을 받고 있는 바로 지금입니다.

이 물은 무엇을 살립니까?
영혼을 살립니다.
영혼이 살고 육신이 죽는다면 그것은 염려할 것이 못됩니다.
그것은 천국에 입성해서 영원히 사는 것이니까요.
육신이 살아 있는데 영혼이 살아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문제입니다.
살아있어도 참된 삶이 아닙니다.
육신도 살고, 영혼도 살아있는 생명을 우리는 새생명이라고 부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생명을 소유하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지금 새생명 큰 잔치를 준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에서 ‘생명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는 직업이 어떤 것인가?’ 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어느 직업이 생명에 대해서 제일 깊이 생각할 것 같습니까?
의사였다고 합니다. 49.3% 가 그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 다음이 종교인 19.3% 가 그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세 번째가 철학자, 15..8%가 그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생명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육적인 생명이 있고 영적인 생명이 있습니다.
육적인 생명을 깊이 생각하는 일은 1위를 다른 직업에게 내 주었지만 성도들은 영적인 생명을 깊이 생각하는 일은 그 자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내주어서는 안됩니다.

이 물은 육신의 생명도 살립니다.
교회는 들어가는 곳에 병원을 세워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세워진 현대식 병원은 의료선교사 알렌이 세운 제중원, 오늘날의 세브란스병원입니다.

아프리카 밀림의 성자 슈바이처는 생명경외(reverence for life) 사상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그 당시 멸시 받던 아프리카 흑인들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겨 아프리카 밀림에 가서 그들의 병든 육신을 돌보는 일에 온전히 헌신했습니다.
슈바이처는 투우와 사냥을 금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교회는 환경도 살려야합니다.

주보 2면 예배순서 위에 쓰인 대로 오늘은 성령강림절 후 두 번째 주일이면서 동시에 환경선교주일입니다.
지난 주일 저녁에 우리는 평신도주일을 지켰는데 평신도주일은 감리교회에만 있는 주일입니다.
오늘 환경선교주일은 감리교회만 지키는 주일이 아니고 여러 교파가 한국교회 환경주일이라는 이름으로 공동으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여러 교파가 공동으로 이렇게 자료집을 만들어 각 교회에 보내 참고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올해 한국교회 환경주일의 표어는 ‘한국교회여 지구를 식혀라!’입니다.
지구의 온난화현상, 정말 심각한 문제이지요.
올해 참 좋은 표어를 제정했다고 여겨집니다.

저는 평소에도 ‘환경문제는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누군들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겠습니까?
최근에는 어느 일간지가 ‘지구의 생명은 이제 17년밖에 남지 않았다.’ 하는 별지 특집을 꾸민 것을 보고 ‘정말 심각하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가졌습니다.
이번에 이 자료집을 자세하게 읽으면서 ‘위기일발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감리교회는 환경선교에 매우 적극적입니다.
감리교 교리와 장정에 ‘교인의 의무’라는 조항이 있습니다.
‘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사람들에게 증거한다 ②매일 성경을 읽으며 기도한다“ 이렇게 시작되는 항목인데요 그 아홉 번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교인은 환경을 사랑하고 보존하는 일에 솔선수범한다’(「교리와 장정」 106단)입니다.

그리고 ‘감리교인 환경실천수칙’을 만들었습니다. .
감리교인 환경실천수칙은 열 가지인데 다 말씀드리면 설교가 환경문제 강연처럼 됩니다. 여기서는 다 말씀드리지 않고 아까 말씀드린 것과 같이 교인의 의무 조항과 함께 교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려놓았습니다

환경선교주일을 맞이해서 감독회장님이 목회서신을 모든 교회에 보냈는데 그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이제 한국감리교회는 대표적인 환경교회요, 녹색교회가 되기 위해 교회마다 환경선교위원회를 조직하고 모든 교인들이 환경지킴이가 되도록 합시다.

저는 여기에서 ‘녹색교회’란 말을 처음으로 보고 ‘녹색교회가 어떤 교회인가? 우리 교회처럼 교회 고유색을 녹색으로 정한 교회인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살아보니까 그것이 아니고 창조질서보전에 힘쓰는 교회, 생명을 살리는 일에 터전이 되는 교회를 녹색교회라고 부른답니다.
알기 쉽게 말해서 환경운동에 앞장서는 교회입니다.
매년 녹색교회를 선정해서 ‘이 교회는 녹색교회입니다’ 하는 증서를 드리고 명패를 달아드리고 있답니다.
최근에는 일산에 있는 백석교회와 아산에 있는 송악교회가 녹색교회로 선정이 되었답니다.
그런 것을 알고 ‘교회 고유색을 녹색으로 하고 있는 우리 교회는 환경문제에도 앞장서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을 평가한다면 여러분 몇 점을 주시겠습니까?
긍정적인 면도 있고 반성해야 할 면도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신문이 이번 호로 지령 40호를 맞이하는데 제목이 「푸른 풀밭 맑은 시내」입니다.
대치동 강남대학 옛 교사에서 오수복 장로님이 홍보출판위원장을 하실 때 창간되어 4호까지 대치동에서 냈을 것입니다.
수지에 들어와서 제목을 「푸른 풀밭 맑은 시내」로 바꿨을 것입니다.
그 제목에 대해 몇 가지 반응이 있었는데 오동춘 장로님이라는 시조시인은 일부러 엽서에 ‘제목을 한글로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큼직하게 써서 보내주셨습니다.
또 공무원이라고 기억되는데 ‘환경문제에 협력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교회는 환경문제에 모범적인가 봅니다.’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 제목을 정할 때는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부담임목사님 한 분이 우리 교회에서 즐겨 부르는 찬송가 453장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1절 가사에 있는 것을 제안해서 그렇게 정해졌는데 친환경적인 이름이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하고 있는 아나바다도 훌륭한 환경운동입니다.
아나바다가 무엇입니까? 사행시 한 번 해 봅니다.
아: 아껴 쓰고, 나: 나눠 쓰고, 다: 다시 쓰고, 바: 바꿔 쓴다
아까 말씀드린 ‘감리교인 환경실천수칙’ 여덟째는 이런 것입니다.

우리는 재사용, 재활용하고 중고품 이용을 생활화한다
‘감리교인 환경실천수칙’ 네 번째는 물에 대한 것인데 ‘우리는 물을 아끼고 받아쓰며 재사용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물에 대해서도 아나바다운동을 해야 합니다.

바나바권사회에서 동막천 청소 열심히 하고 있는 것도 좋은 환경선교입니다.
어디 갔다가 교회로 돌아올 때 다녀올 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머내에서 내려 걸어 들어오는 일이 많습니다.
그 때 동막천 옆의 산책로를 이용하게 됩니다.
교회 입구, 대우아파트 앞에서 교회까지 약 1,100걸음입니다. 좋은 운동이 됩니다.
그 길이 주변에 꽃도 있고 길 포장재도 걷기에 편하게 되어 있습니다.
종종 냇가에 백로인가요, 흰 새들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 바나바권사회가 매주일 오후에 수고해서 이 길이 깨끗해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더욱 기분 좋습니다.
바나바 권사회에서는 동막천 청소를 ‘동막천 청소와 전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오늘도 주보에 그렇게 났습니다.
이것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전도, 환경을 대상으로 한 환경선교, 일석이조입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는 다시 두 가지를 포함합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전도는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나눠주면서 하는 직접전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고 ‘아, 저 교회에서 좋은 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 간접전도, 이중효과가 있습니다.

반성해야 할 점도 있습니다.
일회용품을 너무 많이 사용합니다.
교회 여기저기에 컵을 비롯해서 일회용품들이 많이 버려져 있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사무실로 올라오는데 땅에 일회용 종이컵이 버려져 있는 것을 보지 않을 때가 거의 없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감리교인 환경실천수칙 아홉째가 “우리는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다”입니다.

아까 ‘감리교인 환경실천수칙을 다 말하면 환경강연 같이 되니까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하고서 여러 개를 말씀드렸네요.
저는 오늘 설교에서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말할 계획이 없었습니다.
119 새생명 큰 잔치를 두 주일 앞에 두고 ‘영적인 생명의 행진을 힘차게 합시다’ 이런 내용으로 준비하다가 ‘오늘이 환경선교주일인데, 환경 문제, 중요한 문제인데…’ 하면서 자료집을 잠깐 보았습니다.
‘이거 안 되겠다!’ 하는 마음으로 많은 말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평소에 크게 환경문제를 강조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반성도 있습니다.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저는 생명의 행진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있는데 환경운동과 관련된 자료들을 보면 생명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환경운동을 하는 분들은 ‘환경선교가 무엇인가?’를 다섯 가지로 말합니다.

환경선교는 창조질서를 보전하는 신앙운동입니다.
환경선교는 생명을 살리는 생태운동입니다.
환경선교는 생명적, 평화적 세계관을 갖는 정신운동입니다.
환경선교는 단순소박하게 사는 생활운동입니다.
환경선교는 자연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영성운동입니다.

생명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이 생명의 물을 거부하는 사람은 사망을 당합니다.
영원한 사망입니다.

11절을 보세요.
에스겔서 47장은 밝은 내용으로 시작해서 잘 진행되다가 11절에 와서 분위기가 깨집니다.

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사해 부근에 웅덩이들이 많이 있답니다.
사해 물이 많아서 넘치거나 비가 많이 올 때 그 웅덩이에 물이 고인답니다.
그 다음에 다시 해가 쪼이기 시작하면 그 웅덩이의 물들은 빠져나가지 못하고 염분이 아주 강해진답니다.
물이 마른 다음에 그 땅은 그야말로 소금 땅이 되고 맙니다. 죽음의 땅이 되고 맙니다.
이 진펄과 개펄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영원한 사망 가운데 거하는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그 대표적인 본보기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사해 주변에 있던 도시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두 천사를 보내셔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킬 계획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천사들을 영접한 롯은 살았습니다.
그 천사들을 해치려했던 소돔과 고모라의 주민들은 비같이 내리는 유황과 불에 멸망당했습니다.
롯이 자기의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창 19:14)라고 말했는데 사위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구원 받을 수 있는 권면을 무시한 사위들도 함께 죽었습니다.

생명의 물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람도 이렇게 죽은 존재가 되고 맙니다.
두려운 일입니다.
지금도 이 지구 위에는 이런 죽음의 땅과 같은 곳들이 몇 군데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곳이 북한입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이런 죽음의 땅과 같은 살믈 삶을 있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두고 보시기만 하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 생명의 물은 어디에서 흘러 나왔습니까?
이 생명 행진은 어디에서 시작 되었습니까?
이렇게 모든 것을 살리는 물이 어디에서 흘러나온다고 했습니까?

47장 1절을 보세요.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12절을 보세요.
강 죄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더라

여러분, 교회는 생명 행진의 출발점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5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거기 아담의 족보가 있습니다.
아담의 족보는 무엇으로 연결됩니까?
“죽었더라”는 말로 연결됩니다.

5절을 보세요.
그는(아담입니다) 구백삼십 세를 살고 (그 다음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죽었더라

8절을 보세요.
그는(아담의 셋째 아들 셋입니다. 아담의 둘째 아들 아벨은 형에게 맞아 죽었고 첫째 아들 가인은 벌을 받아 방랑하는 사람이 되어 족보에서 빠졌습니다.) 구백십이 세를 살고(그 다음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죽었더라

이렇게 “죽었더라”로 연결됩니다.
그 때 사람들, 참 오래 살았습니다.
아담, 구백삼심 세, 아담의 아들 셋, 구백십이 세, 므두셀라 구백육십구 세, 그러나 오래 살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다 죽었습니다.
아담의 족보는 죽음의 족보입니다.
아담은 사망 행진의 시작입니다.

이제 마태복음 1장을 보세요. 예수님의 족보입니다. 여기에는 “죽었더라”가 없습니다.
“낳고” “낳고” “낳고”로 연결됩니다.
아브라함에서 시작되는 예수님의 족보는 생명의 족보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족보처럼 생명의 시작입니다.
교회는 생명행진의 출발점입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생명운동을 일으키는 생수의 근원이십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과 38절의 말씀을 보세요.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예수님을 믿어 예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수를 마신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요한복음 4장 14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러분,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생수를 마시도록 힘써 전도합시다.

말콤 펜윅이라는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캐나다 분인데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한 분이었습니다.
이 분이 한국 선교사로 나가겠다고 할 때 주변에서 당신과 같은 분이 어떻게 선교사가 될 수 있겠느냐고 말렸습니다.
그 때 말콤 펜윅 선교사는 ‘네, 나는 녹슨 깡통과 같은 존재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그러나 녹슨 깡통도 생명의 물을 담아서 나를 수는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말콤 펜윅 선교사는 한국에 온 선교사들 가운데 한국을 가장 사랑한 선교사, 일을 아주 많이 한 선교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러분, 이 생수를 힘써 사람들에게 날라다 줍시다. 나눠 줍시다.
그들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소유한 새생명을 덧입은 자들이 되도록 합시다.
우리는 비전을 가져야합니다.

본문에는 미래형이 많습니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미래형입니다.
에스겔은 지금 바벨론 땅 그발 강가에서 포로생활을 하면서 미래의 환상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비전을 가집시다.
이 전이 가득 차는 비전을 가집시다!
이 성전을 출발점으로 하는 생명의 행진이 무한대로 힘차게 뻗어나가는 비전을 가집시다!

알파 코스의 후속 코스인 인카운터 수양회가 그제와 어제 갈보리 금식기도원에서 잘 진행되었습니다.
9개의 강의가 있었습니다. 야곱 이야기, 죄와 회개, 질병 치유…

마지막 강의가 비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제목이 ‘진정한 성공, 비전을 이루는 지도자’였습니다.
우리의 비전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일치해야 하고 그것을 이루어드리는 것이 성공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 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전이 가득 차는 것,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입니다.
이 성전을 출발점으로 하는 생명의 행진이 힘차게 뻗어나가는 것,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이루어드리는 성공자들이 됩시다.

행군 나팔 소리로 주의 호령 났으니
십자가의 군기를 높이 들고 나가세
선한 싸움 다 싸우고 의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받아쓰리라
선한 싸움 다 싸우고 의의 면류관 예루살렘 성에서
면류관 받으리 저 요단강 건너 우리 싸움 마치는 날
의의 면류관 예루살렘 성에서(찬송가 402장)

녹색의 계절, 생명의 계절입니다.
생명의 행진을 시작하라는 주의 호령이 났습니다.
행군 나팔 소리가 들립니다.

성도 여러분, 생명의 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행진의 구경꾼이 되시겠습니까?
이 행진의 뒤에서 마지못해 따라가는 사람이 되시겠습니까?
내가 선두에 서겠다고 서로 다툽시다.

그래서 모두가 승전가를 부르며 주와 함께 기쁨을 누리며 의의 면류관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