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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향을 떠난 사람들 (룻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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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구약의 룻기 첫 부분을 읽었습니다.  이번 주일부터 앞으로 몇 주간 연속으로 이 룻기를 읽으면서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룻기는 전체가 4장, 85절로 이루어진 상당히 짧은 책입니다.  이미 룻기를 여러 번 읽으신 분들도 있지만 아직 읽지 못하신 분이 있으면 이번 기회에 이 책을 꼼꼼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아주 짧은 사랑 이야기인 이 룻기를 가능하면 한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보는 것도 룻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룻기는 구약 성경을 장르별로 구분할 때 시문학서에 속하며 단편소설 형식으로 쓰여진 사랑 이야기입니다.  이 책 안에는 여러 형태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우선 나오미와 룻이라는 두 여인의 고부간 사랑입니다.  그리고 모압 여인 룻과 베들레렘 사람 보아스라는 남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랑의 배후에는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이 그려져 있습니다.  쓰라린 슬픔을 만난 한 가정의 여인들을 통해 자기 백성들의 고통을 묘사하고, 그 고통 중에 새로운 만남이 이루어지면서 고통과 슬픔이 변하여 놀라운 기쁨과 회복을 얻는 해피 앤딩의 이야기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위로와 큰 사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네 장으로 된 룻기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가나안 땅 베들레헴에 살던 한 가정이 흉년을 피해 고향을 떠나 이웃 나라 모압 지방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러나 그 땅에 사는 10년 사이에 그 집의 가장과 두 아들이 세상을 떠나고 그 집에는 시어머니와 두 젊은 며느리 이렇게 남편들을 잃은 세 여인만 남게 됩니다.  결국 시어머니 나오미는 모압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고 그때 룻이라는 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와서 극진히 봉양하다가 우연히 그 지방의 부유한 사람 보아스라는 남자를 만나 사랑이 시작되고, 그 사랑이 무르익어 결국 결혼을 하여 두 사람 사이에 오벳이라는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장차 이스라엘의 왕이 될 다윗의 할아버지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방 여인 룻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 사람이 되었고 더 나아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이런 하나님의 섬세한 사랑과 계획 속에 우리들을 구원하러 오셨다는 더 소중한 의미를 우리에게 선포하고 있는 사랑 이야기입니다.  슬픔과 절망에 빠져 있는 나오미와 룻을 절망적인 상황에서 구원하시고 상상할 수 없었던 복을 주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은혜와 구원을 베풀고 계십니다.  심지어 사랑의 하나님은 죄와 방탕의 생활을 하던 사람일지라도 그 삶을 정리하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사람은 누구나 환영하시고 구원하십니다.

시어머니를 따라 하나님의 백성들 속으로 들어왔다가 보아스라는 사람을 만난 룻은 전에 하나님을 모르던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된 우리들에게 좋은 모델이 됩니다.  성경은 교회와 성도들을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 사랑 받는 신부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룻기를 통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과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인종과 혈통을 초월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연합되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도 예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소중한 하나님의 뜻을 담은 이 룻기를 읽어가면서 우리 각 개인과 내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깨달아 회복과 감사의 기쁨을 주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언제 이 사건이 이루어졌는지 룻기의 시대적 배경은 1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룻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직 왕이 없이 사사들에게 지도를 받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구약의 배경에 낯 설은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을 드리면, 모세의 뒤를 이어 히브리 백성들을 이끌었던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정복한 후 12지파로 이루어진 백성들에게 지파별로 그 땅을 분배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비로소 정복전쟁을 그치고 하나님이 주신 그 땅에서 안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애굽에서 400여 년의 노예생활을 청산하고 40년간의 광야 여행 기간을 마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살 수 있는 복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맺은 중요한 약속이 있었습니다.  신명기 28장에 기록된 말씀처럼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그 명령을 잘 지키고 살면 그 땅에서 자녀의 복과 산업의 복을 누릴 것이라는 복의 약속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들을 섬기며 악한 길로 가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벌을 내려 그 땅에서 재앙을 만나고 또 그 땅을 다른 민족에게 빼앗길 것이라는 엄한 경고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그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평안하게 살 수 있는 복을 약속 받은 행복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도자 여호수아가 죽은 뒤 사정은 급변하고 말았습니다.  여호수가 살아 있는 동안과 여호수아와 함께 백성들을 이끌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하신 일을 눈으로 목격한 장로들이 살아 있을 동안에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다 죽고 난 후 새로운 세대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하신 일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삿2:7-15)  그들은 그 지방 사람들이 섬기는 바알과 아스다롯 같은 우상을 섬기기 시작하였으며 그 지방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악을 행하는 백성들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고 전에 약속하신 대로 그들을 그 땅의 다른 민족들의 손에 맡겨 침략을 당하고 자연 재해 등을 내려 고통 속에 살도록 버려두셨습니다.

사사기의 기록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를 하다가 징벌을 받아 모압과 미디안과 아말렉, 불레셋 등 주변 민족들에게 많은 고통을 받습니다.  해마다 추수 때가 되면 미디안 사람들이 침입하여 일년간 수고하여 얻은 농작물을 빼앗아가고 말았습니다.  전에 모세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을 인도할 때처럼 탁월한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주변 민족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백성들이 하나님께 하소연하였고 하나님은 그때마다 그들에게 일시적으로 뛰어난 지도자를 세워주셔서 그들이 백성들을 이끌어 갈 때는 사회가 안정이 되고 주변 국가의 침략으로부터도 보호함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위기의 처한 백성들을 이끌던 영웅을 가리켜 우리말 성경은 사사(士師)라고 불렀고 영어성경에는 Judge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들어 알고 있는 사사 중에 기드온, 삼손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왕은 아니었고 전쟁이 일어나면 군사적인 지도자로서 세움 받아 군사들을 이끌고 전쟁을 하여 백성들을 보호하고 방어 전쟁이 끝나면 일상생활로 돌아갔고, 평소에는 중요한 소송들을 관장하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 사울이 첫 번째 왕으로 세워질 때까지 수 백 년을 이스라엘은 이렇게 사사들의 지도를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사사기 21장25절 말씀은 그 시대의 상황을 이렇게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17:6, 18:1, 19:1)는 말씀처럼 사사의 시대는 한 마디로 혼란의 시대였습니다.  그들은 이웃 민족들에게 고난을 당하면 하나님께 살려달라 호소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겨 사사를 세워 나라를 평안으로 인도하면 어느새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고 그 징벌로 또 고난을 당하고 또 사사가 등장하여 일시적으로 평안을 회복하는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되던 시기가 사사 시대였습니다.  백성들도 자기 멋대로 살고 심지어 사사로 세움 받은 사람들도 처음에는 성실하게 일을 하다가 나중에는 사람이 변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법이 되어 그 법에 순종하며 사는 세상이 아니라, 자기 좋은 대로 살고 자기 하고픈 대로 사는 세상, 질서 부재의 세상에서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당연히 소홀히 여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룻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바로 사사들이 다스리던 이런 시대를 살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처럼 사회가 어지러울 때 설상가상으로 그 땅에 흉년까지 들었습니다.  농사가 잘 되면 미디안 사람들이 빼앗아가고 이번에는 흉년으로 곤란에 빠졌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왜 이런 고난을 당하여야 했는가 그 이유를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신명기 28장과, 앞에서 사사기 2장을 읽었던 것처럼 이스라엘이 이런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악을 행함으로 받는 징벌이었습니다. 

룻기는 이런 어려운 시대를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한 가정을 대표적으로 부각시켜 하나님을 떠나 범죄한 이스라엘이 당하는 일반적인 시련과 고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가정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하나님께서 그 땅에 흉년이라는 징계를 내리셨을 때 사람들이 그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돌아와 순종하는 생활로 변화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흉년을 피하여 고향을 떠나 이웃 나라 모압 땅으로 이사를 가버린 한 가정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룻기는 사랑의 이야기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의 이야기는 그 시작이 흉년과 피난,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죽음을 당하는 처절한 눈물과 아픔으로 시작이 됩니다.  유대 땅 베들레헴에 살던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으로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엘리멜렉이라는 이름은 아주 좋은 뜻을 가졌습니다.  ‘엘리’는 나의 하나님이라는 말이고, ‘멜렉’은 왕이라는 뜻입니다.  ‘나의 하나님은 왕이시다’는 이름은 그가 오직 하나님만 왕으로 섬긴다는 충성스런 이름입니다.  그가 그의 이름대로만 살았다면 그렇게 혼란한 시대일지라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섬기며 고난의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백성으로서 위로와 복을 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만 나의 왕이시라는 고백을 하며 살아야 할 사람이 그 땅에 흉년이 들자 이제는 더 이상 이 저주스런 땅에서 못살겠다고 판단하고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팔고 집을 팔아 가산을 정리하여 이웃 나라 모압으로 가족들을 이끌고 이사를 가버렸습니다.  전쟁과 흉년이 계속되는 여기는 더 이상 비전이 없고 사람 살 곳이 못 되는데, 모압 땅은 풍요롭다는 소식이 들려와 그 땅으로 가면 행복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이사를 결정했을 것입니다.  다른 마을이나 다른 도시가 아니고 아예 다른 나라로 이사를 가버렸습니다.  물론 엘리멜렉이 영원히 모압 땅에서 살려고 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1절 마지막에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다’ 고 했으니 우거한다는 말은 임시로 붙여 사는 것을 말합니다.  모압에서 자손대대로 살려고 했다기 보다는 언젠가 고향에 기쁜 소식이 들려오면 다시 돌아올 계획으로 떠났을 것입니다.  그 동안만 이 풍요로운 땅에 피하여 살면서 여기서 사업도 하고 자녀들을 키우다가 다시 돌아가리라는 계획을 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들도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입니다.  어떤 분은 학업을 위해 조국을 떠나 왔고, 어떤 분은 회사에서 파견을 나왔고, 안식년으로 나왔으며 자녀 교육을 위해 나왔고 또 사업을 위해 나왔습니다.  여기서 잠시 머물다 목적한 바를 이루면 돌아갈 계획을 하고 있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이곳 생활이 익숙해져 영주권과 시민권을 얻어 살고 있는 분들은 이젠 한국보다 영국이 더 편한 가정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마음은 항상 떠나온 고국과 고향에 있습니다.  내가 언젠가는 부모형제가 사는 조국으로 돌아가 내 노년을 마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기도 합니다.  이처럼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임시로 살고 있는 사람을 가리켜 우거한다고 말합니다. 

엘리멜렉이 모압에 우거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국에 잠시 머물더라도 여기에 살고 있는 한 영국식 질서를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아는 상식입니다.  물론 여기서도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말을 하고 한국 음악을 듣고 한국 영화를 다운받아 한국사람으로 살 수 있지만 이 나라에 들어와 사는 이상 이 나라의 법과 질서를 따르고 이 나라의 문화에 영향을 받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엘리멜렉이 고향 땅 베들레헴이 살기 힘들어 모압에서 잠시 살려고 이사 왔지만 모압에 와서 사는 이상 그 가족은 모압 사람이 사는 방식을 따라 살아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나라에 머물려면 그 나라 왕의 통치를 받고 살아야 합니다.  엘리멜렉은 아직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때에 사사들의 지도를 받고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인간 왕이 아닌 하나님이 친히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주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특권을 누리던 특별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못 가서 그것을 특권으로 여기지 않았고 하나님을 멀리하고 배반하며 다른 나라 사람들이 섬기는 눈에 보이는 우상을 신으로 삼고 거기에 절하며 복을 구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삼지 아니하는 그 백성은 더 이상 하나님의 시민으로서의 자격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백성들을 보시고 그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왕의 보호를 잠시 포기하십니다.  그러면 그들에게 즉시 재앙과 전쟁이 닥쳐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왕으로 삼고 살아야만 했던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사이의 특별한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의 왕이시라는 좋은 이름을 가진 엘리멜렉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떠나 모압 왕의 통치 아래 스스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풍요와 안정을 찾아보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왜 가나안 땅에 풍요가 사라지고 전쟁이 끊일 날이 없는지 그 근본적인 원인을 깨닫지 못하고 그 땅의 저주를 피해 다른 나라로 떠나가면 될 것이라는 짧은 생각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엘리멜렉이 떠나온 고향 땅 베들레헴 에브랏은 성경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낯이 익은 이름입니다.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이기도 하며 다윗의 자손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동네이기도 합니다.  룻기의 저자는 이 이야기의 시작에서 그 복된 땅 베들레헴을 박차고 떠나가는 한 가정의 어리석은 선택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는 우리는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읽지만 그 상황에서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던 엘리멜렉과 그 가족은 이 사실을 알 수가 없습니다.  룻기가 오늘 우리에게 주려고 하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룻기의 첫 장, 첫 절에서 벌써 암시를 해 주고 있습니다.

베들레헴이라는 이름은 ‘떡집’ ‘빵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브랏은 야곱의 아내이며, 요셉의 어머니였던 라헬의 무덤이 있는 베들레헴의 옛 이름이기도 하며 그 뜻은 ‘수확이 많은’ 이라는 뜻입니다(창35:16, 19).  즉, 수확이 많은 떡집에 살던 사람들이 그 땅에 먹을 양식이 없어 먹을 것이 풍성한 이웃 나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옛날부터 곡식 수확이 많은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 먹을 양식이 없게 되었다니 이 얼마나 비극적인 사실입니까?  그들이 베들레헴을 떠난 것은 단순히 조국과 고향을 버리고 떠났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고향을 등지고 조국을 떠난 행위를 죄악시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떠난 것은 하나님의 다스림과 하나님의 보호를 떠났다는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떠났다는 말입니다.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 드리기로 합니다.  룻기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땅을 떠났다는 것보다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났다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우리도 어떤 계기를 따라 고향을 떠나고 조국 땅을 떠나기도 합니다.  우리도 떠나는 일을 많이 합니다.  이사를 가고 이민을 가며 사업장과 직장을 옮깁니다.  전공과목을 옮기고 학교를 바꿉니다.  이제껏 살던 생활 방식을 바꾸고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살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변화를 가지는가?  그 동기와 목적이 무엇인가?  무엇을 이루기 위하여 떠나고 바꾸고 새롭게 하는가?  여기에 우리의 인생관이 있고 철학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질문하고 대답해야 할 책임이 있고 의무가 있습니다.  떠남과 돌아옴은 룻기의 중요한 주제가 됩니다.  한 주간 룻기를 묵상하면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며 앞날을 위해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내가 떠나온 자리가 어디였는가 살펴봅시다.  그 자리가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였을 수도 있습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왜 내가 그 자리를 떠나야 했는가?  무엇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했는가 심각하게 생각해 봅시다.  반대로, 만일 내가 떠나온 자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던 곳이라면 지금 나는 그 자리를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있는가 점검해 봅시다.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의 기쁨이 교우 여러분의 가정과 삶에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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