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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으로 바꾼 주님의 보물 (행 20:2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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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를 타고 멋진 크루즈 여행을 떠났던 그 많은 승객들이 숨겨진 빙하 앞에 무너지는 것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12년에 만들어져 4월 14일 출발 15일 자정에 빙하에 부딫쳤다. 승객을 태우고 영국에서 뉴욕으로 처녀 출항했던 타이타닉의 침몰 과정에서 우리는 한 귀부인의 안타까운 죽음의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다. 이 침몰 과정에서 유럽의 신사들은 나이 드신 분들과 여인들을 먼저 보트에 태우는 귀한 신사도를 보여 주었다. 보트에 타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한 귀부인이 갑자가 보트를 타려 하다가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조금만 기다리라면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면서 자신의 방에서 꼭 내와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보석이라 말하면서 급히 방으로 향해 들어 갔다. 그러나 이 귀부인은 급박한 상황에서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한 보트로 말미암아 보석과 죽음을 바꾸어야만 했다. 이 여인에게 있어서 보석은 목숨과도 바꿀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집착의 대상이었다. 보석이 무엇이길래 생명을 건 모험을 했는지 안타까운 이야기일 뿐이다. 여러분은 과연 이 땅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보물이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자녀들이 될 것이다. 돈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족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여인은 물질에 눈이 먼 어리석은 사람이었지만 진짜 보석 때문에 고귀한 생명을 버리신 분이 있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보물은 주님이시요 주님의 말씀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와 같이 대답하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토록 사랑하는 주님의 가장 귀한 보물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가 주님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우리는 그 귀한 것을 귀하게여길 줄 아는 성도들이 될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보물처럼 귀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모르는 성도들이 될 수 있다. 오늘 우리는 이 주님의 가장 귀한 보석에 대하여 아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1.생명과 바꾼 주의 사역자들- 성령께서 친히 세운 종들 (20:28)

행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교회의 감독자들을 성령이 세우셨다고 바울은 말한다. 여기서 에베소 교회의 감독자로, 장로들로 사역을 감당하는 이 세움의 주인이 성령이라는 것이다. 주님이 자신의 교회인 성도들을 바르게 그리고 신실하게 섬길 사역자들을 친히 세웠다는 것이다. 성령이 그들 가운데서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았다는 것이다. 누구로부터 세움을 받았는냐는 참으로 중요하다. 권위에 대한 신뢰가 세워지기 때문이다. 교회의 직분은 성령으로 역사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세움을 받아 사역자가 된 자들이나 이 사역자들을 따르는 성도들이나 둘 다에게 참으로 중요하다. 내가 성령의 인도로 교회를 섬기는 사역자가 된 것이다. 교회의 사역은 내가 원해서 되는 것이 아니요,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성령이 기름 부어 세운 귀한 하나님의 종들로 헌신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직분을 맡아 수고하는 종들로서 나의 직분이 성령으로 역사되었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직분을 쉽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 직분자에 대한 성령의 역사를 믿음으로 받는 교회는 거룩한 교회가 될 수 있다. 주님의 인도를 믿고 신뢰하는 우리라면 주님이 세운 이 귀한 직분자들을 우리는 존경하고 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 진리를 알지 못할 때 우리는 직분자에 대한 가벼운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로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역자들이라면 우리는 우리교회에 세워진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진심으로 존중할 수 있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귀한 교회들은 이 가르침에 순종하는 교회들이다. 성령이 직분자들을 세웠기에 감히 이 사역자들에게 도전하지 않는 것이다. 이 놀라운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만의 생각의 판단을 내려 내가 배우고 익힌 진리와 맞지 않으면 반대파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큰 죄악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종들이다. 이 일은 직분자와 교회 공동체가 동일하게 주의 귀한 보물로서 역할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모든 직분자들을 성령이 세운 성령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 자들이라고 확신하고 신뢰한다면 사역자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보다 더 신사적이고 겸손한 태도를 가질 수 있다. 이 권위를 망각하고 교회의 직분자들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순종함으로 받지 않기 때문에 교회는 사단이 강력하게 역사하는 것이다.

때문에 성령의 역사로 세워진 하나님의 일꾼들을 방해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직분자로 세워진 자 또한 하나님의 귀한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친히 세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것이다.
때문에 참으로 은혜가 넘치고 하나님의 역사가 강력히 나타나는 교회는 이 거룩한 성령의 가르치심에 순종하는 교회들이다. 하나님이 세운 목사님이다. 하나님이 세운 장로님이다. 하나님이 세운 모든 주의 사역자들이다. 나는 오늘날 이 하나님의 사역자들에 대한 존중이 참으로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다윗은 이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자 사울을 절대적으로 존중한다. 비록 사울 왕이 그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였으나 하나님께서 왕으로 기름 부으신 것을 그는 존중했던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것은 곧 하나님에 대한 예우인 것이다. 인간의 타락과 잘못에 대한 실패를 보면서 그는 고소해 하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그 죄와 타락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는 것이었다.

출 애굽의 리더로 하나님은 모세를 세웠다. 모세가 하나님의 종으로 드려지면서 한 이방 여인,구스여인을 취했을 때 이것을 못 마땅히 여긴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의 리더십에 반항하게 된다.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리게 되어 칠 일을 캠프 밖에 머물게 된다. 모세처럼 겸손한 자가 있으면 나와보라고 하나님은 말한다.

또한 모세의 리더십에 반항했던 레위 지파 고라 자손을 우리는 성경에서 만난다. 하나님은 그들을 땅을 벌려 산 채로 벌어진 땅 속에 넣고 땅을 닫아 생매장 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250인은 향로에서 불이 나와 그들을 태워 버린다. 하나님께서 세운 리더를 우리가 판단하고 심판하는 일을 하는 것은 아주 조심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다. 이 일의 심판은 주님께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 사울 왕을 예우했던 다윗의 겸손이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자를 대한 모델로 받아드리는 것이 좋겠다.

(팔로워의 동역이 주의 역사를 이룬다)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역동적인 성령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 것은 하나님이 세운 리더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물론 리더는 참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나는 리더만의 리더십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리더의 주위에 있는 팔로워들이 얼마나 성령의 역사에 동참하는냐는 문제라는 것이다. 리더를 하나님의 사역의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코치로 전적으로 신뢰하고 따르는 것이다. 때로는 내 생각과 다르고 조금 섭섭할 때도 있다. 그런데 성경은 성령께서 그들을 감독자로 임명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교회는 이 부분이 잘 되고 있다. 서로를 존중하고 격려하면서 사랑하고 돕는 귀한 사역을 리더와 팔로워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고 있다. 따르는 자들이 사실은 그 위대한 사역의 주인공들이다. 기꺼이 헌신하고 격려하며 힘을 돋워 주는 일은 동역자들이 하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가 하늘나라 갔을 때 동일한 상급은 조력자들과 함께 받는 것이다. 편견 없이 사역한 너의 모습이 너무 좋았다고 칭찬 듣고 싶지 않는가? 묵묵히 섬기고 리더를 도와 주었던 겸손한 너의 섬김은 나를 섬기는 것이었다고 주님으로부터 듣는 칭찬이야말로 값진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천국은 이런 자들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얼마나 개성이 강한 세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가? 절대적 진리가 사라지고 상대적 진리 안에서 남을 존중하고 따른다는 것이 쉽지 않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교회를 세운 성령은 교회의 감독들을 그들 가운데서 친히 세웠다고 말한다.

나는 제자훈련을 목회의 가장 핵심이라고 믿고 주님의 제자들로서의 사역을 기대하고 있다. 이 열매는 실로 놀랍게 나타나고 있다. 제자훈련이 끝나고 순장과 순모로 세워진 사역자들과 하나님이 세운 성도들을 어떻게 하면 잘 섬길까하고 나누는 그 시간들을 하나님은 참으로 귀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믿는다. 순장과 순모들이 함께 섬기는 교회를 위해 애쓰는 모습은 참으로 귀하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들도 스스럼 없이 나눌 있고 도움을 청하고 협력하는 우리교회 평신도 사역자들은 이 일이 바로 성령의 역사로 진행된다는 것을 서로가 받아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성령이 세운 주의 종들의 사역이다. 내가 협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이다. 이 상급은 동일하게 내리는 것이다. 잘 받쳐주는 일을 하는 자들이야말로 믿음의 숨은 영웅들이 아니겠는가? 우리교회의 저력은 순장과 순모의 저력이다. 그렇게 세워지는 교회가 또한 건강한 교회라고 믿는다.
힘을 싫어 주는 조력자가 되는 것은 아주 귀한 성령의 사역이다.

2.값으로 산 주님의 보물인 주의 몸인 성도들을 잘 섬기라- 자기 자신을 위하여 온 양떼를위하여 삼가라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다.

(자기를 위하여 삼가라)
바울은 특별히 감독으로 세움을 입은 자들이 알아야 할 첫 번째 중요한 것이 자기를 위하여 삼가라고 말한다. 나 자신은 주의 피 값으로 산 주의 것이다. 내 몸을 잘 돌 볼 줄 모르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나 자신을 잘 돌보는 자가 주의 귀한 이름을 높이는 것이다. 나 자신을 잘 다스리고 성령에 매여 있게 하기 위해서 몸부림 치는 종이야 말로 주님이 기뻐 사용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로는 남은 잘 돌보고 사랑하는데 자기 자신은 잘 살피지 못하기도 한다. 내가 주님 앞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로 먼저 서야 할 것이 아닌가? 내 자신이 주님과 함께 천국에서 큰 상급과 칭찬 받는 주의 종으로 서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을 알면 나의 나 됨에 대하여 우리는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나를 삼가고 나 자신에 대하여 깨어 있는 믿음만큼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나 자신에 대한 문제가 해결 되면 그 이후에 우리는 밖으로 우리의 손을 펼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자신이 건강한 자아로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나는 사실 남을 도울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여러분들이 먼저 주님 앞에 철저히 자신을 헌신하는 별세의 신앙을 갖기를 바란다. 나는 십자가에 없어지는 은혜를 먼저 체험하고 그리고 나서 이 주님이 피 값으로 사신 나와 동일하게 사랑하고 아끼는 성도들을 돌보는 주의 종들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 자신이 내 것인 줄로 착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을 아는 것이다. 목사와 장로가 주님의 피 값으로 사신 주님의 것이다.
내 영혼을 위해 나를 돌보는 것이다.

(주의 피 값으로 산 성도들을 보 살피라-keep watch over계속해서 지키라)
주님의 피 값으로 산 성도들에 대한 태도를 가르친다. 십자가의 용서와 사랑은 성도들에 대한 피 값이라는 것이다. 돈을 주고 산 것도 아니다. 생명으로 산 주님의 자녀들이라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안다면 교회는 교만할 수 없다. 이 놀라운 진리가 교회에 충만해야 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성적으로 타락한 문란한 교회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거룩한 성도로 부름을 받은 교회라고 말한다. 교만과 뽐냄으로 겸손 보다는 나타내기를 좋아했고 은사를 자랑했던 교린도 교회를 향해서 바울은 무조건 비판하지 않는다. 그들도 주님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것이다. 다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한 자들을 가리켜 아이 같은 성도들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급한가?

고전13:2 “네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네가 아무 것도 아니요”

목사들과 믿음이 좀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범할 수 있는 실수가 그것이다. 어떻게 집사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내 믿음의 분량에 이르지 않으면 아주 이상하게 사람을 보는 것이다. 이런 교회에 초신자들이 나갔다면 숨이 막히는 것이다. 따뜻함과 이해는 없고 싸늘한 비판과 시선이 교회에 충만하다면 그 교회는 주님의 십자가를 모르는 교회이다. 처음부터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주님께서 나로 하여금 복음의 비밀을 알게 했고 십자가의 깊이를 아는 은혜를 먼저 주신 것뿐이다.

다른 자들이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고 인간적으로 반응하는 믿음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를 생각해야 한다. 나는 믿음으로 생각하고 감사로 섬기는 마음을 주었다면 그것은 참으로 귀한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불평 보다는 주님의 은혜로 성도를 섬기는 것이 감사하다면 그것은 기적인 것이다.
이것을 감사로 아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내가 아는 십자가의 감격을 아직 모르는 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알게 하고 감격하게 하게 하고 헌신 하게 하는 것이 먼저 된 자들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얼마나 이기적인가? 자기들 밖에 모른다. 이런 아이들이 나중에 장성하면서 얼마나 고상한 자들로 변화 되는가? 지금 있는 그 모습을 보고 아이들 같은 자들도 있을 수 있는데 그런 성도들을 잘 살피고 사랑하고 이해하면서 양육하라는 것이다. 비록 약한 믿음으로 지금은 반응하지만 그들을 위해서 주님이 피를 흘렸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알아야 하는 위대한 복음의 진리이다. 주님이 생명으로 바꾼 보물인 성도이다. 개인 개인이 이렇게 귀한 주님의 형상인 것이다. 나는 우리교회가 이 진리를 알고 성도들을 참으로 잘 섬기고 이해하고 사랑하면서 세워져 가는 주님의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 순장과 순모가 지금 이 일을 잘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우리 목장의 성도들을 잘 섬길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이 목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순장 순모는 이런 섬김들을 나누는 귀한 모임인 것이다. 목원들이여 순장과 순모에게 영적인 부모의 품을 느끼고 신뢰하는 믿음을 보이라. 처음부터 이것이 잘 되겠는가? 이것은 순장 순모와 목원들과의 신뢰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귀한 섬김과 따뜻한 보살핌이 열매를 맺게 하고 어린 아이 같은 믿음에서 성장하는 홀로 서는 믿음의 진보는 어떻게 오는 것일까?

왜 자기를 위하여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고 말 하는가?(29-30)
행20: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 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성령으로 충만한 바울이 미래를 보는 것이다. 바울이 떠난 후에 닥쳐올 교회의 환란은 그 정체가 확연히 들어나기도 하지만 구별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사나운 이리 떼가 교회에 들어 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너희들 가운데 그런 잘못 가르치는 자들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분파를 일으키는 장로들이 교회 안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을 바울은 이야기 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의 교회를 향한 안타까움이다. 교회는 상당히 전투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 준다. 양떼를 아끼지 않는 양의 탈을 쓴 이리 떼가 있다는 것이다. 교회 밖에서 약탈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들어와서 닥치는데로 상처 주고 죽인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는 장로들 가운데서도 제자들을 자기 편으로 나누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진리를 가르치지 않고 인기 몰이를 하면서 편을 가르는 분리주의자들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우리 주위에서도 얼마나 많은가? 교회를 세우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고 몸된 성도들을 섬기기 위해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득권과 그 어떤 것을 성취 해 보기 위해서 섬기는 자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성장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자들도 있다. 자신들의 위치가 약화될 것 같이 느끼면 교회에서 위기 의식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가 오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최근에 들었던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이 위기와 사단의 공격에서 승리하는 교회가 될 수 있을까? 바울이 떠나도 흔들림이 없는 주님의 용사들이 되어서 교회를 잘 보살피고 능력이 떠나지 않는 교회가 될까? 나는 이 놀라운 승리의 길을 제시한 바울에게 감사한다. 바울은 지금 없지만 우리는 바울이 남긴 위대한 승리의 비밀은 남겨졌기 때문이다. 

4.주님의 보물들인 성도를 가장 잘 섬기는 길은 복음에 녹아지게 하는 것이다(31).

행:20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 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 하던 것을 기억하라”
바울의 사역의 목적이다. 주님의 보물인 성도들을 가장 확실하게 섬기는 길이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을 알게하는 것이다. 그리고 값으로 산 신분의 변화를 맞이한 주의 자녀들이 이제는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자들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 것이 바울의 핵심적인 사역이다. 바울이 떠나면 사나운 이리 때가 공격한다는 것이다. 굶주린 이리들은 양들이 이쁘다고 봐 주는 인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닥치는 대로 물어 뜯어 죽이고 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리 때들을 가장 확실하게 막는 방패가 있다면 그것은 말씀의 검인 것이다. 믿음의 방패인데 말씀이 역사하는 주의 자녀들에게 이리 때는 아무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영적인 전쟁에서의 확실한 승리는 잘 무장된 말씀의 병사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능히 든든히 세우는 것32)
행20: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그 말씀이 든든히 세운다는 것이다. 바울이 가면서도 안심 할 수 있는 것 하나를 꼽는다면 그것은 은혜의 말씀이었다. 이것 만이 에베소 교회를 든든히 세운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능력의 교회는 3년 반 동안이나 쉬지 않고 가르쳤던 말씀의 훈련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기의 무기는 하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깊이로 결정 난다는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가 얼마나 많은가?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내가 모든 지식과 모든 비밀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다할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고전13:2절은 말한다. 특별히 교회의 리더로 세움을 받은 주의 종들이 나 자신을 위하여 믿음에 굳게 서는 영적인 종들이 되어야 한다. 나에게 부탁하신 주님의 피 값으로 산 주님의 보물들을 우리는 주를 섬기듯 섬겨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존재하는 이유이다. 제자들이여 철저히 자신을 삼가는 섬김의 종들이 되기를 바란다. 오직 사랑으로 용서로 주를 대하듯 성도들을 대하는 종들이 되라.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히 서리라는 이사야의 말씀을 뼈 속에 새기는 종들이 되라.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사40:8).
힘들고 어려우나 말씀과 씨름하며 진리에 바로서서 하나님의 귀한 역사를 이루어 가는 말씀의 교회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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