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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숙한 성도, 성숙한 교회 (엡 4: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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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불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하는 행동과 모습이 비위에 거슬리어 차마 볼 수 가 없음”이라는 뜻입니다.
몇 가지 재미있는 꼴불견 사례가 있습니다.

# 명절날 꼴불견 베스트 10 #
1. 가깝게 살면서도 늦게 오는 동서.
2. 형편 어렵다며 빈손으로 와서 갈 때 이것저것 싸가는 동서.
3. 한 시간이라도 빨리 가서 쉬고 싶은데, 눈치 없이 고스톱, 포커 등을 계속 치는 남편.
4. 술 취했으면서도 안 취했다고 우기며, 가는 손님 붙잡는 남편.
5. 시댁은 바로 갔다 오면서, 친정에 일찍 와서 참견하는 시누이.
6. 잘 놀다가 꼭 부침개 부칠 때 와서 식용유 엎는 조카.
7. 기름 냄새 맡으며 간신히 부쳐놓은 부침개를 날름 집어먹는 남편.
8. 며느린 친정 안 보내면서, 시집간 딸은 빨리 오라고 하는 시어머니.
9. 시댁에는 20만원, 친정에는 10만원으로 차별하는 남편.
10. 늦게 와서는 아직도 일하고 있느냐며 큰소리치는 형님.

# 식당 종업원들이 뽑은 꼴불견 손님 베스트 5 #
1. 야! 이리 와봐(대놓고 반말부터 시작하는 손님)
2. 내가 누군지 알아? (자기 과시하는 손님)
3. 음식 딴걸루...(메뉴 자꾸 바꾸는 손님)
4. 천원만 깍아줘! (치사한 손님)
5. 저기 슈퍼에서 껌 좀 사와!(개인적인 심부름 시키는 손님)

# 교회에서 보는 꼴불견! #
1. 앞에서는 웃으면서 뒤에서 험담하는 교인
2. 설교 중에 핸드폰 받는 교인(안 들리는 줄 알지만 다 들린다)
3. 뭐든지 자기가 주도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교인
4. 교회 와서 돈 자랑, 부동산 자랑하는 교인
5. 친한 사람들과만 끼리끼리 뭉쳐 다니면서 새로 온 사람에게는 관심 없는 교인
6. 늘 예배 때 지각하면서도 축도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교인
7. 배우지는 않으려하면서 가르치려고만 하는 교인
8. 늘 인사와 대접을 받기만을 원하는 교인
9.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이것저것 잘못했다고 말만 많은 교인
10. 밖에서 할 거 다하면서 교회만 오면 거룩한 척 하는 교인

  대부분 꼴불견인 사람은 인격적으로 다듬어지지 않고, 자기만을 위하며, 남을 배려하지 않고 무시하는 사람들입니다. 교인이면서 꼴불견인 사람은 믿음과 행동이 따로 노는 사람,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 세상적인 꼴불견의 행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왜 이런 현상들이 일어날까요? 교인은 많아지지만 성숙한 교인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으면 끝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구원 받는 데에 행위를 자랑할 것이 없고, 필요한 것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후에 우리는 “성화”의 과정을 거치는 겁니다. 믿음은 행위로 드러나는 것이죠. 행위로, 삶으로 드러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선한 행동 때문에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선한 행동을 위하여 구원 받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마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성숙한 성도, 성숙한 교회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교회에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 등의 직분들을 맡겨주신 것은 성도들이 온전케 되며, 봉사의 일을 하게 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숙한 성도들이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이요 사명입니다.

첫째, 성숙한 성도는 준비되어야 합니다
  본문 12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온전케 하다”는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 톤 카타르티스몬'은 병원에서 부러진 뼈를 맞추거나 어부가 찢어진 그물을 수리할 때, 또는 범죄한 자를 바로잡는다고 할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부러지고 상하고 찢어지고 범죄한 영혼을 회복시키고 건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목회자는 교인들이 성숙해지도록 돕는 일을 하는 것이고, 교인들은 이렇게 성숙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13절, 14절 말씀은 조금 더 부연된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13-14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온전한 사람이라는 말이 “성숙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자신의 믿음과 실제 삶이 일치되는 사람입니다. 더 나아가서 세상의 그럴듯한 말들과 교훈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지식과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지요.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진리와 비진리를 구분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음성과 사단의 음성을 구분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숙하지 못한 교인들이 이단의 감언이설에 잘 속아 넘어갑니다. 요즘 신천지 이단이 왜 그렇게 교회를 흔들고 있습니까? 교회에 많은 교인들이 성숙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기는 하는데, 예수님과 진리를 잘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생활을 했지, 진정한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온전케 하다’의 또 다른 뜻으로는 ‘준비시킨다’는 뜻이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다시 말하면 봉사의 일을 하도록 준비시킨다는 말입니다. 준비된다는 말은 하나님의 자녀로 분명하게 자리매김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봉사의 일을 하기 전에,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자녀가 되기를 기뻐하십니다. 교회에서 신앙생활은 일이 앞서면 언제나 상처받고 실패하게 마련입니다. 일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배워야 하고, 성도간의 친밀하고 영적인 교제를 나눠야 하고, 말씀과 기도로 훈련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준비와 성숙함 없이 봉사의 일만 하게 되면, 자기 일을 알아주지 않아서 상처 받고, 힘들어서 상처 받고, 그런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게 됩니다. 
  예배한다는 것은 단지 예배에 참여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늦게 오고, 와서 졸다가고, 예배 중에 딴 생각하면서도, 자신은 예배드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겠습니까? 하나님이 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시겠습니까? 홍수 가운데 마실 물이 부족한 것처럼 자신의 온 맘과 뜻을 다해 예배드리는 자, 자기가 누구를 예배하는 지를 깊이 인식하고 자신의 고백으로 예배하는 자가 참예배자입니다.
  어떤 분은 “교회에 하나님 만나러 오지 사람 만나러 오냐?”면서 예배만 드리는 분이 있습니다. 이것도 성숙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면서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고백합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교제는 단순히 몰려다니면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깊이 나누고 말씀으로 격려하고, 기도로 중보하는 것이 포함된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기도로 훈련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하다고 하면서, 성경을 읽지도 않고, 배우지도 않고, 기도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모습입니까?
  이러한 준비와 훈련 없이 새로 온 사람들을 사람 부족하다고 봉사부서에 경쟁적으로 데려다 앉히고, 청년들을 자기 신앙고백도 없이, 교제훈련도 없이, 말씀과 기도 훈련도 없이 봉사만 시키는 교회는 결코 성숙한 교회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봉사의 일 이전에 예배, 교제, 훈련의 준비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원리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고, 성도들과 교제하고, 말씀으로 훈련받기 힘쓰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온전한 성도는 봉사의 일을 해야 합니다
  본문 12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배우고 은혜 받는 것으로만 끝나도 성숙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구원 받아서 훈련받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교회와 이웃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들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마음이 들지 않으면, 그 사람은 아직 준비가 덜 된 사람입니다. 오늘 15절 말씀은 이 원리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5절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사랑으로 참된 것을 행함으로 인해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게 됩니다. 아는 것은 많아지는데, 봉사하지 않고 섬기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믿고 우리가 준비되는 단계라는 것은 자기 자신을 채우고 연단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 과정인 봉사의 단계는 내가 아닌 남을 채우고 연단하는 일입니다. 나보다 남을 위하는 일이기 때문에 성숙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교회 안에는 여러 가지 봉사의 일들이 있습니다. 주차, 식당봉사, 교사, 찬양대, 구역장, 새땅 섬김이, 전도대, 예배안내, 헌금위원 등등....예배를 돕는 봉사들이 있고, 접대하는 봉사가 있고, 가르치는 봉사도 있습니다. 많은 경우 믿음이 들어가기도 전에 봉사를 먼저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사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영화 “밀양”을 보면 동네 노총각이 남편과 이혼하고 밀양에 내려온 여인을 짝사랑하게 되는데, 그 여인이 교회에 나가게 되니까 어떻게든지 관심을 얻으려고 자기도 교회에 나갑니다. 주차관리도 하고, 역전에 나가서 노방찬양도 합니다. 구역예배도 드립니다. 그러나 진짜 관심은 여전히 그 여인입니다. 여전히 자기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교회에 나가니까 조금은 착해진 느낌정도를 갖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하는 여인이 이러저러한 일로 하나님께 실망하고 교회를 등지니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영화는 결론없이 끝나기 때문에 결론은 각자의 몫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심령이 새롭게 변화되고, 연단 받아서 하나님의 귀한 일군이 될 수 도 있고, 사랑하는 여인 따라서 교회를 나가버릴 수도 있지요.

  봉사를 계기로 참 믿음의 세계로 들어오게 되면 감사한 일이죠. 그러나 믿음 안에로 들어오지는 않으면서 교회 봉사는 점점 더 많이 하게 되고 그러다가 임원도 하고, 직분도 받게 되는 경우에 맡은 직분과 자신의 작은 믿음 사이의 격차가 커질수록 여러 가지 문제를 낳게 됩니다. 우선 자기 자신이 괴롭습니다. 믿음 없이 봉사하고 섬기려니까 사람들 시선을 더 많이 의식하게 되구요, 봉사를 많이 하면 할수록 자기 자신이 인정받고 싶어하구요, 그러다가 상처도 잘 받습니다. 믿음은 안 자랐는데, 교회 돌아가는 일은 빤해지니까 교회를 세상적인 잣대로 판단하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처리하려고 합니다. 그런 교인이 많아지는 교회는 교회에 어려움과 문제가 생기면 말씀에 귀 기울이고 모여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논쟁하고 싸우고 서로 비판하다가 교회가 분열하고 분쟁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꼴이 싫어서 예배만 하고 봉사는 안하려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잘못이지요. 봉사는 시간과 여력이 되면 하고, 아니면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인생의 분명한 사명이고 목적입니다.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고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고 하셨습니다.
  봉사와 섬김은 특정한 기술을 가진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계를 잘 다루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행정적인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가르치는 일을 잘 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요리를 잘하고, 어떤 사람은 청소를 잘하고, 어떤 사람은 낯선 사람과 편하게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자신의 직장과 학교와 가정에서도 다른 사람을 섬기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봉사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1절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기억하십시오. 훈련받지 않고 봉사만하는 것은 빈깡통이 되는 일이고, 훈련만 받고 봉사는 안하는 것은 영적인 비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섬기려 오셨고, 목숨을 주시기까지 우리를 섬기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교회와 이웃을 마땅히 섬겨야 합니다.

셋째, 성숙한 성도는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가야 합니다
  본문 12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구원받고, 훈련받고, 봉사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이루고자 하시는 꿈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전도와 선교를 통해서 교회가 성장하고, 교회 내의 모든 성도들이 서로 연합함으로 교회가 든든하게 자라가는 것을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16절은 이러한 모습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16절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연락한다는 말은 연결된다는 말이고, 상합한다는 말은 함께 연합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를 이루는 모든 지체들, 교인들이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연결된다는 말은 쉽게 말해서 다른 사람이 기쁘면 나도 기쁘고, 저 사람이 아프면 함께 아파하는 것을 말합니다. 옆에 있는 지체는 지금 아프고 상처받고 세상을 포기하고 싶은데, 그 옆의 지체는 자기 집 아파트 값 올랐다고 기뻐하고만 있다면 그것은 연결이 안 되어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이것이 진정 연결된 것입니다.
  상합한다는 말은 연합한다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연합이 뭡니까? 서로 다르지만 함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의 본질은 “유니폼(Uniform)”이 아니고 “유니티(Unity)”입니다. 다 똑같은 유니폼을 입는 것처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노래를 부르고, 똑같은 방법으로 예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양하고 다른 사람들이지만 ‘유니티’ 즉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진정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교회에 나오려면 최소한 3000cc 급 차를 몰아야 하고, 강남이나 신도시에 살아야 하고, 50평 아파트에 살아야 하며, 직업은 최소한 의사, 검사, 변호사, 또는 CEO 정도 되는 사람들만 교회 나올 수 있게 통일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유니폼’이고 진정한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중형차 끄는 사람과 차 없는 사람, 나이 많은 사람과 어린 사람, 병약한 사람과 건강한 사람, 개방적인 사람과 보수적인 사람, 여당편인 사람과 야당편인 사람, 이런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지만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조화를 이루는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교회인 것이죠.
  하나님이 이 땅에 빨간 장미만 피어나게 하셨다면 세상이 아름다울까요? 노란 개나리도 피고, 보라색 코스모스도 피고, 하얀 목련도 피고, 초록의 풀들도 피어나야 세상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조화’이고, 이것은 교회에도 적용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법칙이요 꿈입니다.
  전도와 선교를 통해 교회가 성장하고, 서로 연결되고 연합하여 아름답게 자라가고,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서 예수님 이름 안에 여러 지역교회들이 서로 합력하는 일들을 통해 예수님의 몸된 교회는 건강하게 자라갑니다. 사단의 역사는 교회가 싸우게 하고, 분열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평화하게 하고, 연합하게 합니다.
  한국교회의 특징 중 하나가 잘 분열하는 것입니다. 장로교회에는 대한 예수교 장로회가 있고, 기독교 장로교가 있습니다. 예수교 장로교 안에도 고려측, 통합측, 합동측 등이 있습니다. 저희는 예수교 장로회는 통합측입니다. 영락교회, 새문안교회, 명성교회, 주안교회 등이 통합측입니다. 그런데, 합동측은 그 안에서도 백가지가 넘는 교단으로 또 나뉘어져 있습니다. 다양한 교단이 잘못이 아니라 서로 싸우고 분쟁하면서 나뉘는 것이 나쁜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한국교회 안에 교회분쟁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재산문제로, 후계자 문제로, 기득권 문제로 싸우고 법정에 가고 TV에 나오고 난리가 아닙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교회가 찢어지고 교단이 찢어져서 가지 수만 많아진다고 부흥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겠습니까? 큰 싸움이 아니어도 한 교회 안에서 부서 간에 다투고 미워하고 분열한다면 이 또한 하나님이 통탄하실 일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소망의 반대방향으로 달려가는 일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숙한 성도는 교회 공동체를 귀하게 여기고 교회가 연합하고 건강하게 자라가는 일에 관심을 갖습니다. 성숙한 교인은 자기 혼자 자라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함께 자라갑니다. 자기 부서만 아니라 다른 부서도 함께 잘되도록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교회들도 함께 부흥되도록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숙한 교인을 세워가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교회가 성숙한 교회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기뻐하시는 성숙한 교인으로 자라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진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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