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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버지의 마음으로 찾아 나서라! (눅 14: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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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중년의 한 남자가 이발소에서 이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발사가 갑자기 뜨거운 수건을 이 남자의 얼굴에 올려놓았습니다.  너무 뜨거운 수건에 깜짝 놀란 이 손님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화를 냈습니다.
"아니, 이 사람이.  이렇게 뜨거운 수건을 얼굴에 올려놓으면 어떻게 해?"
그때 이발사가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내가 들고 있자니 너무 뜨거워서 그랬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짐, 자신의 문제를 내려놓을 곳을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짐을 맡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주님의 전에 찾아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우리를 향한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성경에 보면 '오라'는 말이 1900번 이상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렇습니다.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하나님의 초청은 오늘도 계속되어지고 있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모른다고 해도 우리 주님은 우리의 이름을 주님의 마음에 새겨놓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병든 자여, 내게 오라.  가난한 자여, 내게 오라.  괴로운 자도 내게 오라.  삶에 지친 모든 사람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리고 와서 쉼을 얻으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세상 속에서 지친 모든 무거운 짐과 염려들을 다 내려놓고 마음에 평안과 기쁨과 안식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서양 속담에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그 자리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없는 그 자리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도와주심을 바라면서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인간의 모든 가능성이 끝난 자리에서는 언제나 하나님만이 유일한 길이 되십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자신의 한계 상황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창세기를 읽어보면, 아브라함에 관한 기사에서 아브라함의 나이를 알려주는 곳이 몇 군데 있습니다.  먼저 창세기 12장 4절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에 아브라함의 나이가 75세였습니다.  자식을 주겠다, 기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지만 10년 동안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들의 꾀로 얻은 아들이 이스마엘이요 그때에 아브라함의 나이가 86세였습니다.  그리고 17장 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99세 때에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식을 주시겠다고 약속한지 24년, 아브라함이 자신의 꾀로 아들을 얻었다가 콩가루 집안이 되어 하나님께서 침묵하신지 13년의 세월이 지난 어느 날 문득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  이 순간은 바로 아브라함과 사라가 자식을 가질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끝난 상황이었습니다.  자녀 생산에 관한 한 그들의 육체는 죽은 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99세, 아내 사라는 89세, 경수가 끊어져 아기를 갖기엔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순간까지를 기다리신 것이었습니다.  낳을 만해서 이삭이 태어났다면 아브라함은 자신이 낳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 이삭은 인간이 낳을 수 있어서 낳은 자식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모든 가능성이 끝난 자리에서 얻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약속의 아들입니다.  기적의 아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내가 할 수 있다고 뻐기는 한 하나님은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내가 안다고 자기 지식을 자랑하는 한 하나님은 지혜와 지식의 영을 주시지 않습니다.  자신의 재물을 자랑하고 교만한 심령에게 하나님은 축복하시지 않습니다.  그 심령이 지극히 겸손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사모하는 사람에게만 역사하십니다.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내가 주인 삼고 있는 모든 지식과 재물과 힘과 판단을 다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바라십시오.  도우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무엇보다도 어떠한 절망적인 환경에 처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 약해지면 안됩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그가 백 세가 되어서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아내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모든 희망이 다 무너지고, 그래서 바랄 것이 전혀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라도 우리는 결코 믿음이 약해지면 안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진정한 믿음이란 현실을 적응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진실한 믿음이란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못한다, 안 된다는 말은 가장 믿음 없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힘들다, 어렵다는 말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하나님께 어려운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늘 내가 믿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묻습니다.
여러분은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십니까?
건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까?
우리가 믿기만 하면 역사는 일어납니다.  믿기만 하면 기적은 일어납니다.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적극적으로 응답하십시오.  내 안에 있는 어둡고 부정적인 파멸의 씨앗을 하나님의 성령으로 다 몰아내 버리십시오.  우리가 어떤 어둡고 캄캄한 훈련 가운데서도 믿음만을 붙들고 나아간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믿으면 하겠네 주 예수만 믿어서 그 은혜를 힘입고 오직 주께 나가면 영원 삶을 얻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 앞에서 믿음으로 움직이지 않는 나는 마른 막대기보다 못한 쓸모 없는 존재입니다.  말씀 앞에서 믿음으로 움직이지 않는 나는 불신자보다 못한 종교꾼일 뿐입니다.

아십니까?  교회 안에도 불신자들이 있습니다.  아니 불신자들 보다 더 악한 심령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종교꾼들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들도 하나님을 믿고, 나름대로 신앙생활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에게서는 어떠한 헌신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전혀 움직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복음의 재생산을 이루는 자들이 아니라 소비자에 불과합니다.  이들 종교꾼들은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섰을 때에 밖으로 내쫓김을 당하여 이를 갈며 슬피 울게 될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말씀 앞에서 움직이지 않는 나에게서는 어떤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말씀 앞에서 긍정적으로 반응하시기 바랍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응답하십시오.  그리고 나를 움직이십시오.  움직이면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움직이기만 하면 하늘의 역사를 눈으로 보고, 온 몸으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움직이기만 하면 우리는 반드시 역사의 주역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어느 바리새인의 집에 초청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예수님께서 큰 잔치에 관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이 시간 결혼식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모름지기 결혼식에는 손님이 북적거려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끔 결혼식에 가보면, 손님이 너무 적어서 쓸쓸한 잔치집이 있습니다.  혼주들이 남의 잔치에 가는 일을 게을리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혼주들이 평소에 부지런히 남의 잔치에 다녔더라면 당연히 자기 집 잔치에도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릴 것입니다. 오늘 이 한번의 잔치에 많은 손님들이 북적거리게 하기 위해서 그는 오랜 세월 동안 부지런히 남의 잔치에 다녔습니다.  그만큼의 수고와 투자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잔치집 분위기는 손님들이 함께 만듭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은혜로운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성도들의 교제가 풍성해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 드리는 우리의 예배가 잔치집 분위기가 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부지런히 다니면서 사람들을 불러모아야 합니다.  이 자리를 채우기 위한 우리의 노력과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섬기는 교회, 그리고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의 자리를 채우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예배당이 크든 작든 관계없이 빈자리가 많은 교회는 어딘가 쓸쓸함이 있습니다.  외롭습니다.  힘이 없습니다.  교회는 은혜도 넘쳐야 하고 사람도 넘쳐야 합니다.  기도가 넘치고, 은혜가 넘치고, 성령도 넘치고, 사람들도 북적북적 넘치는 곳을 이름하여 우리는 '부흥'이라고 말합니다.  기도만 뜨겁게 한다고 해서 부흥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찬양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고 해서 부흥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기도도 뜨겁고, 찬양도 감격이 있고, 은혜도 충만하고, 사람도 북적거리는 것을 보고 부흥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넘치는 곳에 임재하십니다.  넘치는 자리에 기름을 부어주십니다.  기도가 넘치는 교회, 은혜가 넘치는 교회, 믿음이 넘치는 교회, 사랑이 넘치는 교회, 기쁨이 넘치는 교회, 충성과 헌신이 넘치는 교회, 전도의 열매가 풍성한 교회, 그래서 새로운 심령들이 끊임없이 넘쳐나는 그 교회 위에 성령의 기름을 부어 주십니다.  이 역사가 오늘 우리들에게서, 우리 언양 영신교회 위에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보십시오.  작은 물에는 작은 고기가 삽니다.  그러나 큰 물에는 큰 고기가 삽니다.  어항 속에는 금붕어나 살지만 태평양 바다에는 상어나 고래가 삽니다.  성도는 어항 속의 금붕어처럼 관상용으로 살면 안됩니다.  강 같은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사는 큰 인물이 되어야 합니다.  바다 같은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 사는 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언양 영신의 모든 가족들은 태평양 가운데를 살아가는 신앙 큰 인물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졸졸거리는 도랑물이 아니라 큰 강, 큰 바다와 같은 은혜로운 교회를 이루고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사명을 우리들에게 주셨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이 집을 가득 가득 채우라고 저와 여러분들을 이 재단에 먼저 불러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대에 교회와 성도들의 비극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잃어버렸다는데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불행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잃어버린 영혼에게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아흔 아홉 마리의 울타리 안에 있는 양보다 울타리 밖에 있는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에게 있습니다.

전도는 잃은 영혼을 찾아내는 영적인 전쟁입니다.  사탄에게 빼앗긴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는 거룩한 전쟁입니다.  성도는 이 싸움에서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와 성도가 병들 때에 생기는 첫 번째 증상이 있습니다.  잃은 영혼을 향한 아버지 마음을 상실한 사람,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이 없는 사람, 아버지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이 병든 신앙인입니다.

이 시간 자신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에는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습니까?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목자의 수고가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여러분에게는 집나간 아이를 찾아 나서는 아버지의 애 타는 마음이 있습니까?  이것이 없다면 당신은 병든 신앙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무리 병든 신앙인이라 하더라도 아버지의 마음을 회복하면 살아납니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초점이 회복되어지면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늘에 태양도 볼록렌즈로 모아 보면 종이를 태울 수 있고 쇠도 녹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초점을 회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아버지의 마음에 초점을 가지면,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뜨거움을 회복하면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이 땅에는 다시금 부흥의 역사는 일어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곳에 모인 저와 여러분 가운데서 부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교회가 부흥하지 않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사탄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교회의 부흥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더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입니까?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아버지의 꿈이 나를 통해서 일어나기를 소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혹여 여러분들 가운데 아버지의 꿈이 나를 통해서 일어나기를 소망하지 않는다는 제 말에 강하게 반박하는 분들이 계실는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하나님 아버지의 꿈이 나를 통해서 일어나기를 소망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 시간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잃어버린 아버지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응답해 보셨습니까?  가만히 보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교제는 잘합니다.  그들에게 맛있는 음식도 나누어주고, 선물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복음을 제시해 보셨습니까?  혹여 그들과의 관계가 끊어질까 봐 복음을 제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는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의 꿈이 나를 통해서 일어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전도는 한 마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에게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행동입니다.  한 영혼이 주께로 돌아오면 하늘 나라에서는 하나님께서 일어나 춤을 추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도는 잔치입니다.  구원의 잔치입니다.  생명의 잔치입니다.  최고의 천국 잔치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당신의 전에서 날마다 이 생명의 잔치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 잔치가 성공하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서 구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아 거리를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가만히 보십시오.  분명히 이 잔치는 실패한 잔치였습니다.  폐장을 해야만 하는 잔치였습니다.  준비한 음식들을 모두 쓰레기장에 던져버려야 할 잔치였습니다.  그런데 실패할 뻔했던 잔치가 성공적으로 열렸습니다.  손님들이 없어서 폐장을 해야만 했던 잔치가 손님들로 북적거렸습니다.

원인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이 한 번의 잔치를 위하여 수고하기를 아끼지 않았던 종들이 있었습니다.  잔치 집에 사람들이 꽉꽉 채워질 때까지 주인은 종들을 보내고 또 보냅니다.  그때마다 가고 또 갑니다.  마치 입이 없는 사람처럼 한 마디의 불평도 없습니다.  원망도 없습니다.  주인이 마을로 가라면 마을로 갑니다.  산으로 가라면 산으로 갑니다.  들로 가라면 들로 갑니다.  긍정적인 순종 외에는 아무런 핑계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오직 주인의 명령에 긍정적으로 응답하고 적극적으로 반응했던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오늘 잔치에서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이들 종들이라고 할 것입니다.  폐장할 뻔했던 잔치가 손님들로 북적거리면서 최고의 잔치가 되었습니다.  이 모습을 눈으로 보고, 온 몸으로 경험하고 있는 종들은 얼마나 감격하고 기뻐했을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본문의 잔치집의 종들처럼 보냄을 받은 주님의 종들입니다.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는 이 세상을 향하여 보냄을 받은 평신도 사역자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크리스챤은 이 세상을 향해 날아가는 미사일과 같다"

세상을 향해 발사되지 않는 미사일은 자폭입니다.  자기도 다치고 교회도 다칩니다.  복음의 폭탄은 세상을 향해 날아가 세상 한복판에서 터져야 합니다.  오늘 한국 교회가 병든 것은 세상을 향해서 나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정복하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오늘 우리의 교회가 병들고, 성도들이 병들어 있습니다.

아십니까?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만 힘 주고 자리다툼이나 하면 교회는 병이 듭니다.  성도들이 뛰어 놀아야 할 마당은 마을입니다.  직장입니다.  학교입니다.  아파트 한 가운데입니다.  세상 한 복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초대 예루살렘교회를 통해서 교훈을 새겨야 합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시고 제자들이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나가서 담대히 복음을 증거합니다.  그들의 복음 증거로 예루살렘 교회는 부흥하기 시작합니다.  사도행전 2장 41절에 보면, 3천명이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4장 4절에 보면, 5천명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5장 14절에는 믿고 주께 나아오는 자가 남녀의 큰 무리라고 했습니다.  6장 7절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가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예루살렘 교회는 성장이 멈추었습니다.  그들만의 잔치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복음의 재생산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스데반의 순교를 통하여 핍박으로 예루살렘 교회를 흩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들만의 잔치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복음의 재생산이 일어나지 않는 교회를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  교회가 교회 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의 재생산이 일어나야 합니다.

영국의 죤 스토트라는 신학자는 '죄스러운 침묵'이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크리스챤들이 자신의 믿음을 표현하지 않는 것은, 크리스챤들이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은, 세상 사람들을 정복할 마음을 잃고 살아가는 것은 신앙적인 자폐증에 걸린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발 자폐증 크리스챤이 되지는 마십시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우리의 왕되신 하나님께서 잔치집에 손님들을 채우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시는가를 표현하는 결정적인 한 단어가 나옵니다.  "강권하여"  물리적인 힘을 써서라도 구원하라는 겁니다.  어떤 영어 성경에서는 "팔을 비틀어서라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강에 뛰어들겠다는 사람이 내 곁에 있으면 팔을 비틀어서라도 우선 살려놓고 보아야 합니다.  달리는 고속 기차에 뛰어들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설득할 겨를이 없습니다.  발로 옆구리를 걷어차서라도 살려놓고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강권하는 것입니다.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그래서 전도에는 시간이 무시됩니다.  장소가 무시됩니다.  방법이 무시됩니다.  대상이 무시됩니다.  무조건 데려다가 이 자리를 채우라는 겁니다.  이것이 강권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깨닫게 되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무엇입니까?  오지 않겠다는 사람들 앞에서 이 잔치를 포기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잔치는 반드시 열려야 합니다.  열리되 손님들로 가득 차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말씀합니다.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전도가 있는 교회는 축제가 있는 교회입니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 비전을 이루어갈 언양 영신 가족을 찾는 전도를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이 전을 가득 채워야 합니다.  여기에는 모든 성도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합니다.

잔치가 잔치답기 위해서는 구경꾼이 없어야 합니다.  외면하는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내 목숨이 온 천하보다 귀중합니다.  그러나 이 목숨 역시 사명을 감당할 때에만 존재 가치가 있습니다.  전도는 이웃을 구원하고 도시를 구원하는 잔치입니다.  전도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아버지의 꿈을 이루어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일을 감당하려고 하는 마음과 행동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 일을 감당하려고만 하면 하늘의 천군 천사들이 우리와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여기에 잔치가 벌어질 때에 성삼위일체 하나님이 천국에서 우리와 함께 잔치를 벌이게 될 것입니다.  냉랭하게 식어진 심령들마다 성령의 불로 뜨거워지기를 축복합니다.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고자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여러분의 심령에 전하여지기를 축복합니다.

♬"잃어버린 영혼들 향한 아버지의 꿈-- 당신의 삶을 통해 이뤄지리"♬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꿈이 저와 여러분의 삶을 통해서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온 천하보다 인간을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십시오.  그리고 아버지의 마음을 품으십시오.  이제 영혼추수주일이 2주가 남았습니다.  7월 1일은 7번 만나 1영혼 세우는 영혼추수주일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생명을 거십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전도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전도보다 더 큰 상급도 없습니다.  전도보다 더 큰 면류관도 없고, 전도보다 더 큰 영광스런 구원도 없습니다.  복음에 대한 재생산이 없는 우리의 모습은 주님께서 가장 싫어하십니다.  이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나가서 어두운 세상을 정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아파트를 내게 주신 것은 거기서 밥 먹고 잘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을 들고 나가서 아파트를 정복해라.  복음으로 정복하라는 거룩한 주님의 명령, 선교적인 사명이 내게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시는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피로 세워진 이 교회를 채워야 합니다.  빈자리가 많이 있습니다.  이 빈자리는 내가 채워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으로 채워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으로 채워야 합니다.  찬양하는 사람으로 채워야 합니다.  봉사하는 사람으로 채워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교회인 우리 교회가 잔치 집이어야 합니다.  잔치 집에 사람이 없으면 낭패입니다.  주님의 피로 세워진 주님의 교회에 빈자리를 가장 기뻐하는 것은 사탄입니다.  사탄은 주님의 교회에 더 많은 빈자리가 있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라도 더 낙심하게 하려고 우는 사자처럼 달려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탄의 먹이가 되지 마십시오.  사탄과 피 터지게 싸우십시오.  생명 걸고 싸우십시오.  그래서 성령의 능력으로 승리하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 번이라도 더 복음을 전하십시오.  하나님은 오늘 영신 재단에 모인 모든 성도들이 성령의 커다란 불덩어리가 되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이 위대한 성령의 불덩어리가 이 교회 한복판에서, 여러분의 심장 심장마다에서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심장에 불을 던져서 그 불덩어리로 이 땅을 태우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불을 받으십시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복음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구원의 방주로 사용하여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천국에 가면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 있고, 영광의 면류관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해서 열매를 맺게 되었을 때에 그들이 바로 영광의 면류관이요, 천국에서 누리게 될 기쁨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외면하지 말아주십시오.  하나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피로 세운 주님의 교회가 사람들로 가득 채워서 시간마다 잔치집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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