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영원한 피난처 (수 20:1-9)

  • 잡초 잡초
  • 447
  • 0

첨부 1



지금까지 우리는 가나안 정복 전쟁(1-12장)과 그 땅 분배 과정(13-19)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즉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온전히 성취 되었습니다.
수20장부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신 땅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선택 된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민35장에서 모세를 통해 지시한 도피성 제도에 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도피성을 통한 신앙적 교훈이 무엇인가를 깨닫는 은혜의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도피성 제도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1. 도피성 제도의 목적이 무엇입니까?(1-5절)

`도피성`에 해당하는 `아리 미클라트`는 `받아들이는 성읍`이란 뜻이다.
이는 전혀 고의성이 없이 실수로 살인을 저지른 자가
    정당한 재판을 받기까지 피신해 있는 성읍을 가리킵니다.
도피성의 제도는
구약 시대에 인간의 생명을 귀중히 여기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곤경에 빠진 인간을 구하기 위한 방편인데,
        하나님은 사람이 사람을 해치는 것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고의로 죽이면 죄에 대한 대가를 받습니다.
그런데 과실치사인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러한 도피성은 이스라엘의 `고엘 제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즉 억울한 죽음을 당한 자의 친족은 반드시 피살자를 대신하여         
보수할 의무가 있었습니다(민 35:12,19,21).
때문에 비록 우발적인 살인자라도 보수자의 눈에 띌 경우
    죽음을 면하기 어려웠습니다.
바로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 무분별한 보복을 방지하고
우발적인 살인자의 생명을 보존케 하려는 데 도피성 제도의 목적이 있었다.
그래서 3절에
[ 부지 중 오살한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 중 피의 보수자를 피할 곳이니라 ]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눈이 뜨여져야 하는 영적 교훈이 있습니다.
도피성은 부지중 오살한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고 했는데
“부지중 오살자`가 무슨 뜻입니까.
죽이겠다는 의사가 전혀 없이 실수로 다른 사람을 죽인 것을 말합니다.
이 말을 통해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부지 중 오살한 자를 위해 일찍이 모세를 통해
  도피성을 만들 것을 명령했을까요?
만약 도피성이 부지 중 오살한 자를 위한 도피성이라면
우리는 나 하고는 관계없는 말씀이구나, 하고 그냥 넘어 가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나 하고 관계없는 말씀이 없습니다.
    다 나를 들여다보는 거울입니다.
부지중 오살자가 나와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이 말을 통해 사람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꼭 칼로 살인을 해야 살인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산상보훈 마5:22절에
형제에게 라가 라고 욕하고 미련한 놈이라 고 하는 자도
      이미 살인한 자라고 합니다.
내가 던지는 말이 살인을 하는 줄도 모르고 생각없이 던지는 말 중에서     
상처 주는 말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하루에도 얼마나
          부지중에 오살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떤 가정에서 남편이 반찬투정을 하니까
    부인이 `쥐꼬리만큼 벌어다주면서 뭘 바라는 거야`라고 했습니다.
이 말 때문에 남편이 일주일 동안 가슴앓이를 하고,
그게 신혼 때 있었던 일인데 20년 동안 담고 있어도 상처가 됐습니다.
그 때부터 부인이 살인자입니다.
부지중 오살을 했습니다. 칼로 살인을 해야 살인이 아닙니다.
20년 후에 남편이 돈을 잘 벌게 되자 이혼을 하자고 하더랍니다.
      피의 보수자가 나타난 거예요.
그러니 눈을 뜨고 보니 오살한 자도 피의 보수자도 나라는 사실입니다.
도피성은 부지 중에 살인한 자만이 아니라
      오늘 나를 위한 도피성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살다 보면 이런 일은 너무나 많습니다.
인간은 너무나 부족하고 지혜가 모자라기 때문에
    전혀 의도와는 상관없이 어떤 관계 속에서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인생이 크게 꼬여 버리기도 합니다.
그 반대로 완벽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입만 열면  `절대로, 진짜로, 결코, 항상, 꼭`
이런 단어를 자주 쓰는 사람은 완벽주의자 성향을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완벽주의가 가지는 특징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엄하니까
타인에 대해서도 인색하고 날마다 비판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늘 부지중 오살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런 우리의 모습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실수를 인정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죄를 지을 때부터
        이미 우리의 부족함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도피성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설령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할지라도
    도피성에 들어갈 때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도피성 시행 지침까지 가르쳐 주십니다.
4절-도피성에 들어가는 자는 그 성읍 어귀에 서서 그 성읍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고를 고할 것이요
`사고를 고하라`고 합니다.
보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도피성으로 피할 때
    장로들에게 사건의 전말을 고해야 합니다.
악의 없이 살인을 했다고 해도 다른 사람을 죽게 한 사람이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있으면 피의 보수자로부터 보복을 당하게 됩니다.
죄를 진술하지 않으면 도피성에 거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께 자백하는 것입니다.
요1서1:9-10절
[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
자백이 뭡니까?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인정하면 용서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 이 도피성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영적 진리는 무엇일까요?

2. 도피성이 의미하는 영적 진리는 무엇입니까?(6절)

도피성 운영원칙 가운데 또 한 가지가
도피성은 고의가 아닌 실수로 사람을 죽였을 때
      그 사람의 생명을 보호해 주기 위해서 마련된 것인데
그러면 도피성에 피했던 자가 언제 자기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 하면
6절에 그 대답이 나옵니다.
` 그 살인자가 회중의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나 당시 대세사장의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가 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그 성읍의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도피성에 피했던 사람이
      그 당시 대제사장에 죽어야만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말인데,
도피성제도의 이러한 규정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
여기엔 참으로 놀라운 구원의 진리가 숨겨져 있는데
    여기 대제사장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히4:14절에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되시는 분 ” 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어야
도피성에 피해있던 살인자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도피성제도의 규정은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죄인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진리를 이미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도피성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서
      우리의 과실에 대한 보수를 사면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오기만 하면
대제사장인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자유가 주어짐을 믿습니다.

진대제씨가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재임하던 당시,
대한상공회의소가 주관한 간담회에서 강연을 하면서,
친한 외국인에게 들었다며 `100점짜리 인생을 사는 비결`을 소개했습니다.
그가 소개한 방법은 알파벳 하나하나에 순서대로 숫자를 붙입니다.
A에 1, B에2, C에 3, 이런 식으로 숫자를 붙이면 Z는 26이 됩니다.
그런 다음 영어 단어 스펠링에 해당하는 숫자를 모두 더해
    100 이 되는 단어를 찾는 것입니다.
방법을 소개한 뒤, 진 장관의 문답이 이어졌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100점짜리 인생이 될까요? `hard work`은 98점입니다.
      일만 열심히 한다고 100점짜리 인생이 되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공부를 많이 해서 지식이 많아지면 어떨까요?
      `knowledge`는 96점입니다.
나이와 국경도 초월한다는 사랑 `love`는 54점입니다.
머니 머니해도 최고라는 돈 `money`도 72점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날 진 장관이 소개한 100점짜리 단어는 `attitude(자세)`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진 장관의 말에 공감을 했고,
      깨달음이 있는 귀한 이야기라는 평가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 재미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장관님, 스트레스(stress)도 100점입니다`

그러니 이 말을 합성 한다면 스트레스를 어떻게 처리하느냐? 가
    100점 짜리 인생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아랍속담 중에 이런 것이 있다고 합니다.
    `계속되는 햇볕은 옥토를 사막으로 만든다.`
우리는 대개 해가 뜨는 맑은 날을 좋아하고,
    비가 오는 흐린 날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정 우리의 삶을 생명력 있게 만드는 것은
    계속되는 승승장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깨닫게 만들어 주는 약함입니다.
모쪼록 우리가 사는 동안 부지중에 오살하는 우리의 약점을
기도의 제목으로 삼아, 도피성 되신 예수님께 나아와 자백하고
    새생명을 얻어 진정 100점짜리 인생을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이 도피성의 특징을 살펴보면

3. 도피성의 특징이 무엇입니까?(7-8절, 참조/신19:6절)

유대 전승에 의하면, 도피성으로 향하는 길에는
    군데군데 ‘도피성’(미클라트)이라고 쓰인 큰 푯말을 설치하고,
    또한 그 길도 넓게, 약 14m 가량 닦아 놓았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요단을 기준하여 동서에 각각 3개씩 설치된 도피성은
  각 성읍 사이가 정삼각형을 이룰 만큼 서로 동일한 거리에 위치했으며,
  성읍 주위에는 높은 성벽과 같은 장애물이 없었다고 합니다.
또 이 성읍들에는 모든 생필품(生必品)들이 완전히 갖춰져 있어서
  하나의 작은 세계를 형성했다고 전합니다.
그러니 도피성은
    누구든지 어느 곳에서나 달려 갈 수 있는 곳에 세워졌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교회도 누구든지 어느 곳에서나 달려올 수 있는 영적 도피성입니다.
삶의 실패자들을
    내일교회로 데려올 수 있는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도피성을 세운 성읍들의 이름의 의미가 우리에게 영적 교훈을 줍니다.
7절, 8절에 보면
요단 서편 가나안 땅에 게데스, 세겜, 헤브론
요단 동편 평지 광야에 베셀, 기르앗 라못, 바산 골란 에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 이름들이
    예수님의 성품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피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게데스 - 구별하다 (납달리 산지)
그래서 우리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므로
      세상의 죄에서 구별되어 거룩한 성도로 사는 은혜를 받게됩니다.

2) 세겜 - 어깨 짐 (에브라임 산지)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무거운 짐을 어깨에 메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내 멍에는 가볍고 쉬움이라(마11:28)고 하셨습니다.
3) 헤브론 - 연합, 동맹, 교제(유다 산지)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람을 연합하게 하시는 자요
  또한 우리의 친구가 되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4) 베셀 - 요새 (르우벤 지파)
  예수님은 힘의 근원인 요새가 되어 주십니다.
5) 길르앗 라못 - 언덕, 고지 (갓 지파)
  예수님은 언덕이요 고지가 되심으로
  그곳이 바로 우리를 높이 세우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셉과 다윗과 다니엘을 높이 세워주신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6) 골란 - 기쁨 (므낫세 지파)
  예수님은 기쁨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에게 나아가는 자에게도 기쁨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인생에 도피성 되신 예수님은
    우리를 거룩한 백성되게 하십니다.
    우리의 짐을 대신 져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인생에 친구가 되십니다.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우리를 높여 주십니다.
    우리에게 기쁨을 안겨다 주십니다.
도피성 되신 예수님께 피하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도피성에 이스라엘 백성만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4. 도피성에는 이스라엘 자손과 그 외에 누가 들어올 수 있습니까?(9절)

9절에 [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우거하는 객을 위하여 선정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 살인한 자로 그리 도망하여 피의 보수자의 손에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그는 회중 앞에 설 때까지 거기 있을 것이니라 ]
도피성 제도의 또 다른 특징 하나는
    외국인들(이방인들)에게도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만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온 인류, 모든 만물의 주가 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생명은 동일하게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을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들어갔으면 회중 앞에 설 때까지 거기에 있어야 합니다.

1980년대를 전후해서 부유층과 권력층을 골라 절도행각을 벌이면서             
대도(大盜)라고 불리던 조세형 씨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물방울 다이아몬드가 고작 일백만원 대의 금품을 훔쳐서     
좀도둑으로 전락했다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됐습니까.
대도 조세형 씨는 서민층의 인기스타였습니다.
부유층, 권력층의 물방울 다이아몬드만 훔쳐서
    서민들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인기 스타가 되다 보니까 감옥소에서 나와서
      예수를 믿고 유명하게 됐습니다.
일본까지 가서 간증을 했습니다.
경찰에서 하는 이야기로는
44평 빌라에서 별 어려움 없이 부인과 살고 있는데
    그 사람의 도벽이 재발을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도 사실이고, 나라 사랑하는 것도 사실이라서
2000년 2월에 이미 그 사람은 주민등록을 독도로 옮겼다고 합니다.
예수님도 사랑하고, 나라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대단한 범행을 계획한 것도 아닌데 역시 중독이 참 무섭습니다.
    도벽은 어떤 중독보다 더 무섭다고 합니다.
그 끈질긴 중독 때문에 결국 대도라는 명예를 버리고 좀도둑으로 전락했습니다.       
그것도 나라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있습니다.
15년의 감옥생활에 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고 1980년도에 들어가서       
1998년에 출소를 했는데 2001년도에 일본에 간증을 하러 갔다가       
손목시계를 훔치는 것이 잡혀서 3년 6개월을 또 복역했습니다.
그리고 2004년 3월에 귀국을 했어 또 절도를 하다가 붙들렸습니다.
조세형이 좀 더 있다가 회중 앞에 서야했는데
      너무 빨리 도피성에서 나가 남들 앞에 서서 간증하다보니
      부지중에 도벽이 발동되어 실수를 하게 된 것입니다.
붙잡힌 조세형이 하는 말이
      [ 내가 너무 일찍 나온 것 같다 ]
성도 여러분 우리는 도피성에서 때가 될 때가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도피성을 지정하면서
7절에서는 `구별하였고`, 8절에서는 `택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구별하고 택한 곳이라도 거기에서 기다려야합니다.
일단 고하고 도피성에 들어가도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어느 때까지 도피성에서 기다려야 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 들어갔는데 내일 대제사장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들어간 날 대제사장이 새로 부임해서 평생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오십 년 동안 기다려야 합니다.

언제까지입니까.
다른 사람을 죽게 하고 피해를 준 그 죄에서
    완전히 자유함을 얻게 될 때까지가 그 기간입니다.
대중 앞에 홀로서기 할 때까지,
  내 속에 다시 옛습성이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조세형이 같이 괜찮겠지 하고 뛰쳐나왔다간 국물도 못 찾습니다.

그럼 오늘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는 어디에 있을까요?

5. 오늘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는 어디에 있을까요?(참조/시46:1-3절)

시46:1절 [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

군대에서 가장 군기가 센 데가 어디냐면 총 쏘는 훈련을 하는 곳입니다.
이 사격장은 사람을 살상하는 훈련을 하는 곳이니까
오발해서 엉뚱하게 사람이 다치는 수도 있고 자칫 목숨을 잃는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격장 규율은 엄격합니다.
바로 이 사격장에서 한 병사가 어처구니없이 죽은 일이 있습니다.
사격장에는 사격 표적지 근처에 개인호가 있어서 사격할 때
    여기에 들어가 있다가 사격이 끝나면 나와서
    표적에 명중했는지 빗나갔는지를 알려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사람을 감적수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격하는 데를 사선이라 그러지요.
사선과 표적지와의 거리가 200미터 이상이니 육안으로는 식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감적수는 이 표적지를 식별하고 통제부에다 알려주는 일을 합니다.
사격을 마치고 이제 감적수가 확인할 때가 되었는데
    한 병사가 나타나질 않는 거예요.
찾아보니까 낙엽더미 뒤에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나중 확인된 사실은 이 감적수가 사격하고 있는 동안에는
    개인호에 들어가서 몸을 숨겨야 됩니다. 
피신하고 있다가 사격이 끝나면 나와서 표적판을 확인해야 하는데
이 친구는 사격할 때 개인호로 피신하지를 않고
  바위 같은 게 옆에 있으니까 그 뒤에 숨었습니다. 요령을 핀 겁니다.
개인호는 좀 멀리 있고 또 거기 들어가면 덥고 힘듭니다.
그래서 시원한 그늘이 진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가 변을 당한 것입니다.
그 장애물이 정말 바위 같아요. 그런데 그건 낙엽더미였습니다.
  낙엽들이 많이 쌓여서 바위 돌같이 단단해진 것인데
  그걸 바위인줄 알고 그 뒤로 피신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그 친구는 동료들이 쏜 총탄에 고만 벌집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이 병사가 왜 죽었습니까?
그 이유는 정말 숨어야 할 데를 분별하지 못한 것입니다.
  분별력이 없어서 죽음을 자초하고 만 것이지요.
사격장에서는 바위라 할지라도 거기에 몸을 피신해서는 안 되게 되어있습니다.
반드시 개인호에 들어가야만 됩니다.
그런데 바위도 아니고 낙엽더미에다 몸을 맡기고
    결국은 아까운 청춘을 보내고 만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는 하나님입시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피난처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 시대에 이 땅에 도피성이 되어야 됩니다.

누구든지 인생에 실패한 사람
      그런 사람을 구약시대에는 도피성으로 가서 보호받았는데
지금은 구약시대 아니고 이스라엘 땅도 아니고
    어디 가서 보호받고 영혼의 감격과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까?
주의 몸된 교회가 도피성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 가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 보호를 받고
거기서 자유함을 얻고 감격스럽게 살아가자.
이렇게 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그것이 교회예요.

교회는 어느 시대에나 백성들 속에서 도피성이 되어서
재난당한 사람. 억울한 일 당한 사람. 앞길이 막막한 사람.
그런 사람이 와 가지고 보호받을 수 있는 교회가 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도피성으로 사람들이 찾아가듯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이 교회 와서
`아버지` 하나님 찾고 눈물 펑펑 쏟으면서 위로를 얻는
  그런 교회가 얼마나 소중한 교회냐 이 말입니다.

찬79장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 오라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 위에 넘치되 두렵잖네,
(김성덕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