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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려움을 이기는 비 (막 4:3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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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주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다가 큰 광풍을 만나게 됩니다. 이 갈릴리 호수는 호수이지만 바다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는 간혹 광풍이 불어 닥칩니다. 호수 양쪽에 언덕이 있는데다가 뒤에는 4천 미터나 되는 헐몬산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헐몬산의 냉기류가 낮은 계곡을 향해서 흐르며 무서운 광풍이 되어 이 조그마한 호수를 엄습하게 되면 호수에는 엄청난 광풍이 일게 됩니다. 주님과 제자들이 탄 배가 그 광풍을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입니다. 파도가 치기 시작하고 물이 배에 들어와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주님은 고물을 베개 삼아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두려운 제자들은 급히 주님을 깨웠습니다. 제자들의 요청에 의해서 일어나신 주님은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더러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졌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사건을 통해서 인생 가운데 큰 광풍을 만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인생의 큰 풍랑은 누구나 만날 수 있습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도 만날 수 있고, 신앙이 좋은 사람도 만날 수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주의 제자들이 탄 배가 큰 광풍을 만났습니다. 그 배는 보통 배가 아닙니다. 주님을 모신 배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모신 배가 광풍을 만난 것입니다. 인생의 풍랑은 누구든지 만날 수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보면 풍랑을 당하는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사단역사입니다.
본문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는 5장 말씀과 연결시켜서 보는 것입니다. 5장에 보면 주님께서 거라사인의 지방에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단 한 가지 일을 하시고 다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십니다. 주님이 거라사에서 하셨던 일이 무슨 일입니까? 군대귀신 들린 사람을 치료하는 일입니다. 사단은 그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주님이 바다를 건너서 거라사인의 지방에 가셔서 마귀에게 눌린 사람을 자유케 할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가시는 길을 방해했던 것입니다.
바울도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습니다. 바울이 비록 죄수의 몸이었지만 로마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배를 타고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서 로마로 바로 가지 못하고 가우디라는 섬에 머물게 되었던 일이 있습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기 위하여 개인적인 광풍, 가정적인 광풍, 교회적인 광풍, 국가적인 광풍을 일으키기도 하는 것입니다.

둘째, 불순종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요나에게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고 명령하셨지만 요나는 원수국가인 느니웨가 회개할까봐 불순종합니다. 욥바로 가서 다시스로 도망하려고 배를 탔습니다. 한 참 항해 중에 하나님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로 불게 하셔서 요나가 탄 배가 거의 깨어지는 위기에 처한 일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복을 받고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상을 통치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됩니다. 그 결과 그들의 인생에 큰 풍랑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영적인 풍랑, 질병의 풍랑, 환경적인 저주의 풍랑, 가정적인 풍랑 등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풍랑들이 그 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현재 내가 당하는 인생의 풍랑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풍랑이라면 지금 즉시 회개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십시오.

셋째, 믿음의 단련입니다.
큰 광풍은 시험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들은 말씀을 실전에서 사용하는가 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두려워 떨며 우왕좌왕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말씀을 실전에서 사용해본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번 풍랑을 통해서 그들의 믿음이 단련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이 들은 말씀과 믿음이 현장에서 사용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풍랑 속에서도 주무셨던 것입니다.

인생에 풍랑이 일어날 때마다 믿음으로 반응하는 훈련을 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해 보십시오. 그런 반복적인 경험들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은 단련을 받게 될 것이고 강한 능력을 나타내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은 마땅히 믿음으로 반응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두려워했습니다. 40절에 보면 주님께서 풍랑을 그치게 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라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들은 두려웠습니다. 그들의 두려움의 원인은 믿음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들이 처한 상황은 두려운 상황이었습니다. 37절에 보니 큰 광풍이 일어났고, 물결이 배에 부딪쳤고 심지어 물이 배에 들어왔는데 배에 가득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배에 물이 가득하면 배는 곧 침몰할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사람들은 극히 드물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두려운 상황 속에 놓여있습니다. 찬송가 중에 461장은 김활란 박사가 작사자인데 인생이 만나는 풍랑을 잘 표현했습니다. 1절 가사를 보면 “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 불 때 만경창파 망망한 바다에 외로운 배 한 척이 떠나가니 아 위태하구나 위태하구나” 우리 인생을 만경창파 망망한 바다에 외로이 떠나가는 배 한 척으로 비유했습니다. 위태롭고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바다에는 끊임없이 풍랑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 항로에도 끊임없이 풍랑이 있습니다. 때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센 파도가 엄습해 옵니다. 그래서 인생의 배가 좌초될 위기를 맞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질병의 파도가 칩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가정의 불화라는 파도가 칩니다. 어떤 분들에게 천재지변이라는 파도가 칩니다. 또 어떤 분들에게는 사고라는 파도가 칩니다. 그리고 어떤 분들에게는 실패라는 파도가 칩니다. 그 파도 때문에 인생의 배가 크게 요동치고 파선의 위기를 맞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대설교가 스펄전 목사님도 한 때 인생의 강력한 풍랑을 만난 때가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 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는데 내용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나는 완전히 부서진 질그릇처럼 느껴집니다. 많은 밤을 자지 못하며, 많은 낮에도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 남는 위대한 설교자였던 스펄전 목사님도 인생의 큰 풍랑을 만났던 것입니다. 세계 최대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조용기 목사님도 여러 번의 큰 풍랑을 만났는데 아마도 가장 큰 풍랑은 교회를 건축하면서 만난 것 같습니다. 그의 책에 보면 여의도순복음교회를 건축하면서 재정문제로 너무나 시달려서 자살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합니다. 얼마나 풍랑이 강했으면 자살까지 생각했겠습니까?

같은 상황이지만 그 사람의 신앙에 따라서 반응하는 것이 다를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같은 상황에 대해 반응하는 것이 다를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같은 상황이지만 주님은 고물을 베개 삼아서 주무셨고, 제자들은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떨었습니다.
두려워하는 자는 두려움 자체가 자기에게 형벌입니다. 두려워하는 제자들은 그 상황 자체가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이 없으신 주님은 그 상황 속에서도 주무실 만큼 평안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다”(요일 4:18)고 말했습니다.

자기가 가진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형벌을 받은 실제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테니스 선수였던 짐 길버트는 다섯 살 되던 해에 어머니를 따라 치과 병원에 가서 어머니가 치료받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치료를 받던 그의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린 길 버트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그가 자라서 유명한 테니스 선수가 되었으나 그는 여전히 치과 병원에 대한 공포증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치과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 되게 되자 치과병원에는 가지 않고 자신의 주치의를 집에 모셔서 치료를 받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입에 치료기가 닫는 순간 그 역시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고 말았습니다. 두려움을 내어 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두려움은 나를 힘들게 하는 형벌이 될 것입니다.
그럼 큰 풍랑 때문에 두려운 마음이 들 때 우리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1.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35절에 주님이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건너가자고 하셨으면 건너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광풍이 있다 할지라도 건너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풍랑들이 있습니다. “그 풍랑이 얼마나 크냐?”, “얼마나 무섭냐?” 그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일에 대해서 주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게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의 경건하지 못한 생활로 사단이 구원의 확신에 대한 흔들림을 줄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것은 분명히 구원의 배를 침몰시키기 위한 큰 풍랑입니다. 이런 경우는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성경 말씀을 떠올리지 않습니까? 예를 들자면 엡 2:8 같은 말씀을 말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예수님은 40일을 금식하시고 주리신 후에 사단의 시험이 찾아왔을 때 눈에 보기에 좋은 대로 몸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말씀으로 대적하셨습니다.
수 1:8에서는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은 우리에게 말씀이 기준이 되면 인생의 풍랑을 이기게 하시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2.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38, 39절에 보면 다급해진 제자들은 주무시던 주님을 깨우며 도움을 요청합니다. 주님은 그들의 요청대로 바람이 그치게 하시고 파도도 잔잔하게 해주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고생하는 것도 아셨고 죽음의 공포로 두려워하는 것도 아셨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을 깨울 때가지, 주님에게 도움을 구할 때까지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기도응답에 대한 겔 36:37은 우리교회에서 유명합니다. 제가 약속의 말씀으로 받았고 계속해서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포로에서 돌아오고 황폐하게 된 예루살렘이 에덴동산 같이 회복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에게 그 약속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특별히 하나님이 기도와 생각에 대해서 감동을 주십니다. 기도에 있어서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우리의 생각입니다. 기도와 생각은 함께 갑니다.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빌 4:6, 7에서는 기도하면 생각을 지키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시 19:14에서는 우리의 생각은 하나님 앞에 상달되는 기도라고 했습니다. 엡 3:20절에서는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넘치도록 역사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때 생각을 지켜야 합니다. 좋은 것을 구하면서 좋지 않은 것을 생각한다면 그 기도는 의미가 없습니다. 좋은 것을 100이라고 보고 좋지 않은 것을 -100으로 봅시다. 좋은 것을 구하지만 좋지 않은 것을 상상한다면 100 플러스 -100이니까 0가 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라는 책에는 이런 간증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어느 젊은 의사가 병원을 처음 개업했습니다. 그런데 엄청나게 성공했습니다. 어느 분이 그 비결을 물어보았더니 대답하기를 “개업 첫날에 저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상상했습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안겨준다. 하나님은 위대한 의사시며 나는 하나님의 목적을 다하는 수단이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병을 고치신다. 내가 접촉하는 자는 누구든지 기적처럼 회복이 된다.’, ‘나의 성공과 달성과 생명의 풍부함에 대해서 하나님께 깊이 감사한다.’라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환자들이 병원으로 몰려오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기도했습니다. 매일 그렇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과연 엄청난 환자들이 몰려와서 고침을 받습니다. 나중에 너무 환자가 많아 다른 병원에 소개해야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부산에서 최대의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정필도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중학교 때 축농증으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워낙 증세가 심하다보니 어머니께서 세브란스 병원으로 데려 가셨습니다. 그런데 진찰하던 의사 선생님께서 “어떻게 이렇게 심해지도록 내버려두었느냐?”고 하면서 어머니를 몹시 나무라셨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 당시 찢어지게 가난했던 가정형편 때문에 수술비를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필도 학생은 하나님밖에 의지할 데가 없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이 문제를 놓고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기독병원이나 혹은 선교사가 운영하는 병원과 연결되어 무료수술을 할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도와주시기는커녕 “너는 밤낮 기도를 많이 하면서 무슨 기도를 했느냐?”고 되레 호통을 치셨습니다. 정필도 학생은 그 야단을 맞는 순간 믿음의 오기가 생겼습니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자신도 몹시 화가 났습니다. ‘나같이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의 기도를 안 들어주시면 누가 기도하겠는가 하나님이 하셔도 너무 하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축농증을 위한 기도는 오늘 내일 모레 사흘만 더 하고 다시는 이 문제로 기도하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습니다. 그 후 정필도 학생은 누가 묻든지 나았다고 말했습니다. 아파 죽겠지만 기도해서 나았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안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축농증 증세가 없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후 확실한 것을 알아보기 위해 다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본 결과 축농증을 앓았던 흔적도 발견할 수 없다는 의사 선생님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환갑이 넘도록 한 번도 축농증이 재발한 적이 없습니다. 중학생인 어린 정필도 학생이 자신의 인생의 풍랑 중에 하나였던 축농증을 기도로 잔잔하게 했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인생의 큰 풍랑들을 기도로 잔잔하게 만듭시다.

3. 믿음으로 반응하라

제자들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40절에서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지적하셨던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의 위대함은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살았다는 점에 있습니다. 다윗은 주님을 목자로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시 23:4에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불안의 시작은 신앙의 끝이고 참된 신앙은 불안의 끝이다” 믿음이 충만하다면 어떤 두려움도 이길 수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당하는 모든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자원이 충분합니다.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두려움 가운데 가장 큰 두려움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의 소망으로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내지 않습니까? 그래서 신앙의 선배들은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고 믿음을 지켰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가면서 신앙을 지켰고, 다니엘의 세 친구는 풀무불 속에 들어가면서도 신앙을 지켰습니다. 믿음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두려움인 죽음도 이기는 것입니다.

주안장로교회를 담임하시는 나겸일 목사님이 약 30년 전에는 영등포의 어느 교회에서 목회를 하셨습니다. 그 당시 교통사고가 나서 영등포 시립 병원에 32구의 시체가 안치되었습니다. 이 시립 병원의 원장이 나겸일 목사님의 대학원 동창이라, 의사와 간호사들을 대동하고 32구의 시체를 쭉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32구의 시체를 둘러본 나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32구 가운데서 7명이 예수 믿고 천당에 갔습니다.” 그랬더니 원장도 웃고, 의사도 웃고, 간호사도 웃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래서 나 목사님이 “그럼 내가 표시해 주는 사람들의 신원을 확인해보라”며 병원을 나왔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의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이전에 7명을 표시해 두었었는데, 신원을 확인해 보니 그 7명이 정말 예수 믿는 크리스챤이었습니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때 나 목사님이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니 의사이면서 그것도 모릅니까? 사람이 죽으면 얼굴이 시커멓고 푸른빛이 돕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죽은 사람은 얼굴이 밝습니다. 평소보다 훨씬 밝습니다. 진짜입니다. 시체를 한번 직접 보십시오. 의사이고 간호사이면서 그것도 모릅니까?” 의사는 가만히 듣더니, 유심히 생각을 해보고는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군요. 아무개도 돌아가실 때 얼굴이 밝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예수 믿는 집사였고, 아무개도 돌아가실 때 얼굴이 밝았는데 예수 믿는 권사님이셨군요.” 옆에 있던 간호사도 “맞아요. 맞아”하면서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주일날 의사와 간호사들이 교회에 나왔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큰 두려움인 죽음의 공포도 이길 수 있는 자원이 있습니다. 어떤 풍랑을 만나도 믿음으로 반응하십시오.

4. 주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선포하십시오.

우리가 인생의 풍랑을 만날 때 주님이 어떤 분인가를 생각하고 입으로 선포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에 큰 도움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입으로 선포한 내용대로 역사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어떤 분인가를 생각하고 입으로 선포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시 46:2, 3에 보면 고라 자손들은 놀라운 신앙의 고백을 합니다. 그들은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생각해 보십시오. 땅이 뒤집히는 지진이 일어납니다. 산이 흔들립니다.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라 산이 바다에 빠져서 사라져 버립니다. 바닷물이 치솟아 쓰나미가 몰려오는데 그 물의 힘으로 산이 흔들립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담대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1절에 보니 그들의 위대한 고백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들이 가진 하나님을 향한 위대한 고백이 그들을 큰 풍랑 중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존재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본 사건에서는 41절에서 제자들이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은 누구이신가?”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의문형같이 보이는데 사실은 감탄형입니다. 강조적으로 하는 말입니다. “이분이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신 것을 보니 이분이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그런 고백입니다.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신 저 분은 아!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이분이 하나님이시다!”라는 고백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의 초기에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은 무엇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어떤 유익이 있을까? 내가 무슨 소원을 드려야 하나? 그러나 신앙이 성숙하면 성숙해질수록 그 질문이 바뀝니다. 무엇에서 누구로 바뀝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성령님은 누구신가? 하나님은 누구신가? 그러면서 하나님을 발견해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에게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분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저는 몇 일전 개인적으로 기도를 시작하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내적인 음성을 들었습니다. “내가 누구냐?” 그 물음에 저는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고, 나의 구원자이시고, 나의 아버지이시고, 나를 돕는 분이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너는 누구냐?”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저는 즉시 대답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성령의 전입니다. 교회의 일군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군사입니다.” 그 대답 후에 제가 구하는 것에 대한 대화가 시작 되었습니다. 저는 주님과의 그 대화에서 갖게 된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분과 내가 그런 관계라면 문제 될 것도 없고, 염려할 것도 없고, 조급할 것도 없구나!’

인생의 풍랑 때문에 자신의 약함을 느끼고 있습니까? 선포하십시오. “나는 할 수 없지만 주님은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나는 가난하지만 주님은 부요하시다. 나는 미련하지만 주님은 지혜를 주시는 분이시다. 나는 패배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주님은 나를 승리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시 46편에 나온 고라 자손의 고백을 다 같이 외쳐봅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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