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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불쌍히 여김 받는 비결 (마 9: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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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의하면 사람이 어떠한 곤경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주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기만 하면 모두 해결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는 비결이 무엇인가?

1.간절히 구해야 한다.

본문 27에 두 사람의 소경이 예수님을 따라오며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소리 질렀다고 했다.
소경들은 소리를 질렀고, 또 계속해서 예수님을 따라왔다. 이는 간절한 기도, 끈질긴 기도, 포기하지 않는 기도를 의미한다.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포기 하지 않고 끈질기게 구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가르치는 말씀이다.
간절히, 그리고 끈질기게 구한다는 말은 시간적으로 “오래 기도한다.” 는 말과는 다르다.
불쌍히 여김 받으려면 간절히 주님께 구해야 한다. 부르짖어야 한다.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하였다

문제는 어디에나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문제를 풀지 못한 채 죽을 고생을 하며 사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문제를 풀고 행복을 만들며 사는 사람도 있다.
그 차이는 기도의 차이이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은 아무리 걱정해봐야 소용없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마8:23 이하에 의하면 예수님은 풍랑을 만난 제자들이 죽을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을 모두 알고 계셨지만, 그들이 부르짖을 때까지는 일하지 않으셨다.

“우리가 기도하기로 작정하는 시간부터 마귀는 우리 앞에 여러 종류의 방해물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직장에서는 갑자기 일거리가 늘어날 것이며, 갈 곳이 많아지고, 가족들이 시간을 빼앗아갈 것이며, 화를 내고, 신경질을 낼 일들이 많아질 것이며, 걱정거리가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그때 기도를 포기하면, 패배자가 되고 말 것이다.”

진정한 기도는 생활을 변화시키고, 또 새로운 생활을 창조한다. 기도하는 것은 내가 변하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 사용하시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변화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기도를 포기하면 된다.

우리가 하나님께 진정한 기도를 드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생각하게 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원하게 되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게 된다.

루터는 “나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하루에 세 시간씩 기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 기도를 잘하는 사람은 연구도 잘한다.” 고 말했다.
요한 웨슬리는 “하나님은 오직 기도에 응답하여 일하신다.”고 말했다.
죤 번연=기도를 하면 죄악의 끈이 끊어지고, 기도를 하지 않으면 죄악이 기도의 끈을 끊어놓는다.

「놀만 빈센트 피일 박사에게는 삶의 문제를 가지고 찾아와 상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이 와서 묻는 말 중 공통적인 질문이 있었다. 그것은 “박사님 같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라는 질문이다. 그때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첫째, 기도하겠습니다. 둘째, 문제가 해결된 다음의 나를 생각하겠습니다. 셋째, 나의 노력과 지혜를 거기에 추가하겠습니다.”」

나는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 안에 있으면, 나도 할 수 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마치 전원과, 전등 같다. 전기의 휴즈가 끊어지면, 아무리 스위치를 켜도, 전등은 켜지지 않는 것이다.

막9:29=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어떤 분은 기도를 일로 생각한다. 그러나 기도는 즐거움이요, 특권인 것이다. 운동이 힘들지만, 그 사람의 건강에 큰 도움이 되는 것과 같다.

마귀가 교회를 노리는 세 개의 구멍이 있다고 한다. ①기도하지 않고 교인들이 따라주기만을 바라는 지도자 ②기도하지 않고 요구만 하고, 불평만 하는 교인 ③기도하지 않고 회의하고, 결정만 하는 모임이라고 한다. 기도를 중요하게 여기라.

두 사람의 소경처럼 주님께 간절히, 그리고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구하면 주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2.주님을 믿어야 한다.

주님은 이 두 소경에게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라고 물으심으로 그들의 믿음을 확인하셨다. 주님은 믿음이 없는 자를 위해서는 일하지 않으신다. 만일 그들에게 믿음이 없다면 그들에게 믿음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일하신다.

두 소경이 “주여 그러하오이다.” 라고 고백하였을 때, “네 믿음대로 되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눈을 밝게 해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믿음의 분량만큼 일하신다.

두 소경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는가?

①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믿음.
그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그리고 “주여” 라고 불렀다. 이는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다는 성경말씀을 믿었고, 예수님이 바로 그 분이라는 것을 믿었다.

②예수님의 능력을 믿었다.
예수님이 “내가 이 일을 할 줄을 믿느냐?” 라고 물으실 때 “주여 그러하오이다” 라고 대답했다.

우리의 삶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여기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마21:21절에「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이라고 말씀하셨고, 22절에서는「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이라고 믿음을 강조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되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으로 믿느냐?” 에 따라 우리의 신앙은 결정되는 것이다. 말씀 한 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죽게도 하시고, 살게도 하시는 하나님, 주시기도 하시고, 거두시기도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면 그 신앙은 철저하고 확실한 신앙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학문과 지식의 범주 안에 가두어 두고, 믿으려 한다면 바른 신앙이 성립될 수 없다.

칼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 김일성,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알기는 했지만, 믿지는 않았던 사람들이다.

우리가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할 때 “전능하시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라고 고백한다. 내가 안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되 인간적인 지성이나 오성, 또는 감성으로만 하나님을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우리 인간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보다, 볼 수 없는 것이 훨씬 더 많다. 우리 손으로 만지거나, 들 수 있는 것보다, 만지고, 들 수 없는 것이 훨씬 더 많이 있다.
우리 귀로 들을 수 있는 것보다, 들을 수 없는 것이 훨씬 더 많이 있다.
우리 눈으로 지구 전체를 볼 수 없고, 미생물도 볼 수 없다. 지구가 굴러가는 소리도 들을 수 없고, 지극히 미세한 소리도 들을 수 없다.
그러한 인간 존재가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을 눈과 귀와 손으로 보고 만져보고, 이해하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이다.

「미국의 칼럼니스트인 아트 부크 월드 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인생에 있어서 가장 좋은 것은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내가 손으로 만질 수 없고, 눈으로 볼 수 없다고, 하나님을 의심해서는 안된다.
본래「믿음」이란 말의 뜻은「확신」「동의」「설득」이라는 의미이다.「믿음이란 내가 하나님을 확신하고, 그가 하시는 일에 동의하고, 그의 말씀에 내가 설득당하는 것이다.」

히11:6=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자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의심은 믿음의 적이다. 누구나 의심하면 함께 살 수도, 일할 수도 없다. 의심하면 좋은 것은 보이지 않고, 나쁜 것만 보이는 것이다.

“의심한다.”는 말은 본래 “분리한다.” “판단이 엇갈린다.”는 의미이다. 의심하면 가정도, 교회도, 사회도, 국가도, 분리되고, 판단이 엇갈리게 된다.
심리학에서는 “의심”을 “정신질환의 한 원인”으로 본다. 하나님을 의심하면 “불신앙”이 되고, 남편을 의심하면 “의부증”이 되고, 아내를 의심하면 “의처증”이 된다.

의심하면 될 것도 안된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도 믿음과, 신뢰의 바탕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만은 확실히 믿어야 한다. 의심하면 기도응답이 안된다. 의심을 물리쳐야 한다. 믿음은 구원의 조건이요, 기도응답의 조건이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해 듣고 믿지 못하고 의심하던 도마에게 주님은 “네 손가락을 내밀어 내 손에 있는 못 자국과, 옆구리에 나 있는 창 자국을 만져보라. 그리고 의심하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믿음이란 마치 자동차 타이어 튜브 속의 공기와 같다. 제 아무리 값비싼 고급 튜브라고 해도 공기를 주입하지 않으면 타이어로 쓸 수가 없는 것이다. 적당량의 공기를 주입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제아무리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이라도, 믿음이 없으면,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는 것이다.

귀신들린 아들을 예수님께 데려온 아버지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라고 간청하였다.

사람은 언제 변할지 모른다. 사람은 기분도 변하고, 마음도 변하고, 약속도 변하고, 건강도 변하며, 상황도 변한다.
그래서 사람은「변덕쟁이」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을 믿다가는 모두 실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렇게 하나님을 믿을 때 우리는 불쌍히 여김을 받는다.

결론.

우리는 모두 삶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한 문제들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우리가 주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는데 있다.

주님께 불쌍히 여김 받으려면, 먼저 간절히 끈기 있게, 포기하지 않고, 구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의 메시아 되심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어야 한다.
여러분 모두 주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고 축복된 삶을 사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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