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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6.25기념] 칼을 쳐서 보습을 창을 쳐서 낫을 (미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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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얼마 전 진해 해군 본부 해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조승빈 학생에게 다녀왔습니다. 후방에 있는 해군 사령부인데도 35년 전 제가 군대생활을 할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군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① 150만의 금강산 관광 ② 개성공단 건설 ③ 경의선 철로 개통 ④ 청소년 축구팀 합숙과 같은 평화의 무드는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155마일 휴전선을 주야로 경계하고 있는 군인들은 주 경계 대상이 어디이며 누구입니까?

우리는 그 어느 민족보다도 동족의 정체성이 뚜렷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7년이 지난 지금도 서로 간에 주적이 되어 있으니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방 백서에 주적개념을 삭제해 본들 달라진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여전히 주적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아니라고 할 자 있으면 정치인들에게 물어보지 말고 전 후방 군인들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북한은 지난달 21일 공해상에 단거리 미사일 1발을 발사한 지 10여일 만에 7일 서해상으로 단거리 미사일 2발을 또다시 발사했습니다. 최근 북한은 2003년 2월부터 지금까지 총 8회에 걸쳐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이러한 북한의 군사행동이 노골화 될 때마다 정부는 애써 축소 평가하는 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이번에도 군 당국은 통상적 훈련의 일환이라고 북한보다 더 긍정적으로 평가 절하하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든지 북한은 핵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남북한 군사적 힘의 균형은 이미 깨어졌습니다. 일 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현충일은 국기를 게양하고 검은 양복을 입은 정치인들의 의례적인 국립묘지 방문이 현충일을 충족케 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현충일 날 골프를 친 공무원들과 군 지휘관들에게 철퇴를 내린다고 현충일의 의미가 쇄신되는 것은 아닙니다.

57년이 지났지만 그 슬픔은 세월이 갈수록 숙성(熟成, aging)되어가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그냥 살아 왔는데 이제는 사색의 여유가 생기니 조국의 산하는 동족상잔의 고통과 슬픔의 맛을 느끼는 듯합니다. 그래서 세월이 갈수록 6ㆍ25의 슬픔은 절정의 맛을 내고 더욱 더 익어가는 것 같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현충일은 희생한 자들에 대한 보상이나 형식에 있지 않고 남북이 평화통일을 하는데 있습니다.

여기 미가서 3장은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부패로 인한 예루살렘 멸망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3장과는 달리 예루살렘의 회복과 미래에 대한 것입니다.
이제 예루살렘은 피의 예루살렘이 아니라 평화의 예루살렘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Ⅰ.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통치를 소원 하는 것입니다.

본문 4장 1-2절에 『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말일』은 종말론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메시야를 통해 종말에 이루어질 구원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기에 『산』은 시온 산을 의미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시온에 임재하시고 그곳에서 말씀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열국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위해 모이게 될 것입니다. 세상 열국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완전한 변화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 될 것입니다.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메시야 시대의 도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산은 믿는 자들이 모이는 오늘의 교회를 가리킵니다.

호세아 3장 5절에 『그 후에 저희가 돌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구하고 말일에는 경외하므로 여호와께로 와 그 은총으로 나아가리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장 2절에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우주적 복음 전파에 의한 교회건설을 말하는 것입니다. 믿기로 작정된 자들이 예수 앞으로 나와서 믿게 될 것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따라 유대인의 충만한 수가 이방인의 충만한 수와 합하여 이스라엘의 충만한 수가 찰 때까지 교회 운동이 계속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1장 25-26절에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진리의 가르침을 받아 모든 악을 벗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가 거룩한 생활을 통하여 기적을 체험하며 그리스도를 전파하게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8절에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한 1서 1장 4절에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고 했습니다.
요한 3서 1장 3절에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고 했습니다.

Ⅱ.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평화의 도래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본문 4장 3-4절에 『그가 많은 민족 중에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보습』은 땅을 파는 쟁기나 삽 모양으로 된 쇳조각을 말합니다. 보습의 용도는 땅을 갈아엎으면서 흙덩이를 일으키게 하는 농기구의 일종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 땅의 주관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힘의 원리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주신 평화에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자유케 한다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8잘 32절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 나라는 철기구를 가지고 칼과 창을 만들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그것으로 농기구를 만든다는 말입니다.
여기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 나무아래 앉을 것』이라는 말은 표면적으로 솔로몬 시대에 누렸던 평화와 행복을 말하지만 이면적으로는 장차 도래할 메시야 시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4장 25절에 『솔로몬의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안연히 살았더라』고 했습니다.

열왕기하 18장 31절에 『너희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앗수르 왕의 말씀이 너희는 내게 항복하고 내게로 나아오라 그리하고 너희는 각각 그 포도와 무화과를 먹고 또한 각각 자기의 우물의 물을 마시라』고 했습니다.
스가랴 3장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솔로몬 시대의 평화는 메시야 시대의 평화와 번영을 보여주는 예표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여기 『두렵게 할 자가 없다』는 말은 무방비 상태에서도 도둑이나 강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완전한 평화를 말합니다. 메시야가 다스리는 왕국은 아무런 두려움이 없는 곳입니다.
여기 『여호와의 입이 이 같이 말씀하셨다』는 말은 유다 백성들을 향한 미가의 선언은 변개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불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처럼 헛되이 말하지 아니하십니다.
민수기 23장 19절에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라고 했습니다.

Ⅲ 신약시대에 교회가 받은 선교적 사명 을 성취하기 위한 소원입니다.

본문 4장 5절에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 『빙자한다』는 말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뢰한다는 말입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믿음의 의지로 충만합니다. 메시야 왕국을 도래케 하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고 하는 데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미가 선지자는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일에 순종하며 살기를 진정으로 소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동족상잔의 비극은 잊는다고 잊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신성모 국방장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북괴군의 남침동향을 알렸습니다. 49년 말 경에 정부는 남침시기를 1950년 4월 또는 5월로 예측하고 있었습니다.
이듬해 1950년 4월 21일 발령한 경계강화 지시가 너무 오래 되었고 농번기가 되었다는 이유로 6월 23일을 기하여 전국에 비상상태를 해제했습니다. 그리고 24일 토요일 오전 일과를 마치고 전 부대에 외출(외박)허가를 했습니다.
이틈을 이용해서 북괴군은 6월 25일 새벽 4시에 전 전선에 걸쳐 침공을 감행했습니다. 오전 6시 경에 이미 옹진, 개성, 의정부, 춘천지역 전 전선에서 38선을 넘기 시작했습니다.
동해안 강릉 남쪽에서는 이미 상륙작전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7월 20일에는 북괴군 사령부가 수안보까지 내려와 있었습니다.

김일성은 사령부를 시찰하고 8월 15일에는 부산에서 8ㆍ15경축행사를 한다고 호언장담하고 있었습니다. 파죽지세라는 말은 이런 경우에 합당했습니다.
여러분은 137,899명이라는 숫자를 아십니까? 이 숫자는 6ㆍ25동란 때 시신을 찾지 못하고 현충원에 위패만 있는 병사들의 숫자입니다.

이들은 실패한 역사의 주인공이 아니라 성공한 역사를 만들다가 간 참으로 위대한 민족의 용사들입니다. 이들은 실패한 역사를 기록하지 않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민족 역사의 영웅들입니다. 6.25 동족상잔의 피해는 참으로 치열했습니다. 피아 군인의 사상 실종자 약 250만 명, 남북한 민간인 약 350만 명, 피난 이재민 약 370만 명, 공산측에 의해 학살납치 약 20만 명, 전쟁고아 약 10만 명이었습니다. 물적 자원과 조국 산하의 폐허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성질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다시 전쟁이 발발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진노 중에도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① 낙동강 전선에서 북괴군 이방남(李方南) 제 10사단장의 더 이상의 전진을 막게 한 일도 하나님이십니다.
② 춘천지역을 방어하고 있던 우리 6사단 장병들로 하여금 3일 동안 적군을 묶어 두게 한 일도 하나님이십니다.
③ 미 공군이 한강을 도하하는 북괴군을 저지하여 시간을 벌게 하신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④ 추위에 동사한 9천명의 미 해병대원들을 비롯한 15만 여명의 16개국에서 온 사상자들을 통해서 이 나라를 구한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⑤ 맥아더 장군을 통하여 인천 상륙작전을 감행케 하신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우리 후손들에게 군복을 언제까지 입힐 것입니까? 무서운 살상무기를 언제까지 닦고 기름을 칠 것입니까? 우리는 언제까지 아버지와 아들이 손자와 할아버지가 척척 죽이 맞아가며 군대 생활의 무용담으로 밤을 지새우게 할 것입니까? 우리는 언제까지 국제대회 메달의 가치를 군복무 면제로 할 것입니까?
이제 우리는 조국의 평화 통일을 기원해야 합니다.

이것은 해방이후 줄기차게 염원하던 우리의 과제였습니다. 그리고 유서 깊은 북한 교회를 다시 재건해야 합니다.
이 세상 역사는 구원 역사의 활주로입니다. 이 땅의 교회 운동과 세계선교 운동이 계속되는 한 이 땅에 있는 칼과 창은 쓸 때가 없을 것입니다. 쓸 때가 없으니 결국 칼과 창은 보습과 낫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가치는 이 땅에 평화의 도구로 세계선교의 도구로 존재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의 사신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21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옛날에는 6ㆍ25가 공휴일이었습니다. 현충일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국가가 공휴일로 정했습니다. 집집마다 조기를 게양합니다. 이제 현충일은 쉬는 날, 노는 날이 되었습니다.
피곤한 일상에 쉬는 날이라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바쁜 일과에 노는 날이라고 해서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쉬는 날, 노는 날에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 살다간 사람들을 생각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이 모든 역사의 배후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 멘 -
(강구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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