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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의롭게 되는 것은 (갈 2: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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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에 갔을 때 종교개혁자들의 발자취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들의 한결같은 주장은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다는 것입니다. 죤후스도 마르틴 루터도 칼빈도 모두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이것을 주장하다 고난도 당하고 죽음도 당했습니다. 여러분 구원은 무엇으로 받습니까?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노래하지요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나라 지식으로 못가요 하나님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나라, 그런데 문제는 믿음으로 가는 나라인데 아직도 사람들은 돈으로 가려하고 있고 지식으로 가려하고 있고 자기 공로로 가려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참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기쁨이 없어요. 우리가 의롭게 되어 구원을 받는 것은 믿음으로 받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믿습니까?

구원을 받는 일을 위해 수도를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 분들은 자신은 부족하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수도를 통하여 온전하게 만들면 구원을 받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먹는 것도 절제를 합니다. 사는 것도 산속이나 사람의 접촉이 없는 수도원 같은 곳에서 삽니다. 날마다 기도를 드리고 묵상을 합니다. 때로는 굴속에 들어가 오래 동안 금식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들은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들인가 하는 것입니다. 자기 밖에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자기 하나 구원을 받겠다고 사람들과 외면하고 사는 것입니까?

기독교는 묵상하고 수도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종교입니다. 오늘도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바라보며 그분이 나를 용서하시고 나를 받아주시는 그 은혜를 눈 똑바로 뜨고 받아들이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내가 나를 선하다 악하다 판단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악하다 선하다 판단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판단할 만한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누가 누구를 선하다 악하다 하겠습니까? 내가 아무리 선을 많이 행하고 산다 하여도 우리는 역시 부족한 사람입니다. 내가 아무리 죄를 많이 지었다 해도 세상에 있는 죄를 몽땅 다진 것은 아닙니다. 죄의 일부분을 지은 것입니다. 도적질은 했지만 강도짓은 안했습니다. 사기는 쳐 먹었지만 남의여자를 범하는 짓은 안했습니다.

그런데 천하에 둘도 없는 죄를 지은 사람마냥 나는 구원을 받을 자격이 없다 그러지 마세요.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용서하지 못할 죄가 하나도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죄를 지었다 해도 예수님께서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말씀하시면 그 죄는 사라집니다. 그때 "아멘 믿습니다" 그러면 구원받는 겁니다. 할렐루야.

로마에 가면 스칼라 상타라는 성당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무릎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데 예수님이 골고다로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는 계단을 떼어다가 만들었다 해서 유명한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무릎으로 계단을 기어 올라갑니다. 누가 만들어 냈는지 모르지만 그러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 때문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이곳에 와서 무릎으로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다시 내려와서 또 올라 갔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계단을 많이 오르락, 내리락 해도 그것으로 구원은 받을 수가 없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이 말합니다.

16절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서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바울이 예수를 믿으면서 크게 하나를 깨닫게 됩니다. 자신은 율법으로서 구원을 받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열심히 구제를 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꼭 금식 기도를 했습니다. 더러운 것들을 멀리했습니다. 얼마나 철저하게 율법을 지켰느냐 하면 나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다. 했습니다.

그는 율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완벽하게 율법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발견한 것이 무엇입니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율법을 잘 지켰어도 역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 하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발견입니다. 이 발견이 없으면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바울이 발견 한 것이지만 이 귀한 발견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이유를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라 이제 내가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했습니다.

아 이제 나는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구나. 생각하고 고민하고 괴로워 하다가 주님을 만났는데 뜻밖에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바로 죽어야 할 옛사람이 이미 십자가에 못 밖혀 죽어 있는 것입니다. 이미 십자가에 주님과 함께 못 박혀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더 이상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않아도 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미 과거의 나는 죽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순간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예수님과 하나 되는 순간 죄를 지은 나는 이미 죽었습니다. 저주 받을 나는 이미 죽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난 나입니다. 할렐루야.

많은 분들이 “내가 죽어야 하는데...” 탄식합니다. “주여 내 안에 있는 옛 사람이 죽게 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분명한 것은 이런 탄식과 기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 옛 사람은 십자가에 달려죽어 있습니다. 죽을 것이 없어요. 이제는 사는 것이 남아 있어요.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을 생각하세요.

초대교회 교부 성 마카리우스에게 어느 분이 물었습니다. “세상에 대해 죽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마카리우스가 “공동묘지에 가서 무덤에 대고 그 안에 누워있는 시체에게 욕을 한 바탕 퍼부어보게” 그는 이상하게 생각하면서도 시키는 대로 하고 왔습니다. 마카리우스는 그 사람을 다시 보내서 이번에는 칭찬을 하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시키는 대로 하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온 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자네가 욕을 퍼 부어대니까 시체들이 화를 내던가?” “아닙니다.” “그럼 칭찬을 하니 그들이 좋아하던가?” 이번에도 그는 “아닙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세상에 대해 죽는다는 것은 이와 같은 것이다.

우리 옛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세상에 대하여 반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상 죄가 나를 유혹해도, 이 세상 사람들이 나를 욕해도, 이 세상 사람들이 나를 칭찬하고 높여도 시체처럼 세상 것에 대하여 대꾸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 것에는 미련하고 신령한 것에 민감하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다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다시 사는 것 이것이 믿는 자의 삶입니다. 술 먹는 사람에게는 술기운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별로 힘을 못 쓰던 분이 술만 들어가면 힘이 배가 나옵니다. 평상시에는 말도 제대로 못하던 분이 술만 들어가면 말을 어지나 잘하는지 모릅니다. 평상ㅅ에는 용기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 술만 들어가면 어디서 용기가 나는지 막 큰 소리를 칩니다. 술기운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주님의 기운이 있습니다. 성령의 기운이 있습니다. 예수 믿고 나서 이전에 할 수 없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이전에 알지 못하던 지혜가 생겼습니다. 이전에는 가지지 못하던 능력도 생겼습니다.

제자들을 보세요. 저들에게 성령이 임하니 힘이 솟아 났습니다.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도망가던 자들이 담대하게 복을 전했습니다. 베드로가 말 잘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다 놀랐습니다. 귀신이 쫏겨 갔습니다. 병든 자들이 나았습니다. 성령의 기운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무엇으로 삽니까?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나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 산다 이것이 바울의 고백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가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창가로 다가가서 이렇게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이 세상이 저의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것입니까? 하나님 이 교회가 저의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것입니까? 하나님 것이지요. 그럼 저는 잠자러 갑니다. 하나님 부탁해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다 맡기고 사는 것입니다. 비행기를 타면 조종사를 신뢰 합니다. 병원에 가면 의사를 신뢰합니다. 음식점에 가면 요리사를 신뢰합니다. 세상사는 일에는 주님을 신뢰합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살았더니 축복을 받았습니다.

남자들이 제일 신나하고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얘기 셋이 있는데 첫째 군대 얘기, 둘째 축구 얘기, 셋째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랍니다. 여자들이 싫은 이야기를 잠깐 할께요. 군에는 별사람이 다 오는데 좀 잘사는 집에서 오는 친구가 있지요. 고참들이 그냥두지를 않습니다. 야 라면하고 빵 좀 사와라 - 그런데 그냥 사오라고 하면 강탈이 되니까 천원짜리 한 장을 줍니다. "이거 가지고 가서 라면 다섯 개, 빵 다섯 개 사오고 2천원 남겨 와." 그럼 어떻게 됩니까? 여자분들 이해가 됩니까? 그런데 되거든요. 라면 다섯 개, 빵 다섯개 그리고 잔돈 2천원

그런데 이보다 더 터무니 없는 사건의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십자가입니다. 우리의 모든 저주를 갖다 주고 온갖 복으로 바꾸었습니다. 죄를 가지고 나아가 용서를 받았습니다. 상처를 가지고 나아가 치유를 받았습니다. 가난을 가지고 나아가 부요를 가지고 왔습니다.

염려를 가지고 나아가 평강을, 죽음을 가지고 나아가 영생을 얻었습니다. 상처가 치유로, 병든몸이 건강으로, 저주가 축복으로, 슬픔이 기쁨으로, 불평이 찬양으로 바뀌어지는 축복이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사는 믿음으로 이루어지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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