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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알곡과 가라지 비유 (마 13: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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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공동체든지 세상에서는 완전한 곳은 없습니다. 국가나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랑의 보금자리인 가정이나 그리스도인의 집단인 교회도 불완전한 요소를 지니고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 하실 때까지 세상에는 죄악이 관영하고 마귀가 활동하기 때문에 천당과 같이 완전한 곳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 말씀에 소개된 예수님의 천국 비유는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주인이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렸으나 밤에 원수가 와서 가라지의 씨를 덧뿌리고 갔습니다. 어느새 그 밭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같이 자라게 된 것입니다. 이 밭을 국가나 교회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같은 밭에서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듯이 세상에는 어디에나 선과 악이 공존하는 법입니다.

1. 공통점이 있습니다.

땅속에 있는 씨앗에 눈이 트고 싹이 나게 되면 일정기간 자랄 때까지 서로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분명히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씨앗이지만 그들 간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1) 생명이 있습니다.

씨앗의 특징은 그 속에 있는 생명력입니다. 생명이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어떤 형태로든지 발아(發芽)하여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며 생명력을 약동 시키게 됩니다. 종류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살아있는 것이면 언제든지 땅 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존재를 과시하게 됩니다. 가라지 종류인 경우 처음에는 전략적으로 죽은 듯이 숨어 있지만 반드시 그 본 모습을 드러내고 마는 것입니다. 다만 자기의 존재를 정확하게 노출시키지 않는 가라지의 특성 때문에 사람들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곤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가라지 특유의 위장술 일뿐 그 속에 생명력은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2) 성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겨자씨 비유를 말씀하실 때 “이는 모든 씨 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작은 씨앗이라도 그것이 막상 싹을 터뜨리고 거죽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습도와 온도를 받아가며 성장을 재촉합니다. 사람도 좋은 환경에서 과잉보호를 받으며 자라는 경우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저항을 하며 성장하는 경우일 때는 오히려 야성이 강해지고 어떤 환경에서든지 더 잘 적응하게 됩니다. 좋은 씨앗 속에 묻혀 자라는 가라지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내성을 길러가며 소리 없이 뿌리와 가지를 뻗어가는 특징이 있습니다.

3) 열매가 있습니다.

앞서(3-8절) 나오는 씨 뿌리는 비유에는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를 맺는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종류의 씨앗이든지 정상적으로 자라게 되면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것은 생명체의 번식력을 의미하는 것이며 또한 그것의 존재 목적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모든 열매는 그 맺히는 시기가 있습니다. 일정한 기간을 기다리며 인내하는 자에게 열매의 기쁨을 안겨주는 것입니다(약 5:7-8). 이런 것은 자연의 법칙이자 순리입니다. 다만 좋은 씨의 경우 모든 사람의 기대 속에 당당하게 나타나지만 가라지는 자기를 숨긴 채 없는 것처럼 움츠려 있다가 완전히 무르익었을 때 엄청난 열매로 번식력을 과시하는 것입니다.

2. 다른 점이 있습니다.

알곡과 가라지가 같은 밭에서 함께 자라는 동안 일꾼들은 거기 다른 종류가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그냥 겉으로 볼 때 좋은 씨와 가라지가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모양이 같았지만 사실상 전혀 다른 실체들입니다.

1) 종자가 다릅니다.

좋은 씨와 가라지는 일정기간 같은 밭에서 같은 농부의 손에 의하여 가꾸어 지고 있지만 그 근본은 다릅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한쪽이 정리가 되어야할 적대적 관계일 뿐 결코 공존할 수 없는 대상입니다. 세상을 사는 성도들에게도 의와 불법, 빛과 어두움, 그리스도와 벨리알,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과 같이 절대로 공존할 수 없는 상극관계의 개념이 있습니다(고후 6:14-16). 예수님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은 겉보기에 율법을 준수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상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리켜 마귀에게서 난 마귀의 종자라고 하였습니다(요 8:44).

2) 목적이 다릅니다.

옛날 모세와 함께 출애굽한 사람들 중에는 이스라엘 가운데 섞여 사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종자가 달랐습니다(출 12:38). 그냥 이스라엘과 같은 민족인 것처럼 행세를 하였으나 내심으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조상들에게 약속된 가나안의 환상이 있었지만 그들의 목적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민수기 11:4에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탐욕을 위해서 이스라엘을 이용하였던 것이며 그때마다 가나안 행진에 적신호가 켜졌고 또한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하였습니다(출 32:1-8, 민 14:26-35).

3) 결과가 다릅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이와 같은 자연법칙의 원리를 근거로 하여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하였습니다(갈 6:8). 썩어지는 열매와 영생의 열매는 사실상 그 종자 때부터 결과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여기 본문말씀 30절에는 추수 때 알곡은 곡간에 들이지만 가라지는 단으로 묶어 불에 태운다고 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님과 상관없는 길을 가거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에 붙어서 행세를 했던 사람들의 종말은 파멸로 치닫고 말았습니다. 시편 1:5-6에는 악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어오지 못하며 또한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지만 악인의 길은 망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3. 하나님의 경륜이 있습니다.

유구한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주이며 또한 역사의 경영자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결국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알고도 묵인 하십니다.

농장의 일꾼들은 오랫동안 그 밭에 가라지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 조차 몰랐습니다. 얼마 후에 알기는 했으나 그것이 어떤 경로로 그 밭에서 나고 자라는지 원인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처음부터 가라지의 정체를 다 알고 있었습니다. 종들이 주인에게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하고 물었을 때 주인은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하고 말했습니다. 다시 종들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하고 물었을 때 주인은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선과 악이 공존하는 것을 다 알고 계시지만 그것을 일정한 기간까지 묵인하십니다. 그러나 가라지의 족속들은 하나님께서 모르시는 줄로 착각하고 갖은 횡포를 부립니다(시 2:1-4).

2) 그것을 선용(善用)하십니다.

필요악(必要惡)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세상에는 때때로 악한 세력들이 있어서 선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악역을 떠맡아 주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경우를 두고 지혜자 솔로몬은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잠 16:4). 밭에서 가라지가 자라고 무성하게 우거지면 알곡이 피해를 보는 것처럼 세상에서 악인이 득세하면 의인이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과정을 통하여 자기 백성들을 훈련시키고 연단 받게 하여 정금 같은 믿음을 길러내게 하십니다(욥 23:10). 옛날 선지자 하박국은 교만한 자와 거짓된 자의 횡포가 극심하더라도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하였습니다(합 2:4).

3) 자기의 뜻을 이루고 맙니다.

아담의 범죄로 아름다운 에덴 동산이 마귀의 활동 무대가 된 후에는 어디에서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신론적 불신앙의 세력이 역사를 주름잡고 있었습니다. 가인 계통의 사람들이 거기에 해당됩니다. 그의 후손들이 세상 문화의 주류가 되었고(창 4:16-24), 결국 무력으로 모든 권력을 장악하여 전쟁과 죽음의 악순환이 이어지게 하였습니다. 여기에 굴복하여 사람들이 진리에서 이탈하거나 배도의 길을 걷게 된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세상은 마귀의 독무대이거나 불신앙의 천지가 되어 버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주권 앞에 선과악은 구분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추수 때에 가라지는 불사르고 알곡은 곡간에 넣는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악의 세력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불 못에 던져지는 날 의인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마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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