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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감사함은 (딤전 1:1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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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할아버지'로 불리며 불꼿처럼 살다 작년 12월 세상을 떠난 대안 교육가 채규철 선생이 세상을 항해 남긴 마지막 인사는 "..... 저기가 어디야, 아름답구먼, 나 이제 급히 감세"라는 말이었습니다. 'ET할아버지'는 온 몸에 화상을 입어 외계인 같다고하여 아이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타 버린 사람이라며 자신의 별명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1961년 충남 홍성에 있는 풀무학교에서 교사직을 시작한 그는 장기려 박사와 함께 청십자가 의료조합을 설립하면서부터 복지운동가로 활약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통사고로 차가 불길에 휩싸이며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30여 차례의 수술을 거쳐 목숨은 건졌지만 귀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고 코와 입도 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 나이가 서른 한살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깊은 수렁을 빠져나왔습니다. 비록 청력을 잃고, 한 눈은 멀고, 녹아내린 손은 갈퀴처럼 돼 버렸지만 "보이지 않는 눈으로는 마음을 보고, 귀는 안경을 걸칠 수 있을 만큼은 남아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며 웃음으로 상처를 덮었습니다.


  그는 "최소 6천만원은 들어간 얼굴"이라며 "내 얼굴은 30여 회나 성형수술을 거쳐 만든 걸작품인데, 별로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농담처럼 말했습니다. 그런가하면 그는 자신을 `100원짜리 인생`이라 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유가 가슴 한구석을 먹먹하게 만듭니다. "내가 다방이나 음식점을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즉시 마담이나 종업원들이 다가와 숨돌릴 틈도 없이 잽싸게 100원 짜리 동전 한 닢을 주고는 제발 나가달라며 내 몸을 마구 밀어냅니다. 이유는 그 모습이 흉칙해서 다른 손님들에게 혐오감과 불안감을 준다는 것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그를 손님이 아니라 구걸하러 온 거지로 착각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는 `어줍잖은 동정`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건네준 100원짜리를 받아 호주머니에 냉큼 넣고선 당당히 손님 행세를 했다고 합니다. 그는 누구보다 `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화상 후에도 다시 청십자 의료조합 일을 시작했고 소외된 이웃을 위한 '한벗회' '사랑의 장기기증본부'를 만들며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1986년, 경기도 가평에 대안학교 '두밀리 자연학교'를 세우며 도시 아이들에게 자연과 벗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험난한 역경을 딛고 일어나 '이미 타버린 몸'에서 나오는 열정으로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선사했던 그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삶에는 'F'가 두 개 필요해, 'Forget(잊어버려라), Forgive(용서해라)' 만약 사고가 난 뒤 그 고통을 잊지 않았다면 나 지금처럼 못 살았어. 잊어야 그 자리에 또 새 걸 채우지. 또 이미 지나간 일에 누구 잘못이 어디 있어. 내가 먼저 용서해야 나도 용서를 받는 거야."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잊버리고 용서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감사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했기에 그 커다란 장애를 안고도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서 살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감사하는 것과 신앙하는 것은 같습니다. 사람은 감사하는 만큼 신앙하고 믿는 만큼만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라는 말이 헬라어로는 "은사" 혹은 "은혜"라는 말과 "좋은"이라는 단어가 합쳐진 것이다. 즉 헬라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좋은 은사를 체험하고 그에 응답하는 것을 감사(感謝)라고 이해한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할줄 아는 사람은 은혜를 깨달은 사람이요, 은혜를 체험한 사람이요, 겸손한 마음을 소유한 사람인 것입니다. 감사생활이 곧 은혜생활이요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바울은 큰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만큼 그는 감사를 아는 사람입니다. 감사가 넘쳤던 사람, 감사가 몸에 베어 있던 사람, 감사로 평생을 살던 사람입니다. 바로 그 감사의 신앙이 그를 성숙한 사람으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1. 직분을 맡기심을 감사했습니다.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12)했습니다.
자기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를 충성되이 여겨 주신 직분인 것을 알았습니다. 주님은 그를 가리켜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해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이런 마음으로 평생을 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스스로를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는 넘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감사보다는 불평이 쏟아져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어떻게 여기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어떻게 여겨주시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사도의 직분을 받을 만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충성되이 여기사 주신 것으로 알고 그것을 언제나 감사했습니다.
  성공철학자 죠지 와싱턴 카버는 "성공한 사람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성공하더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행복한 사람이 사역에 성공합니다. 자신의 직분이 행복해야 합니다. 나는 목사의 직분이 행복합니다.

  " 크든 작든 나를 능하게 하신 하나님께 받은 직분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기본적으로 주님의 복음을 맡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을 우리에게 맡기시기 위하여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세워주셨습니다.
 
  2.변화됨을 감사했습니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13)고 했습니다.
  그는 지금 자기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바울을 존경합니다. 그가 남긴 그 어떤 업적이나 치적보다도 그가 한 신앙인으로서 날마다 자기를 돌아보며 산 것이 정말 귀한 것입니다. 우리가 바울을 생각할 때마다 이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그의 생애 가운데 가장 돋보이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고귀해 보이는 모습입니다.

  사도바울은 전에는 자신이 비방자였으며 박해자였으며 폭행자였으며(13) 죄인중에 괴수(15)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것을 강요한 훼방자였습니다. 그는 교회를 멸하고자 물리적인 힘을 사용한 박해자였습니다. 그는 살기등등한 거만하고 고집불통의 사람이었습니다. 무지와 불신에 떨어져 있을 때에는 모두가 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는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에게는 전환점이 있었습니다. 너무 엄청난 변화였기 때문에 예루살렘교회는 그것이 계략이라고 의심했고 그를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을 정도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예수를 믿기 전과 믿은 후에 변화한 것에 대해 감사의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큰 변화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운 은혜의 까닭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으며 나면서 부터 죄와 관련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에 의해서 의인으로 변화되었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으로서 전에 유대인으로서 중시했던 모든 가치는 필요없게 되었습니다.

  3. 주의 은혜를 인하여 감사했습니다.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14) 이 말은 지나치도록 풍성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로라"하는 고백이 감사를 낳게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를 구원하신 주의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하였다고 했습니다. 복음의 체험을 한 사람은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 그래서 바울 사도는 "말로 다 못할 그 큰 은혜를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 9:15)"고 했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감사하게 되고, 받은바 은혜가 충만한 사람은 감사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은혜받지 못하니 감사못하고 감사못하니 자꾸 은혜받을 길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악순환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바울될 수 있었던 것은 16절"그너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을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했습니다.
  참아주신 주님, 일체 오래 참아주심 때문에 "후에 예수를 믿어 믿는 자의 본이 된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은 이런 감사생활을 통하여 바울은 모든 믿는 사람의 본이 되었고(16),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17)고 했습니다. 
  어거스틴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여기에 한 가지를 나는 더하고 싶다. 감사는 항상 있을 것인데. 감사는 마치 공으로 벽을 치는 것과도 같아서 감사하면 반드시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라고 했습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감사도 있어야 합니다. 

  감사는 마치 전기와 같습니다. 전기는 단순히 어둠을 물리치는 데만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용도에서 힘의 원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의 본이 되십시다. 그리고 찬송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면서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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