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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하십니까? (신 33: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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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고 싶어요

어떤 사람이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또 그 사람의 심리상태가 어떤지는 요즘 그 사람이 어떤 말을 자주 쓰는지 보면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입만 떼면 "죽겠다" 소리를 하는 사람은 요즘 뭔가 어려운 일이 있는 것이고, 왠지 모르게 싱글벙글 하면서 "좋다, 신난다." 하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어 못 견딜만한 일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요즘 어떤 말을 많이 하십니까?

그러면 저는 요즘 어떤 말을 많이 쓸까요? 제 설교를 들어보면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요즘 저는 설교 때마다, 또 어디 가서 남들과 이야기 할 때마다 '행복'이라는 낱말을 유난히 많이 쓰고 있더군요. 왜 그럴까요? 방금 말씀드린 대로 요즘 제가 상당히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제가 행복하고 편안하니까 매일 보는 성도들 얼굴도 왠지 편안하고 행복해 보입니다. 그러니까 더 행복해지고요. 이것이 바로 '행복의 순환'입니다. 얼마 전 어떤 목사님을 만났는데 그 목사님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어떻게 목회하세요? 목사님 목회의 특징이 뭡니까?" 그래서 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별로 특별한 것 없습니다. 남들에 비해 내세울 것도 별로 없고요.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저는 저 자신이 행복하고 싶어요. 행복한 목사 되고 싶고, 행복한 목회 하고 싶어요." 그리고는 이렇게 말을 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행복하고 평안한 교회 되고, 성도들이 포항에서 대한민국에서 제일 행복한 성도들 되면 좋겠어요." 여러분, 그만큼 우리 신앙생활에서 '행복'이 중요합니다. 오늘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해 첫 추수를 하면서 지킨 맥추감사주일입니다만 감사도 내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할 때 더 잘 나오는 것이기에 아무쪼록 맥추감사주일인 오늘, 성도 여러분 모두가 감사의 마음을 품고 정말 행복한 신앙생활 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불행한 한국인

물론 '행복'은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만 소중한 것이 아닙니다. 안 믿는 분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저마다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할 것이라 믿어 오늘도 밤 잠 안 자고 먹을 것 안 먹어가며 돈을 법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지요. 또 어떤 이는 권력이나 지위가 행복을 주는 줄 알고 오늘도 권력과 지위의 고지를 향해 쉬지 않고 달려갑니다. 또 어떤 사람은 육신의 쾌락에 진정한 행복이 있는 줄 알고 오늘도 방탕하며 하루를 살다가 사그라져 갈 불나방 같은 인생, 하루하루만 만족하며 살면 된다는 하루살이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이런 저마다의 노력의 결과 그들이 정말 행복해졌느냐 하는 것이지요. 열심히 돈을 벌고, 열심히 출세하고 권력을 얻으려 노력하고, 하루하루를 육신의 쾌락에 탐닉해 살아가면 정말 행복해지느냐?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성공한 것이지요. 하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못합니다.

어떤 신문에 이런 제목의 기사가 나왔습니다. "우울한 한국인." 무슨 말인가 싶어 자세히 읽어보니 이런 내용입니다. 한국사람 장년층(45~59세) 22%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울증을 겪는 비율은 여성이 24.7%로 남성(17.9%)보다 훨씬 높습니다. 60세 이상 노년층은 우울증을 겪는 비율이 두 배 가까이 높아져 여성은 거의 절반에 이른다고 합니다. 게다가 장년층 남자 11.2%는 일상생활에 장애를 겪을 정도로 상태가 좋지 못하고, 8.9%는 알코올 중독 상태였습니다. 장년층 여자 11.6%는 치매나 치매 전단계인 인지기능 저하 증상을 보였고, 남녀를 합쳐 16%가 고혈압, 7%가 당뇨병, 7.5%가 관절염, 류머티즘을 앓고 있습니다. 자, 이러다보니 한국 사람들은 유난히 삶에 대한 만족도가 낮다는 것입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보면 장년, 노년층은 현재 하는 일이나 은퇴 후의 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선진국보다 훨씬 낮아서 한국의 50살 이상 중에는 현재의 일에 만족하는 사람이 58.2%로 미국 등 선진국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됩니다. 정말 "우울한 한국인"입니다. 오늘날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너무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내 삶에 전혀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을 품고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한국의 자살률이 헝가리에 이어 세계 2위라고 합니다. 헝가리라는 나라는 자살률도 높지만 성인의 70% 이상이 매일 술을 마신다는데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게 술 소비량이 높고, 문제는 갈수록 술 마실 일이 더 많이 생긴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렇게 일반적인 한국인은 자기가 정말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우울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렇다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어떨까요?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여러분은 예수 안 믿는 분들보다 내가 훨씬 행복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행복하십니까?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 예수 믿는 것이 행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 나오는 것이 정말 행복해야 하고 세상 어떤 일보다 신앙생활 하는 것이 정말 행복해야 합니다. 포항 시대 어떤 교회에 가보니 교회 문 앞에 이런 구호가 걸려 있습니다. "인생의 방황은 하나님을 만나면 끝이 나고, 신앙의 방황은 좋은 교회를 만나면 끝이 납니다. 좋은 교회, 행복한 교회, 우리 ◯◯교회로 오십시오." 예, 맞는 말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우리 교회도 들어오는 유리문에 "좋은 교회"라고 쓰여 있지만, 그래서 모든 교회들이 저마다 우리 교회 좋은 교회라고, 우리 교회 다니면 인생의 방황, 신앙의 방황이 끝나고 "불행 끝, 행복 시작"이라고 그렇게 주장하지만 문제는 과연 우리의 교회생활이 그렇게 행복한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 교회 와서도 인상 쓰고 있는 분들을 봅니다. 어떤 분은 제가 설교를 할 때 맨 앞에 앉아서 오만 인상을 다 쓰고 있습니다. 하도 궁금해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교회 나와서 인상을 쓰고 계세요?" 그랬더니 그 분이 하는 말이(그 분 말 그대로 옮깁니다.) "목사님, 죽을 맛입니다. 정말 마음에 안 드는 '인간'이 있어서 교회 오는 것이 너무 싫습니다." 그런데 왜 교회 오는 것일까요? 경험해 본 분들은 압니다. 너무 힘든데 괴로운데, 너무 보기 싫은 사람이 있는데 할 수 없이 교회 나가본 분들 말입니다. 어떤 분은 부모님이 계셔서 하는 수 없이 나간다고 하고, 어떤 분은 정말 다른 교회로 옮기고 싶은데 교회에서 맡은 책임이나 직분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고, 또 어떤 분들은 "오늘까지다" 하고 매주 결심을 하지만 그동안 다니고 섬긴 교회 차마 못 떠나겠더랍니다. 또 제가 만난 포항시내 어떤 교회 성도는 교회가 시끄럽고 분란이 일어나 너무 힘든데, 내 영적인 상태를 위해서라면 당장 떠나고 싶은데 교회가 이렇게 어려울 때 차마 떠날 수 없어 그냥 다닌다고 눈물로 호소합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저도 눈물이 났습니다. 그 사람이 너무 불쌍해서요. 여러분, 세상에 이렇게 불쌍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교회 나와서 예수 믿고 행복해야 하는데, 매주 교회 오면 너무 신나고 행복해도 될까 말까인데 교회 나오는 것이 행복하기는커녕 너무 힘들고 괴롭다니 이렇게 불쌍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에서 힘들다가도, 스트레스 쌓여 한 숨 쉬다가도 교회만 오면 다 풀리고 위로 받고 돌아가야 마땅한데 도리어 교회 오면 더 스트레스 쌓이고 괴롭다니 이렇게 불쌍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저도 울었습니다. 그 사람 영혼이 너무 불쌍해서요.

여러분, 여러분 중에 혹시 너무 싫은데, 너무 힘든데 교회 오는 분 있습니까? 의무감 때문에요? 하는 수 없이 참고 오십니까? 참 안 됐습니다. 신앙생활 자체가 행복하고 기뻐야 합니다.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 하면서 이 행복과 기쁨이 없는 분들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불쌍한 분들입니다.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이제 오늘의 본문을 보십시오. 오늘 본문이 나온 신명기 33장은 모세가 죽기 전 마지막 유언처럼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게 해 준 축복입니다. 그런데 이 축복 중에서 오늘 본문인 26절 이하는 맨 마지막 결론 부분으로 이스라엘 열두 지파 모두에게 한 축복입니다. 어떤 축복이 나왔는지 봅시다.

먼저 26절을 읽습니다.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이가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여기서 '여수룬'이란 '의로운 백성'이란 뜻으로 이스라엘의 별명입니다. 그런데 이 여수룬, 즉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이 얼마나 큰 복을 얻은 백성인지 스스로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왜냐? 세상에 하나님 같은 분이 없는데, 우리 하나님은 만유의 주시오, 우주만물의 창조주시오, 지극히 높으신 분인데 바로 그 하나님이 여수룬을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고 궁창 위에서 위엄을 나타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제가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제가 어렸을 때 4형제 중 막내였는데 어린 제가 동네에서 그래서 매 안 맞고 주눅 안 들고 살았던 것은 싸움 '좀' 하는 우리 둘째 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제가 어디 가서 한두 살 많은 형한테 맞고 들어왔다 하면 저보다 네 살 많은 둘째 형이 바로 '손을 봐주었기' 때문에 저는 안심하고 동네를 활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싸움 좀 하는 형 한 사람 있어도 든든하고 좋은데 하물며 천지만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이 하늘에서 호령하면서 나를 지켜주시니 얼마나 든든하고 행복하냐는 말입니다.

계속해서 27절부터는 그 하늘의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도우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하나님이 나의 처소요 피난처가 되시며 그의 든든한 팔로 나를 붙잡고 계신다는 뜻이지요. 수영장에서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한 대여섯 살쯤 되었을까, 자그마한 남자아이가 어른이나 들어가는 꽤 깊은 수영장에서 제법 폼을 잡으며 수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아이가 아직 수영을 못 한다는 것이지요. 그럼 수영도 못 하는 어린아이가 어떻게 그 깊은 수영장에서 마음 놓고 수영을 할 수 있느냐? 그 아이 아버지가 팔을 뻗어서 아이 배 밑을 받치고 있는 것이지요. 아이는 수영도 못 하지만 그 아버지의 팔 하나만 믿고 폼을 잡으며 그 물 속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도 그분의 팔로 이스라엘 백성을 붙잡고 세우고 계시니 안심하라는 것입니다. 또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라고 했고, 28절에는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지키고 보호하시니 원수 대적은 다 쫓아내 주시고, 농사짓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샘을 축복하고 곡식과 포도주를 풍성케 하시고, 하늘에서 때맞춰 이슬도 내려주신다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하나님이 그 백성 이스라엘을 지키고 보호하고 축복하시니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론은 29절입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다시 봅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너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 어디 있냐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너처럼 행복한 백성이 어디 있냐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이 행복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을 받은 이스라엘인데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랐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불평합니다. 계속해서 자신을 도우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배신하고 딴 짓을 합니다. 우상을 섬기고 불의를 행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너무나 사랑하시기에 참으십니다. 이스라엘이 별 짓 다해도 참고 불평해도 참으십니다. 하지만 참는 데로 한도가 있지요. 하나님은 결국 참다 참다 못해 나중에는 그 행복을 빼앗아 가버리십니다. 이스라엘이 받은 그 복과 그 특권을 빼앗아 이방인들에게 주고 맙니다. 이스라엘은 모든 것을 다 빼앗깁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일이 많습니다. 지금 포항에는 세계에서 제일 오래 된 여객선인 둘로스(헬라어로 '종'이라는 뜻) 호가 들어와 있는데 이 배는 지금 선교목적으로 전 세계를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배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가 하면 타이타닉호보다 2년 늦은 1914년 건조되었으니까 자그마치 93년 된 할아버지 배입니다. 아무리 개조를 했어도 워낙 오래된 배다보니 좁고 시설도 부족합니다. 그런데 둘로스 호에 탄 세계 각국 선교사들의 말을 들으면 아프리카나 동남아 가난한 나라에 가면 서로 이 배에 타보겠다고 몇날 며칠을 기다리기도 하고 태워주기만 하면 너무 신기해하고 고마워하는데 좀 잘 사는 선진국에 가면 그렇지 못하답니다. 한국만 해도 이젠 좀 잘 살게 되었는지 배에 왜 에어컨이 신통치 않냐? 배 천장은 왜 이리 낮냐? 왜 정수기도 없냐?며 온통 불만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영적생활도 이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은혜 주셨는데, 지금까지 지내온 것이 분명 주의 크신 은혜인데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밤낮 불평만 늘어놓는 이스라엘 백성 같은 모습 아닙니까? 조금만 높은 사람, 힘 있는 사람이 도와줘도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다니면서 정잘 그 크신 하나님이 만유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도와주신다는 데도 고마운 줄 모르고, 행복한 줄 모르고 사는 우리 아닙니까? 그러다가 혹시 그 복 마저 빼앗기는 것 아닐까 심히 두렵습니다.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 교회에 와서도 인상 쓰고 있고, 늘 입만 열면 불평불만이고, 예수 믿는 것이 하나도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정말 행복한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감사한 줄 모르고 행복한 줄 모르는 사람은 복 받은 자격이 없습니다. "얘야, 제발 너 행복한 줄 알아라."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 이런 마음 가지시기 바랍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 예수님을 모르고 죽어 가는데 나는 이렇게 예수 믿어 구원 받으니 제일 행복하고, 세상에 어려운 교회 힘든 교회도 많고 성도들 가슴 아파하는 안타까운 교회도 많은데 이렇게 좋은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게 하시고, 이렇게 좋은 목회자,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그리고 성도들 만나게 하시니 또 행복하고, 나에게 좋은 가정 주시니 행복하고, 세상에 자녀 없어 고민하는 가정도 많고 자녀를 낳았는데 큰 병에 걸려 고통당하는 일도 있고, 다 큰 자녀 오랜만에 가족여행 간다며 캄보디아로 떠났다가 일가족이 다 차가운 시신 되어 돌아와 부모의 억장을 무너지게 하는 일도 있는데, 내 자녀 공부는 좀 못할지 몰라도 건강한 자녀 주시니 행복하고, 내게 건강 주시고 물질 주시니 행복하고..." 등등 정말 생각해 보고 세어보면 감사할 일 행복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행복지수는 몇 점입니까? 행복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영적 행복지수는 몇 점입니까? 우리 교회의 행복지수는 얼마이며 우리 교회 성도들의 행복지수는 얼마입니까? 우리는 과연 정말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저는 요즘 너무 행복합니다. 별 특별한 일도 없는데 마냥 행복해서 가는 곳마다 '행복' '행복'을 외치고 다닙니다. 교회가 너무 평안해서, 성도들이 너무 예쁘게 신앙생활 해서, 우리 교회가 날로 성장 성숙하고 좋은 소문이 나서 너무 행복합니다. 그러면 최고지요. 이만하면 정말 행복한 목사지요. 그래서 날마다 밤이든 새벽이든 교회로 향하는 제 발걸음이 너무 즐겁습니다. "이런 행복 처음이야!" 스스로에게 늘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쪼록 여러분도 이런 고백을 하는 행복한 성도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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