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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젊게 사는 비결 - 감사 (시 103:1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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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종교적으로 타락하고, 정치적으로 부패하며, 경제적으로 빈곤할 때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역했던 시기에 나타난 한 가지 특징이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이 정한 절기를 지키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새 지도자가 나타나 나라를 다시 일으킬 때 꼭 절기를 회복했습니다.
이스라엘의 3대 절기는 유월절  맥추절 초막절입니다.
오늘 이 맥추절은 칠칠절이라 해서
  유월절이 지나 안식일이 일곱 번 즉 7주가 지나 지키는 날로써
  이날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린다 해서 초실절이라고도 했습니다.
역대하31:5-에 보면 유다 히스기야가 왕이 되어
  먼저 종교개혁을 단행할 때  모든 소산의 첫 것을 드렸드니
  :10절 에 여호와께서 복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성도의 신앙이 희미해지고
  삶이 말라들어 갈 때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의 의미가 상실되어 가지마는
하나님 백성의 신앙의 부흥, 삶의 회복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의 의미가 살아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다윗의 위대한 감사의 찬송시 가운데 하나로
하나님께서 다윗 자신과 이스라엘에 베푸신 은혜를
        감사가 넘치는 마음으로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그런데 도시교회들은 우리는 농사를 짓지 않기 때문에
    첫열매로 드릴 곡식이 없으므로 맥추절을 간과합니다만 
절기는 창조주요 구원의 주가 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데 있습니다.
다윗의 감사의 노래를 통해
    하나님께 넘치는 감사를 드리는 맥추감사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오늘 시103편에서 하나님께 찬양하되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1. 다윗은 시103편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되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1절)
1절 [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
많은 신학자들이 시103편을 단순한 구원의 찬양이 아니라
    구원의 감격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찬양시라고 합니다.
그러니 다윗이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에 감사하여 불렀던 노래인 것입니다.
다윗이 자기 권고적 표현으로
[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 노래합니다만
그러나 이 권고는 다윗 자신뿐만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권고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는 표현은 
성도가 하나님 앞에 찬송하고 감사할 때는 전인격적으로 드려야 함을 말합니다.
여호와를 섬기더라도 신6:5절에                         
[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 하듯이
      하나님을 송축하더라도 너의 삶을 전부 바쳐 감사하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우리가 전인격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해야 합니까?
19절 이하에 여호와 하나님은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
    즉 만물의 통치자가 되시고 만유의 주재가 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천사도 천군도 모든 피조물이 다 여호와께 감사의 찬송을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롬11:36절 [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
하듯이 창조주 하나님은
모든 만물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그 분의 피조물인 사람도
    천군 천사와 같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해야 함을 말합니다.
만유의 주인 되신 하나님을 믿으신다면
    농사지어 열매를 거두기 이전에
    그 분의 피조물로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찬송의 사람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의 사람 되시기 바랍니다.


2,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의 사람이 되자면 어떤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합니까?(2절)

  혹 나는 하나님의 은택을 잊고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2절 [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말찌어다 ]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의 은택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은택을 잊지 않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에 배은망덕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스펄존 목사님이 시103편 설교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 기억력이란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타락으로 말미암은 괴팍스러움 때문에,
  무가치한 것들을 기억하고
  값으로 따질 수조차 없는 보화들은 기억에서 배제시켜 버리며,
  또한 불평거리들을 끈덕지게 붙들고 있지만
  귀한 은택들에 대해서는 너무도 느슨한 자세를 보인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살 때가 종종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것을 죄라고 합니다.
은혜를 기억하고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대하32장에 보면 유다 히스기야 왕이
산헤립 왕이 이끄는 앗수르 군대 135000명이 예루살렘을 침공해 왔을 때
히스기야 왕이 성전에 올라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하루아침에 앗수르 군대 135000명의 목을 부스 트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도
    히스기야 왕이 벽을 향하여 통곡하며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생명을 15년이나 더 연장시켜 주었습니다.
히스기야의 고난이 회복되니 부와 영광이 극에 달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하32:25절에
[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는데 ]
사39:6절 이하에 보면
[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 바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그리고 네게서 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 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7절 말씀같이                       
[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성하신 ]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여호와께 돌아오면 반드시 은혜를 베푸시지만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교만하면 반드시 꺾어놓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아니하고 기억하는 동안에는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만족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동안에는
    늘 그 마음에는 감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떤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그 중심에 찬송과 감사가 있는 성도에게는
    반드시 더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가장 불쌍한 사람이 잊혀진 사람입니다.이런 글이 있지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병든 사람입니다.
  병든 사람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죽은 사람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잊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하기를
너희가 나를 잊어버리면 나도 너희를 잊어버리겠다고 합니다.
사람에게 잊혀진바 되어도 하나님이 기억하시면
얼마든지 욥과 같이 하나님은 그 삶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하나님도 우리를 잊게 되면
        우리는 마치 뿌리가 잘린 나무와 같이 곧 시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절기를 정하시고 절기를 지키라 합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유월절 - 구속의 은혜를 잊지 말라
맥추절 - 너희 수고의 첫열매 거둘 때
      신16:12절 애굽에 종 되었던 것을 잊지 말라고 합니다.
초막절 - 즉 추수감사절, 광야 생활 즉 고난 가운데 지켜 주시고
      오늘의 열매를 거두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패한 인간은 고난 가운데서는 하나님 찾지만
    형통하면 은혜를 저 바리는 간사한 동물이 인간입니다.
혹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감사를 회복하는 내일의 가족들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상에 놓인 음식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주위의 배고픈 사람을 생각할 줄 알며
건강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병든 사람을 동정할 줄 안다. 
자유로움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억압당하는 사람을 이해한다. 
감사는 곧 <섬김>이며 <사랑>과 <나눔>이며 <관심>이다.
그러므로 천국의 시작은 감사하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저는 이 글을 이렇게 옮겨 놓고 싶어요.
음식을 놓고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배고픈 사람을 도와 줄 수 있도록 풍성한 양식을 주시고
건강을 두고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병든 사람을 돌봐 줄 수 있도록 삶의 여유를 주신다.
자유로움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억압받는 자들을 풀어줄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은혜를 기억함이 감사의 회복이며
    감사의 회복이 삶의 회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다윗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의 우선적인 요건들이 무엇입니까?
3. 다윗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의 우선적인 요건들이 무엇입니까?(3-4절)
오늘 도시 교회 교인들 중에는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농경사회 때 지킨 맥추감사절을 지키라고 하느냐? 고
    반문을 합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맥추감사 보다 더 감사한 은혜가 구원에 대한 감사요
                      나아가 생명에 대한 감사입니다. 

1) 감사의 이유 중 첫 번째가 구원의 감사인 속죄함의 감사입니다.
3절 [ 저가 내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
여기서 다윗은 자신이 받은 축복들의 메뉴를 제시하기 시작합니다.
이 축복의 메뉴는 다윗이 감사의 주제로 되돌아보는 것입니다.
스펄젼 목사는 다윗의 감사를 이렇게 묘사를 합니다.
“ 그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는 보물상자에서 최상품 진주를 집어내며,
  그것들을 기억의 실로 꿰어서 감사의 목에다 건다.
그 가운데 사함 받은 죄악은, 우리 경험상 최상의 은혜들 중 하나이며
  가장 먼저 지녀야 할 은총의 선물에 해당한다.
즉, 그 은총을 소유할 때에야 비로소
  다른 모든 은총들을 누릴 수 있는 준비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죄사함은 우리의 영적 체험의 순서에 있어 첫째에 해당한다.”
      우리가 죄사함 받고 주 앞에 옳다함 얻음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원인에 해당하는 죄악이 사라질 때, 그 결과도 멈춘다는 것입니다.
몸과 영혼의 질병은 죄로 말미암아 들어왔으며,
    죄가 근절됨에 따라 육체적, 정신적, 영적 질병도 사라질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건강을 죄를 사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을 지켜주신 데서 왔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건강도 하나님이 지켜 주어야 합니다.
    각종 무서운 질별과 공해 가운데서 하나님이 지켜 주어야 합니다.

내일 교우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인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만병의 의사이십니다.
출15:26에 [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 고 말씀했습니다.
렘30:17에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
        .내가 너를 치료하여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 ] 고 했습니다.
말4:2절에 [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우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인줄 믿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트리분이라는 잡지에 <페기 풀>이라는 여성이
    암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 직전에서
    고침 받은 기적적인 사건을 간증으로 실었습니다.
이 여성은 암으로 병원에서도
  더 이상 살 가망이 없다고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였습니다.
낙심한 이 여성에게 어떤 사람이 쟁반에 물을 떠와서 마시라고 주었습니다.
그래서 물을 마시려고 컵을 드니까
그 컵 밑에 ‘포기하지마세요’라는 글이 쓰여 진 종이가 한 장 있었습니다.
그는 그 글을 보고, ‘그렇다. 내가 죽을 때 죽더라도
            끝까지 암과 싸워 투쟁하리라.’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창밖을 보니
토끼 한 마리가 누군가 던져준 오렌지를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내 몸에 암 세포가 있는데 정상적인 세포, 백혈구가
          암 세포를 갉아먹을 것을 믿습니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암세포가 하나씩 없어지고 정상세포가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면서 그 모습을 마음에 건강한 모습을 그리는 가운데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께 감사가 나오더랍니다.
그러니 점점 병이 호전되면서 암세포는 사라지고 깨끗하게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는 암에 걸려 사형선고를 받고 절망하고 포기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잡지에 자신의 간증을 실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빌4:6절을 인용하면서
    “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아뢰면 반드시 하나님게서 이루어 주신다”
      라고 합니다.
병 나아서 감사하기 전에 병 나을 것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3) 4절 내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파멸이란 죽음, 지옥, 멸망, 등을 의미합니다.
          이런 곳에서 구원 하셨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리의 생명을 노리는 위험요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그때마다 우리를 보호해 주셨고, 건져주셨습니다. 
요즘 일어나고 있는 대형 교통사고, 화재, 천재지변… 등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도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시기 바랍니다.
생명을 파멸에서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십시다.

해수욕장에서 인명구조원으로 일하던 사람이 정년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축하를 하려고 온 친구가 물었습니다.
"지금까지 인명구조원으로 일 하면서 목숨을 구한 사람은 몇 명이나 되지?"
잠시 생각하던 구조원이 대답했습니다.
"음, 단 두 명뿐이네." 그 친구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다시 물었습니다.
"삼십 년을 넘게 일했는데 그것밖에 안되나? 자네 지금가지 뭘 했어."
그러자 인명구조원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물론 구조 받은 사람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지
  하지만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찾아온 사람은 단 두 사람뿐이었네.
  난 그 두 사람만 사람다운 사람이라 생각하거든 ] 하더랍니다.
하나님 보시기에도 구원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할 줄 아는 교인만이
    하나님 백성다운 성도로 보십니다.
내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우리가 신앙이 성숙하여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에 눈이 뜨여지면 
전천후 감사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어떤 고난도                         
하나님께서 인자와 긍휼을 베푸시면 그 고난이 되려 영광이 되어
나를 더 높혀 주는 관이 된다는 말입니다. 믿습니까?

발명가 에디슨은 1914년 12월 9일에 평생 모은 재산인 공장과 연구시설이
불에 모두 타 버리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불탄 자리를 바라보고 있던 67세의 에디슨이
    아내와 아들을 앉고 이렇게 말합니다.
[ 하나님 불에 타 죽지 않고 생명을 구해주시니 감사합니다. ]
그리고 조금 있다가 또 하는 말이
[ 건물과 시설을 아까워하며 뜯어고치지 못하는 나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이렇게 불로 책망도 하시고 허물어 주시니
이제 새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되었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
바로 이런 감사를 전천후 감사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이유가 많이 있지만은       
우리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전천후 감사를 드려야 할 존재라는 것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죄 사함 받고 구원받아
      하나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건강한 모습으로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나온 행위나 행사를 보면
백 번 죽어도 마땅한 죄인들이지만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이렇게 용서받고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는 것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4. 우리가 감사의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된 삶이 무엇입니까?(5절)

5절에 1)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2)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저는 오늘 말씀의 제목을, 감사 - 젊게 사는 비결이라고 정했습니다..
저는 사랑의 교회 집사님이 제자훈련을 받으며 쓴 간증책 제목이
    늘 떠나지 않습니다. [ 아프지도 말고 죽지도 말자 ]
저는 여기에 한 마디 더 붙입니다.
[ 아프지도 말고 늙지도 말고 죽지도 말자 ]
그랬더니 우리 안나 예친의 구호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늙지 않을 수 있느냐?                   
물론 육신적으로냐 늙지 않을 수 없지요, 하나님의 법칙이니깐요.
그러니 얼굴에 주름살 피려고 하다가
          선풍기 아줌마 되는 일들 없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정신적 신앙적으로는 늙지 않는 비결이 있습니다.
    전천후 감사의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럴 때  1)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해 주시고
      2) 내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영원한 젊은이로 형통한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도 젊게 사는 비결이 있습니다.
미국 뉴욕주립대 의대 학장인 <마이클 로이진> 교수가
'달력 나이보다 젊어지는 78가지 방법'을 제시하면서,
    그 방법을 실천했을 때 얼마나 젊어지는지 발표했습니다.
예를 들면 '매일 비타민 먹기'는 1.2년이 젊어진다고 합니다.
'아침밥 안 거르기'는 1.1년이 젊어지고,
꼭 필요한 약을 의사의 처방대로 정확하게 복용하면 0.9년이 젊어지고,
      처방전과 다르게 복용하면 1.6년이 늙는다고 합니다.
많이 웃으면 1.7~1.8년이 젊어지고,
평생 무엇인가 배우는 자세를 가지면 2.5년,
사고력을 요구하는 새로운 게임 배우기는 1.3년,
손과 식품을 자주 깨끗이 씻으면 0.4년,
하루 5회 과일을 먹으면 1.4년이 젊어집니다.
맛있는 야채를 하루에 5회 먹으면 2~5년,
안 튀긴 생선을 주 3회 먹으면 최고 3년이 젊어지고,
담배를 하루 한 갑 피우면 8년이 늙어지고,
일정한 시간에 숙면을 취하면 3년이 젊어집니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일주일에 3,200 kcal 이상을 소비하면
3.4년이 젊어집니다. 

가장 기가 막힌 것은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해소할 방법이 없으면 30년이 늙는다는 것입니다.
규칙적인 운동, 이런 것하고는 비교가 안 됩니다.
스트레스 해소할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최선의 방어는 선제공격이다 란 말이 있듯이
먼저 감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생리학 적으로도 30년은 젊게 산다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 어떻게 다 지킬 수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 백성에게는 젊게 사는 비결은 단순합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젊은이로 살아갈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만족케 해 주신다고 했는데
 

5. 나는 내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5절)

감사의 사람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마음에 뜨거운 의욕이 있습니다.
사람은 그 마음에 뜨거운 의욕이 있는 이상 절대 실패자가 아닙니다.
제수를 해도 삼수해야 겠다는 의욕이 있어면 낙방자가 아닙니다.
미끄러져도 다시 일어나야겠다는 용기만 있으면 실패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감사의 사람이 되면
    우리 마음의 뜨거운 의욕을 하나님이 이루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것도 우리가 바라는 그 이상
    우리의 소원 그 이상 최상의 것으로 채워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살전5:16절에 바울은 감사와 기쁨은
            하나님의 축복의 징조라고 합니다.
말씀을 준비하다가 가만히 생각해 봤어요
사람은 육체적으로 보통 늙는 분기점이 사람마다 조금은 차이가 있지만
    보편적으로 20대 중반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적 영적으로 늙는 분기점은 어디일까?     
내 신앙의 젊음과 늙은이의 분기점이 어디일까요?
내 마음속에 주님을 향한 뜨거운 의욕이 있느냐? 는 것입니다.
  의욕이 시들 때가 내가 늙어 가는 때요
  의욕이 타오를 때가 내가 젊어지는 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동안에는
  항상 내 마음 속에 의욕이 넘치는 영원한 젊은이로 살아갈 줄 믿습니다.
(김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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